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몸의 다중성 -치유의 감동
서평 : 강신익의『몸의 인문학』(2026, 지식공작소)

몸의 다중성

최종덕 씀 의학과 철학을 같이 공부한 강신익 선생님이 쓴 책이 나왔다. 『몸의 인문학』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저자와 오랜 동안 세미나를 같이 한 인연으로 나는 그 책의 추천서문을 실었다. 그 김에 추천서 원고를 중심으로 서평도 쓰게 되었다. 저자 강신익은 치과의사로 출발하여 박사학위까지 했지만 철학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여 한국에서 의(학)철학 연구범주를 정착시킨 학자이다. 그의 철학은 제도권의 의료윤리를 넘어서 삶의 실존적 관심으로 탈영토화되었다. 한편 그의 공부 한 가운데 항상 ‘몸’이 있는데, 개체적인 실존의 몸에서 공동체의 몸으로 공부가 깊어졌음을 이 책 『몸의 인문학』 에서 절감했다. 저자 강신익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보면 그가 추구했던 공부의 단초를 엿볼 수 있다. 상처없는 공부는 없었다. 이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푸코의 『임상의학의 탄생』을 읽었을 때의 당혹감을 잊지 못한다. 푸코는, 의학이 아픈 사람을 돕는 본질적으로 선한 학문이라고 굳게 믿었던 나를 비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도덕한 군부독재 권력에 맞서고 있는 민중을 돕는 수단으로 보건의료를 생각했던 나에게 의학이 권력의 도구라는 생체 권력 주장은 큰 상처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 의학을 대상으로 하는 철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콩콩 대신에 방방이

이 책은 몸이 삶과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앓아야 살 수 있다’는 미분화의 일상성을 보여준다. 저자는 묻는다. “일상이란 이렇게 소소하지만 다양한 ‘다름’들이 어우러지는 불화와 화해의 한마당이지 않을까?” 그리고 스스로 답한다. 고통(Homo patiens)은 인간 그 자체이다. 우리 삶은 고통을 받기 때문에 그 고통을 이겨내고 있다. 그것이 생명 진화의 엄연한 실재며 과정이다. 그런 과정 역시 존재론적 현상이라고 저자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몸을 ‘앓고’ 몸을 ‘살리는’ 시간의 지도들을 묶어낸 생명의 지리부도가 바로 이 책, 『몸의 인문학』이다. 이 책에서 몸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으로 삶이 재조명된다. 몸은 삶의 크로노토프라고 말한다. 러시아 문학 이론가 바흐친(Mikhail Bakhtin)이 제시한 시간(chronos)과 공간(topos)을 내부화된 경험으로 엮어낸 크로노토프(chronotope)를 따와서 너와 나의 기억과 고통, 체험과 행위를 관통하며 삶의 이야기로 새겨진 몸의 크로노토프가 기입되고 있다. 몸 앓이와 몸 살이의 체현과 공감의 전개를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의 ‘몸-나’는 끊임없이 다양한 ‘몸-너’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나의 몸 안에서는 여러 수준의 더 작은 몸들이 싸우고 화해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그런 관계의 흐름이 ‘몸-나이다” 삶의 패러다임으로 말하면 앓고 살아가는 “몸의 살림살이”이며, 과학의 패러다임으로 말하면 진화학과 유전학처럼 몸-나의 시간적 흐름이며 면역학과 인지론처럼 ‘몸-나’와 ‘몸-너’의 관계적 흐름으로 이해된다. 저자 강신익의 특별한 개념이며 고유한 표현으로서 ‘몸-나’는 독백하는 고립된 자아가 아니라 ‘너’와 연결하고 ‘우리’로 확장하는 공동체의 ‘몸-나’ 개념은 아주 창의적으로 판단된다. 저자가 강조하는 서사의학narrative medicine은 개체 수준의 ‘몸-나’에서 공동체 수준의 ‘몸-나’로 도약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야기를 통해서 물질의 몸을 담론의 몸으로 점프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점프한다고 했는데, 저자는 책에서 이야기해주듯, 점프는 포고스틱(스카이콩콩)타고 ‘혼자 노는’ 것이 아니라 트램폴린(방방이)처럼 상대방과 응대하며 ‘같이 노는’ 점프를 말한다. 스카이콩콩과 방방이 놀이의 차이를 말한 저자의 이야기는 아주 재미나고 흥미로와서 서평자가 저자를 대신하여 독자들에게 꼭 알리고 싶다. 한 인간의 몸에서 점프하여 사회적으로 공유된 몸의 이야기란 몸과 자아와 사회가 연결된다는 뜻을 가진다고 이 책 『몸의 인문학』은 말한다.

