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키에프는 모스크바 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가 부락 수준이었을 때 이미 강국의 도시였을 정도로 우크라이나는 독자적인 역사를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원래 러시아 땅이었다고 쉽게 말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은근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그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그들의 역사를 짧게 정리해서 올렸다.

우크라이나는 기원 전부터 슬라브 문화에 바탕을 둔 사람들과 그 땅으로 형성되었다.

5세기부터 10세기까지 튀르크 지배를 받으면서 동슬라브 문화는 유럽과 약간 차이나는 투르크 문화요소에 크게 영향받았다.

그 사이 9세기 초(830년경) 튀르크 군주 루스인 국가가 세워졌다.

우크라이나 원형에 해당하는 키에프 루스 왕조가 생기고 이 왕조는 지금의 수도 키이우로 정착했다.

9세기 이후 비잔틴 문화를 흡수하여 번창시켰다.

우크라이나는 이후 10-11세기에 걸쳐 벨라루스, 러시아와 함께 서로 독립적이고 대등한 유럽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이후 몽골의 침략 및 왕조 분열로 나라가 쪼개어졌다가 폴란드 연방국가로 되기도 했다.

러시아 공국은 16세기나 되서야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로 말할 정도로 권력국가로서 지배력을 키웠다.

17세기 중후반 러시아 차르CZAR의 압박을 받다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제국에 분할 합병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1920년 동서로 나뉜 우크라이나 양쪽이 각각 독립선언을 했다.

2년도 채못가서 1922년 서우크라이나는 폴란드에 동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1930년대초 우크라이나는 스탈린 방식의 집단농장체제에 저항했고

러시아는 그 보복으로 농업 기근을 조장하여 1천만 명 우크라이나인이 대기근으로 사망했다. 이 역사적 사건은 홀로도모르holodomor라고 역사적으로 슬픈 이름이 붙여졌다. 홀로도모르라는 말은 기아(holod)와 근절(mor)을 뜻하는 우크라이나어 합성어이다.(아래 참조된 최근 연구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당시 사망자는 600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참조: Gorbunova, Viktoriia, and Vitalii Klymchuk. "The Psychological Consequences of the Holodomor in Ukraine." East/West: Journal of Ukrainian Studies 7.2 (2020): 33–68. "The Holodomor was the largest man-made famine in Ukraine's history (the number of victims reached 4–7 million, according to different calculations)."

1991년 소련 붕괴후 독립했다.

(참조: 번즈, 서양문명의 역사 외 2권의 서양사교과서)
(참조: 유발 하라리 인터뷰(2022년3월3일자) )

<역사의 교훈>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러시아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항전 발언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게 된다.

- 젤렌스키 대통령은 비록 코미디언이지만 국민들과 호흡할 수 있는 사람이다. 판검사 같은 권력자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 한 사람의 선동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의 역사 속에서 읽을 수 있다.

- 많은 사람들이 코미디 출신이라고 해서 그를 얼치기 정치꾼으로 무시하는데, 미 정보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젤렌스키 대통령을 전쟁 발발 후 일주일 이내로 근접국가로 피신 혹은 망명할 것으로 예측했었다. 아마 젤렌스키가 코미디언이 아니라 판검사 권력층 출신이었다면 아마 미정보국의 예측이 맞았을 수도 있었겠다.


-홀로도모르의 참혹한 우크라이나 근대사를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잊지 않고 있다.

-러시아 국민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푸틴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강권독재정치가 국민들르 누르고 있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욕망에 사로잡힌 권력자 한 사람으로 인해 한 나라가 혹은 전 세계가 위협에 빠지는 일이 역사에서 재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러시아는 한 사람이 전쟁을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국민 다수가 고난의 전쟁 중이다. 젤렌스키의 정치적 실수는 러시아 공격에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전 협상력이 미흡했다는 점에 있다.

-대한민국은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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