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투르의 경제철학1 -내재의 경제학-14장 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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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투르의 존재양식 14장 경제철학1 - 해제와 주석 - 최종덕 (독립학자, philonatu.com) ① 라투르(Bruno Latour, 1947-2022)의 책, 『존재양식의 탐구』 영어판이 출간되고 10년 만에 한글판(2023)이 나왔다. 영어판을 힘들게 읽다가 한글판이 나오니 독서가 아주 수월해졌다. 어려운 라투르 독서를 위해 출간된 해설서가 다수 있을 정도다.(Gerard de Vries, Bruno Latour. polity 2016) 각종 해설서의 도움을 받아 나도 비슷한 해설과 주석을 달아보려고 시도했다. ② 『존재양식의 탐구』 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서론에서 6장까지) 원고를 나의 홈페이지 <필로나투>philonatu.com에 먼저 싣고 나머지 2부와 3부는 원고가 다듬어지는 대로 추후에 올릴 예정이다. <해설과 주석> 작업이 원래 더 오래 걸릴 일이었는데, 한글판 출간 덕분에 좀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나의 <해설과 주석>은 전적으로 한 권의 책, 『존재양식의 탐구』 만을 위한 것이다. ③ 이 책 1장에서 16장까지 각 장 별로 해제 원고를 차례로 올리기는 하지만, 각 장의 내용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 책의 특성 때문에 개별 장을 따로 읽기가 힘들 수 있다. ④ 한글판 번역자에게 감사드린다. 전체적으로 훌륭한 번역이지만, 몇몇 용어 번역에 코멘트를 달거나 영어판 쪽수를 그대로 따른 것도 많다. ⑤ 인용 출처는 괄호 안 쪽수 (123)로만 표기했는데 영어판 출처는 숫자 앞에 * 표시(*124)를 했다. 라투르의 존재양식 14장 경제철학1 - 초월 대신 내재의 경제학 혹은 초월이 아닌 내재의 조직화 -------------- 근대인의 경제 담론, 그들이 애착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 1. 형이상학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2, 살기, 원하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결정하며, 계산하기와 일을 꾸려가기, 일을 착수하고, 교환하고 빚내거나 소비하기 등의 “경제” 담론이 우선이다. 3. 사실, 법, 필연성, 의무, 물질, 힘과 권력 가치 등이 경제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556) 4. 라투르 역시 근대인의 존재양식을 무시하지 않는다. 근대인의 존재양식을 알아야만 근대인의 오류를 탈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근대인의 사유구조와 행동방식을 무조건 거불할 것이 아니라 그들 간의 관계를 통해서 근대인의 문제가 비로소 드러난다는 뜻이다.(556) ------------------ 자연의 두 가지 개념 ------------------ 1. 인간과 환경 사이 관계에 대한 반성에서 가장 핵심을 차지하는 것이 자연 개념이다. 자연 개념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땅의 자연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 자연이다. 경제는 세계 안의 존재로서 두 번째 자연에 해당한다. 2. 첫째 자연First Nature은 물질적 자연이거나 혹은 생태적 자연을 말한다. 이런 자연은 오늘날 생태위기로 그 보편성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다. 둘째 자연Second Nature은 경제학의 대상으로서 자연이며 경제를 떠나 말할 수 없다. ----------- 경제적 암, 자본주의 - 안고 가야 하나? ----------- 1.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점점 경제 지배력은 확장되고 있다. 우리 특히 근대인에게 경제는 더 밀접 되어있다. 경제는 세계의 기초가 아니라 서구사회에서 발생했지만 세계 전체로 전이된 “암”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런 해석은 가치 기준을 냉정한 이해관계의 계산법으로 정착시켰다. 결국 자본주의라는 암의 원인요소 때문에 몸 전체로 전이되듯이 경제 전체가 암에 걸린 것과 같다.(558) 2. 자본주의를 만든 백인들이 전 지구를 점령하여 경제를 장악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라고 라투르는 말한다.(558) 3. 그렇지만 이렇게 지구화된 경제라는 메타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비경제화diseconomize의 언어로 현실세계를 파악할 수 있을지의 문제는 가장 큰 난제이다. 4.