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 심의민주주의(범양사)에 대한 서평 |
서평 : 김명식, 심의민주주의(범양사)에 대한 서평과학사상 (2003년5월) 서평-환경,생명,심의민주주의 김명식 지음, 범양사, 2002 우주 안에서 혹은 우리가 사는 이 지구 안에서 인간의 지위가 인간만이 지니는 독특한 지위인가 아니면 다른 존재와 연속적인 위치에 있는 것인가는 오랜 동안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인 것 같다.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동물과 신 사이에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는 인간 스스로 이제는 이성과 욕망의 두 톱니바퀴가 엇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모사피언스로 이어지는 진화의 역사 속에서 송곳니를 드러낸 원시 욕망은 침잠했지만, 그렇다고 이성이 꼭 상식적인 인류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성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욕망의 역사는 인간의 자기 합리화를 재촉하였다. 이제 인간은 동물과 결별하고 신의 왕국을 모방한 제단祭壇 위에서 모두의 자연을 제물로 받쳤다. 그 이후 욕망을 숨겨 놓은 이성과 동물에게만 있어야 한다는 저주의 욕망은 곧 선악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이성의 역사로부터 시작하여 지나온 3000년 동안 이미 제물로 바쳐진 자연을 되찾기에는 그 힘이 좀 벅찬 듯 하다. 특히 제국주의와 산업혁명 이후 기계화, 산업화, 문명 위기, 인간 중심주의, 공동체 파괴, 소유 욕망, 자연과의 결별, 등 갖가지 위협적인 구호가 지난 50년의 현대사에서 꽤나 넓게 회자되었으나 여전히 양의 껍질을 뒤집어 쓴 이성의 역사는 도도히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결국 삶의 터전은 그 위기를 심각하게 맞게 되었고 이제서야 환경의 깃발이 조금씩 불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동물보호 운동이나 자연보호 운동이었지만 이제는 사회 개혁을 통한 환경문제 접근법이 많아졌다. 사회학자나 철학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환경위기의 역사적 혹은 사상적 배경과 원인분석을 이론적으로 시도하였고, 과학자들은 역사와 관계없이 기술의 개량을 통하여 눈에 보이는 위기의 타개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노력은 그리 나쁠 것이야 없지만, 인간의 지위에 걸맞는 시늉만 내고 그친다면 문제 해결의 길은 당연히 막막해 질 것이다. 시늉이 아니라 심원의 인간적 고민이 그 안에 깔려 있어야만 인간의 노력은 그 허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심원의 인간적 고민의 첫째는 “나는 과연 누구이며 나의 욕망은 어디까지 뻗칠 것인가”라는 자신에 대한 질문이며, 둘째는 “나와 너의 관계, 나와 사회의 관계가 함께 하는 공동체를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이기적 생존을 우선할 것인가”에 대한 관계성에 대한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들은 인문학 분야에서 또 하나의 논쟁적인 이론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생태주의에 대한 이론들, 생명의 형이상학적 접근 혹은 생명윤리의 논의들, 그리고 좀더 구체적인 사회학적 접근논의들, 그리고 의사결정구조에 관한 논의들이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지난 20년 동안 새롭게 조명되어 왔다. 이런 논의를 크게 보면 철학적 접근과 사회윤리적 접근 방식으로 볼 수 있으며, 그리고 이런 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최근에는 영성적 접근을 통한 생명의 근원을 회복하자는 분위기도 만만치 않게 커졌다. 영성적 접근이야 언어의 책으로 말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지만 다른 영역들 즉 철학적 접근과 사회윤리적 접근 방식에 대한 이론적 논의들은 이미 많은 책에서 활자화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책들은 이론의 박물관과 같아서 그리 쉽게 읽히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번역본으로 소개되거나 국내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많은 환경관련 저작들이 그런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책을 한 권 찾아내었다. 그 책이 바로 지금 서평을 쓰고 있는《환경, 생명, 심의민주주의》라는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은 그 동안 환경윤리에서 혹은 생태주의 범주에서 논의된 것들이 차분히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그 동안 수많은 환경윤리학자들의 논의들이 전체적으로 어떤 이론적 맥락을 차지하는지 헷갈렸는데 이 책을 보니 한 그루의 나무를 멀리서 보듯 이론적 논거의 위상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그 많은 학자들의 복잡한 이론들을 단편적으로 들어 왔던 것에서부터 이제는 그 논의의 스펙트럼을 전부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사상적 혹은 윤리적 논거의 역사적 배경을 친절하게 기술해 주었고, 생태주의 논의의 다양한 주장들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설명해 주었다. 생태주의 논의가 이론적 논의로 그치는 우려를 저자는 이미 알았는지, 그 논의가 현실적인 정책에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는지 아니면 어떻게 영향력을 주어야 하는지 까지를 이 책 안에서 담아 내었다. 