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비판하는 과학
과학으로 반성하는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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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탁오의 분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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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김혜경 번역), 분서 I, II. 한길사 2004년
서평
최종덕 씀
일상의 인간을 발견한 사상가, 이탁오이지(李贄, 호는 탁오, 1527~1602)의 『분서』는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유교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에게 상당히 낯선 책이다. 이지에게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기존의 유교적 질서와 명분을 단순히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구체적인 삶과 욕망, 개별적인 존재를 사상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는 성인과 보통 사람, 남자와 여자, 학문과 일상, 도와 현실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기존의 위계적 사고를 끊임없이 의심했다. 특히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과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인륜과 만물의 이치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이지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생각해볼 만한 의미를 갖는다.이탁오는 기존의 태극론처럼 모든 존재를 하나의 보편적 원리로 설명하기보다는 사물의 개체마다 존재하는 개별적인 존재론을 중시했다. 이러한 개체중심적 사고는 『분서』의 「부부론」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이탁오는 부부를 사물의 시초이자 인류의 시작으로 보았다. 이는 세계의 근원을 추상적인 원리에서 찾기보다 구체적인 인간관계와 개별적인 존재에서 찾는 방식이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진화론적 사유와 연결하여 생각해볼 여지도 있다.이러한 이지의 사상은 그의 현실주의적이고 실용적 학문관과도 연결된다. 그는 현실에서 실제로 작용하는 배움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마오쩌둥이 연안에 주재하던 인민해방군에게 “공자는 농사법을 묻는 제자의 질문에 답을 못 했는데, 여러분들은 모두 농사에 능해 공자의 제자들보다 훌륭하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신용철 2017, 63). 이 말은 공자의 권위를 부정하기 위한 말이라기보다, 현실의 삶에서 필요한 능력과 실천적 지식이 추상적인 권위나 고전 지식보다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1. 명분의 세계에 대한 비판과 『분서』이탁오가 비판한 핵심적인 대상 가운데 하나는 명교(名敎)이다. 명교는 명분을 중심으로 하는 봉건적 예교이며, 사람을 정해진 명분과 질서 속에 배치하는 사회적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탁오는 이러한 명분 중심의 세계가 인간의 실제적인 삶을 억압한다고 보았다. 유교가 죽음과 인간의 윤리를 다루고, 불교가 죽음으로부터의 초월을 추구하며, 도교가 욕망과 불로장생을 문제 삼는다고 할 때, 이탁오는 이러한 사상들이 만들어낸 추상적인 체계보다 인간이 실제로 살아가는 삶 그 자체에 주목했다.그에게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먹고 입는 것이다. 이탁오는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은 바로 인륜이며 만물의 이치니”라고 말한다(『분서』 1권 「서답편」). 이 문장은 『분서』 전체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은 너무나 평범하기 때문에 오히려 철학적인 대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탁오는 바로 그러한 일상 속에 인륜과 만물의 이치가 있다고 본다. 결국 인간의 구체적인 삶을 떠난 도덕이나 철학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그가 자신의 책을 ‘분서(焚書)’라고 이름 붙인 것 역시 이러한 급진적인 태도와 관련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첫째, 이지가 당대 사회에서 위험할 정도로 진실한 말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책이 불태워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분서’라고 이름 붙였다는 추정이다.
둘째, ‘분서’라는 제목 자체가 당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표현이었으며, 실제로 이 책이 많이 전파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수도 있다.