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암세포에 의해 점령된 세계의 경제를 우리는 보편적이라고 부를 정도로 세계 경제는 왜곡되어 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시장구조를 당장 해체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자본주의를 인정하고 그 대안을 찾는 것이 라투르의 해답인지의 여부가 분명하지 않아 보이며, 이 점에서 라투르의 처방은 애매하고 모호해 보인다. 6. 그러나 라투르의 자본주의 처방은 자본주의를 품고 있는 경제, 자본주의의 모집합인 경제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본주의를 수정하자는 대안보다 자본의 모집합인 경제 양식을 바꾸자는 대안이 아마도 더 강한 태도일 수 있다. 7. 경제 양식을 변성하고 변신시켜야 한다는 뜻은 앞의 3번 문장에서 말한 ‘비경제화’란 이성으로 무장된 근대 경제 대신에 재생산 구조의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경제화의 전환은 현실 경제 양태가 안고 있는 모순된 간극을 잘 채우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이 라투르 경제철학의 질적 방법론이다. -------------------- 경제적 요구와 현실 사이의 간극과 세 가지 대응 양식 – 애착, 도덕, 조직 -------------------- 1. 자본주의로 치닫고 있는 경제적 요구와 제한된 현실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다. 자원의 간극, 조직의 간극, 이성의 간극이다. 자원의 간극은 도덕 양식으로 채우며, 개념 무질서의 간극은 조직 양식을 채우며, 온도의 간극(이성의 차가운 온도와 비합리성의 뜨거운 온도 사이의 간극)은 애착의 양식으로 채우는 것이 이 책 3부의 내용이다. 그 3 가지 간극은 다음과 같다. 2. 개념 무질서의 간극 - 조직 양식의 전환으로 채운다. (14장 내용) 경제는 세계화, 기업, 기구, 민족주의 등으로 잘 정리된(정의된) 조직에 의해 제한된 지구자원 안에서 어떻게 적정한 분배가 가능한지를 연구하는 것이 경제라고 한다.(562) 기업 등의 경제 법인체들은 초월적인 무엇으로 견고한 조직이라고 생각되어져 왔다. 경제적 조직은 그물망처럼 합리적으로 짜여 있는 집합체라고 스스로 자부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실상을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이 라투르의 지적이다. 그런 조직은 경계도 모호하고 내구성도 별로 없다는 것을 연구원은 알게 되었다. 기업이라는 조직을 너머서 사회, 국가, 시장, 자본주의라는 조직 역시 근대인들이(우리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막강하고 굳건한(초월적인) 조직화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차이가 곧 개념 무질서의 간극이다.(563-4) 조직 내부에서는 불성실하고 무질서하며 감정적 결정이 우선하며 혼란스런 권력들이 난문하고 있다. 여기서 일상과 경제의 간극은 깊은 차별을 낳는다. 이는 조직[ORG]의 내구성이 그렇게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562-4) 3. 이성과 비이성 사이의 간극 혹은 온도의 간극 – 애착 양식의 대전환(15장 내용) 자본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현상들은 거대한 끓는 가마솥에 비유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거꾸로 이런 현상을 차갑고 합리적 계산문제로 간주되고 있다. 경제의 뜨거운 현상과 이를 제어한다는 차가운 접근방식 사이에서 그 심연은 깊다. 그 심연을 벗어나려면 생존을 지속하려는 존재자의 애착attachment 양식 [ATT]을 이해해야 한다. 4. 자원의 간극 - 도덕 양식으로 채운다. (16장 내용) 최대 다수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근대인의 엄숙한 경제관이 실현되려면 거의 무한에 가까운 자산이 요구되는데, 이 지구에서 그런 요구는 성립될 수 없다. 결국 최대 다수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경제의 목표는 실제로 분배의 한계와 불평등에 빠지고 만다. 지구 자원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겉으로만 분배를 말하면서 그런 불평등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한정된 자원의 현실을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심각한 간극의 원인이다. 라투르는 이런 침묵을 비워진 광장이라고 표현했다. 지구의 한계를 솔직하게 터놓고 열린 소통이 오가는 아고라의 논쟁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아고라 광장은 비워진 채로 휑할 뿐이라고 라투르는 지적한다. 