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창조성과 인문학적 상상력 |
원저 : 프랑수와 자콥, 생명과학 |
실린 곳 : 연세대 대학원보, 연세대 대학원보 |
2001 서평 : 프랑수와 자콥의 생명과학, 연대 대학원 신문 106호(2001-6-4) 23매 원고 과학적 창조성과 인문학적 상상력 - 프랑스 생명과학을 통해서1. 우연과 필연 - 유전의 진화학 산탄총으로 새를 쏘는 경우, 새를 맞추어 떨어트리려는 총의 발사행위는 분명한 목적을 갖는 행위이다. 그러나 산탄총이 발사된 후 총구에서 벗어난 산탄들(많은 총알들)이 새를 맞추게 된다면 그 많은 산탄 총알 중에서 어느 총알이 새를 맞출지는 전적으로 우연에 속한다. 이 이야기는 목적과 관계없는 우연과 목적에 부합하는 필연이 서로 상충되기보다는 조화가능하다는 것을 보이는 하나의 은유이다. 우연과 필연의 이 같은 연결성은 특히 생물의 진화과정에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진화과정을 DNA 속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바로 프랑스가 자랑하는 파스퇴르 연구소의 자크 모노(Jacques Monod)와 프랑수와 자콥(Francois Jacob)의 공동작업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과학적 성과는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하늘을 나는 새의 뼈 속이 성글게 된 진화적 과정은 진화의 먼 과거 역사에 한 육상 생명체가 하늘을 날게 되는 단편으로 보아서는 우연에 속한다. 그러나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반드시 뼈가 가벼워야한다는 생리학적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에서는 그 진화과정은 필연에 속한다. 진화는 특정한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생명체의 미래가 어떤 필연적 진화를 가져다줄지는 전적으로 알 수 없다. 진화과정에 놓여 있는 생명체는 강 위로 흘러가는 미아의 바구니와 같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을 나는 새 중에서 어떤 생명종이 예를 들어 3톤 짜리 체중을 갖는 거대한 새로 진화할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생명체의 진화는 목적을 갖는 것이 아니지만, 아무 우연이나 선택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최근에 유전자 지도가 발표되었다고 해서 과학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말들 한다. 유전자의 수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여러 견해가 있었는데 이번에 발표한 것에 의하면 약 삼만 개 정도라고 한다. 작년에 발표한 것에 따르면 십만 개였는데 이번 발표는 1/3 정도로 뚝 떨어진 삼만개로 발표되었다. 10억 개 이상의 염기서열 중에서 생명체의 특정한 표현 형질을 나타내는 구성체를 유전자라고 부른다. 그런 유전자의 의미는 모든 유전자가 각각 생명현상의 특정부위에 일대일 대응된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이런 생각은 세포 정보의 유전이 필연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믿음 위에 서 있다. 예를 들어 5번 염색체 중의 특정 유전자가 천식을 유발하고, 어떤 특정 유전자는 눈의 색깔, 또 다른 유전자는 머리카락의 성질, 11번 염색체 중의 어떤 유전자는 혈액암 유발인자 등의 일대일 대응되는 방식으로 유전자의 인과법칙이 설명되기를 희망했다. 이렇게 표현형 혹은 유전병 등의 생물학적 요인이 고유한 특정 유전자에 있다는 생각을 ‘유전자 결정론’이라고 부른다. 유전자 연구는 유전자 결정론의 생각을 배제하고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3만여 개의 유전자를 갖고 그 결정론적 관계를 모두 밝힌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작은 숫자였다. 그 반증이 벌써 나타났다. 1998년 중반에 천식 유발인자는 5번 염색체에 8개의 후보가 있고 6, 12번에도 천식 유전자의 후보가 2개 씩 그리고 11, 13, 14번 염색체에도 그 후보를 발견하였다. 결국 유전자 차원에서도 특정 유전자가 질병 등의 특정 생리학적 현상에 대한 충분 조건이 아니라 단지 필요조건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유전자 결정론을 따르던 과학자들도 유전자 공학의 과학탐구가 발전하면 할수록 오히려 결정론적 일대일 대응론이 반드시 정상과학의 위치를 점유할 것이라는 믿음에 금이 가고 있다. 어떤 유전자는 분명히 특정한 생명현상과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연관방식이 단순히 일대일 대응되거나 직접적인 인과율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다. 그 연관방식은 매우 복잡한 조합구조를 갖는 유전정보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어서 현재의 과학수준으로는 일의一意적인 해명이 불가능하다. 물론 모노와 자콥의 초기 연구는 기본적으로 일의적인 유전자 대응 기능을 해명하려는 연구였다. 그러나 그들은 결정론적인 유전자의 기능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상호관계 그리고 유전자의 진화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의 영향력들을 인정하는 유전자 환경론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돌연변이 현상까지도 유전학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자콥은 당연히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단위 세포 차원의 유전 정보가 갖는 필연성과 전체 생명의 환경적 영향력이 서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 속에서 융합될 수 있다는 사유의 확장을 이루어 내었다. 