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창발: 지식은 동사다

심즉리(心卽理) · 치양지(致良知) ·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실천유학,

양명학(陽明學)의 시조 중국 명나라 철학자 왕수인(王守仁, 1472~1528), 양명(陽明)은 그의 호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

안다는 것은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자. 안다는 자기가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옛말에 지행합일이라는 것이 있다. 자기가 머리로만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로 안다고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행합일이란 마음의 논리를 자기 안으로 비춰보려는 양명학 철학의 금과옥조에 해당하는데, 여기서 행동이란 (1)앞서 말한 활용, 실행, 적용 등 내부의 지식을 외부의 대상에 적용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2)거꾸로 외부의 대상을 자기 내부의 마음으로 비춰볼 수 있어야 함을 포함한다.

이런 지행합일의 상징의미를 개발과정에 적용해볼 때 프로그램 언어를 학습하여 그 언어의 기능을 아무리 많이 외우거나 전부 외웠다고 해도 그 언어를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한다면 개발의 속도와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개발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유를 새롭게 옷을 입혀 나의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개발development이란 창발emergent과 같다. 개발이란 이미 있는 것들, 즉 인터넷에 무수히 많은 지식을 찾아서 그것을 나의 것으로 변환시키는 작업이다. 있던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바로 창조이며 그런 창조를 만드는 마음의 능력이 창발이다.

개발을 위해 필요한 지식은 달달 외어서 얻은 고정된 지식이 아니라 검색에 써먹을 수 있도록 높은 신축성과 넓은 유동성을 갖춘 지식이어야 한다. 마치 푸근한 패딩을 입은 것처럼 포용력이 커야 한다. 양명학에서 말하는 지식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추고 있지 않으며 그 지식이 활용되고 적용되고 실현될 때 의미가 갖춰진다. 마찬가지로 개발자에게 지식은 그 지식이 어떻게 활용되는 지를 알 때 비로소 진짜 지식이다. 그래서 지식은 대상에 고착된 명사가 아니라 대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으로서 행위하는 동사일 뿐이다.

지식을 명사로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의 무수한 지식을 다 암기해야 겨우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무수한 지식을 다 외우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명사형 지식획득은 좋은 창발자의 자격요인이 아니다. 지식은 동사이기 때문에 그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과 마음의 태도를 알면서 익히는 것이 창발의 기초이다.

동사형 지식이 활용되는 현장이 바로 인터넷 검색이다. 동사형 지식은 그 지식의 양은 적어도 그 지식이 활용되는 지식의 질은 매우 높고 크다. 동사형 지식은 일일이 대상을 맏는 코딩논리를 암기하지 않아도 검색을 통해서 무한 창조를 할 수 있는 실천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코딩언어를 동사형으로 받아들인 개발자는 새로운 프로그램 언어가 새로 나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신생언어를 전부 다 학습해야 하기보다는 기본적인 언어 기능을 익힌 후 검색을 통해서 신축성있게 활용할 수 있는 실현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명사형 지식을 아는 것에 만족하여 그 안에서 반복적인 코딩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사형 지식으로 새로운 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안다면 어떤 새로운 언어나 어떤 새로운 태그도 다 실현해 낼 수 있다.

검색은 동사형 지식의 연극무대이다.

** 이 글은 내년 출간 예정인 <알고리즘과 휴리스틱> 책의 일부 원고이므로,

책 나올 때까지 갖다 쓰기나 따서 붙이기 하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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