셋째로는 이지의 진시황 평가와 연결해서 볼 수 있다. 이탁오는 기존 유교의 권위와 공자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태도를 비판했으며, 진시황의 통일 정책과 법가적 통치에 대해서 비교적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이탁오 사후에 출간된 『사강평요(史綱評要)』 (1613)에서 진시황을 ‘천고일제(千古一帝)’라고 평가하고, 진의 통일과 군현제 실시 등을 역사 발전의 필연적인 추세로 보았다.(인공지능 참조) 자신의 책을 ‘분서’라고 이름 붙인 것 역시 이러한 역사관과 연결될 수 있다.이지의 실천적 학문관은 『장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서』는 1599년, 이지가 73세였을 때 출간되었다. 그는 공자 그 자체를 무조건 반대했다기보다는 오직 공자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치국과 관학을 반대했다. 다시 말해 공자의 학문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강요되는 사회를 비판한 것이다(신용철 2017, 111). 따라서 이지의 공자 비판은 단순한 반유교주의로 이해하기보다는, 하나의 사상과 권위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을 거부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2. 성인과 보통 사람은 같은 인간이다이탁오가 생각한 인간의 덕성은 본래 극히 존엄하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본성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독자적이며 중립적이며 이른바 큰 근본이며 이른바 지극한 덕”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성인이라고 해도 세상 서민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므로, 사람은 자신의 성품에 따라 살아가면 되며 성인이 하는 일을 지나치게 높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요순과 길거리의 일반 사람이 같고, 성인과 보통 사람이 같다는 것이다(신용철 2017, 152).이러한 주장은 유교적 성인관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유교에서는 성인이 인간이 도달해야 할 최고의 기준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지에게 성인은 인간과 완전히 다른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성인도 결국 인간이며, 보통 사람 역시 인간으로서 존엄한 존재이다. 따라서 성인이라는 이름을 이용해 일반 사람과의 위계를 만드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이탁오는 추상적 개념을 비판한다. 이 책의 심경론에서 보면, “무(無), 공(空), 심(心)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은 것인데, 어찌 말로 하는가?”라고 묻는다(『분서』 1권, 353). 이는 무, 공, 심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실재하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이탁오에게 중요한 것은 이름이나 개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실제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문제였다.3. ‘동심’이라는 최초의 인간이탁오의 인간 이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개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동심(童心)’이다. 동심은 어린아이의 마음이며 동시에 인간 최초의 마음이다. 그러나 이탁오가 말하는 동심은 단순히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거짓이 개입되기 이전의 진실한 마음이며, 후천적인 문견(聞見)이 형성되기 이전의 본래적인 마음이다.이탁오에게 동심은 진실한 마음이며 거짓을 끊어버린 순진한 본심이다. 그것은 듣고 보고 배우면서 사회의 규범과 명분이 덧씌워지기 이전의 처음 모습이며, 아름다운 이름을 얻고 이름을 날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기기 이전의 상태이다. 따라서 공부란 단순히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많은 책을 읽더라도 자신의 동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글을 아름답게 꾸미고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기 위해 찬양하고 미화하는 문장은 오히려 거짓된 글이 될 수 있다. 동심을 잃은 글쓰기는 진실한 글쓰기가 아니다(『분서』 1권, 348-352).동심론은 이탁오의 사상 전체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도가의 귀진론(貴眞論), 선종의 심성론, 그리고 노자의 ‘적자(赤子)’ 개념이 이지의 동심이라는 개념 안에서 통합되고 있기 때문이다(『분서』 1권, 34). 결국 동심이란 인간이 사회적 명분과 권위, 학문과 지식에 의해 지나치게 규정되기 이전의 진실한 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4. 여성도 남성과 같은 인간이다이탁오의 여성론 역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급진적이다. 그는 여성이 남성과 능력이 같으며 평등하다고 보았고, 자유결혼을 긍정했다. 특히 『분서』 제2권의 「답이여인학도위단견서(答以女人學道爲短見書)」에서는 기존의 여성관을 직접적으로 반박한다.이탁오는 “사람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는 것이 당연한데, 남녀 간의 견식의 차이가 있다는 말은 옳을 수가 없다. 