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투르 경제철학2:평등 경제 - 15장 해제

라투르의 존재양식 3부 15장
- 해제와 주석 -

최종덕 (독립학자, philonatu.com)





① 라투르(Bruno Latour, 1947-2022)의 책, 『존재양식의 탐구』 영어판이 출간되고 10년 만에 한글판(2023)이 나왔다. 영어판을 힘들게 읽다가 한글판이 나오니 독서가 아주 수월해졌다. 어려운 라투르 독서를 위해 출간된 해설서가 다수 있을 정도다.(Gerard de Vries, Bruno Latour. polity 2016) 각종 해설서의 도움을 받아 나도 비슷한 해설과 주석을 달아보려고 시도했다.

② 『존재양식의 탐구』 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서론에서 6장까지) 원고를 나의 홈페이지 <필로나투>philonatu.com에 먼저 싣고 나머지 2부와 3부는 원고가 다듬어지는 대로 추후에 올릴 예정이다. <해설과 주석> 작업이 원래 더 오래 걸릴 일이었는데, 한글판 출간 덕분에 좀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나의 <해설과 주석>은 전적으로 한 권의 책, 『존재양식의 탐구』 만을 위한 것이다.

③ 이 책 1장에서 16장까지 각 장 별로 해제 원고를 차례로 올리기는 하지만, 각 장의 내용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 책의 특성 때문에 개별 장을 따로 읽기가 힘들 수 있다.

④ 한글판 번역자에게 감사드린다. 전체적으로 훌륭한 번역이지만, 몇몇 용어 번역에 코멘트를 달거나 영어판 쪽수를 그대로 따른 것도 많다.

⑤ 인용 출처는 괄호 안 쪽수 (123)로만 표기했는데 영어판 출처는 숫자 앞에 * 표시(*124)를 했다.



라투르의 존재양식 15장

라투르의 경제 철학2 – 비등가 평등경제학을 위한 [애착]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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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사회”라는 관념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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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 형이상학의 꿈을 깨고 내재성의 경제화 작업을 수행하려면 “개인” 관념에서 벗어나 경험의 대본(경험의 내러티브)으로 들어가야 한다.

2. 자신을 매번 새롭게 발견하고 써가는 대본의 경험을 등록하지 못하는 “사회”라는 관념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3. 이런 개인과 사회 관념에 머물고 있다면 우리는 추상화의 오류에 빠진다.(599) 쉽게 말해서 나의 경제는 힘들고 난감한데도 불구하고 사회적 경제규모가 커졌다는 전체 자랑에 속아 개체 빈곤은 더 심화되는 악순환의 오류에 깊이 빠진다는 뜻이다.

4. 이런 오류를 분명히 인식함으로써 아래의 조직화를 접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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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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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직은 잘 정의된 경계와 자족적이고 동일성의 개체가 아니다.

2. 조직의 크고 작음은 그 계량적 크기로 비교되지 않는다.

3. 조직은 개방적이며 동시에 사방 어디에나 가능하도록 분산되어 있으며 다중적이다.

4. 조직은 항상 탈조직과 재조직으로 가는 수동재시작manual Restart을 할 수 있다.(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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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인이 조직을 사회 개념으로 환원하려는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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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인은 자연을 물리적으로 제한시키거나 언어를 기호로 제한시켰듯이 조직을 사회 개념으로 제한시켰다.

2. 인간의 정신을 연구한다는 근대 심리학이 과학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듯이 근대 사회학은 사회학의 경험적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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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은 근대인의 사회 개념과 다르며 나아가 유기체와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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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학은 개인들, 즉 부분들의 전체합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부분보다 전체는 항상 크다. 그러나 조직은 부분보다 전체가 크다는 언급을 할 수 없다. 조직에서 뿐과 전체는 정량적으로 혹은 정성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조직에서는 부분이 전체보다 클 수 있다.

2. 사회와 다른 정치 조직에서 전체의 모순을 사례로 볼 수 있다. 전체를 대표한다는 위정자가 독재자일 경우 평소에는 전체 권력을 쥔 독재자가 부분(국민 개인들)보다 클 수 있지만 어느 한 순간에 독재 권력이 붕괴되고 하룻밤 사이ㅣ 겁에 질려 몰래 외국으로 도망가는 사례를 너무 많이 보아 왔다.

3. 조직은 유기체organicism과 다르다. 조직이 유기체 조직으로 잘못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모 다국적 기업이 유기체처럼 작동한다는 둥, 어느 기업이 공룡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둥, 조직을 유기체에 유비하곤 한다. 조직 배후에 조직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생물학적 유기체 생명력을 가정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조직(화)는 하나의 몸 [REP]으로 유지될 수 없다. 왜냐하면 조직은 생물학적 유기체와 달리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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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과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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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 양식의 관점에서 14장 사례로 나온 폴과 피엘의 대본을 다시 보기로 하자. 다시 말하거니와 폴과 피엘이 전화통화로 만나기로 한 약속으로부터 대본은 시작된다. 이런 약속의 대본은 만남이 성사되면서 만기 종료된다. 한편 이집트 피라미드에 묻힌 왕의 미이라와 그의 역사는 4천 년이 지난 지금가지 그 대본이 만기종료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2. 각각의 대본들은 서로의 질적 크기를 비교할 수 없지만 규모에 있어서 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 이런 규모의 차이는 상대적이며 규모가 큰 대본은 역사에서 안정화 증상을 갖는다. 안정화를 설명하기 위하여 파리 시내 6층 짜리 아파트 건축물을 사례로 들어 본다.