이는 유전자 결정론과 같은 환원주의와 표류하는 진화의 선택을 강조하는 환경론자의 종합이기도 하다. 모노와 자콥은 이 점을 우연과 필연이라는 메타퍼로 말하고 있었다. 2. 무중심의 중심 1859년 다윈이 불과 천이백오십 부로 출판한 책인『(자연도태에 의한) 종의 기원』은 유럽의 지적 풍토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단지 생물학적 혁명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플라톤 사상과 기독교적 세계관의 축 위에 서있던 유럽사유의 혁명적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다윈 이전의 서구 인간관의 기본은 기독교적 인간관으로서, 인간은 신의 모방체로서 다른 동식물과 달리 매우 특수한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 목적론적 세계관을 갖는 기독교의 인간관과 달리 진화론의 인간관은 우연적이고 많은 생명체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무중심의 태도를 지닌다. 인간의 유전자는 침팬지의 유전자와 비교해서 98%는 같고 나머지 2%만 다를 뿐이다. 인간 유전자의 2%만이 침팬지의 것과 다르고, 진짜 하등하다고 생각한 초파리의 유전자의 숫자도 인간 유전자 수와 큰 차이가 없음을 자콥은 말하고 있다. 인간이 이성을 가졌다고 해서 최고의 영장류 혹은 다른 생명체와 비교조차 될 수 없는 특수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박쥐는 초음파 탐지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수한 지위를 가지며, 낙타는 물을 장기간 섭취하지 않고도 이동을 할 수 있는 특수한 생명체이며, 박테리아 역시 외부환경에 강한 증식력을 갖는 특수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크 모노는 인간을 두고서 “우주 한 모퉁이를 떠도는 집시”라고 표현했다. 인간은 무수히 많은 생명종의 하나일 뿐이며 다른 생명종과 유전자를 공유하며, 단지 유전자의 모자이크 방식만이 다른 그런 무중심의 중심자일 뿐이다. 그래서 개별 생명체는 서로 공유된 생명 지위를 갖고 서로의 존재의미를 서로에게 부여해주는 관계이기도 하다. 진화론이 경쟁과 약육강식의 논리로 국한하지 않는 다른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인간의 겸허한 자세를 요청하는 새로운 과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3. 프랑스 생명과학의 흐름 드골이 국회에서 한 말이 있다. <프랑스에서 없어서는 안될 세 가지가 있다. 콜레쥬 드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 그리고 에펠탑이 그것이다> 그 정도로 생명과학의 중심지였던 파스퇴르 연구소의 의미는 프랑스의 자랑으로 여겨지고 있다. 프랑스에서 진화론과 현대유전학, 면역학에 있어서 탁월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첨단의 과학기술에 의한 생명공학보다는 상상력과 창의력에 의한 생명과학의 성과들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 시대 최고의 생물학자 혹은 생화학자들인 자크 모노, 자콥, 바렐라, 프리고진 등의 또 다른 공통점은 그들이 실험실 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에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모노와 자콥은 나치에 항거하는 프랑스 시민군으로 전쟁에 참여했으며, 파리 공과대학 교수인 바렐라는 몸은 비록 프랑스에 있었지만 그의 조국인 칠레의 민주화 운동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왔다. 그들에게 있어서 과학과 사회 나아가 예술과 종교까지도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이채롭다. 모노와 자콥은 DNA 염기서열을 연구한 전형적인 유전학자이지만 그들이 미국의 유전학자와 다른 점은 환경의 요인을 무시하지 않고 유전자 결정론을 비판했다는 점이다. 특히 프리고진은 효소의 자기촉매 과정을 연구하면서 환원주의 방법론에 의한 생명과학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바렐라는 진화 연구를 통하여 생명의 특이성을 존재와 인식 그리고 행동을 분리시키지 않고 통일된 하나의 생명성으로 간주했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티의 생명과학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자콥은 과학과 예술의 친화적 관계에 대하여 그의 책 <파리, 생쥐 그리고 인간>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쓰고 있다. 자콥의 기본적인 생각은 예술의 상상력과 과학적 발견의 창조성은 그 이면에서 서로 연접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프랑스의 사유는 이미 푸앵카레와 베르그송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셀 푸코, 아브라함 몰(A. Moles) 그리고 할린(F. Hallyn) 에 의해서 과학의 창조와 예술적 이미지의 힘 사이의 관계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프랑스의 생명과학의 흐름은 환원주의와 통합주의, 혹은 기계론적인 세포학자와 연속성을 강조하는 조직학자라는 이원론적 축 중의 한 쪽 스펙트럼의 기류를 타는 것이기보다는 그들 사이의 조화와 종합을 시도하고 있다. 인문학에서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의 대립을 두고 프랑스 인문학을 포스트모더니티의 축으로만 간주하는 것이 일반인의 이해방식이지만, 실제로 현장 과학에서는 그들 사이의 종합을 꾀하고 있는 것이 프랑스 과학의 특색이다. 이해에 도움이 될만한 한국어 번역서 프랑수와 자콥, 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 민음사 프랑수와 자콥, 파리, 생쥐, 그리고 인간, 궁리 자크 모노, 우연과 필연 마투라나/바렐라, 인식의 나무, 자작나무 질베르 뒤랑, 상상력의 과학과 철학, 살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