학문과 식견에서 우열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남자의 식견이 우수하고 여자의 식견이 열등하다는 말도 옳을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이러한 주장은 『논어』 「양화편」의 유명한 구절인 “唯女子與小人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즉 “오직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하고 멀리하면 원망한다”는 전통적인 여성관과 비교해 볼 때 더욱 의미가 크다. 이탁오는 남자와 여자의 생리적 차이를 인정하지만 그 차이가 지적 능력과 학문적 식견의 우열을 의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이는 앞에서 살펴본 그의 인간 본성론과도 일관된다. 성인과 보통 사람이 본질적으로 같은 인간이라면, 남성과 여성 역시 인간으로서 본래적인 존엄성을 공유한다. 따라서 성별을 이유로 사람의 능력과 지적 가능성을 미리 규정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5. 도는 백성의 일상적인 삶이다이지에게 ‘도(道)’는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원리가 아니다. 도는 백성의 일상적인 삶 속에 있으며, 백성들의 이치가 곧 성인의 이치이다. 이 점에서 이지의 사상은 ‘성인의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보다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더 큰 관심을 둔다.그가 노자와 공자를 대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이탁오에게 노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이다. 그는 『중용』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유의 의미를 발견한다. 『중용』의 “희노애락이 아직 발현되지 않은 상태를 일러 중(中)이라 한다”는 구절에서, 아직 발현되지 않은 ‘중’은 만물의 오묘함이 간직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분서』 1권, 380, 「노자해」 편).이탁오에게 도를 찾아가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배고픈 사람의 예를 든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쌀밥을 먹을 것인지 기장밥을 먹을 것인지 따질 여유가 없다. 그저 허겁지겁 먹을 뿐이다. 도를 찾아가는 것도 이와 같다. 그것이 노자인지 공자인지를 가릴 겨를 없이, 도를 찾기 위해 허겁지겁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분서』 1권, 380).이 비유는 이탁오의 학문관을 매우 잘 보여준다. 그는 특정 학파나 사상가의 이름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한다. 중요한 것은 노자인가 공자인가가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의 삶에 필요한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에서 이지의 자유에 대한 강조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그가 말하는 ‘지선(至善)’ 역시 기존의 선악 구분을 넘어선다. 지선은 선도 없고 악도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분서』 1권 「서답편」, 83). 이는 인간을 선과 악이라는 고정된 틀에 넣기보다, 그러한 구분 이전의 본래적인 상태를 중요하게 보는 동심의 개념과도 연결된다.6. 친구,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탁오는 인간관계에서도 추상적인 도덕 규범보다 구체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친구 관계를 여러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함께 먹고 마시는 친구, 시정에서 만나는 친구, 함께 놀러 다니는 친구, 생사를 맡길 만한 친구 등이 그것이다(『분서』 1권, 429). 원래 정리된 내용에서는 친구의 유형을 열 가지로 제시하고 있지만, 현재 남아 있는 정리에서는 네 가지 유형만 확인된다.이러한 친구관에 관한 논의는 「하심은론」과도 연결된다. 『분서(焚書)』 권3 「잡술(雜述)」에 수록된 「하심은론」에서는 유교의 오행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가운데 인의예지의 계층적 관계를 버리고, 친구 관계에서의 붕우유신(朋友有信)만을 남긴다. 쉽게 말해서 부자유친의 수직관계, 군신유의의 수직관계, 부부유별의 수직관계, 장유의 수직관계의 위계성보다 붕우유신의 수평관계의 평등성을 근본적인 인간관계로 본다는 뜻이다. 이는 인간관계론의 엄청난 혁명과도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유교적 덕목을 위계적인 체계로 배열하는 대신 실제 인간관계에서 형성되는 신뢰와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탁오에게 인간은 추상적인 ‘군자’나 ‘성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공부하고 사랑하고 친구를 만나며 살아가는 구체적인 인간이다. 이러한 인간을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은 당시의 유교적 질서에 상당히 급진적인 문제를 제기한다.7. 이탁오와 조선, 그리고 허균이탁오의 이러한 사상은 중국에만 머물지 않았다. 조선에서도 이지의 사상은 여러 인물에게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으로 허균(1559~1618)을 들 수 있으며, 이수광, 박지원, 정약용, 이건창 등과 관련해서도 이지의 영향을 생각해볼 수 있다.특히 허균과 이지의 관계는 흥미롭다. 『홍길동전』과 『허생전』을 지은 허균은 1564년작 「찬이씨분서(讚李氏焚書)」를 통해 이탁오의 『분서』를 설명했다. 