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다시 동학
한철연 한국현대철학분과 지음 2026, 동녘 『다시, 동학』 서평 최종덕(독립학자, philonatu.com) 과학을 중심으로 한 철학이 그동안 내 공부의 흐름이었는데, 추상화된 지식학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학에 맞춰 왔었고, 이분법의 형이상학이 아니라 대대待對법의 운동학을 나름대로 드러내고자 해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역동성 물질론과 관계론적 인식론 그리고 행위중심적 윤리론이 서로 엇물려 있는 양자론의 철학이나 진화론적 생명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런 공부를 통해서 물질 세계가 삶의 세계와 무관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구체적으로 물질과 삶이 어떻게 연관되는지 실질적인 답변을 계속 찾아왔다. 그런 답변을 시도하기 위하여 서양의 과학책이나 철학책 말고 역사와 시, 동양과 미학을 읽는 사유의 투망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객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양명학이나 동학 관련 책에 관심을 두어왔었다. 한편 나는 종교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동학 읽기를 주저해 왔었다. 그런데 최시형을 읽으면서 종교라는 주어진 틀거리에 제한되지 않고 동학의 숨을 호흡할 수 있었다. 인간 혹은 그들만의 인간에 제한된 유교 전통에서 벗어나 있고, 신 혹은 그들만의 신만을 숭앙하던 기독교에서 벗어난 최시형의 평등철학을 접하면서 그와 무관해 보이는 나의 과학철학의 폭은 한층 넓어지고 유물론의 물질의 깊이는 훨씬 깊어졌다. 정말이다. 최시형 동학으로 가는 초행은 나에게 사유를 확장해주었고 행위 수행성을 확 밀어주었다. 공부 초행길에 신나는 책 한 권을 더 읽을 수 있었다. 그동안 몇 권의 동학 책을 읽었건만 100년 우리 역사를 견주어 풀이한 이 책 『다시, 동학』은 좀 더 별났다. 첫째 책의 글쓰기가 교조적이지 않아서 흥미를 끌었다. 둘째 최제우와 최시형에 집중되었던 동학에서 손병희 이후의 동학을 손쉽게 읽게 해준 책이다. 셋째 이 책에서 동학은 역사적 전기를 마련한 사회적 돌풍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중대한 철학적 회오리임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넷째 동학의 공동체와 공공의식을 깨우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나에게 더 좋았다. 186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동학의 사상과 운동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이 책은 제공해 주었다. 그 시기를 ‘근대’라는 용어로 붙이기에 맘편하지 않다. 이 책에서 말하는 근대의 의미는 서양과 일제에 충돌하는 대응양상과 서양문물 수용 여부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에 대한 인식과 이에 조응하는 모색"을 기준으로 하겠다고 했는데(책 14쪽), 이 점은 이 책을 읽는데 중요한 시선을 제공했다. 이 책이 모색하는 글쓰기는 치열하지만 조직적으로 전개된다. ‘전통 대 반전통’이라는 이분법의 관점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공동저자들의 합일점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분명히 철학책이다. 동학을 하나의 동일성 철학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최제우 최시형, 전봉준, 손병희, 이돈화, 김기전의 다양성을 포괄하는 다층 관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중에서도 동학이 추구했던 "인민성"(민중성)을 강조했다는 점은 다른 동학 책에서도 그러했지만 좀 더 새롭게 각인되었다. 1860년 ‘무극대도’의 깨달음을 얻은 수운 최제우(1824-1864)의 동학 창도는 하늘과 인간을 위계 없이 만나는 하나의 세계를 열어놓았다. 최제우의 하늘은 인격적 주재자이며 태극이면서 궁궁이며 세상을 구원하는 의지였다. 하늘의 의지는 인간의 의지와 동등하여 인간이 세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우주만물을 생성변화시키면서도 스스로도 무궁 변화를 거듭하는 주재자라는 점, 기의 생명성과 관통하여 근원적인 기로서 하늘이라는 점, 사물로 분화되지 않은 상태로서 생명의 근원이 곧 하늘이라는 점, 추상적 천(하늘) 개념에서 벗어나 구체적이고 인격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존재라는 점 등, 동학을 공부한 이는 잘 알겠지만 이런 동학 철학을 우리의 글쓰기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는 단단하다. 최제우의 시천주는 하늘을 모신다는 뜻과 하늘을 내 몸에 모시고 있다는 뜻을 같이 담고 있다. 그런데 그냥 시천주를 말하는데 그치지 않고 하늘이 우리 안에 있는데 ‘기회’로 있다는 존재론적 의미를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정말 읽을 만하다. 하늘과 나, 아는 것과 행동하기가 따로따로가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동학의 진동은 유교 전통 ‘인의예지’에 대한 대안으로서 본래 내 마음에 있는 하늘을 깨닫고 행위함에 있음을 알게(양지)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결국 최제우의 보국은 당시 개화파의 保國이 아니라 輔國으로서 다함께 평등한 공동체를 이룬다는 연대의식에서 출발했음을 강조한다.(책 116쪽) 공동체 사상은 1863년 최제우로부터 도통 전수받은 최시형(1827-1898)에서 확 드러난다. 나는 최시형의 ‘향아설위’ 제사철학을 아주 좋아한다. 향아설위는 최시형이 제시하고 전파한 제사 방법으로서, 한울님은 나와 함께 하며 나와 구분이 되지 않으니 한울님에 대한 제사는 나에 대한(나를 모시는) 제사와도 같다. 