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철학: 로컬리티
생존의 철학 : 로컬리티

최종덕

남부유럽에서 3만 년 전 새뼈로 만든 4구 피리가 발굴되었다. 그 피리를 불었던 선조의 감성은 현대인의 음악 감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94년 발굴된 쇼베 동굴의 3만6천 년 전 고대인 벽화는 오늘의 예술과 종교의 감성 그대로이다. 아프리카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이 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사람들은 남녀가 아무데서나 벌거벗고 섹스하는 줄로만 오해한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청소년도 우리와 똑같이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느끼고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벌레를 보면 움찔거리고 뱀을 보면 무서워한다.

공통성을 공감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획일성이 아니라 특수성이 요청된다. 사는 환경이 서로 달라 사막이나 밀림, 아니면 온대지역이나 고산지대에 따라 문화가 다양해졌다. 진화인류학으로 볼 때 그런 문화적 다양성은 인류의 특수화의 한 대표적인 양상이다. 수많은 방식으로 특수화된 몸과 마음들은 서로에게 우위를 점하지 않으며 서로를 동등하게 인정한다. 그렇게 지역마다 특수화된 문화를 우리는 로컬리티라고 부른다. 로컬리티의 특수성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인류는 더 발전하며 퇴행하지 않는다. 거꾸로 특수성의 다양성이 부족하면 민족이나 국가로 경계지워진 사회집단은 퇴보하거나 끝내는 절멸한다. 

세상을 지수화풍으로 보거나 물로 보거나 혹은 사랑으로 본 고대그리스의 다양하고 특수한 자연철학이 먼저 있지 않았다면, 플라톤의 이데아 보편개념은 나올 수가 없었다. 인간지식의 특수성을 차단했던 중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근대 과학혁명은 불가능했었다. 주자학을 해석하는 조선지식인의 다양한 논쟁이 없었다면 조선 성리학은 없었을 것이다. 방언은 주변언어가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을 낳은 특수화 과정의 소산물이다. 설악산의 산양의 존재는 동물원의 한 표본이 아니라 설악산 생태계의 생물학적 다양성을 대신하는 절대적인 지표인 것이다. 캠브리아기 이후 5억년 동안 존재했던 생물종 중에서 99%는 절멸되었고, 현재 존재하는 생물종은 겨우 1% 밖에 안 된다. 그 절멸의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생물종 다양성 구조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특정 생물종이 아무리 번성해도 오로지 그것만 번성하면 결국 모든 것이 절멸한다. 인류사회는 더더욱 그렇다. 동서고금을 통털어 지나온 5천 년 인류사에서 획일적 시스템을 강요한 종교나 독재권력은 결국 다 무너지고 말았다. 인간의 다양한 지식을 단절한 동양의 분서갱유나 서양의 암흑시대는 결국 망하고 말았다. 단절된 획일성에서 겨우 벗어난 마지막 쿠바권력의 심각성을 북한이 공감하지 못하면 북한권력도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국정교과서로의 획일화, 핵발전으로 획일화, 음식과 패션의 획일화, 교육과 입시의 획일화, 민족의 획일화, 아파트로의 획일화 등은 결국 우리 삶을 갉아먹으면서 끝내는 모두를 붕괴시키게 될 것이다. 획일성은 개인을 철저하게 소외하며 결국 개인의 생존 자체를 파괴한다. 그래서 로컬리티가 시급하게 요청된다.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감하는 특수화의 통로들로 짜여진 지도를 펼치는 일이 바로 로컬리티이다. 그런 지도에서 획일화를 거부하는 로컬리티의 나침판을 읽을 수 있다. 로컬리티는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생존의 절규이다.
로컬리티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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