비워진 광장을 숨긴 채 충만한 미래가 자동적으로 작동될 것처럼 말하는 것이 자기모순이며 심연의 간극이라고 말한다. 엄숙한 경제의 요구와 제한된 현실 사이에는 비어있는 간극만이 있다. 그렇게 비어있는 간극을 도덕[MOR]으로 채워야 한다. 5. 애착, 도덕, 조직의 3 양식을 존중한다면 두 번째 자연으로 정착된 경제 제도의 오도된 길을 파악하고 피할 수 있게 된다. 이로부터 앞이 훤한 대로가 아닐지언정 경제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작은 오솔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 『존재양식의 탐구』의 큰 방향이다. (565) 6. 14장에서 경제철학에서 조직화가 왜 중요한지를 다룬다. 15장에서는 경제 현실의 자연적인 소산물인 정념의 이해관계에서 탐진치의 장애를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지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16장에서 제한된 자원의 간극을 도덕과 책임으로 대신해야 한다는 양심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 책을 마무리한다. 우선 14장 조직화의 문제를 검토한다. ------------ 조직 양식은 일을 꾸며행위로 이어지게 하는 흐름의 양태이다. ------------ 1. [ORG]에서 조직은 조직된 결과로서 조직 개념이 있듯이, 그와 다르게 과정으로서 조직이 있는데 이는 전치사 존재양식의 의미를 갖고 있다. [조직]에서 결과로서 조직은 명사로서 조직에 해당하며, 과정으로서 조직은 “조직적으로”라는 부사로서 조직에 해당할 것이다. 2. 예를 들어 기업이나 각종 관련 기구들은 결과로서 조직이며, 세계화나 민족주의 등은 전치사로서 과정적 조직에 해당한다. 3. 우리는 조직된 결과로서 조직이 아니라 조직하는(일을 꾸미는) 행위과정으로서 조직을 탐구한다.(566) 4. 조직 양식을 설명하기 위하여 라투르는 폴과 피엘이라는 두 사람이 전화로 약속을 하고 만나는 이야기를 기입inscription하고 서술description하는 대본script을 비유로 들고 있다. -------- 조직과 다른 양식의 조화 -------- 1. 조직의 존재양식은 다른 양식과 조화Harmonics되어 나타난다.(576-7) 2. 조직이 법과 만나서 연속성의 평면을 획득한다.[LAW.ORG] 3. 조직이 습관과 만나면 일일이 전치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조직의 안정된 행위과정을 보장받게 된다. [HAB.ORG] 4. 조직이 종교와 만나서 종교의 이상(완성점)을 현실의 제약 안에서 형상되도록 해준다.[REL.ORG] ___________ 폴과 피엘이 꾸미는 이야기 대본 ----------- 1. 라투르는 “대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하여 아주 소박한 사례, 폴과 피엘이 약속을 만들고 만나는 이야기를 사례로 꾸몄다. 두 사람은 전화통화하면서 내일 오후 6시 정각에 대전시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그 대본의 내용이다. 두 사람 약속과 그 약속이 실현될 내일 6시라는 시간에 대한 기대감 등의 이야기들이 대본으로 만들어졌다.(569) 2. 이런 약속 이면에는 폴 피엘이 살고 있는 지역과 대전시청과의 거리, 두 사람의 현재 건강상태, 설에 대한 관심 그리고 서로 인지하고 있는 장소 공유 등, 비가시적이거나 아직 실현되지 않은 다양한 픽션[FIC]이 [ORG] 조직과정에 교차되어 있다. 3. 대본은 조직화에 해당한다. 명사형 조직이 아니라 동사형 조직화organizing를 말한다. 대본에 등장하는 폴과 피엘은 조직화 행위의 수행자이다. 폴과 피엘, 두 사람이 대본을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바로 그 대본이 폴과 피엘의 행위를 간섭한다.(573) 즉 폴과 피엘은 대본 밖에 있으면서 동시에 대본 안에 있다. 4. 다시 말해서 [FIC]와 [ORG]의 교차가 만든 이야기에서 폴과 피엘은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된다. 이야기 속에서 두 인물이 만나는데, 예를 들어 두 사람 모두 내일까지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신경 써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가 인물을 낳으며 이런 점에서 그들이 만든 이야기가 거꾸로 그들을 작용하는 행위 작동자로 된다.(568) 5. 조직화 행위는 인간만의 행위가 아니라 “이야기”가 행위의 주관자로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조직화 행위organizing act는 지시의 연쇄[REF] 양식으로 설명될 수 없다. 물론 대전시청이라는 지정된 장소와 내일 6시라는 지정된 시간이 지시의 연쇄 역할을 하지만, 이런 물리적 시공간은 이야기의 주요 속성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은 어디라도 언제라도 좋다. 