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발의 『차이에 관한 생각-영장류학자의 눈으로 본 젠다』 |
원저 : 드발, 차이에 관한 생각-영장류학자의 눈으로 본 젠다 |
실린 곳 : philonatu, philonatu |
서평 침팬지 + 보노보 = 사람 프란스 드발의 책 『차이에 관한 생각-영장류학자의 눈으로 본 젠다』(2022, 세종출판사) 을 소개하다. 1. 인간본성을 이해하려는 태도 나는 사람이다. 나의 행동과 생각과 감정은 다른 사람의 행동과 생각과 감정이 움직이는 것과 비슷하게 작동한다. 아니 그렇게 작동할 것으로 나는 믿는다. 거꾸로 타인도 나처럼 믿는다. 내가 사랑하고 부끄러워하며 혹은 무서워하거나 호기심을 갖거나 더불어 슬퍼하고 기뻐하는 감정과 생각들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행동은 저기 페루 원주민이나 사막의 아프리카 사람이나 도시 한가운데 유럽 사람이나 아시아에 사는 나 같은 사람들, 모두 거의 비슷하다. 환경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 나지만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여기저기 사는 사람들 모두 공통된 조상을 갖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공통조상론의 추측은 개인의 단순 추정이 아니라 고인류학이나 현대 분자생물학의 도움으로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이다. 우리 인간과 영장류는 영장목 동일조상에서 갈라진 생명종이다. 인간은 다른 영장목과 DNA의 96-7%를 서로 공유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영장류 연구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성, 즉 인간의 행동과 생각 그리고 감정을 엿보는 탐구렌즈다. 이런 점에서 침팬지 같은 유인원에서 개코원숭이 같은 원숭이류까지 그들의 행동연구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런 우리들의 관심에 화답해주는 좋은 책이 나왔다. 2022년 우리말로 번역된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발의 『차이에 관한 생각』이라는 책이다. 이 책 『차이에 관한 생각』은 인간본성과 연관된 주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하나는 우리들의 행동양식이 선천적 본성에 따르는지 아니면 후천적 학습에 따르는지를 묻는 문제의식이다. 둘째로 우리들의 행동양식이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 것인지 아니면 동물 행동의 연속적인지의 문제의식이다. 둘째 문제의식과 연관하여 인간행동의 이기적 본성의 원형을 동물행동에 두는 기존의 관점이 맞는 것인지를 질문하는 셋째 문제의식을 이 책은 담고 있다. 이런 세 가지 문제의식은 아래의 두 가지 이분적 사고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인간본성을 이기주의 아니면 이타주의로 구분하려는 배타적인 이분법의 본성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나아가 동물행동을 생물학적 이기성의 원천으로 간주하면서 동시에 인간행동을 문화적 도덕주의에 기반한다는 자연-문화 이분법을 반성해야 한다고 이 책은 쓰고 있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적절한 답을 시도하기 위하여 드발은 동물행동학만이 아니라 고고학과 문화인류학 및 분자생물학의 성과들을 수용하고 이를 인문학적 시선으로 종합하는 태도를 중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 드발은 1982년작 『침팬지 폴리틱스』의 저자로서 인간의 권력구조가 침팬지 집단의 수컷 우두머리의 행동유형과 비슷하다는 결과를 오랜 기간의 관찰연구를 통해 보여주었다. 우두머리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 나타난 수컷 침팬지의 공격성은 대규모 전쟁에서 집안의 가정폭력에 이르는 인간의 폭력성의 원천일 수 있음을 말했다. 이런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에 의해 알려졌었다. 드발은 이런 영장류의 공격성 본능을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친화적 사회성 본능까지 있음을 말한다. 