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도서관 탐방


조기 퇴직하면서 얼마 받은 퇴직금을 들고 일본 교토로 떠났다. 내 처, 달은 인터넷을 통해 교토 시내 작은 원룸을 구해 놓은 상태다. 달은 오래 전부터 일본에 가고 싶어했는데 이번에 소원을 풀었다.

집 구할 때 달은 시내 가까운 데를 희망했고 나는 외곽을 원했다. 시내는 당연히 임대료가 비싸기 때문이다. 결국 달의 생각대로 비싼 곳으로, 시내에 가깝지만 좁디 좁은 방으로 결정되었다.

그래도 교토 대학 바로 옆이라서 좀 나은 편이다. 집을 구할 때 대학 근처로 하면 학식과 도서관 이용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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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침대 하나 놓고 작은 테이블 놓으면 공간이 꽉 찬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왼쪽은 화장실 오른쪽은 작은 싱크대 하나다.
방은 좁지만 재래 시장과 대학 그리고 도서관이 가까워서 그럭저럭 살만했다.

임대업 직원과 만나서 열쇠를 받고 일본 특유의 아날로그 방식으로 서류 작성하고 돈도 현금이어야만 했다.
첫날부터 일본 돈 마련하느라 근처 편의점 현금지급기 찾느라 고생했다. 카드계산 안 되는 식당과 가게가 아직도 많으니 말이다.

짐을 풀고 정리하고 근처 식당에서 우동 한 그릇 먹었다. 다음날부터 식당과 도서관을 찾기 시작했다. 식당은 집에서 길 하나 건너면 있는 하쿠만벤 사거리 교토대학 학생회관 건물 2층에 위치한 대학식당이다. 교토대학 6개 식당 중에서 하나다.

내가 근무했던 상지대학교처럼 여기도 대학생활협동조합에서 식당을 운영하는데 가격과 품질, 소위 가성비가 좋았다. 깨끗하기도 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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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에 식당을 열기 때문에 우리 생활 패턴도 거기에 맞춰졌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꿈지럭거리다가 11시 바로 직전 식당 문열기를 기다리다가 아점을 해결한다.
나 같은 사람(학생)들이 많은 편이라서 그리 튀는 행동도 아니었다.
일본에서 배운 것 중 하나가 튀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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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조리해 놓은 반찬을 골라서 자기 쟁반에 담아서 계산대 아줌마가 재빠르게 계산해준다. 다른 일본 학생들은 쟁반에 3개 정도 올려 놓는데 나와 달은 쟁반에 6-7개 정도 밥과 반찬을 올려 놓으니 계산하기에도 시간 좀 걸린다.

우리는 아침과 점심 겸식이라서 많이 먹어야 한다. 나는 생선을 좋아하는데 생선 반찬이 넉넉해서 맘에 들었고, 달은 나물이나 채소를 좋아하는데 그런 반찬도 다양해서 있으니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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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가는 길 아주 작은 골목길에 초라해보이는 식당이 있어서 들어갔다. 점심 정식을 차려주는데 테이블 3개가 전부다. 1인당 700엔에서 900엔 정도였다. 주인 아줌마가 쬐그만 부엌에서 조리하고 주인의 딸인 젊은 처자가 도와 일한다.

그런데 처자의 어린 자식이 엄마를 찾으며 유모차에서 보채고 있다.

나는 머릿속에서 상상의 스토리를 꾸며본다. 이혼한 젊은 딸이 손주를 데리고 엄마 집으로 들어와 식당 일을 도운다는 내러티브다. 그런데 그 집을 몇 번 가보니 상상의 내러티브가 실제 맞는 현실인 듯하다. (물론 확실하지 않다)

잘 살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어쨌든 밥이나 반찬이나 깔끔하고 간이 적절하니 정말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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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도서관으로 간다. 대학도서관 시스템이 바꿔져서 학생증이 있어야 도서관 출입이 가능하여 대학도서관은 포기했다. 좀 걸어서 시립도서관으로 갔다.
정확히 말해서 시립이 아니라 부립인데 교토부립도서관 치곤 초라한 편이다.

그래도 아무도 간섭하는 이 없으니, 나는 노트북 켜 놓고 내 일 할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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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도서관을 찾아 보았다. 동네 도서관들이 몇 개 있기는 한데, 어린이도서관이나 낮에 잠시 오픈 하는 도서관일뿐이다. 전반적으로 한국의 지자체 공공도서관보다 수준이 떨어졌다.

그래서 달의 의견을 받아들여 스타벅스로 가기로 했다.
어차피 커피도 마셔야 한다며.
일본 거리에서 영어는 대체로 통하지 않은데 스타벅스만큼은 영어가 잘 통했다.
나는 일본어를 못하지만 내 처 달은 일어를 좀 하는 편이라 일상생활하기엔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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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에 한 동안 다니다가 우연히 국제교류회관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그곳엔 로비에 공부할 수 있는 개인 테이블이 있고 그 2층엔 작은 도서실도 있었다.
여기가 아주 딱이다.

돈 아끼느라 여기선 자판기 커피를 사다가 테이블 옆에 놓고 늘어진 자세로 노트북을 켜놓고 한국서 출판계약한 후 시간에 쫒겨왔던 번역작업을 한 것이 날마다의 일상이었다.