제사지낼 때 조상 위폐를 나를 향하도록 거꾸로 놓는다는 뜻에서 향아설위 제사법은 조상의 기운이 곧 나의 기운에 동등하고 관통하여 남아있으니 나에 대한 제사와도 같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제사의 제의적 문제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최시형의 인시천人是天 사상이 최제우의 인내천에서 한 발 더 나간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이 책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최시형의 한울 모심을 쉽게 잘 읽었다. 한울님이 내 안에 모셔진 때는 동학이 창도된 이후도 아니고, 각 사람이 태어나 자기를 인식하고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도 아니고, 뱃속에 있을 때도 아니다. 최시형은 육체적 존재로서 나라는 것이 비로소 생겨나면서부터 한울님이 모셔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원래부터 한울님을 모시고 태어난 존재라고 보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인시천(사람이 하늘이다)사상으로부터 도출된 심즉천(마음이 하늘이다) 사상 한울님인 나 자신을 한울님처럼 모신다는 사상은 심즉리 철학에 기반을 둔다.(67쪽) 여기서 이 책은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한울님이 처음부터 나와 함께 한다면, 나와 한울님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최시형의 대답은 단순하다. “구분이 없다”.(61쪽) 이런 답변은 일상과 종교성을 결합하고 만민평등의 철학으로 현실화된다. 事人如天, 사람은 도구가 아니라 목적이다. 그래서 사람은 모두 같은 한울님이므로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육임제를 두어 반상과 적서의 차별을 타파하는 동학공동체 의미를 강조하는데, 동학의 공공성이란 말 그대로 公public과 共common의 공유라고 하는데, 나는 이 페이지를 몇 번이고 거듭 읽었다. 모심에서 섬김으로, 즉 최제우의 시천주(모심)에서 최시형은 事人如天(섬김)으로 도약하는데,(117쪽) 농민군 운동에서 최시형의 북접과 전봉준의 남접이 연대하면서 사인여천의 철학은 잘 드러났다고 서술한다. “동학을 보통 남접과 북접으로 나누기도 한다. 최시형 중심의 북접은 생활세계 안에서 실천을 염두에 둔 공공의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전봉준 중심의 남접은 사회정치적 개혁을 위한 봉기의식을 통해 급진적 혁명으로 가는 원심력을 보이고 있다.”(133쪽) 1882년 입도하고 1892년 최시형을 보좌하며 1894 북접 통령으로 전투에 참여하고 1896년 동학 리더가 된 손병희 동학은 천도교로 개신(1905)한다. 천도교는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종지로 이어가지만 성신쌍전性身雙全과 교정일치敎政一致라는 강령을 강조하는데, 목적은 보국안민 포덕천하 광제창생 지상천국이요, 윤리는 사인여천이요 수행도덕은 誠敬信이라고 한다. 성신쌍전이란 정신 물질, 몸과 마음은 나눠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결국 하나로부터 생성된 것이므로 함께 실천되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교정일치 역시 도덕과 정치가 삶의 구조에서 나눠질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성신쌍전과 교정일치의 천도교는 20세기 한반도 사상사 및 지성사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잡지 (1920부터 1926년 72권 간행)을 통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넓히려 했다. 개벽의 의미는 식민지 상황을 타개하는 자유와 해방과 더불어 인간의 근원적 자유를 지향하는 실존적 해방을 기획하는 데 있었다고 이 책은 평가한다.(245쪽) 을 이끌었던 지식인 이돈화와 김기전에 대하여 이 책은 상세히 쓰고 있다. 이돈화와 김기전의 글쓰기 유형과 지향에 대하여 철학 밖에서 많은 연구가 있어왔지만 이 책은 말 그대로 철학적 관점과 시대상황적 실천성의 관점에서 그들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새롭게 느껴졌다. 특히 본격적인 철학 글쓰기를 표방하고 소개했던 김기전의 지성사적 갈등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신앙에 강한 김기전과 궁리에 강한 이돈화”(264쪽)의 개벽 사상의 긍정성만 국한하지 않고 당대 지식인의 ‘분열과 동요’의 측면을 솔직히 서술해주고 있어서 오히려 그 두 지식인을 통한 천도교의 지성사적 실상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천도교가 변화한 문제들을 이 책은 지적하는데, 이런 지적은 후기 강점기 이후한반도의 정치적 상황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더더욱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다시 최시형의 동학으로 돌아가 보자. 동학의 평등관, 변혁의 운동과 철학은 최제우의 시천주 사상과 최시형의 人是天 사상 및 전봉준 동학군의 봉기와 항쟁에 있다는 역사적 환경의 의미를 나는 이 책에서 절감했다. 지식보다 행위수행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최시형의 물물천과 사사천(모든 사물이 하늘이다) 사상은 인간평등만이 아니라 사물평등과 자연평등에 이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점에 큰 관심을 두고 공부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장유-반상-남녀 차별을 거부하고 사람은 물론이고 가축 미물의 사물의 생태를 존중하고 공경하는 마음과 실천, 이런 최시형의 생활 실천강령은 100년 전 최시형이 아니라 오늘날 나의 과학철학과 환경철학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로 직결되고 있음을 실토할 수밖에 없다. 철학 아니라 일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이런 우리의 대단한 역사가 있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 책 『다시, 동학』, 뜻도 깊지만 재미나기도 하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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