고유개념 몸의 삼중성triplication

이 책의 서사는 정말 수월하고 흥미롭게 전개되는데, 그 아래 깔린 철학의 깊이는 생각 이상으로 깊었다. 그 어려운 신유물론과 포스트휴머니즘의 철학이 이야기 형식으로 쓰여졌다는 점은 독자에게 큰 행운이다. 깊은 철학을 쉬운 이야기로 풀어가는 그의 글쓰기는 우리 독자들에게는 아주 좋은 선물이다. 서평자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저자 강신익만의 특별한 글쓰기 구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글쓰기 구상은 들뢰즈의 다중성multiplication 개념과 동학 최제우 선생의 천지인 삼재(三才) 원리에 비유될 수 있어서 ‘삼중성’triplication 서사법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고 본다. 저자가 자주 강조하듯이 몸은 생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그리고 사회학적으로 구성된다고 했는데, 그런 구조는 바로 생물-심리-사회 모델(Bio-Psycho-Social Model)의 삼중 다중성의 좋은 사례다. 생물학적이고 심리적이며 사회적인 것이 개별적이 아니라 다름 속에서 새로움을 창발하는 몸의 지향적 삼중성을 말한다. 저자는 정형화된 모델보다 앎-함-삶이라는 몸의 삼중성을 더 강조한다. 앎(인식)과 삶(존재)과 함(윤리) 사이의 삼중적 얽힘 구조는 인식론과 존재론 그리고 윤리학을 하나의 동형성으로 보는 신유물론의 시선과 맞닿아있다. 그 어려운 신유물론 철학까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론과 미학과 지혜의 삼중성 혹은 앎과 배움과 깨달음의 삼중성이라는 그의 언어가 더 쉽게 나에게 다가왔다.

치유의 감동 : 배움-돌봄-너그러움

저자의 삼중성 논법은 배움과 돌봄의 실천원리로 적용된다고 하는데, 배움과 돌봄의 실천은 “나” 대신에 “너”를 수용하는 너그러움(포용성) 담론의 구체적 체현이다. 배움과 돌봄과 너그러움(포용)의 삼중성은 차이를 차별 없이 수용하는 통섭의 담론이라고 강신익은 말한다. 강신익의 통섭은 과학에서 말하는 통섭統攝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의 통섭은 두루 통하여 서로에게 다가가는 통섭通涉, 그리고 과학의 통섭과 삶의 통섭이 결합되는 창조와 생성의 통섭通攝이다. 나아가 강신익은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緣機), 무자성(無自性), 공(空)의 이야기를 인출해 온다. 연기-무자성-공의 관계를 얽힘의 구조로 간파한 저자 강신익의 혜안에 감탄하면서, 연기-무자성-공의 얽힘 구조를 강신익만의 고유한 삼중성 구도로 묶어내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낼 만하다. 차이를 담아낼 수 있는 마음의 그릇과 차별의 분별심을 넘어선 공부의 깊이와 폭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차별을 지우고 차이를 포용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 강신익의 치유 철학은 현상의 인식과 삶의 실존이 얽히면서 나와 세상의 모든 타자들 사이의 경험이 서로에게 공유되는 데 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치유 철학은 의학에 국한되지 않는 공동체 인간학의 중심사유임을 깨닫게 되었다. 진지하면서도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 『몸의 인문학』을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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