자연 안에는 공격성의 본능과 협동성의 본능이 공재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드발 관찰연구의 기초이다. 나아가 인간 본성론에서도 이기주의와 공격성 성질과 협동성과 관계적 성질이 겹쳐있다고 한다. 드발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우리 속에는 두 유인원(보노보와 침팬지)이 각각 조금씩 들어있으며, 거기다가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한 우리 자신의 독특한 특성도 있다”. (이 책 25쪽) 즉 전쟁과 공격성의 본능을 침팬지의 본성과 연결시킨다면 사랑과 협동성의 본능을 보노보의 본성과 연결시킬 수 있으며, 우리에게는 침팬지의 본성과 보노보의 본성이 혼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저자 드발은 말하고자 한다. (이 책 27쪽) 나의 삶과 삶의 조건은 생물학적 본성의 성질과 사회적인 양육의 성질이 벡터값으로(양적인 합이 아니라 방향과 크기가 결합된 질적인 합으로) 합쳐진 산물이다. 2. 본성과 양육: 문화주의와 생물학 우리 인간은 문화주의와 생물학주의 중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으며 이 두 입장은 상호적으로 작용된다는 점을 드발은 강조한다. 인간 본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유전자 요인과 환경 요인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 책 83쪽) 영장류에서 사회화는 본능이 아니라 학습을 필요로 한다. 침팬지가 흰개미를 잡는 능력은 주로 어미에서 딸로 전수되는데, 어린 아들은 어미의 흰개미 포집행동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들은 성장하여 흰개미보다 큰 동물사냥을 통해 단백질을 얻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침팬지의 사회화는 모든 새끼에게 적용되지 않으며 수컷과 암컷 사이의 차이도 존재한다. (이 책 79쪽) 영장류학자 쿠머Hans Kummer는 본성과 양육 논쟁의 허점을 드럼 소리의 메타포를 통해 설명한다. 인간에서 드러난 행동이 본성에서 유래한 것인지 아니면 양육의 결과인지를 묻는 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타악기 소리가 드러머가 낸 소리인지 아니면 드럼이 낸 소리인지를 묻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라고 한다. (Kummer 1971, 11-12) 2.1 젠더는 사회적 구성체만이 아니라 자연에도 존재한다. 이 책은 젠더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를 풀고자 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젠더라는 용어는 1955년 미국 심리학자 머니John Money가 처음 사용했다. 여기서 젠더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여성과 남성, 혹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특성으로서 그 규범과 행동, 역할과 서로 간의 관계라고 정의된다. (이 책 74쪽) 일반적으로 젠더와 섹스를 구분하면서 젠더를 사회적 성으로 섹스를 생물학적 성으로 설명한다. 이런 설명방식은 섹스의 성을 거칠고 통제되지 않는 자연의 소산물이라면 젠더의 성을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구분해보려는 의지에 따른다고 한다. 구성주의 페미니스트 버틀러(Judith Pamela Butler, 1954- )가 남성과 여성을 구성된 개념으로 간주했다는 점은 자연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책 30쪽) 구성주의 페미니즘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커가면서 사회적 관습과 풍토에 의해 남성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생물학적 차이보다 문화적 차이가 성의 정체성을 더 크게 구성한다는 뜻이다. 드발은 구성주의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남성과 여성 정체성은 구성적 요소와 자연적 요소가 같이 작용된 결과라고 응답한다. 성 정체성이란 젠더의 사회화와 섹스의 자연화가 합쳐진 상태라는 점을 드발은 강조한다. 