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석 서평: 과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의 상보성 |
원저 : 장하석, 온도계의 철학 |
실린 곳 : 중앙일보, 중앙일보 |
장하석, 온도계의 철학, 동아시아, 2013 HASOK CHANG Inventing Temperature: Measurement and Scientific Progress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서평자: 최종덕, 2013년 10월 25일 뜨거워, 따듯해, 더워, 찌는데, 후끈해, 이처럼 더위를 표현하는 우리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말에서 특히 더 많지만 세상의 다른 언어들에서도 감각을 표현하는 말은 가지각색으로 그 안에 미묘한 느낌의 차이를 포함하고 있다. 차이를 표현하는 말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감정의 표현이 풍부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느낌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2,500년 전 플라톤 시절부터 근대과학의 갈릴레오와 뉴턴을 거치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과학은 서로의 감각들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한결같이 연구해 왔다. 로크나 갈릴레오 그리고 뉴턴 같은 서구의 과학자나 철학자들은 길이나 부피처럼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사물의 성질을 일차 성질이라고 했고, 맛이나 냄새 같이 수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의 속성을 사물의 2차 성질이라고 했다. 이차 성질은 사람의 느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서로 비교불가능하고 반면에 일차 성질은 객관적으로 비교가능한 진리값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차 성질을 일차 성질로 바꾸는 일이 온통 근대과학의 과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과학도 마찬가지다. 특히 뜨겁고 차가움의 감각의 정도를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근대인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유럽사회에서 온도계가 만들어졌겠지. 과학철학을 공부한다는 나 자신도 무심히 넘어갈 만한 주제였지만, 새로운 책 한권을 읽게 되면서 내 생각을 바꿨다. 온도계가 만들어지는 유럽 18세기의 역사적 상황을 통해 과학의 진보가 무엇인지, 믿음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진리가 과연 진리였는지, 그리고 안다는 것이 과연 아는 것인지 등의 문제를 다룬 대단한 책을 우리말로 읽게 되아 아주 좋았다.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석 교수의 <온도계의 철학>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2004년에 나와서 과학철학 관련 몇몇 최고의 저술상까지 받았는데,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일반 독자들에게 선뵈게 되었다. 장하석 교수는 이 책에서 철학 및 역사가 과학과 어떠한 상보적인 관계를 갖는지를 명확한 과학사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온도계를 만들려면 온도가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온도를 잘 알려면 온도계가 필요하거늘 온도계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바로 이런 근본적인 질문은 장하석 교수가 어릴 적부터 가졌던 의문이었다고 쓰고 있다. 그는 이런 의문을 풀려는 지식의 실천을 보여주었는데, 실은 우리 모두 그런 의문을 속에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아이들은 엄마에게 엄마의 엄마, 그리고 그 엄마의 엄마가 누구인지, 엄마의 끝은 누구인지를 묻곤 한다. 엄마들은 이런 질문에 당황한다. 당황할 필요 없다. 하나의 정답을 만들려는 진땀나는 시도를 하려말고 그냥 아이에게 지치지 말고 이것저것 응대만 해주면 되니까. 그런 질문이 과학지식의 시작점이라고 장하석 교수는 말한다. 그는 그런 질문의 시작점을 ‘고정점’으로 그리고 그런 지지치 않는 응대를 다양성의 ‘반복’이라는 개념으로 조직적으로 해명해 주었다. 고정점을 찾아가는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실체론이나 본질론 같은 형이상학적 마술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토대의 토대는 무엇일까 하는 물음은 잘못된 물음일 수 있다.”(책 429) 우리가 토대라고 알고 있는 우리 집의 지반도 알고 보면 편평한 땅이 아니라 불안정한 지구의 둥근 땅이다. 우리는 믿고 있는 토대는 그냥 우리의 믿음일 뿐이며 실제로 집을 지을 수 있는 이유는 “그저 우리가 지구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하석 교수의 지식론은 비판을 더러 받았지만 지난 25년여 동안 국제 과학철학계에서 충분히 검증되었다. 너무나 유명하여 일반 독자들도 익히 알고 있는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과 칼 포퍼는 20세기 대표적인 과학철학자이지만 그 둘 의견은 꽤나 상반적이다. 나는 두 사람의 상반성을 섬세하게 역어내는 해석을 장하석의 글 행간에서 읽을 수 있었다. 원문 보기 원저: HASOK CHANG Inventing Temperature: Measurement and Scientific Progress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