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에서 벗어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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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흑백논리의 이분법: 검어 아니면 희어? 색깔에는 검은색과 흰색 말고 무수한 색깔의 스펙트럼이 있다. “흑백논리”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한다. 흑 아니면 백이어야 한다는 강직된 사고방식은 전통적으로 물질적 기득권 혹은 지식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 사례2) 논리적 이분법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닐 수 없다. 즉 A와 ~A는 서로 공존할 수 없으며 상대를 배제한다. 이런 배제의 수학적 형식이 논리적 이분법의 단편이다. 한편 과학의 현대 양자론은 이런 배중율에 근거한 논리적 이분법이 이미 붕괴되었음을 보여준다. 사례3) 문화적 이분법: 서양이야, 동양이야?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책 『오리엔탈리즘』(1978)은 제국주의 서양 중심의 동서 이분법 개념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문화적 이분법은 서구 제국주의를 계승하고 유지하려는 서구의 거대한 문화전략이라는 사이드의 강한 비판은 당시 상당한 사회적 논쟁으로 이어졌다. 사례4) 자연-문화적 이분법 : 남자야, 여자야? 생명과학 관점에서 혹은 일상사회 측면에서 남자이면서 여자일 수 있다. 남녀라는 이분법에 벗어나야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 사례5) 형이상학적 이분법: 정신이야 물질이야? 데카르트 철학은 정신의 실체와 물질의 실체를 서로에게 무관한 실체의 이분화를 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이런 정신과 물질의 이분화는 형이상학적 분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수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사례6) 윤리학적 이분법: 선악 그리고 이성과 감정의 이분법 선악의 이분법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기 보다는 윤리학을 만들기 위한 경직된 이론일 뿐이다. 이성과 감정의 이분법 역시 철학이나 심리학을 위한 것이며 삶의 관점에서 이성과 감정은 대립적 배제의 관계가 아니라 조화의 공존관계로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본 사례) 분류계통학적 이분법: 동물이야, 아니면 식물이야? 이 세상의 생명체를 동물 아니면 식물로 나누려는 태도는 우리에게 깊이 스며든 생각의 버릇이다. 예를 들어 식물의 진화론적 기원은 조류藻類algae와 연관되지만, 유전학적 계통분류학으로 볼 때 조류가 곧 식물은 아니다. 1970년대에만 해도 조류를 식물로 분류했었다. 조류는 녹조, 갈조, 남조류에서부터 미역과 파래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종의 다양성을 갖는다. 그래도 단세포들의 집합체라는 점에서 같다. 조류는 광합성을 하는 원생생물이며 엄격히 말해서 진핵생물로 분류된다.(1990년대 이후 분류법) 생명체는 동물 아니면 식물,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이분화된 배중율의 세계가 아니며 동물과 식물 외에 더 복잡한 원생동물과 균류의 분류군이 있다. 관습적으로 그렇게 많은 다양한 조류 중에서 식물로 분류된 것도 있지만, 계통분류학 기준으로 조류가 식물 아니면 동물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있지 않다는 뜻이다. 조류의 진화론적 기원은 당연히 동물이나 식물보다 훨씬 먼 시간으로 올라간다. 남조류 흔적 혹은 규조류 화석으로 추적한다면 약 8억 년 전 이상이다. 그래서 조류를 식물로 간주한다면 식물이 동물보다 진화론적으로 오래된 기원을 갖는다. 반면 조류를 독립적인 원생생물(현대분류법으로는 진핵생물)로 보는 현대 계통분류학에 따르면 동물이 식물보다 진화론적으로 더 먼저다. 이 말은 개념적으로 말해서 캠브리아 이전 바다 속 동물은 식물을 먹이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플랑크톤(미세조류)을 포식했다는 섭생환경의 의미를 포함한다. 선캄브리아 시대가 끝나고 고생대 캄브리아기가 시작되는 5억 4200만 년 전 즈음에 35개 이상의 생물문들이 폭발적으로 생겨났다. 이를 캠브리아 생명대폭발(Cambrian explosion)이라고 표현한다. 5만 개 이상의 화석이 발굴된 캐나다의 버제스 셰일 화석군(1909년 발견), 종 다양성을 알려준 중국의 청장(Chengjiang) 화석군(1984년 발견)에서 캠브리아 대폭발의 화석이 대량 발견되었다. "대폭발"이라는 말은 일시적으로 발생되었다는 뜻을 함의하지만 실제로 장구한 지질학적 시간으로 볼 때 일시성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몇 천만 년 수준) 누적된 진화 압력(selective pressure)을 거치면서 변이의 선택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캠브리아의 지질학적 시기를 가르는 경계시간(캠브리아에서 고생대로 가는 경계) 이후 몇 천만 년이 지나면서 바다 속 동물 중 일부가(절지동물) 육지로 올라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삼엽충도 이 때 등장하여 대략 3억 년 가까이 오래 종을 보전하다가 끝내 절멸한 절지동물이다. 고생대 초 엄청난 동물종이 출현한 이후 약 1억년이 지나서 4억 7천 만년 전에서 4억 2천만 년 전 사이(오르도비스기에서 실루리아기에 이르는 시기) 처음으로 물에서 뭍으로 올라온 육지 식물류가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선태식물이라고 불리는 이끼류였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관계없이 바다 속에서 육지로 올라 올 수 있던 결정적 계기는 조류가 광합성을 하면서 지구에 뿜어낸 엄청난 대기 산소량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조류는 동물과 식물 모두에게 선택 진화의 결정적인 적응조건이었다. 조류를 동물이냐 식물이냐라는 이분법에 갇혀진 질문에서 벗어나 제 3, 4의 분류군으로 볼 수 있는 다양성의 계통학적 시선을 갖는다면 육지로 올라온 이끼 같은 선태류 식물보다 동물이 더 오래된 기원을 갖는다는 사실이 인정된다. 이분법의 관념에서 벗어난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다양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