드발 역시 페미니스트이지만, 버틀러와 같은 구성주의 페미니즘을 따르지 않는다고 용기있게 말한다. 드발은 오히려 남녀 간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할 때 비로소 남녀 간의 불평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린 침팬지에게 인형을 주면 침팬지 어린 수컷은 그 인형을 찢어버리지만 어린 암컷은 인형을 마치 새끼 돌보듯이 보살피며 가지고 노는 현장을 보여준다. 어린 수컷은 싸움놀이에 대체로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며 어린 암컷은 대체로 새끼 돌봄에 관심을 더 두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2억 년에 걸친 포유류 진화의 소산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 62쪽) 드발의 구성주의 페미니즘 비판은 오히려 기존 이론보다 더 강력한 페미니스트 이론을 내포한다. 양성주의를 형성하게 하는 힘은 인간사회의 구성력만이 아니라 동물세계에 이미 내재하는 자연력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하나의 사례로서 설명한다. 2.2 양성주의는 침팬지에서도 발견된다. 양성주의는 문화적 요인도 있을 수 있지만 자연적 요소의 모습임을 드발은 자신이 오랜 동안 관찰했던 암컷 침팬지 도나Donna에서 발견했다. 암컷 도나는 수컷같은 행동을 하면서 일생을 보냈다. 양성 행동을 하는 도나는 짝짓기를 하지 않았다. 다른 암컷과 성적 접촉조차 시도하지 않았고 물론 도나의 새끼도 없었다.(asexual gender noncoforming의 사례) 어릴 때부터 도나는 암컷과 놀기보다 수컷들과 거친 놀이행동을 합면서 수컷같은 과시행동을 했다.(이 책 85-7쪽) 인간에서도 양성은 자연적 용인 크다. 성인 0.6%가 트랜스젠더로 보고되며, 미국의 경우 100-200만명 수준이다. (이 책 93쪽) 양성주의 혹은 트랜스젠더에서 뇌의 '종말축 침대핵'bed nucleus of the stria terminals 부위가 젠더 정체성에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해부학적 보고가 있다고 하면서, 양성은 인간이나 침팬지에서 다 같이 발견되는 자연의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 97쪽) 2.3 암컷 중심의 성적 자유로움 생식목표가 아닌 섹스 행위를 인간만의 소유 형질이라고 하는 주장하는 학자들도 보노보의 행동성향을 알았다면 그들의 주장을 포기할 것이라고 드발은 말한다. 인간에서 성적 성향은 남성 주도적이고 권위 지향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인간은 영장류 중에서 가장 큰 뇌를 가진 것에 자부하지만 가장 큰 음경을 가졌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애쓴다는 영장류학자 모리스의 지적은 의미있다.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Desmond Morris, 1928~ )의 1967년 작품 『털없는 원숭이』는 세계적인 화제작이었다. 남성 중심의 섹스 행동성향의 원형은 영장류나 포유류 일반의 섹스 행동성향에 있다는 입장이다. 수컷은 최대한 많은 암컷과 교미하려고 하고 암컷은 최대한 우수한 수컷의 씨를 수태하기 위해새 까다롭고 조신한 행동을 한다는 베이트먼 원리(Bateman's Principle; Angus Bateman 1948)가 바로 수컷 중심 행동성향의 기초였다. 베이트먼 원리는 일종의 섹스 행동성향을 설명하는 진화의 규정집으로 여겨져 왔다고 한다. (이 책 254쪽) 그러나 베이트먼 원리는 암컷의 경우 맞지 않다고 드발은 말한다. (이 책 255쪽) 특히 보노보의 섹스 행동성향은 수컷 중심의 베이트먼 원리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보노보 암컷은 무리 내 거의 모든 수컷과 교미를 하는데, 그 결과 수컷의 영아살해는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이 책 264쪽) 드발의 다른 책 『보노보: 잊혀진 유인원』 (De Waal and Fraus Lanting 1997, Bonobo: The Forgotten Ape)에서 암컷이 주도하는 보노보의 성교 사진을 처음으로 실었다고 한다. (이 책 190쪽) 이 사진들 때문에 이 책은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윤리적인 관점보다는 남성 혹은 수컷이 리드하는 섹스 행동성향의 전통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컷보다 암컷이 섹스를 주도하는 사례는 영장류에서 흔한 일이다. 