해보기 - 창설의 예술철학
해보기와 창설의 미학 어떤 화가의 미술 전시관을 방문하는 일은 감상이라는 해보기를 시도하는 일이다. 예술 작품을 멀치감치 관조theoria하는 것과 달리 '해보기'의 감상(프랙티스 감상)은 작품에 참여하고 작가에 필링한다. 꼭 작가정신에 동조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거꾸로 말해서 이런 참여와 필링이 작품에 공섭(섭동)하는 일이다. 그런 공섭이 바로 해보기(프랙티스)의 사례이다. 공섭은 내가 작품을 투영하면서 동시에 작품이 나를 투영하게끔 나를 그 자리에 열어 두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일을 창조행위(창작)라고 하는데, 작품(사물)이 작가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양방향의 창조성을 예술철학 수리오(프랑스 미학자·예술철학자 Étienne Souriau)는 '창설'instauration이라고 표현했다. 수리오의 창설은 예술가가 주체이고 작품은 수동적 결과물로 되는 그런 창조creation와 다르다.수리오의 창설instauration은 미완성 작품재료들이 갖는 사물의 가능성과 작업 과정(프랙티스)이 작가를 창조하는 양방향의 창조를 의미한다. 작가가 사물에 응답하는 과정이 창설의 요지이다. 수리오에게 예술가는 창작 주체가 아니라 사물에 응답하는 기여자이다. 기여자와 사물이 만나 작품이 창설된(한)다. “창설하는 행위자(agent instaurateur)가 수행하는 제작 행위 속에서, 우리는 잠재적 존재에서 구체적 존재로의 이행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Les différents modes d’existence』2009년 재판본, pp.195–217, 기계번역) 그래서 창설은 주체(사람 혹은 작가) 중심의 구성construction이나 생산production과 다르다. ****더 나아가, 예술 분야에서 '해보기'는 직접 따라서 모사하고 그 분위기를 몸으로 재구성하는 일인데, 이 상황은 다른 포스팅에서 다룬다. 링크 보기 ⇩⇩ 해보기 1 향유와 관조가 아닌 프랙티스 해보기 2 프랙티스와 사용 철학
키워드: 수리오의 창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