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도서관 탐방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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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퇴직하자마자 2019년 6월부터 9월까지 처와 함께 베를린에 90일 체류하면서 시내 도서관을 다녔다. 인지과학 컨퍼런스 때문에 보훔에 5일, 그리고 함부르크와 포츠담에 놀러 3일 간 날 외에는 80일 내내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나도 베를린은 처음이라 처음엔 어리둥절했는데 차근차근 도서관들을 찾기 시작했다. 실은 한국서 인터넷으로 대충 알고 왔기는 하지만 말이다. 베를린에서 도서관 한 군데가 아니라 5 군데 도서관을 돌아가며 다녔다. 전부 집에서 걸어갈 수 있거나 지하철 U-Bahn 타고 갈 수 있는 베를린 시내 도서관들이다. SBO: 주립도서관1 Staatsbibliothek zu Berlin-Preußischer Kulturbesitz, (SBL) Haus Unter den Linden – 구 동베를린 지역 SBW: 주립도서관2 Staatsbibliothek zu Berlin - Preußischer Kulturbesitz (SBP) Haus Potsdamer Straße – 구 서베를린 지역 SBB: 주립도서관3-매체전문 Staatsbibliothek zu Berlin -Zeitungsabteilung/Kinder- und Jugendbuchabteilung (SBB) ZLB: 시립도서관 Zentral- und Landesbibliothek Berlin (ZLB)- Berliner Stadtbibliothek Schiller: 구립도서관 Schiller-Bibliothek 제일 먼저 SBO 동-주립도서관에 가서 도서관 출입증을 만들었다. 그런데 SBO만 출입증을 필요로 했다. 다른 도서관 모두는 출입증조차 필요없이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서 시커먼 빵과 커피 한잔 하고 륙삭메고 처와 함께 길을 나선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전철역 Seestrass에서 전철로 8 정거장 타고 Unter den Linden 역에서 내려 3분 정도 더 걸어가면 주립도서관 SBO에 도착한다. 시내 훔볼트 대학 본부건물 바로 뒤편에 있다. 륙삭은 개인사물함에 넣고 노트북과 필수품을 들고 도서관에 자리잡는다. 자리잡기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붙어있는 두 자리가 빈 경우는 많지 않아 내 처와 떨어져서 앉는다. 온종일 둘이서 붙어다니는데, 도서관에서라도 다른 자리에 앉으니 좋다. 옆 사람 간격이 1미터가 더 될 정도로 넓어서 방해받지 않고 더구나 천정이 높아 시원하다. 독일 여름은 원래 덥지 않은데 최근들어 이상기온으로 독일에서도 에어컨이 필요할 정도로 무더위였다. 위 사진에서 보면 2층과 3층 서고 복도 사이사이에도 개인 좌석이 있다. 처음엔 그 자리에 앉았었는데, 누가 와서 자기 자리라고 나보고 비키란다. 그 자리는 분기별로 예약하는 지정좌석이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넓고 뻥뚫린 데가 더 좋다. 천장에 보이는 조형물은 책과 신문지 그리고 만화책의 쪽 종이들인데, Olaf Metzel이라는 아주 유명한 작가가 알루미늄 재료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여기 도서관도 우리처럼 책읽는 사람보다 개인 랩탑 들고와서 자기 작업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가끔 노인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어딜가든 내가 제일 나이 많은 것 같다. 다들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실내 에어컨이 쎄서 내 처는 춥다고 가끔 밖으로 나가 더운 바람 좀 쒸고 들어온다. 나는 휴게 소파에 앉아 멍청히 쉬기도 한다. 몇일 지나서 다른 도서관을 탐색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다. 