그래도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의 단서는 이미 이 글 앞에서 말했지만 이성과 욕망의 관계를 형식논리에 의한 배태적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길들여진” 욕망으로 보는 얽혀 있는 관계로 보고 환경의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책, 1장 5절) 결국 이 책은 이렇게 얽혀 있는 관계를 어떻게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의 문제를 다룬 것이 책의 전반부인 I부 “인간중심주의 대 탈인간중심주의”의 논의이며, 그 얽혀 있는 것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어 가느냐의 문제를 다룬 것이 바로 II부인 “심의민주주의”의 논의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저자 고유의 목소리를 담고 있기도 한다. I부에서는 앞서도 말했지만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생태주의 논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그래서 나같이 파편화된 지식을 가졌던 독자들에게 그 논거의 전체를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만큼 약점도 노정되었는데, 다양한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해 준 반면 그 다양한 개별의 논거들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하기야 저자에게 이 한 권의 책 안에서 두 가지 방식의 글쓰기를 다 요구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나는 그 많은 논거들을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그 다양한 논의들의 핵심을 다 담아낸 것으로 확신하였다. 《침묵의 봄》의 카슨, 《성장의 한계》의 하딘, 에리히,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슈마허, 생태마르크스주의의 알트파터, 미래학자인 다니엘 벨, 기독교 책임론으로 유명해진 린 화이트, 인간중심주의를 강력히 비판한 싱어와 파인버그, 근본생태주의의 모태인 네스, 그리고 리프킨, 심층생태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북친 그리고 미커, 오라이어던, 《환경윤리》라는 잡지를 창간한 하그로브, 생명중심주의로서 신비주의에 기울은 폭스, 반면 생명을 말하면서도 구체성을 강조한 그 유명한 테일러, 그리고 생태중심주의의 켈리코트, 레오폴드 등의 환경/생태 논의의 입문으로서 이 책은 그 임무를 다한다. 이 중에서도 저자는 폭스와 테일러, 켈리코트와 레오폴드 그리고 북친의 논거를 비교적 상세히 다루었는데, 이에 대한 저자 자신의 평가를 각 장 끝 부분마다 일일이 달아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물론 저자의 주장은 이 책 II부에 있었다. 심의민주주의라는 약간은 생소한 개념을 설명해주면서, 그것이 또 하나의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갈등현장에서 어떻게 적용가능한지를 대안적으로 제시하였다. 나는 사실 이 부분을 더 말하고 싶었다. 심의민주주의의 내용이 결국 의사결정구조 안에서 이루어지는 타협과 조정의 내용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딱 부러지게 잘 알 수가 없었다. 영미권에서 생각하는 의사결정구조와 독일/프랑스권에서 생각하는 의사결정구조는 다른 데가 있는데, 영미 쪽의 논의로만 그친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독일권에서 생각하는 의사판단구조는 갈등 당사자간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갈등이 분출된 사회적 구조와 역사적 삶의 지평선들까지도 논의구조 안에 구체적인 변수로 함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심의민주주의를 이론체계로 국한하지 않고 현장의 문제풀이로 본 저자의 구체적 감각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사례로서 저자가 예로 들은 새만금 문제나 또 다른 주남 저수지의 문제, 동강댐 문제, 북한산 관통도로의 문제, 온산공단의 티타늄 공장 건립 문제 등에서 과연 구체적인 갈등해결의 실마리를 어떻게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시원한 정답 제시에 대하여는 확신을 하지 못했다. 사실 이런 정답을 누구에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나의 욕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의민주주의가 혹시 갈등 당사자간의 직접적인 조정을 염두에 둔 해당문제의 텍스트에 좁혀질 가능성을 보게 된다. 해당문제 풀이의 텍스트에서 벗어나 해당문제와 상황을 연관짓는 콘텍스트의 갈등조절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콘텍스트로서 문제를 풀려면 현실적으로 너무나 먼 근원적인 문제를 건드려야 하기 때문에 자칫 추상적 구호에 빠질 수 있다는 약점이 도사려 있다. 그래서 나는 저자에게 다음의 연구저서를 미리 요청하고 싶은데, 그것은 바로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연결적 문제풀이를 담아 낸 그런 책이다. 저자의 다음 책에 대한 서평문을 또 쓰고 싶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보게끔 이미 읽은 사람들이 소개해 주면 좋겠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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