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시 궁


독일 포츠담 시내 상수시 성 Schloss Sanssouci 에 있는 작은 유리 돔으로 본 하늘을 따라 그리다.

독일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왕은 당시 프랑스 볼테르(1694-1778)와 교류하면서 프랑스 식 계몽주의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브랑스에서 영국으로 간 볼테르는 록크의 합리성과 뉴턴의 자연철학(물리학)을 접하면서 더더욱 자신의 계몽주의적 생각을 굳혀갔다. 그후 볼테르는 디드로 주도의 백과전서 흐름의 계몽주의의 주요 대표자로 된다.

이후 볼테르는 오염된 종교와 광신주의를 비판하면서 프랑스 루이 15세에게서는 더더욱 미움을 받았으나 독일 프리드리히 왕과는 친했졌다. 그 인연으로 볼테르는 독일 포츠담 상수이 성에 3년(1750-1753) 머물면서 독일 프리드리히 왕과 토론하거나 추후 나오게 될 글쓰기에 몰두한다.

내가 볼테르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 볼테르는 젊었을 때 귀족 족보를 경멸하는 발언을 했다가 당대 귀족으로부터 심한 몽둥이 처벌을 받았다.

귀족1이 볼테르에게 한 말: "너는 부자이기는 하지만 성씨 근본도 없는 주제에,,"
볼테르가 그 귀족에게 한 말: "내 성씨는 이제 나로부터 시작인데, 당신의 성씨는 당신에게서 끝날 것이네"

볼테르는 몽둥이 처벌만 받은 것이 아니라 프랑스 귀족들 심기를 건드려 결국 볼테르는 바스티유 감옥에 두 번째로 갇히게 되었다.

** 나는 한국의 성씨 족보를 부정해 왔다. 여전히 족보나 가문을 따지는 사람들이 많다. 족보 구축 현실이 한국현대사의 그늘을 만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볼테르가 내 마음에 들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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