결국 교토에서의 작업은 부립도서관, 국제교류회관, 스타벅스 2개소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스타벅스 어느 곳은 충전전기도 없고 와이파이를 제공하지 않는 곳도 있다. 역시 디지털 쪽은 일본이 뒤떨어진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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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먼 데는 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대체로 걸어서 돌아다녔다.
하도 걸어서 근막족저염이 생겼다.
병원에 갔더니 여기서도 소염제 처방이 다였다.

그래서 집 옆에 붙은 침술원에 들어갔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 메이지 유신 때 한의사제를 폐지하여 한의원은 없지만 그대신 양의사가 일부 약재에 대해 한방처방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의과대학에서 한방의학이 핵심교육과정으로 되어 있다)

그 외 침과 골절 뜸과 지압은 침사와 구사 자격증자가 침구원을 차릴 수 있는데 전문기관 3년 과정을 이수한 후 면허시험에 합격하면 된다.

나는 침술원에 침 4번 맞고 감쪽같이 나았다. 진료비는 한번 갈 때마다 5천엔(5만원)인데, 한국서 7만원 주고 가입했던 여행보험으로 다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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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나는 집 근처 동네 목욕탕을 일주일에 두 번씩 갔다. 420엔 받는다. 한국에 비해 반값이다.
10장 한번에 끊으면 4천엔이다.

시설은 우리 1960년대 목욕탕 그대로이다.
탕이 낡을 대로 낡았지만 물은 깨끗하다.
주인 아줌마가 정리한다고 남탕에 마구 들어오는데, 나만 몸을 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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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어다녔다. 하루는 날 잡아서 오사카엘 갔다.
교토 90일 살면서 유일하게 외지 여행을 한 데가 오사카 시장과 성이었다.
집 근처 전철역에서 오사카로 직접 가는 전철이 있다.
그거 타고 아침에 갔다가 저녁때 돌아왔다.
교토에서 오사카래봐야 서울서 분당이나 수원 정도이다.

돌아오는 길에 카페 들러서 저녁먹고 사진찍은 오사카 성을 모사하는 그림을 겨우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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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도서관에서 일찍 나와 탁구도 쳤다. 탁구채까지 가져갔으니 말이다.
일부러 탁구장을 찾아서 교토 역 근처까지 멀리 가서 탁구를 몇 번 쳤는데,
그곳 탁구장 주인이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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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백엔샵에서 달은 무명실을 샀다. 특별히 필요해서 산건 아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어제 둥근어묵 먹고 버리지 않은 어묵 나무받침대를 칼로 조각하듯 나무판대기 가운데 오목하고 둥글게 도려내어 실패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실패에 무명실을 천천히 감았다. 수양하는 기분으로 말이다. 그냥 실과 실패가 아니라 새 인생의 실마리를 조금 더 수월하게 풀어가면 좋겠다는 맘으로 만들었다. 젊었을 때 失敗를 하도 많이 해서 이제 나이들어선 失敗를 좀 줄여보자는 그런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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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는 일본 중부 작은 사립대학 교양대학 교수인 모리타 교수를 만났다.
그는 일부러 나를 만나러 교토까지 3시간 기차타고 내려왔다.
교토에 다른 볼 일이 있어서 겸사해서 왔다고 한다.
그도 나처럼 조기퇴직하였기 때문에 그에게도 조기퇴직한 나름대로 긴 사연이 있다.
그의 이야기를 한참 들었다.

그나 나나 사연의 핵심은 지방사립대학이 처한 위기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유엔본부에서 일하다 15년 전쯤에 사회학/국제인권 전공으로 대학교수로 옮겨왔다고 한다.
모리타 교수는 학회 일로 한국에도 몇 번 왔었다.

우리는 3시간 수다떨고 헤어졌다.
그는 교육상담전문 교육기관을 뉴욕에 설립한다고 했는데, 그 이후로는 소식을 못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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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봄은 벚꽃으로 유명하여 전세계에서 벚꽃 관광객이 밀려온다.
집에서 도서관 가는 길이 모두 벚꽃으로 유명한 관광지여서 자동적으로 나와 달은 벚꽃 구경을 원없이 실컷했다.
여하튼 꽃은 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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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저녁은 가끔 사 먹기도 했지만 주로 마트에서 반찬을 사다가 집에서 차려 먹었다.
그게 가장 싸고 다양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회를 좋아하는 나는 회를 할인하는 시간인 6시 30분을 기다려 상품에 할인 가격표를 붙이자마자 잽싸게 들쳐 가져온다.

6시 20분부터 벌써 아줌마들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진열대를 배회하며 할인 가격표 찍는 점원이 오기를 기다린다.
오오,, 할인 가격표여! 어서 오라,,
나도 하이에나다.
늦으면 다른 아줌마가 먼저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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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렇게 90일이 지나갔다.
교토 북부 일부 지역만 쳇바퀴처럼 돌았지만,
그동안 다닌 곳들을 마트에서 샀던 꽃어묵 받침대에 지도처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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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가는 좁디 좁은 골목길 누벼가며 3개월 보냈다.

번역 작업은 이미 1년 전부터 시작했으나,
이렇게 3개월 버텨서 집중해서 할 수 있었으니 힘들어도 겨우 마무리한 번역 원고가
바로 최순덕/최종덕 공역 "뇌복제와 인공지능 시대" (씨아이알출판사)라는 책(원서The Age of E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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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회를 갖게 되어 모든 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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