이탁오와 허균의 사상적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윤남한은 「이탁오의 『도고록』 일부 번역」 등을 통해 이지와 허균의 관계를 연구했고, 허균의 『홍길동전』이 이지의 영향 아래 쓰였다고 보았다. 이가원은 『유교반도 허균』에서 중국 오택(吳澤)의 『유교반도 이탁오』를 비유하여 허균을 ‘한국의 이지’라고 표현했다. 류명종은 『한국의 양명학』에서 이지와 조선 사상의 관계를 다루었으며, 이영호는 「이탁오와 조선 유학」을 『양명학보』 21호에 수록했다.이처럼 이탁오의 사상은 조선에서도 단순한 중국의 이단적 사상으로만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기존 유교 질서를 비판하고 인간의 자유와 현실적인 삶을 강조하려는 사상적 자극으로 작용했다.성인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분서』를 읽으며 가장 인상적인 점은 이탁오가 끊임없이 ‘성인’보다 ‘인간’을 이야기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공자의 권위가 절대적인 것이 되는 것을 비판했고, 성인과 보통 사람 사이의 위계를 무너뜨렸으며, 남성과 여성 사이의 지적 우열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추상적인 도덕 원리보다 밥을 먹고 옷을 입는 일상적인 삶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학문 역시 현실적인 삶과 분리될 수 없다고 보았다.이탁오 동심론의 ‘동심’은 이러한 생각을 하나로 묶어준다. 인간에게는 사회적 명분과 지식이 덧씌워지기 이전의 진실한 마음이 있으며, 학문과 글쓰기는 바로 그 마음을 잃지 않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지에게 공부를 많이 한다는 것은 단순히 많은 지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식 때문에 자신의 본래적인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이탁오에게 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도는 백성의 일상적인 삶 속에 있으며, 옷을 입고 밥을 먹는 일도 인륜이고 만물의 이치이다. 배고픈 사람이 쌀밥인지 기장밥인지 따지지 않고 먹듯이, 도를 찾는 사람 역시 노자인지 공자인지를 따지기 전에 진리를 찾아야 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특정한 권위나 이념에 인간을 맞추기보다 인간의 실제 삶에서 사상과 진리를 찾으려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탁오가 비판한 것은 유교라는 하나의 학문 자체라기보다, 공자와 고전이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사회였다. 이지에게 중요한 것은 성인의 말을 얼마나 충실하게 단순히 옛 중국의 한 사상가가 남긴 반유교적 저술이 아니라, 인간을 규정하는 모든 권위와 명분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책이다. 성인과 보통 사람, 남자와 여자, 학문과 생활, 도와 현실 사이에 놓여 있던 경계를 허물고 그 자리에 구체적인 인간을 세웠다는 점에서 이탁오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있다. 특히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에서 인륜과 만물의 이치를 발견하는 그의 시선은, 거창한 이념이나 명분보다 인간의 실제 삶을 먼저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할 수 있다.나는 이탁오 철학은 단순히 ‘반-유교 사상’이라는 말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가 비판한 것은 유교라는 하나의 학문 자체라기보다, 공자와 고전이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사회였다. 이지에게 중요한 것은 성인의 말을 얼마나 충실하게 따르느냐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본래적인 마음과 자유를 얼마나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느냐였다.그런 의미에서 『분서』는 단순히 옛 중국의 한 사상가가 남긴 반유교적 저술이 아니라, 인간을 규정하는 모든 권위와 명분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책이다. 성인과 보통 사람, 남자와 여자, 학문과 생활, 도와 현실 사이에 놓여 있던 경계를 허물고 그 자리에 구체적인 인간을 세웠다는 점에서 이탁오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있다. 특히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에서 인륜과 만물의 이치를 발견하는 그의 시선은, 거창한 이념이나 명분보다 인간의 실제 삶을 먼저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참고문헌-
이지 (김혜경 번역) 2004, 『분서』 I권, II권. 한길사
신용철, 2017, 『이탁오와 조선의 실학』, 탐구당.
옌리에산(鄢烈山) 외(홍승직 옮김) 2005, 『이탁오 평전』 돌베개.
이가원, 2000, 『유교반도 허균: 허균의 사상과 문학』, 연세대학교출판부.
류명종, 1983, 『한국의 양명학』, 동화출판공사.-관련문헌-
이영호, 2008, 「이탁오와 조선유학」, 『양명학』 21, pp. 299–323.
윤남한(尹南漢) 번역, 『李贄 道古錄 외』 1972 (「이탁오의 『도고록』 일부 번역」) 서울: 徽文出版社(휘문출판사). (실제로는 1976년 휘문출판사의 『세계의 대사상』 제30권 끝부분에 수록된 문헌으로 확인됨)
박현규 2005, 「許筠이 도입한 李贄 저서」, 『중국어문학』 46(2005): 303-322. 영남중국어문학회
신용철 2006, 『공자의 천하, 중국을 뒤흔든 자유인 이탁오』, 지식산업사.
이재하 1996, 「李贄의 《藏書》 硏究(Ⅰ)」, 『石堂論叢』 33, 동아대학교 석당전통문화연구원, 99–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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