꼬리감는 원숭이는 수컷보다 암컷이 성적으로 주도한다. 혹은 인도 도시에 살면서 도시경찰 노릇을 하는 하누만랑구르(붉은털원숭이)도 그러하다. (이 책 258쪽) 실은 인간 사회에서도 여전히 소수민족의 사례에서 보듯 여성 중심의 섹스행동성향과 가족형태를 볼 수 있다. 남아메리카 마라카이보 지역 바리족 여성은 많은 남성과 섹스한다. 여성이 아이 출산하는 날 섹스한 남성의 이름을 거명한다. 이후 다수 남성이 아이 양육에 공동 참여한다. 이를 분할 부성Partible paternity이라고 한다. 분할 부성으로 키워진 아이가 생존할 확률은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높다는 통계를 드발은 보여준다. (이 책 267쪽) 3.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논쟁 3.1 감정은 이기적 편향이라는 점에 대한 반론 감정은 생존에 유리하도록 행동을 하도록 적응된 형질로서 두려움, 분노, 혐오, 매력, 애착 등의 감정은 나름대로 적응된 특성이다.( 이 책 115쪽) 감정은 사치가 아니라 생명 자체이다. 감정은 젠더에 따라 큰 차이 없다. 심리학 일반에서는 전통적으로 감정을 이기주의의 원천으로 본다. 이타적 행위가 있다 하여도 그런 이타행위 혹은 협동성 행위는 추후 보상을 바라거나 상호이익을 기대한 행위에 지나지 않다고 해석한다. 그런 이기주의 혹은 상호성 이론을 드발은 합판이론Veneer Theory이라고 이름붙였다. 합판이론은 드발이 만든 조어로서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앏은 판자로 살짝 덮어서 마치 이타적으로 보이게끔 한다는 전통적 이기주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비유한 말이다. 드발은 이기주의자들의 합판이론을 수용하면서도 인간 내면의 공정성 감정과 이타적 감정이 있음을 강조한다. (이 책 117쪽) 3.2 이타주의는 당위 기반의 도덕만이 아니라 영장류에서도 발견된다.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상대 마음을 알아차려서 행동하는 영장류 행동양태는 유인원을 거쳐 인간에게 진화된 행동유형이다. (이 책 394쪽) 사람과 마찬가지로 영장류에서도 어미가 새끼를 돌보는 모성애 행위는 강하게 나타난다. 이런 어미의 행위양태는 전형적인 이타주의에 해당한다. 그것도 도덕적 이타주의 이전에 생물학적 이타주의에 속한다고 드발은 강조한다. 이런 생물학적 이타행위 근거는 모성애 혹은 엄마의 애착 현상이 체내 호르몬 옥시토신 분비에 있다.(이 책 391쪽) 침팬지는 자기 새끼를 왼팔로 안는 경향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5명 중 4명의 엄마는 왼팔로 아이를 안는 무의식적 행동을 한다고 전한다. 드발은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추정한다. (i)아기에게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듣게 하려고, (ii)엄마가 오른팔로 다른 작업을 할 수 있도록, (iii)왼쪽 아기 얼굴을 주시하면 엄마의 오른 뇌가 활성화되고 우뇌는 사랑의 감정적 연결을 촉진하기 때문에, (iv)아기는 대체로 왼쪽 젖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 398쪽) 드발은 이런 추정 중에서 (iii)의 이유를 중시한다고 말한다. 어쨌든 모성애라는 이타주의는 단순히 도덕적이고 당위적인 형이상학만의 산물이 아니라 생물학적 사실의 기반을 갖는다고 드발은 강조한다. 이타주의 진화행동주의 근거는 또 있다. 어린 암컷을 포함한 암컷 일반의 모성애allomothering가 있다고 한다. 암컷 침팬지의 경우 남의 새끼조차 친어미처럼 돌보는 행동유형을 하며, 어린 암컷도 이런 행동유형으로 말미암아 인형놀이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 405쪽)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드발은 새끼를 키우려는 수컷의 잠재력도 있다고 한다. 남성의 경우라도 첫 아이 탄생 직후에는 아버지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잠시 낮아지면서 옥시토신 수치가 올라간다. (이 책 421쪽) 수컷도 상황에 따라 새끼를 키우려는 부성애가 발현된다. 