중요한 것은 폴과 피엘이 만나서 할 말과 행동들을 기획하고 연상하고 기대하는 살아있는 대본을 생산하는 데 있다. 6. 대본이 생산되었지만 생산된 대본이 폴과 피엘을 다시 갱신한다. 그래서 폴과 피엘은 내일 6시 대전시청 모임 대신에 다른 다양하고 수많은 역할 동위소Isotopy를 수행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들이 만든 이야기가 폴과 피엘을 지정된 시공간에 오게끔 수행한다. 7. 폴과 피엘의 약속 이야기를 담은 대본은 그 둘의 약속이 실현되는 순간 만료되면서 사라진다. 모든 대본은 만료 과정을 필연적으로 겪는다. 마찬가지로 조직화도 만료된다. 만료되는 조직화를 탈조직화라고 부른다. 8. 그래서 조직화는 탈조직화의 반대가 아니라 수많은 탈조직화의 오직 한 가지 경우로 수행되어가는 과정이다.(571) 9. 어떤 사람의 대본은 그 사람 전체의 통합된 하나의 완성형 대본일 수 없다. 대본은 다수이며 다중적이다. 그렇듯이 조직도 고정되고 일관된 하나가 아니라 지금도 탈연동 과정에 있는 “조직화”의 하나일 뿐이다.(570-1) 10. 조직은 탈/재조직화의 순환고리에 있기 때문에 조직은 스스로 매우 취약하다. 영원하고 견고한 존재와는 무관하다. 조직의 고유하고 객관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허구다. ----------- 조직화의 타자성, 작은 초월성, (경제적) 섭리라는 이름의 허구 ----------- 1. 조직은 스스로 작동되지 않으며 고정된 존재양식이 아니다. 조직은 조직화이며, 조직화는 탈조직화와 재조직화를 동반한다. 즉 조직화는 끊임없는 불연속의 중단을 품고 있어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보장하고 작동시키는 (초월적) 동일성의 존재양식이 아니라 타자를 반드시 요청하는 (내재적) 타자성의 존재양식이다. 2. 경제 존재양식 역시 타자성의 존재양식이어서 자기 안에 불연속성을 품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경제적 존재자는 사람들에게는 결국 연속성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갈등을 갖는다. 그 인식과정에서 공백과 궤적, 틈새와 간극은 조직화 과정의 특징을 만든다. 공백에서 조직화되는 과정은 동일성이 아니라 타자성을 필요로 하며, 이것이 바로 작은 초월성이다.(572) 3. 우리는 대본에 영향 받지만 그 대본이 절대적이지 않다. 폴과 피엘이 만든 대본이 만료되기 전까지 그 두 사람에 영향을 주지만, 그 두 사람은 대본으로부터 다른 이야기를 생성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서 둘 사이의 약속이 변경될 수 있으며 그 약속이 절대적 신의 권위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대본은 폴과 피엘 사이의 작은 초월을 허용하지만 그렇다고 거대 초월성 maxi-transcendence에 의존하지 않는다. (572-3) 4. 조직에 거대한 초월성을 부여함으로써 그 조직을 만든 누군가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이익을 숨기기 위해 거대한 초월성을 더 확장하여 합리성의 이름의 “섭리”를 믿도록 만드는 것이 근대인의 조직이었다.(578-9) 5. 경제를 조직화하면서 경제에 섭리를 부여한 것이 마치 경제를 세속화된 종교처럼 간주한 오류가 발생하였다.(578-9) -------------- 폴과 피엘의 대본과 기입 -------------- 1. 예를 들어 전화통화한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하여 두 사람 모두 메모지나 스마트폰에 기록할 수 있고 혹은 그들 가족에게 약속 장소를 말할 수도 있다. 이런 기록은 과학지식의 기입처럼 강력하지는 않지만 메모지 기록 역시 기술적 준객체 역할을 한다. 2. 폴은 종이 쪽지에 기입하고 피엘은 스마트폰 약속 어플에 기입했을 경우, 폴이 쪽지를 분실했을 때 피엘이 스맛폰에 저장해둔 텍스트를 폴에게 이메일이나 모종의 소셜미디어로 전송할 수 있다.(이동시킬 수 있다) 이는 스마트폰의 기록 기입이 마치 불변의 가동물 immutable mobiles처럼 이동한 것과 같다. 폴과 피엘 사이가 비록 먼 거리가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서 폴과 피엘 모두 기입inscription의 덕분으로 대본script을 실행할 수 있게 된다. 기입장치inscription가 많아질수록 대본script의 서사는 풍부해질 것이다. 그런 서사를 읽어내는 욕구가 서술description이다. 3. 서사는 대본script에 의해 생성되며 대본은 조직화 행동organizing act이다. 대본의 궤적과 지시연쇄의 궤적은 다르다. 지시는 대본의 주요 속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 “사회”와 “개인” ---------- 1. 근대인은 조직을 하나의 틀로 질서 지우려 했다. 여기서 첫 번째 오류가 생기며 이 오류를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회학적 틀 역시 두 번째 오류이다.