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표절
‘자기 표절’ 어떻게 볼 것인가
2008년 06월 30일 (월) 14:32:44 교수신문 editor@kyosu.net

연구윤리 불감증을 우려한다

몇 년 전부턴가, 학자들의 논문표절 문제가 사회화 됐다. 특히 교수가 공직에 오르게 될 경우 표절 시비가 빠지지 않고 거론됐다. 제자 논문을 자기 것으로 게재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겠지만, 공동연구논문 다수 필자에 자기 이름 하나 더 걸치는 경우는 다반사였다. 남의 아이디어를 도용하거나, 구석진 외국논문을 적절히 베끼거나, 실험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짜맞춘 결과를 유도한 논문을 게재하는 행위 모두 연구자로서 정당하지 못한 일이다.

얼마 전에 교육학 관련 학계를 대표한다는 8개 국내학회에서 내놓은 자기표절에 관한 학계 의견서를 보고 나는 매우 놀랐다. 여전히 연구윤리의 엄정성을 이해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표절의 경우 연구윤리의식이 무시되곤 한다. “남의 것도 아니고 내꺼 내가 좀 베끼는 게 뭐가 문제야”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교수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이다. 남들이 잘 안보는 학술 잡지에 게재한 원고를 더 널리 알린다는 명분으로 다른 시기에 다른 학술지에 실어도 그 정도쯤이야 아무 문제없다고 편리하게 생각한다.

교수들이 연수회나 강연회에서 강연을 할 경우 강의록으로서 자기의 기존 논문을 인쇄해 나누어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강의록으로 사용한다는 핑계 삼아 다른 간행물에 자기 논문을 반복 게재하는 일은 분명히 자기표절에 해당한다. 그러나 위의 학계 의견서에는 그런 행위를 ‘사회봉사’라고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고 재사용으로 유무형 혜택봤다면

자기표절 시비에 오른 연구자들은 일반표절과 달리 그럴듯한 자기합리화의 명분을 강조한다. 자기표절의 핵심은 자신의 논문 혹은 그 상당한 원고량을 그대로 재사용한데 따르는 유무형의 해택을 보았다는데 있다. 그 유무형의 해택이란 작은 돈이나마 받은 원고료에서부터 학문적 명예에 이르기까지, 촉박한 원고마감 기간에 힘들이지 않고 논문 원고를 제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부터 요즘 교수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교수평가 및 연구실적 점수 혜택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중적이다. 위의 학계 의견서에는 다중적 반복게재를 연구자의 이론이나 관점을 확산해 연구자 본인의 아이디어를 평생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연구윤리의 불감증을 느끼게 한다.

예를 들어 미국 학계에서 이런 의견서가 나온다면 아마 엄청난 비난의 폭격을 맞게 될 것이다. 연구자의 학문적 입장을 전개하는 과정은 다중 게재가 아니라 연구자의 끊임없는 창의적 글쓰기에서 시작한다. 창의적 글쓰기를 포기한다면 연구자의 고유한 아이디어는 더 이상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식이나 이론을 확산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논문이 실렸던 기존의 학술지 색인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창의적 글쓰기에서부터 비로소 연구자의 이론이 확장되고 확산될 수 있다.

학자의 글쓰기는 지식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재창조를 위한 노력과 학문적 성찰 혹은 지구력 있는 실험실 작업 등의 엄청난 산고 끝에 가능하다. 교수의 학문적 길은 그래서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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