이 사실은 이미 다윈의 통찰력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고 한다. (이 책 412쪽) 그런데 다윈의 어느 문헌에서 침팬지 부성애를 언급했었는지 드발은 문헌표기를 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 부분이 큰 관심이어서 어느 문헌에서 그런 언급이 나왔는지 따로 찾아봐야겠다. 4. 갈등에 대하여 4.1 싸움놀이를 통한 유대감 형성 어린 침팬지 수컷들은 그들끼리 싸움놀이rough-and-tumble play를 자주 한다. 싸움놀이가 진짜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상대에게 보여주어야 하는데, 먼저 웃는 표정으로 자신의 과격행동이 싸움이 아니라 놀이임을 표시하면 상대방도 이를 수용한다. 그리고 싸움놀이는 놀이이므로 상대가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싸움놀이를 서로 인정한다는 뜻에서 싸움놀이를 하는 수컷들은 서로 과도한 힘을 자제하고 조절하는 기술을 익힌다. 이런 자제 기술을 드발은 자기조절self-handicapping이라고 표현한다. 싸움놀이는 어른 침팬지로 되어서 그들 사이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이 책 56-8쪽) 이러한 자기조절력은 암컷과의 교미에서도 중요하다. 고릴라, 오랑우탄 수컷은 암컷보다 크고 힘이 세지만 암컷 교미에서 상대 암컷이 다치지 않도록 힘을 조절한다.(이 책 59쪽) 자기조절력은 갈등을 해소하려는 자연적 소통의 하나이다. 4.2 개코원숭이의 사례 자기조절력은 언제 근력을 사용하고 언제 화해를 하며 언제동맹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생물학적 신호이다. 개코원숭이의 사례를 들어보자. 개코원숭이 대장 수컷은 공격성과 동료 동맹주의를 강하게 갖는다. 공격성과 폭력성이 강한 이런 개코원숭이조차 수컷 간의 심한 갈등을 조심하고 꺼려한다. 수컷의 송곳니는 공격무기로 강력하므로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땅콩을 아주 좋아하지만 두 수컷이 자리한 공간 사이에 사람이 던져준 땅콩 때문에 그 두 수컷이 쉽게 싸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바로 옆에 떨어진 땅콩을 서로 못본 척까지 한다. 땅콩 하나 때문에 강력한 송곳니를 세워 싸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Kummer 1995, 193) 4.3 갈등보다 갈등을 푸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성체 수컷들은 서열에 관계없이 항상 긴장 상태에 있다. 알파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혹은 어느 암컷을 차지하기 위하여 (i)직접 싸우지는 않더라도 위세를 부려서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ii)직접 힘으로 싸우거나 (iii)몰래 치팅하는 등 다양한 행동양태의 긴장관계를 놓을 수 없다. 예를 들어 긴장 상태는 털세움piloerection으로 드러난다. 털을 세워 자신의 등치를 크게 보이게끔 하여 상대를 압도하려는 생리적 표현이다. (이 책 355쪽) 털세움의 효과는 직접 신체적으로 싸우지 않더라도 위압적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의도를 나타낸다. 알파 수컷(우두머리 수컷)의 경우 잦은 도전을 받게 되는데, 도전받을 때마다 신체접촉 싸움을 하게되면 그 대장 수컷은 매우 위험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우두머리 자리를 오래 유지하려면 싸움보다는 위압적 방법으로 상대의 도전의지를 상실하게 한다. 싸우더라도 싸움을 오래 끌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행동양식은 손자병법에 나온 말들을 떠오르게 한다. 『손자병법』에는 이런 말이 있다. “오래 끄는 싸움은 좋지 않다(兵貴勝不貴久)” 그리고 “승(勝)과 굴(屈)은 다르니”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손자병법』 모공謨攻편) 침팬지 수컷 사이의 갈등에서 그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이 대단히 중요하다. 갈등 해소는 우두머리 수컷의 지위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납게 폭력적인 수컷들 사이에서도 의외로 갈등해소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나타난다. 