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위험한 철학

원저 : 슈미트잘로몬 , 위험한 철학-선악을 넘어서
실린 곳 : 위험한 철학, 위험한 철학

추천서

슈미트잘로몬, <위험한 철학> 애플시드 2022년9월

이 책의 저자 슈미트잘로몬은 도덕과 종교에 대한 인류학적 반성을 제시한 비판적 대중작가로 유명하다. 이 책 <위험한 철학>은 <선악을 넘어서>라는 원제에 붙은 부제였다. 저자는 니체의 유명한 저서 <선악을 넘어서>와 의도적으로 같은 제목으로 만들었다. 독일의 대표적인 무신론자이면서 철학자이며 진화론적 인본주의자인 저자 슈미트잘로몬은 이 책에서 문화라는 이름으로 권력화되고 형이상학으로 전락하여 개념화된 도덕의 혼선을 꼬집고 있다.

니체가 자신의 책 <선악을 넘어서>에서 형이상학과 종교를 신랄하게 비판했듯이, 저자는 진화생물학의 도움으로 선악의 기준을 기본 교리로 둔 서구종교의 블랙박스를 여지없이 깨부수고 있다. 어려운 철학 문장들로 가득한 니체의 책과 달리 이 책은 읽기에 쉽고 단박에 페이지를 넘길 정도로 재미나다. 이 책 한 권으로 니체 철학과 진화생물학 그리고 생활심리학과 행동주의 윤리학을 포섭할 수 있으며 내 삶의 진정한 자유와 도덕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 소중한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저자는 도덕이나 자유의지 개념들이 우리들의 구체적 삶이 아닌 도덕권력의 도구로 오용되고 있음을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도덕 개념에서 벗어나야만 오히려 더 윤리적인 삶을 살 수 있고, 자유의지 환상에서 깨어나야만 거꾸로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이 책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자. 선과 악 그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이 삶의 행동이 아닌 권력의 이념으로 바뀌어가는 인위적 모순이 비판될 뿐이다. 20-30만 년의 역사를 거쳐온 호모사피언스이지만, 불과 2-3천 년이라는 짧은 문명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선과 악의 프레임이다. 이런 선악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때 더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삶을 누릴 수 있음을 이 책 안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도덕의 이중성을 설명한다. 농경 정착생활을 시작한 신석기 이후 나는 내가 속한 집단 내부-도덕과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 외부-도덕라는 도덕의 이중성은 진화의 실수도 유전자의 오류도 아니라 단순한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와 우리들만의 사회집단의 구속력이 상호협력적이고 통합강도가 셀수록, 우리는 외부를 향해 더 강력한 방어와 투쟁의 성향을 갖는다는 점이다. 그렇게 우리만의 도덕이 형성된다.

집단의 도덕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집단 외부를 차단하는 논리가 이미 도덕률에 스며들었음을 보여주는 논리가 잘 설명되고 있다. 자신들만의 도덕 잣대 안에서 선과 악이 규범화된다는 뜻이다. 도덕은 자기 집단과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타자에 대항하여 벌이는 사회적 충돌에서 가장 유용한 승리전략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으로 미루어 도덕은 이중적일 수밖에 없는 자연의 소산물이기도 하다.

19세기 말 윤리학자 미하일 쿨리셰르를 인용하면서, 여기서 말하는 ‘이중성’은 온화한 사랑과 평화라는 한 편의 태도와 증오와 적대감 등의 다른 편의 태도가 병립되어 있다는 뜻이다. 한 편의 태동유형은 자기 집단을 대하는 도덕률이며, 다른 편의 태도유형은 외부 타인을 대하는 도덕 부산물이라고 말한다.

쿨리셰르가 관찰한 도덕의 이중성은 세계 5대 종교와 같은 이른바 고등종교의 ‘거룩한 경전’에서도 드러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런 저자의 용기는 정말로 기성문명에 대한 대단한 도전으로 여겨진다. 도덕의 이중성을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복과 윤리를 얻어낼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나아가 자아 ‘나’라는 주체와 자유의지 또한 문화적 밈의 소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논증을 한 저자의 해명은 정말 흥미롭다. ‘나’라는 의식은 문화적 밈이며 그런 밈이 형성된 것은 신석기 이후인데, 미국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가 가설로 내놓은 것에 의하면 약 3천 년 전에 생겨났을 것이라고 한다.

5만 년 전 구석기 성인이 갖는 독립된 ‘나’라는 의식은 아마도 지금의 7세 아이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은 비록 가설이기는 하지만 매우 설득력 있어 보인다. 저자는 먼저 자유의지라는 형이상학적 환상을 깨부수고 그리고 부당하지만 불가피한 사회제약 조건과 상황을 개선하려는 선택과 결정을 시도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도덕에 억눌리지 않고서도 충분히 윤리적일 수 있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도덕적 죄책감과 윤리적 후회를 설명할 때에도 유용한 논리로 적용된다. 죄책감과 후회의 두 감정은 같은 뿌리를 갖는데, 도덕적 죄책감은 우리를 위축시키면서 신체 에너지를 소진시킨다고 한다. 한편 후회는 적극적 대처를 준비할 수 있으며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도덕적 죄책감은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후회는 윤리적 후회로 향후 개선된 행동습관으로 유도될 수 있다.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길이 행복을 찾아가는 지름길임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1)죄책감의 과거와 불안감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집중하는 마음 챙김, (2)관계에 의미를 부여하여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태도, (3)대리경험이 아닌 직접 참여하는 행동습관이 윤리적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선악, 도덕, 자아, 자유의지의 관념이 권력에 의해 신성시되거나 혹시 더 높은 숭고함으로 무장된 것이 아닌지를 잘 따져보자는 것이 저자의 기본적인 제안이다. 만들어진 도덕원칙이나 형이상학으로 변모된 자유의지의 갈망 없이도 사람들은 더 자유롭고 더 윤리적이며 새롭고 평화로운 공존의 공동체를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하다.

어려운 개념의 책이 아니라서 더더욱 재미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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