(582) 2. 기존 근대인의 사회학에서 사회는 집합체collective와 다르며, 사회를 개인individuals들의 총합으로 간주하려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려면 “개인”이라는 존재가 우선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이론은 불확실하다.(582) 3. “사회”와 “개인”이라는 총합체aggregates는 그들 즉 근대인 스스로의 경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라투르는 강하게 말한다. 그 이유로서, 첫째 “사회”라는 총합체는 경험을 벗어난 초월성을 갖기 때문이며, 둘째 “개인”이라는 총합체 역시 지나치게 통일화된 형이상학의 소산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583) 4. 사회학은 “사회”와 “개인”이라는 두 개의 유령에서 시작된 것이 그들 범주오류의 핵심이다. 어떤 사회학은 사회를 개인의 총합으로 분석하려 하고, 또 어떤 사회학은 사회를 개인으로부터 초월한 우월한 조직으로 보려 하지만, 이런 관점들의 사회학은 범주오류라는 뜻이다.(583) -------- 경제보다 경제화에 주목 -------- 1. 라투르는 경제화economization되면서 비로소 경제가 생겼다고 표현했는데(587), 우리가 아는 경제는 경제화economization 존재양식의 소산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라투르는 경제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독립적인 존재양식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라투르는 16장으로 구성된 이 책 14장에서 16장까지의 마지막 3개 챕터를 [경제철학]에 할애했음을 주목하자.) 오늘의 경제화는 지식[REF]을 재물질화하는 과정이다. 즉 일종의 관념화된 물질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2. 주식시장에서 경제화는 주식시세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끔 (과거 천공테이프에서 스크린 영상을 거쳐 스마트폰 어플까지 더 나아가 인공지능 활용 분석시스템에 이르는) 전기전자 통신기술의 기록장치를 통해서 가속화되었다. 라투르는 이를 경제화의 재탄생이라고 했다(588) 3. 앞의 사례를 더 상세히 말하자면, 오늘날의 휴대폰 주식시세 어플로 인해 경제화 규모는 확장되고 있다. 다양한 소프트웨어나 트레이딩 기법, 주식매매 자동시스템 등 경제화 경로passage의 확장dp 힘입어서 경제화가 다양해지면서 경제규모도 확장된다. 이런 경로들은 배정키Allocation Keys (여기서는 주식배당 지표에 해당할 것이다) 혹은 가치측정기Value Meter등으로 외형화 된다. 즉 경제화란 대상지식[REF]을 정량적 가치로 판단하는 수법을 발전시킨다.(589) --------- 경제화와 소유 --------- 1. 경제화는 소유property 관념에서 출발한다. 2. 소유는 나와 너, 내재성과 외재성, 내부와 외부 사이의 경계지움이다. 소유는 내부를 보는 눈을 감은 채 외부를 배제하는 데만 치중한다. 3. 측정한 것을 수량화한 측정척도Measuring Measures는 가치와 사실을 융합하는amalgamation하는 도구이며 그런 도구가 많아지면서 경제화도 확산된다고 근대인은 자랑한다. 불행히도 이런 방식의 융합은 (계량화된) 외재적 사실에만 초점을 두어서 (계량불가능한) 내재적 가치를 배제하는 증상으로 치닿는다. 4. 측정척도를 통한 경제화의 확산은 지시[REF]가 도구와 기입inscription 이라는 특정 표의문자를 통해서 확산되는 것과 같다.(592) ---------- 경제화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길 ---------- 1. 갈릴레오는 수학을 자연의 책이라고 표현했다. 이럴 경우 그 자연은 첫째 자연을 의미할 것이다. 갈릴레오 표현처럼 전통적인 의미의 첫째 자연의 책은 신이 만든 수학적 문자로 쓰였다면, 경제를 지칭하는 둘째 자연의 책은 신과 무관하지만 신의 권위에 버금가는 이성이라는 문자로 쓰였다는 것을 주목한다.(593) 2. 근대인이 지난 3 세기 동안 만든 경제는 인간을 합리적 존재라는 가정에서 축조되었다. 그러나 경험의 궤도에서 볼 때 인간은 이차적이고 부차적이다.(595) 합리적 인간이란 개인을 자족적이고 견고하며 완전한 주체로 본다. 합리성을 기반으로 본 물질은 결국 관념의 소산물에 지나지 않다는 점을 앞에서 충분히 거론했다. 3. 관념화된 물질에 지배된 근대인의 경제로부터 (1)탈관념화하고 (2)초월성이 아닌 내재성을 되찾고 (3)그런 내재성을 재물질화하도록 하면서 우리는 생존에 유리한 진짜 경제에 조금씩 다다를 수 있다.(596) 쉽게 말해서 경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극심한 빈부차이와 기후위기를 벗어나는 진짜 경제의 대안을 라투르는 제시한다. - 14장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