수컷 사이의 갈등을 푸는 화해 비율은 암컷 사이의 갈등을 푸는 화해 행위 비율보다 높다고 한다. 수컷의 화해행동이 암컷의 화해행동 비율보다 높다. 여기서 암컷과 수컷의 갈등 해소 방법의 차이가 관찰된다고 드발은 보고한다. 명성을 갖춘 알파 수컷은 갈등을 조정하고 화해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4.5 암컷의 차이 암컷 사이의 갈등이 생길 때 그 암컷들은 서로에게 멀리 떨어짐으로써 해결하기도 한다. 멀리 떨어질 수 없는 동물원에서는 암컷끼리도 (어쩔 수 없이) 화해하기도 한다. 수컷은 갈등이 생긴 이후 그 갈등을 해소하거나 봉합하려는 행동양식을 보이는데, 암컷은 대체로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갈등을 처음부터 만들지 않도록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 책 368-71쪽) 5. 동물과 인간을 잔혹함과 문명화로 구획하는 것은 인간 중심의 편협성이다. 동물성은 폭력적 자연성에 있고 인간성은 사회적 문화성에 있다는 이분법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고생물학자는 레이몬드 다트Raymond Dart였다고 한다. 다트는 고인류와 영장류 연구를 통해서 영장류를 포함하여 고인류의 폭력성을 강조했다. 다트는 1924년 남아공 고인류 화석을 발굴했고, 그 화석의 인류를 Australopithecus Africanus로 이름붙였다. 다트는 발굴된 고인류 화석을 기반으로 고인류 집단이 폭력적 육식성을 가졌다고 결론지었다. 그들을 무자비한 살육자와 강간 고인류로 낙인했다. 그러나 그렇게 낙인찍도록 근거가 된 발굴화석은 단 1 조각의 어린아이 머리뼈였을 뿐이다. 동물과 인간 혹은 고인류와 현인류 간격을 고정화하기 위해 다트는 편협적이고 무자비한 결론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 그가 침팬지를 폭력적 동물로 묘사한 것은 당연했다.(이 책 183쪽) 1930년대 레이몬트 다트의 생각은 실제로 2000년 대 후학자에게 영향을 미쳤다. 다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2011, The Better Angel of Our Nature)와 인간진화생물학자이며 영장류학자인 랭엄(Richard Wrangham 2019, The Goodness Paradox. 인간본성의 사악함)은 자연과 문명을 구획하여, 자연을 폭력성의 본능에 대입하고 한편 문명을 그런 본능을 제어하는 문화적 발전으로 대입했다. 언어학자이며 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는 고인류 시기와 문명화된 현대 사이에 전쟁과 평화라는 자극적 비유를 대입했다. 다시 말해서 고인류 사회에서 전쟁과 폭력과 학살등의 비인간적이고 동물적인 행동유형들이 많았지만 문명시대로 접어들면서 폭력과 학살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주장이다. 이 책의 저자 드발은 이러한 일방적인 이분법을 비판한다. 자연을 폭력성 본능에 비교한 랭엄의 유비법은 편협된 관찰연구의 결과라고 드발은 주장했다. 그런 랭엄의 유비법에서 말하는 자연은 침팬지 행동연구에 국한했기 때문이다. 만약 랭엄이 보노보 행동연구까지 수행했다면 자연 안에 폭력성 본능 외에 협동과 사랑이라는 본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이 책 184쪽) 고인류 조상 사회에서 즉 12,000년 전 신석기 이전에 대규모 학살이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을 드발은 지적하면서 핑커가 주장하는 이론적 근거를 비판한다. (이 책 311쪽) 6. 보노보는 침팬지와 다르다. 6.1 보노보의 유형성숙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 및 인간이 호미니드(사람과)에 속한다. 그 중에서 보노보는 침팬지와 비슷하지만 체격이 작은 유인원이다. 보노보가 결정적으로 침팬지와 다른 외형은 보노보는 침팬지의 새끼 시절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보노보의 유형성숙에 해당한다. 유형성숙이란 어린 시절의 특징이 어른이 되어서도 드러나는 진화의 현상이다. 즉 침팬지 새끼들의 특징들이 보노보 성체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노보는 성체가 되어도 귀여워보이는 외모를 갖는다. 