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독립출판을 하는가?

독립출판 정의 : (i)출판사 없이 pdf 형식 전자책이며 (ii) 무료배포로서 인터넷에 공개하여 자유전송 가능하며 (iii) 출판ISBN은 없으나 콘텐츠 저작권을 소유한 출판을 말한다)


독립출판 계기와 이유

나는 그동안 10권 넘는 책을 냈다. 2인 공동저서가 5권이고 단독이 11권이다. 그 중에서 번역서가 3권이다. 많은 책을 냈지만 출판과정은 험난했다. 내 원고는 출판사로부터 출판거절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자존심이 상했고 창피했다. 출판시장의 열악한 상황도 그러했고 내 원고 대부분이 전문서 내용이라서 출판사의 부담이 컸기 때문으로 나는 이해한다.

그래도 나는 그동안, 40년 동안 부지런히 글을 써왔다. 책이 되는 원고로 완성되어 여기저기 출판해줄 출판사를 알아보는데, 편안하게 출판계약이 성사된 경우가 드물다. 아니 딱 한번 뿐이다. 제대로 말해서 장회익 교수님과 대화체로 만든 『이분법을 넘어서』 그 책만이 출판사에서 먼저 나에게 청탁을 한 것이고 나머지 열 몇 권은 모두 내가 부탁을 해서 겨우 성사된 출판물들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거절을 당한 쓰라린 경험이 있다.

예를 들어 『의학의 철학』은 4 군데 출판사에서 거절당하고 원주사는 심재관 교수가 자문위원으로 있는 씨아이알 출판사에서 너그러이 맡아주어 세상에 힘들게 나온 책이다.

장회익 교수님과의 대화로 제작될 책이 나에게 청탁올 때도 실은 경우가 남달랐다. 당시 출판사 의도로는 당대 크게 주목받았던 이영희 선생님의 『대화』같은 책의 형식을 시리즈로 내려고 했던 것이다. 주인공이 있고 제자가 질문하는 대화 형식을 말한다. 그런 대화 보조자로 내가 선택되어 책의 공동저자로 청탁받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도 실은 편집작업을 하다가 나중에 알게 된 것이다.

책 작업 중에 나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편집자에게 말했다. 다른 보조자를 찾거나 아니면 동등한 대화 상대자로서 공동작업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당시 그 편집자와 출판사 사장은 주제도 모르는 사람으로 거만하다고 나를 여긴 것 같았다. 어쨌든 내 의견대로 공동저자 변경없이 책이 나왔으니 출판사에선 상당히 양보한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원고청탁된 과정을 보여주려고 사례로 말했다.

내 책이 출판시장에서 잘 팔릴 책이 아님을 나도 익히 알고 있다. 출판사에 재정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출판거절을 당해도 나는 순응하는 편이다. 그래도 역시 내 마음 한 구석엔 약간의 창피함과 좌절감이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나온 내 책 6권 중에서 4권은 문체부 혹은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그런 결과로 보면 나는 경제적으로 내 책 때문에 출판사에 폐를 끼쳤다고 볼 수 없다. (우수도서로 선정되면 해당 기관에서 천만원 어치 책을 출판사로부터 직접 구입하여 전국 도서관에 뿌린다. 그래서 출판사 입장에서 기본 경비는 떨어진다.)

어쨌든 출판사 입장에서 나와 같은 무명 학자에게 출판계기를 선뜻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출판사 없이 내 책을 내기로 했다. 나는 그런 출판을 소위 "독립출판"이라고 이름붙였다.

무명의 독립학자가 책을 낸다는 뜻에서 독립출판이다. 나의 독립출판의 틀은 아래와같다. 종이 책이 아니라 PDF 전자출판이다. 물론 판형은 종이책 형식을 따른다. 예를 들어 내 전자책은 <<신국판>> 양식으로 책 한 쪽 당 25줄로 구성된다.(보통 출판사 종이책 신국판은 한 쪽에 보통 22-23 줄) 나의 전자책은 모두 무료로 배포된다.

그리고 편집은 나 혼자 할 수밖에 없다. 책을 편집하는 기술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인터넷을 통해 배워갔다.

나는 내 원고를 편집하면서 내 글쓰기의 단점과 허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글쓰기도 고쳐지고 나아지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스스로 봐도 그럴듯한 나의 소중한 글쓰기 역사다.

편집과 글쓰기는 한 몸임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자유배포 독립출판이지만 책의 내용과 표 그리고 그림에 대한 저작권이 유효한 것임을 표시했다. 출판사 없는 독립출판의 저작권법이 법적으로 유효한지를 나는 상세히 검토했다. 검토 결과 나의 인터넷 매체로 표현된 원고는 표현 시점부터 저자의 저작권이 유효하다. 원고나 음악 등에 대한 저작권이 특허권과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문제는 남아 있다. 여전히 인터넷 매체 이용 저작물에 대한 법적 저작권 권리는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어차피 나만의 고유한 지식과 사상은 없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저작물은 나 혼자만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나의 지식과 그 표현양식 모두 나 혼자 독보적으로 이뤄낸 것은 없다. 공부는 나 혼자 했지만, 세상의 사람과 사물에 얽히지 않은 나의 지식은 없기 때문이다.

나의 저작물을 베껴갈 이들은 알아서 양심적으로 베껴가길 바랄 뿐이다.

기존 출판사에서 나의 무료 PDF 출판 형태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료 자유배포라는 점에서 기존 출판시장의 흐름이 깨질 것이라고 출판사는 우려하기 때문이다.

벌써 어떤 출판사 2 곳에서 문제제기를 했다. 쉽게 말해서 종이 책 출판으로 돌리라는 제안이었다. 아주 부드러운 대화를 통해 무료배포 출판의 문제점을 나에게 잘 일러주었다. 그의 외면적 이야기도 충분히 맞는 제안이지만 나에게는 출판사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다. 그 이유를 일일이 말하기 어려운데, 그 동안 책에 얽힌 나의 내면적 이야기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종이 책 출간은 여전히 중요하며 존중되어야 한다. 출판사만이 아니라 넓고 깊은 글쓰기 필자 입장에서 그리고 독자 입장에서 쪽수를 넘기며 종이에 묻어나는 호기심의 탄력성이 아주 생생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생생한 감동을 인터넷 전자책 매체에 양보하려 한다.

나의 전자책 시리즈는 <<움직이는 책>> 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이미 2권의 책이 나왔고 앞으로도 나올 것이다. 내 늙은 나이를 따져볼 때 앞으로 많은 책이 나오지는 못하겠지만, 남 눈치 안 보고 몇몇 책을 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종이책 내서 (i)나에게 돈(인세)들어올 일도 없을 것이고 (ii)명성을 키울 일도 없으며 (iii)지식권력을 쌓을 일도 없으니 독립출판 <<움직이는 책>>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글쓰기가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행운이라는 뜻이다.




-끝-

참조:

^움직이는 책^ 시리즈

1권 : 『공백의 실재, 라투르의 존재양식 해제』 2024년 6월 10일 출간

2권 : 『한의학의 자연철학』 2025년 1월 29일 출간

3권 : 『이규성의 철학』 2025년 가을 예정

4권 : 『화이트헤드 탈이분법의 자연철학』 2026년 예정

5권 : 『알고리듬과 유리스틱』Algorithm and Heuristics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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