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함
홀로함에 대하여 최종덕(독립학자, philonatu.com) 1. 홀로함 01 : 홈페이지 제작 나는 오래 전부터 컴퓨팅 논리에 관심을 가졌었다. 이론적인 관심만이 아니라 실행가능한 인터넷 연관성을 찾아왔었다. 그 실행은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아이폰이 한국에 출시된 2010년 이전 2008년부터 나는 나의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했다. 그때도 홈페이지 운영은 희귀한 일이 아니었지만 내 홈페지는 유별났었다. 운영 서버와 mySQL 같은 데이터 저장소를 이용하지 않고 서버와 데이터 저장 장치를 직접 운영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컴퓨터 한 대를 더 설치하여 서버 컴퓨터로 사용했다는 뜻이다. 나는 네이버나 구글에서 제공하는 개인 블로그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기업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해당 기업이 없어지면 내 자료도 없어진다는 논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의존성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내 홈피를 운영하려면 서버와 데이터공간을 자체적으로 가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문서나 이미지 같은 웬만한 데이터는 자체적인 저장공간 용량으로 감당하지만 동영상은 용량이 커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체적인 공간확보가 어려웠다. 그때에도 유투브가 있었지만, 지금과 달리 그 영향력은 미미했었다. 나는 그런 유투브 사이트조차 통하지 않고 자체적인 동영상 제공자 역할을 시도한 것이다. 웃기는 일이지만 나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다시 말해서 문서나 이미지 용량의 수백 배, 수천 배가 될 수밖에 없는 동영상 저장공간까지 자체적으로 확보하려 했다는 뜻이다. 물론 상당한 저장 공간을 가져야 한다. 당시 저장공간은 부피도 크고 소리도 요란한 하드디스크 HDD 밖에 없었다. 용량 큰 거는 가격도 엄청 비쌌다. 요즘 1,000 GB (1TB) 사타방식 SSD 가격이 10만원 정도인데 당시 40GB HDD 가격은 30만원 정도 한 것으로 기억난다. 간단히 말해서 동일 용량 기준 가격은 대충 100 배 차이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고용량 동영상까지 (유투브 링크 없이) 자체 서버로 돌렸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사적 기업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싶었다. 실제로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었다. 서버컴퓨터는 24시간 틀어 놓아야 하는데, 이런 24시간 온라인 컴퓨터는 해킹의 주요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내 것 역시 해킹당해서 경찰서에서 조사를 나왔을 정도다. 나는 무서워서 그 이후로 자체 서버 시스템을 포기했다. 그 때가 2017년이다. 그 이후 몇 년 동안 홈페이지 운영을 포기했었다. 2019년 조기 퇴직 이후 내 스스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홈페이지를 만드는 프레임을 제공하는 업체들이 많았다. 네이버 블로그, 네이버 카페, 구글사이트, 워드프레스 같은 웹빌더 혹은 홈페이지 제작 솔루션(CMS)을 말한다. 나는 그런 것을 거부했다. 이제 방법은 유일하다. 프로그램 언어를 배워서 처음부터 ‘쌩’으로 코딩을 해서 홈페이지를 만드는 방법뿐이다. 코딩 학원을 다니려고 계획했었다. 나는 원주에 살지만 서울 소재 학원에 통학을 해서라도 꼭 배우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전지구적 상황이 급변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일상은 문닫았고 서울 가는 일조차 불가능했다. 인터넷 온라인 강의가 유일했다. 그거라도 수강했다. 처음에는 제일 유명한 파이썬Phthon 으로 시작하여 홈페이지 코딩을 했는데 실패했다. 인터넷 수강이지만 일대일로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초보가 겪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파이썬 언어를 포기하고 그 대신 범례 코딩이 많았던 PHP를 다시 배워서 15개월 만에 홈페이지를 완성했다. 아니 완성이 아니라 비슷한 거 하나 겨우 만들었다. 그게 2020년 말이었다. 홈페이지 제작 시도 이후 3년 만에 이룬 일이다. 가르쳐 준 사람 한 사람도 없이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홈페이지 코딩작업을 수행했다. 2. 홀로함 02 : 수영, 걷기 나는 퍼포먼스를 지향한다. 즉 수행이다. 멋있는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을 조용히 감상하려 하는 대신에 내 스스로 그 음악을 따라서 연주하고 싶아했다. 수행이다. 그림을 보고 무엇인가를 느끼면 전시회나 도록을 보고 감상하거나 혹은 관련 미학이론 주변으로 어슬렁거리기 보다는 그 그림을 따라 그리고 싶어 했다. 지금까지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수행 결과는 부족하지만) 이것 저것 시도는 많이 했다. 한때 충전 밧데리에 감흥받아서 (리튬이온) 밧데리 조립을 2 년이나 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내 일상 속에서 아침 일어나자마자 시계알람 소리에 깨고 면도기로 면도하고 스맛폰보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듣고, 등등의 생활환경에서 충전밧데리는 항상 붙어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그런 일상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리튬 밧데리를 구입하여 유투브보고 따라서 조립하여 충전용 블루투스 스피커를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남들이 떠먹여주는 유무형 서비스를 내가 직접 수행해 본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당위적이라는 생각이었다. 