보노보의 유형성숙 특징으로서 꼬리끝 흰색술이 있고 작고 둥근 머리뼈 그리고 장난기 형질이나 얼굴을 마주한 교미 혹은 고음의 목소리 등이 있다.(이 책 177쪽) 보노보의 유형성숙 특징은 보노보의 예민성에 관계된다. 1944년 연합군 폭격시 뭰헨 헬바브룬 동물원 보노보들은 소리에 놀라서 심장마비로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보노보가 극도로 예민한 성격임을 알 수 있다고 드발은 말한다.(이 책 178쪽) 보노보의 이런 성격은 침팬지와 전혀 다른 비폭력위 행동유형으로 드러난다. 아직까지 보노보가 다른 개체를 살해했다는 보고는 없다. 증오보다 사랑을 삶의 행동으로 사는 것이 보노보의 본성이라고 한다. 6.2 보노보 갈등조절 보노보는 침팬지와 다르게 대체로 암수 간 관계없이 갈등 자체를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며 갈등 이후에도 화해를 잘하는 편이다. 보노보와 침팬지 수명을 비교해볼 때, 수컷 보노보가 수컷 침팬지보다 상대적으로 장수한다. 그 이유는 스트레스성 갈등을 적게 겪고 따라서 다른 수컷으로부터 받는 공격성 노출을 적게 받기 때문이다. (이 책 196쪽) 침팬지 섹스 동기는 생식에 있지 않다. 동물은 후손을 바라고 섹스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들은 대개 섹스를 Breeding 번식행위로 보지 않는다. 섹스행위와 새끼 탄생 사이의 시간간격이 멀어서 길어서 그렇다. 섹스행위 동기는 상대에게 끌리고 즐거움에 있는 것이지 생식의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책 457쪽) 인간 관점에서만 섹스는 후손생산이다. 여기서 드발이 중요하게 지적한 점은 인간의 모습은 침팬지 성향과 보노보 성향을 다 같이 갖고 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이기성의 형질과 협동성의 형질의 양면성이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이다.(De Waal 2009) 드발 이후 보노보 현장연구 그룹인 푸루이퍼 연구팀은 이런 양면성의 인간본성을 ‘양극성 유인원’bipolar apes이라고 표현했다. (Prüfer et al. 2012) 7. 지배력과 영향력, 폭력과 명성 1940년대 스위스 동물학자 쉔켄Rudolf Schenkel이 포유류 집단에서 지배력을 독점하는 수컷 우두머리에 알파 수컷alpha-male이라는 용어를 처음 붙였다. 침팬지 집단에서 알파 수컷의 독재에 가까운 지배력의 상황들은 많은 영장류학자들에 의해 잘 밝혀져 있다. 침팬지 수컷들은 지배력을 차지하기 위해 도전하고 싸움으로 겨루면서 알파 메일이 되려 하는데 이 과정에서 집단 안의 충성과 복종의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힘으로만 지배하고 독재한다면 그 지배력조차 오래가지 못한다. 힘만 쓰고 폭력적으로 일방적인 지배를 했던 알파 수컷의 사례를 드발은 중시했다. 곰베 국립공원 알파 수컷 고블린이었다. 폭력과 위협, 동맹을 무시하고 이익을 독점하며, 다른 침팬지들을 학대하던 고블린은 얼마 가지 못해 알파 지위에서 밀려났다. 특히 암컷들의 지지가 없다면 수컷 우두머리의 지배력이 오래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드발은 발견했다. 반면 암컷들을 무시하지 않고 서로를 중재하고 동맹 유지에 힘쓰고 나눠갖기와 약자보호로 행동하는 알파 수컷의 교통 역할control role은 좀 더 오랜 지배력을 보장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 322쪽) 여기서 지배력과 영향력이 다르다고 드발은 설명한다. 수컷이 지배력을 가져도 영향력은 암컷이 가질 수 있다. 영향력은 명성을 통해서 얻게 된다. 명성은 (i)강요로 얻어지지 않는다. (ii)존경이 수반되어서 자발적 권위를 얻게 되는 것이 명성이다. (iii)명성은 모방의 원천으로서, 새끼들과 청소년 침팬지는 지배력을 갖는 어른보다 명성이 있는 어른의 행동성향을 모방한다. 영장류 일반에서 암수 사이의 체형 차이는 크다. 이런 차이를 성적 이형성sexual dimorphism이라고 부른다. 체격은 물론이고 목소리도 다르다. (이 책 355쪽) 암컷 침팬지는 수컷에 비해 체격도 작고 힘도 약하기 때문에 수컷과 일대일로 싸우기에 상대가 되지 못하며 집단의 지배력에서도 밀린다. 그러나 지배력에서 밀리는 암컷이 오히려 집단에 대한 영향력에서 우선할 수 있다. 수컷들은 피터지는 싸움으로 지배력을 쟁취하지만, 암컷들은 싸움 대신에 자기의 권위 순서가 올 때까지 시간을 기다리면서(queuing) 알파 암컷alpha-female으로 된다. 