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멍, 『나는 학생이다』(임국웅 옮김, 들녘, 2004)를 읽고현실에 참여하되, 남을 탓하지 말라고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오랜만에 재미난 책을 만났다. 왕멍의 『나는 학생이다』라는 책인데, 오래전에 나왔지만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주욱 읽어갔다. 이 책에서 만난 왕멍은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면서도 배움에 대한 열린 태도를 잃지 않는다. ‘나는 학생이다’라는 제목은 저자 왕멍이 평생 지켜온 삶의 자세를 드러낸다.이 책의 저자 왕멍은 1934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중국 작가다. 정치적 시련을 겪었고,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중국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문학과 정치, 역사의 굴곡을 통과한 그의 이력을 알고 나면, 자신을 학생으로 자리매김하는 말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는 혁명에 참가했는데 혁명의 현장에서도 일관되게 쉬지 않고 해온 일이 학습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생활 구석구석에 놓인 인생의 줄거리가 바로 배움이라는 것이다(33쪽). 한 사람의 생애를 관직이나 업적이 아니라 배움으로 설명한다는 데 깊은 울림이 있었다. 살아온 시간이 길수록 배움은 지식의 축적을 넘어, 경험을 되짚고 삶의 의미를 다시 헤아리는 일이 된다.그러나 왕멍은 공부를 무조건 찬양하지 않는다. 교조주의에 빠지지 말고, 텍스트에 고착되지 말며, 자신이 배운 것을 모든 지식으로 여기지 말라고 한다. 책이 모든 것은 아니며 자기 기억력 또한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당부가 이어진다(84쪽). 오래 공부하고 많은 일을 겪었다는 사실만으로 판단이 언제나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 대목은 경험과 지식에 기대어 굳어지기 쉬운 마음을 돌아보게 한다. 시를 통해 수학을 체험하고 수학을 통해 시적 의미를 느낄 수 있다는 말에서도, 배움의 경계를 열어두는 그의 태도가 드러난다(94쪽).인간관계를 말하는 재미난 이야기가 나오는데, 좀 길어도 그대로 옮겨본다. 많은 손님을 초대한 주인이 하는 말이다. (1)“왜 올 사람이 안 오지?” 이 말을 듣고 미리 온 사람들이 당황하고 가버리니, (2)“가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왜 가는 거지?” 이 말을 듣고 다시 남아 있는 사람들도 심기불편으로 가버린다. (3)가려는 사람들보고, “당신들을 두고 한 말이 아닐세.” 이에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들도 기분이 상했다는 이야기다.(88쪽) 말하는 이의 속뜻과 듣는 이의 마음 사이에 놓인 거리를 보여준다. 친구 관계 역시 일방통행이 아니며, 서로를 묶거나 전적으로 의탁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인상적이다(110–113쪽). 서로의 삶을 존중하면서 함께하는 관계에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무위에 관한 설명은 특히 마음에 남았다. 왕멍은 무위를 일상의 절약, 번뇌와 집착을 덜어내는 태도, 자아존중과 책임의 바탕으로 풀어낸다(132쪽). 현실에 참여하되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옳음을 내세워 타인의 생활을 무시하지 않으며, 절대적 구분과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저조원칙(低調原則)’도 깊이 와닿는다(133쪽). 세상에 관여하면서도 마음을 번잡하게 만들지 않는 태도에서, 오랜 경험을 거쳐 얻은 지혜가 느껴진다.이 책의 감동은 마지막에 왕멍의 ‘4무’로 모인다. 술책을 쓰지 않는다는 無述, 모략을 없앴다는 無謨, 명성을 좆지 않는다는 無名, 공을 세우려 하지 않는다는 無功을 말한다.(15쪽). 배움을 이어가면서도 그것을 자신을 내세우는 수단으로 삼지 않는 태도, 해야 할 일을 감당하면서도 명성과 공적에 매이지 않는 마음이 이 네 구절에 담겨 있다. 배워야겠다.그런데 우리 현실, 아니 정치현실은 술책과 모략으로 명성과 공과만을 취하고 있으니 어찌해야 하나? 왕멍의 조언은 이렇다. “현실에 참여하되, 남을 탓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