요즘은 수영을 하는데, 텔레비전에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인 선수를 보고 감동받아 2년 전부터 동네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지난 달 대부도 바다 수영과 한강 잠실 수중보 하단 횡단 수영을 하면서 텔레비전으로 보는 스포츠가 아니라 미약한 수준이나마 직접 수행하는 스포츠를 수행했다. 수행 중이다. 걷기 운동을 학원에서 배워야 한다고 상상한다면 아마 반발이 클 거다. 마찬가지로 수영이나 취미생활도 충분히 혼자서 수행할 수 있다. 우리에겐 그런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 다만 그런 자기 잠재력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누구나 몸의 기억, 몸의 진화론적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편습된 기억으로 지워진 몸의 기억을 되살리면 된다. 3. 홀로함 03 - 예술 이것 저것을 하려면 배우는 데 큰 돈이 들 터이다. 나는 돈 드는 수업이나 강좌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수영도 유투브로 독학했고, 피아노나 바이올린도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치게 되었다. 수준은 형편없지만 그래도 내 처는 들어줄 만하다고 말하니, 그 정도 수준이면 나에겐 대만족이다. 그림 스케치도 그냥 따라서 본뜨기 하는 수준으로 그릴 뿐이지만 나는 만족한다. 내가 남에게 내 그림을 보여주고 자랑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나에게 예술은 감상이 아니라 수행이다. 예술의 원천으로서 구석기 조상의 동굴벽화를 들 수 있다. 동굴벽화는 생활 속의 예술이다. 동굴벽화의 예술art은 말 그대로 기술arts이며 기술은 저 멀리 두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고 행동하는 수행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τέχνη (techne)는 오늘 예술과 기술을 모두 포함하듯이 말이다. 예술은 직업 예술가만의 소유가 아니라 일상인이 자기 세계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철학자 화이트헤드A.N.Whitehead 는 예술과 기술 모두 창조성creativity의 수단이라고 했다. 이 포스팅 썸네일로 사용한 앞의 꿀벌 그림도 내가 그렸는데, 이 그림은 내 책을 내준 '씨아이알' 출판사 표지 디자이너와 상의한 끝에 "생물철학" 겉표지로 활용되었다. 음악과 그림을 수행한 나의 초보자격 수행은 내 홈페이지 (‘일상과 감성’ 메뉴)에 실어 놓았으니 빗대어 보시면 이해하기 더 쉬울 듯하다. 4. 홀로함 04 - 요리에서 바이올린 우선 해봐야 알 수 있다. 안 되는 경우가 많이 생기겠지만 그래도 하면 된다. 나는 요리를 즐겨하는데 요리하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없다. 단지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먹어보았던 음식의 맛과 향을 기억하면서, 짜면 물을 더 넣고 싱거우면 소금 조금 더. 이런 수행을 반복하면, 반복하지만 똑 같은 반복이 아닌 창조적 반복을 하다보면, 그렇게 입맛 까다로운 내 와이프도 어느새 내 요리를 먹고 있다. 내가 바이올린 연습한 이야기를 하면 될 것 같다. 10만 원 짜리 연습용 바이올린 하나 사서 켜기 시작한다. 음이 하나 틀리면 그 옆 음으로 손가락을 누른다. 아니면 한 뜸, 더 아래로 옮겨서 비슷한 소리가 나면 다음 소리를 따라한다. 이렇게 시작한 바이올린, 이제 대중음악 소리는 거의 따라 켤 수 있게 되었다. 피아노도 그렇게 연습했다. 요즘 악기 다룬 지 5년이 넘었지만, 자전거 타는 법 잊지 않듯이 바이올린 켜는 감성도 그리 쉽게 잊혀 지지 않는다. 그게 지식 배우기나 암기학습과 전혀 다른 감성의 연습법이다. 그림 그리기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배웠다. 5. 홀로함이 공생-공존-공감의 지름길이다. 남들은 혼자 외로이 하는 일을 개인주의로 보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 반대라고 본다. 혼자 홀로 하는 일상의 연습을 많이 해야 공생-공존-공감의 더불어 사는 생활도 잘할 수 있다. 외로움을 억지로 이기려하지 않고 오히려 외로움과 더불어 사는 일상을 생활 속에서 연습해 온 사람은 남들과 더불어 사는 데 매우 지혜로운 수행(행위, 실천)을 할 수 있다. 홀로함의 연습이 없었던 사물관계나 인간관계는 거의 필연적으로 노예와 주인의 계급관계로 빠진다. 홀로함을 연습하지 않은 사람은 대부분 권력형 주인 행세를 하려하거나 종속형 노예 습성에 중독된다는 점이다. 홀로와 홀로함은 다르다. “함” 없는 “홀로”는 그야말로 처절한 고립이다. 반면 수행하는 ‘홀로’는 세상과 직접 소통하는 창구가 된다. 그러면 홀로함은 어떻게 하나? 그냥 하면 된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해봐야 한다. 그것이 시작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평소에 그것을 꼭 해보고 싶다는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말에 “엄두를 낸다”라는 표현이 있다. 엄두의 어원은 “염두”念頭인데, 평소부터 그 실천을 내 마음속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엄두라는 용어는 실제로 “엄두를 낸다”라는 긍정적 표현보다 “엄두가 안 난다” 라는 식의 부정적 습관으로 더 자주 쓰이고 있다. 그런 부정적 습관에 젖어 있어서 우리는 더욱 더 홀로함에 약해진다. 그러면서 자기 고립에 자가당착으로 빠지고 결국 남들과 더불어 살며 행동하는데 미숙해진다. 부정적 습관이 아니라 엄두를 내어본다는 능동성 표현법을 받아들이면 홀로함은 엄두로 이어지고 결국 혼자만의 수행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지름길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홀로함은 공생과 공존 그리고 공감의 토대로 선다.
키워드: 홀로함은 고립이 아니라 공생-공존-공감의 토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