기다림이란 화해와 공조의 관계를 형성하는 명성의 기초다. (이 책 314쪽) 8. 나와 다른 남의 차이를 인정하기 영장류에서 수컷과 암컷의 생물학적 기질(matrix;바탕질) 차이를 인정해야만 해당 동물의 동물행동학적 이해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드발의 중요 논제이다. 인간 사회에서 남녀 간의 기질 차이를 인정할 때 남녀 간에 봉건적 불평등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드발은 말한다. (이 책 355쪽) 자연생태계가 유지되려면 개체군 다양성이 우선되어야 하듯이, 인간의 문명사회가 성장하려면 타자를 인정하는 차이의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드발의 생각이다. 개복치(학명 Mola mola)는 3억 개의 알을 낳는데, 3억 개 알 중에서 동일한 염기서열을 갖는 알들은 그 어느 것도 없다. 즉 유전자 변이의 다양성이 생명종 전체의 생존성을 높여준다는 뜻이다. 6천5백만 년 전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소행성으로 인한 대멸종의 사건도 충돌 직후 모든 공룡들이 멸종된 것이 아니라 충돌 이후 생긴 기나긴 ‘핵겨울’ 동안 부분적인 생명종 다양성이 무너져서 대멸종으로 이르게 된 것이다. 자연의 다양성과 마찬가지로 문화의 다양성이 내 삶에서 소중하다. 다양한 생각들이 먼저 있어야 그런 생각들을 융합하여 창조적인 생각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호기심이 먼저 인정되어야만 그 호기심에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다양한 놀이를 경험한 아이가 성인이 돼서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하는 의사결정의 주인으로 될 수 있다. 문화적 다양성은 나의 미래, 우리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준다. 모든 것이 같아지는 획일성의 늪에 빠지면 나의 미래는 쳇바퀴 안에서 돌아가게 된다. 획일성의 늪에 빠져서 쳇바퀴를 도는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채 남들이 돌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런 사람의 전형적인 특징은 자기와 다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차이를 인정하지 못할 때 개인과 사회의 불행이 시작된다. 그 불행은 이렇다. 권력있는 사람은 차이나는 타자를 공격하여 멸절시키려 하며, 권력없는 사람은 차이나는 타자 때문에 혼자 안달이 나서 홧병에 빠진다. 타자 때문에 자아가 노예로 된다는 뜻이다. 삶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 되기 위해 타자를 인정하고 관용하는 것은 우두머리 침팬지나 대장 보노보만의 행동형질이 아니라 사람들의 문화 다양성의 기초이다. 문화 다양성은 나와 다른 타자를 인정하고 관용하는 데서 비롯한다. 서로 다른 타자의 피부 색깔의 차이를 품어안고, 서로 다른 타자의 종교와 문화 차이를 인정하고, 남녀라는 이분법적 구획에서 벗어난 젠더 다양성을 관용할 때 비로소 나의 실존이 살아난다. <끝> <참고문헌> 드발 1982/2018, 『침팬지 폴리틱스』 바다출판사 모리스(Desmond Morris) 1967/2011, 『털없는 원숭이』 문예춘추사 최종덕 2014, 『생물철학』 (개정판 2023) De Waal and Fraus Lanting 1997, Bonobo: The Forgotten Ape De Waal 2009, The age of empathy. New York: Random House. Kano, Takayosi 1992, The last ape: pygmy chimpanzee behavior and ecology. Stanford University Press. Kummer, Hans 1971, Primate societies: Group Techniques of Ecological Adaptations. Chicago: Aldine Kummer, Hans 1995, In Quest of the Sacred Baboon: A Scientist's Journey. Princeton Univ. Press Prüfer, Kay, et al. 2012, "The bonobo genome compared with the chimpanzee and Human genomes" Nature 486: 527-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