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 서평

한국의 '천안함 논란', 플라톤이 봤다면…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 서평


(프레시안 2015.04.10 게재)

1. 권력은 인식을 거부한다

천안함 사태가 잊히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후손에게 관련된 모든 비밀이 다 밝혀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세월호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하여 우리는 세월호의 기억을 후대에게 이어가야 하며, 그와 관련한 모든 사실을 누구나 다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주변 상황을 보건대 우리들이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다. 누군가는 많이 알고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 차이는 권력의 소유와 깊게 연관한다. 권력 집단은 집단 구성원이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비밀이 많은 권력일수록 그 권력은 독재 권력에 가깝다.

현대사에서 수많은 국민들의 실종 사건에 직접 연관한 1970∼1980년대 남아메리카의 독재 권력, 절대 황제를 꿈꾸었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종교를 가장한 독재 정권, 한국의 1970∼1980년대 군사 정권이나, 음모론과 일급 국가 기밀 사이의 구분이 모호한 미국의 정보 권력 등등 그들은 모두 국민들로 하여금 사실의 공유와 진실의 인식을 차단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 권력 집단 혹은 권력자는 사실 인식을 차단할 뿐만 아니라 거짓을 진실처럼 억지로 믿게 하려는 굴절된 통치술을 정착시키려 했다. 굴절된 통치술의 핵심은 사실 인식 대신에 허구의 믿음을 슬쩍 대체한다는 데 있다.

믿음의 대표적인 장르는 종교와 신화이다. 전지전능의 신을 최고의 권력자로 모시는 사람들은 오로지 신만이 전지(全知)하여 모든 인식과 지식을 소유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신은 스스로 모든 지식을 소유하지만, 신 아래 모든 존재들은 그 지식을 소유할 수 없다. 결국 사람들은 신이 제공해준 종교적 도그마만을 믿어야 했다. 문제는 이러한 종교적 믿음 체계가 현실 권력 집단에도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의 정치권력자가 그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권력을 독점하려 하고 그들의 권력을 확충하기 위하여 종교나 신화의 믿음 체계를 정착시키려 한다. 욕망의 동반적 실현은 자연적이지만 특정 개인만의 욕망은 집단 전체의 존속을 위협한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건대, 권력자 개인이나 소수집단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다수를 희생시켰던 독재 정권, 무력 통치, 전제 권력 등의 권력 구조를 지녔던 사회는 모두 단명했었다. 개인 욕망과 축재의 수단이 된 권력, 그리고 사물의 언어와 삶의 문법을 지배하려는 통치는 앎의 공유를 배제하고 소통의 대화를 배격하는 특징을 지닌다.

2. 소통을 위한 인문학 : <테아이테토스>

앎의 공유와 소통의 대화를 실현하는 일은 사람이 사람처럼 살 수 있는 첫째 조건이다. 그 첫째 조건을 실현하려는 최초의 문화적 변동은 2500여 년 전 신화의 시대를 헤쳐 나와 드디어 인식론의 철학을 잉태시켰다. 앎이 무엇인지를 묻는 최초의 철학이 바로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이제이북스, 2013년 11월 펴냄)이다. 억측과 믿음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며, 제대로 된 인식을 찾는 진실의 길이 있음을 밝힌 그리스 고전이다.


(중간 생략)

옮긴이 정준영이 낸 책 <테아이테토스>는 그 본문보다 3배 이상의 상세한 주석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는 단순한 번역서가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철학서라고 봐야 한다. 외국에서 나온 많은 고전들이 세밀하고 엄정한 논거를 가진 주석을 제공하는 것을 보고 부러웠는데, 정준영의 책은 그 이상의 작품이라고 판단한다. 정준영의 번역서 <테아이테토스>뿐만 아니라 그리스 고전 연구와 장기적인 번역 사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정암학당의 고전 역서들 모두 고전 작품의 고전성과 현대성을 같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정암학당에서 출간된 그리스 고전 작품들은 그 해석의 논거가 확실하여 한국어로 읽어도 미흡할 게 없는 듯하다.

그의 주석에서 한마디를 인용하면서 이 서평을 마무리한다. 교양 인문학 좁게는 철학의 기초는 진리를 회피하지 않고 거짓에 도전하는 투명한 인식론 위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225쪽). 교양 인문학과 철학은 존재의 반성과 인식의 비판을 통해 세상의 진리를 제대로 보는 눈을 갖추는 데 있음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처세술이나 자기 계발의 테크네(technē)가 책방을 점거하고, 기만-독선-교조-불통의 권력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진실을 알고 소통을 나누기 위하여 바쁜 시간 쪼개어 이 책 <테아이테토스> 고전 읽기를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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