공립도서관은 주립과 시립만이 아니라 소위 구립에 해당하는 데도 있다. Schiller Bibliothek이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으니 가까워서 좋다. 동네 도서관 수준이지만 아늑하고 처박혀 있기 좋다. 그런데 도서관 주변 환경이 좋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화장실 한 번 가려면 도서관 직원에게 일일이 화장실 열쇠를 받아가야 한다. 약물하는 사람들 때문에 화장실을 통제한다고 한다. 나처럼 방광이 안좋은 사람에게는 아주 불편한 일이었다. 그래서 몇 번 가다가 Schiller 도서관은 그만 두었다. 그 다음 탐색한 도서관은 좀 별난 곳이다. 원래 운하로 실려온 화물선 화물을 하적하여 보관하던 창고 건물이었다. 1980년대 운하 기능이 사라지면서 창고도 쓸모없어졌는데, 그 창고건물을 개수하여 도서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샤리테 의과대학 비르코프 대학병원 강 건너 있다. 샤리태 대학병원은 독일 통일이 되면서 동베를린 훔볼트대학과 서베를린 자유대학의 의과대학을 병합하여 확장된 통합 대학병원이다. 집에서도 비교적 가까운 편이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좋았다. 어떤 때는 사서 3명과 우리 둘 만 있을 때도 있었다. 창고는 없어졌지만 지금도 콘테이너 하적장 역할은 계속되고 있다. 공부하다 싫증나면 밖에 나와서 컨테이너 이동레일을 구경한다. 도서관SBB 출입할 때 휴대품 검사를 하는데, 여기는 자주 오면서 얼굴을 익히니 나중에는 휴대품 검사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책 원고를 마치느라 바빴지만 내 처도 나와 공동번역 계약한 책 『뇌복제와 인공지능시대』(The Age of EM) 번역하느라 여기서 시간을 보냈다. 그 다음 탐색한 도서관은 시립도서관ZLB이다. 베를린 돔 근처이다. 여기는 주변이 좀 왁자지껄한 분이기이다. 돔은 물론이고 페르가몬 박물관에서 고중세 박물관이나 국제적인 미술관 등 관광명소가 많아서 그렇다. 그렇지만 다녀 본 베를린 도서관 중에서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구내 카페도 사람이 아주 많은데 천정이 유리라서 훤하기 한데 거꾸로 뜨거운 햇빛이 비칠땐 에어컨도 부족할 정도로 더웠다. 그래도 다들 무엇가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이 도서관엔 내가 필요한 의학철학 책이 많아서 아주 유용했다. 베를린 관광도 도서관 덕분에 많이 했다. 집에서 도서관 사이에 웬만한 유명 명소들이 다 있으니 도서관에서 Wedding 구역 집으로 들어갈 땐 걸어 다니면서 여기 저기 구경했으니 말이다. 걷지 않고 전철타고 가는 날엔 집 바로 옆 폴크스파르크Volkspark 레베르게 공원 한 바퀴 돌고 온다. 공원 한 바퀴 도는데 한 시간 걸린다. 운동된다. 나는 이때 8년 간 벼르고 있었던 『의학의 철학』 원고를 마감하고 있던 터라 이 도서관은 나에게 아주 좋았다. 마지막으로 주립도서관SBW인데 아마 베를린에서 훔볼트 대학도서관 이상으로 가장 넓고 큰 도서관이다. 브란덴부르크 문 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Unter den Linden에 있는 주립도서관 SBO 자리는 원래 동베를린 지역이었는데, 여기 Postdamstr에 있는 주립도서관 SBW은 서베를린 지역이었다. 동주립도서관SBO은 묵직하고 웅장하며 고전적인 맛이 있는데, 서주립도서관SBW은 밝고 시원하며 현대적인 맛이 배어 있다. 한 날은 조금 일찍 나와 건너편에 있는 공예박물관에 구경갔는데, 그들의 복식과 장식의 화려함을 엿볼 수 있었는데 한편 과거 봉건제 독일인의 빈부차를 같이 느꼈다. 이곳에서 원고작업의 진척 속도가 높았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마지막날까지 이 도서관SBW을 오고갔다. 여기서 『의학의 철학』 윤곽과 목차를 담은 초고를 거의 완성했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 바로 『의학의 철학』(씨아이알, 2020)이다. 이렇게 외국에 나가 도서관에서 공부할 수 있었으니 나에게 행운이었고 그래서 또한 주변 모든 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