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지도

<공부의 지도>

나는 지도를 자주 본다. 특별히 갈 데가 있어서 지도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인터넷에서 그냥 지도를 열고 여기저기를 방문한다. 우선 내가 지금 위치한 데로부터 얼마나 멀리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떨어져 있는지 지도를 여기저기 돌려가며 둘러본다.

종이 지도에서 인터넷 지도로 바뀐 이후 마우스 하나로 주욱죽 흩어가며 줌인으로 혹은 줌아웃으로 돌려가며 내가 지금 자리잡은 곳과 상대적 거리와 방향을 맞춰본다.

인터넷 지도는 그만큼 편해졌다. 이제는 단순 평면 지도만이 아니라 입체 사진이 들어와 마친 내가 그 거리에 걸어가면서 길을 찾아다니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거의 가상현실에 가까울 정도로 인터넷 지도는 발전되고 있다.

실상 인터넷 지도 이전부터 나는 지도를 즐겨 봤다. 운전을 배워 차를 처음 타게 되었을 때 우선 지도책부터 사는 것이 상례였다. 지도책을 펼치면서 내가 가보지도 못한 지방도시를 방문하고 산과 강을 따라 산보도 했다.

특정한 목적없이도 지도를 열어 나라의 곳곳 데를 가보기도 하고 지도책 쪽수를 타고 넘어 횡단하는 지도 비행기를 타고 아시아를 거쳐 유럽을 거쳐 다시 시베리아로 해서 아메리카 대륙을 타고 내려와 페루와 칠레 땅끝까지 종단해보기도 한다.

지형마다 도시나 산세에 따라 축적이 달라서 도시의 작은 골목길을 찾다가도 그 골목길이 동서남북으로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어디에 붙어 있어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야만 골목길을 찾아가 진정으로 알게 된다. 즉 내가 가는 방향과 위치와 관계가 지도찾기의 요점이다.

요즘 컴퓨터로는 줌인하고 줌아웃하는 간단한 조작만으로 내가 있는 장소의 상대적 위치를 쉽게 알 수 있지만 지도책으로는 작은 축적의 페이지에서 큰 축적의 페이지로 넘겨가면서 내 장소의 상대적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불편한 감은 있지만 지도책으로 길을 찾는 준비과정과 결과는 내 몸안에 체화된 기억으로 새겨진다.

자동차 지피에스가 나오면서 자주 다니는 길조차 차량 네비를 켜놓아야만 되니 나의 기억 상당분을 기계기억에 빌려준거나 마찬가지다.

나의 장소처럼 나의 생각도 마찬가지로 지도를 필요로 한다. 장소의 지도가 내 장소의 상대적 위치를 알수 있게 해주듯이 나의 생각과 지식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 다른 생각과 다른 지식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기 위하여 생각의 지도는 필수적이다. 생각의 지도없이 생각과 지식을 쌓아간다면 자칫 고립된 지식으로 되거나 독불장군의 생각에 빠질 수 있다.

공부란 나의 생각과 나의 지식을 쌓아가는 과정인데, 아무리 많은 지식과 생각을 창고에 쌓아둔 들 쌓여진 그런 지식과 생각으론 공부를 이룰 수 없다. 공부란 내가 흡수하는 ‘지식’의 날줄 위에 그 지식을 반성하고 비판하는 ‘생각’이라는 씨줄을 짜는 일이다.

나의 단편적인 지식과 생각의 조각들이 씨줄과 날줄로 짜여가면서 신대륙의 발견처럼 점점 확장하여 한판의 생각과 지식의 그물망으로 되가는 과정을 공부라고 한다. 그물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내가 해놓은 지금의 지식과 생각의 쓸모가 확장되고 유연해지면서 동시에 지식과 생각의 그물망 즉 나의 공부가 폭넓어지고 더 깊어진다.

나의 생각과 지식이 내 생애 전체의 생각과 지식의 구조에서 대충 어디쯤 위치해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공부의 요점이다. 이런 공부의 그물망이 곧 생각의 지도이며 지식의 지도이다. 그래서 공부는 나의 생각과 지식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씨줄과 날줄을 짜가면서, 경도와 위도를 얽어가면서 공부의 지도가 완성된다. 공부의 지도는 한번 짜간 씨줄과 날줄, 한번 얽어간 경고와 위도로 다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런 짜임새와 얽힘세를 튼튼히 하려면 꾸준히 반복된 실천과 행동이 필요하다. 코그물의 네트워크는 실천의 행동이 수없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공부는 지식과 사유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과 행동으로 마무리된다. 지식과 사유는 행동을 통해서 비로서 그 방향을 알 수 있게 된다. 실천을 통해서 나의 지식과 사유가 타자(세계)와 관계를 맺게 된다.

공부는 지식과 사유의 양과 질이 풍성해야 하고 그 방향이 설정되어야 하며 세계 혹은 타자와 얽혀있는 관계를 조망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

공부는 이런 방향과 위상 그리고 관계의 지도 위에서 쌓아간다. 그래서 나의 생각이 타인의 생각과 어떻게 다른지, 거꾸로 말해서 타인의 생각이 나와 왜 다른지를 이해하는 일이 공부의 요체다.

그리고 내가 공부하는 행위와 그 지식과 지혜가 우주 속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지를 꾸준히 반성한다.

나의 지식과 생각이 나의 삶과 세계에 대한 절실한 질문과 의문이 공부의 시작이며, 그 응대 그리고 행동으로 연결된 실천이 공부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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