3. 파리에는 1860년대부터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설계하고 구축한 6층 짜리 아파트가 도로변에 줄서있다. 이 아파트에는 오늘날과 같은 엘리베이터가 없었으니 꼭대기 층에 사는 사람들은 오르내리기가 아주 힘들었다. 그래서 부유층은 주로 2층에 거주했고 위로 갈수록 돈없는 서민들이 거주했다. 특히 난방도 안 되는 꼭대기 6층에는 2층 부잣집 소속 하인들이 주로 살았다.

이후 20세기 들어서 기술의 발전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 1904년 도시 건축가 발망Balmain은 파리 시내 구축 아파트에 엘리베이터를 증축했는데 구조상 5층까지만 설치할 수 있었다. 어차피 6층은 하인들이 거주하는 공간이어서 건물 소유주는 엘리베이터를 6층까지 올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1960년 대 이제 하인이라는 계층화가 없어졌지만 여전히 아파트 6층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주로 가난한 대학생들이 임대를 얻어 살게 되었다. 100년 전 하인 계층을 무시했던 발망의 오래된 대본은 만료기간 없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인계층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6층 입주자들을 계단을 더 올라가야 하는 무게를 더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4. 폴과 피엘로부터 생성된 대본은 짧은 시간 지속되다가 만기종료되었지만, 어떤 대본은 몇 년 혹은 몇 백년을 지속하는 서사의 토대를 가지고 있다. 그 토대는 대본을 무겁게 하지만 무거운 덕분에 오래 가는 것이기도 하다. 큰 바다를 항해하는 대형 선박은 큰 파도에 흔들림 방지를 위하여 배 바닥 면에 아주 무거운 중량의 기저를 싣고 다닌다. 발망의 대본은 그런 무거운 중량을 싣고 있었다. 라투르는 이런 식으로 대본이 품고 있는 무거운 기저를 “안정화”ballasting 이라고 표현했다.

5. 안정화는 대본의 잠재적 등장인물들을 짓누르는 희곡인 셈이다. 시공간에서 규모가 큰 대본들은 피라미드의 돌쌓기나 파리 시내 구축 아파트 엘리베이터 증축처럼 기술 양식의 도움을 많이 받지만, 그런 기술이 많이 개입된 대본들은 대체로 안정화 증상을 수반한다. (605-6)

6. 여기서 엘리베이터나 피라미드는 기술로 제작된 객체 구실을 한다. 안정화 증상은 객체 현상이 아니라 기술 그 자체의 현상이다. 즉 “기술”과 “기술로 제작된 객체”를 혼동하면 안 된다는 라투르의 언급을 상기해보자. 기술은 고유한 진리진술을 갖으며 이 진리진술은 독창적인 접힘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접힘은 탈연동shift 관념으로 탐지된다는 것이다.(이 책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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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을 뒤집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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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투르의 말을 그대로 옮겨온다. “불평등을 뒤집는 데 기여하는 유일한 방법은 불평등의 상대적 크기에 대한 어떠한 환상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609)

2. 이를 위해 라투르가 제시한 논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전체가 부분들보다 크다”는 진술은 전적으로 오류다. 이 점에서 조직은 유기체와 다르다.

(2) 부분들이 전체보다 큰데도 불구하고 전체를 부분보다 크다고 규정하거나 강제하는 것이 불평등의 시작이다.

(3) 크고 작음의 좌표계를 확보하여 불평등의 근원을 직시해야 한다.

(4) 규모가 큰 대본일수록 크고 작음의 차이가 권력과 지배력을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5) 대본의 상대적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대적 차이를 절대적 차이로 둔갑시키는 것이 바로 불평등의 요체다.

(6) 대본을 다시 쓰려는 시도 중에서 자기가 주인공으로 되어 다른 타자를 영구히 지배한다는 초월적 권력을 소유하려는 행위들이 있다. 그들의 권력은 단지 불평등의 상대적 크기 차이라고 변명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상대적 크기를 절대적 크기로 고착시키고 있다.

(7)오늘날 자본주의 기업들, 대기업이나 소기업 할 것 없이 기업 상속이나 자본독식 등을 통해 자신의 부를 영원히 가져간다는 환상을 마약처럼 즐기고 있다는 현실을 보면 그런 크기의 절대성 권력이 의미하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8)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그들은 자신의 규모가 개인 소비자들의 규모보다 우월하다는 오판을 시작하게 된다. 즉 자신을 전제초 비유하고 소비자를 부분에 비유함으로써 전체가 부분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9) 우월주의 전체를 표방하는 윗선들은 거대 조직을 끌어가야 한다는 명분으로 아래선 부분들을 지배하려 한다. 바로 이런 전체의 지배력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는 데서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 시작된다.(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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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은 없다. 다시 폴과 피엘의 대본으로 돌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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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폴과 피엘은 고립된 객체가 아니다.

2. 폴과 피엘의 욕망의 교차로부터 그들의 대본이 생성된 동력이 생겼다. 그 둘 사이의 “욕망”이라는 공통점이 그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서 대본이 생성되었다는 뜻이다.

3. 대본의 주인공들, 폴과 피엘의 관심interests이 욕망 프로그램의 내용이다.

4. 두 사람의 관심 혹은 이해관계가 만남을 조직하게 되었다.

5. 이 만남을 매개로 하여 다른 일을 조직할 수 있다. 이것이 새로운 대본을 생성하는 계기다. 이런 계기를 다른 면에서 볼 수 있다. 다른 대본을 만들기 위한 단순한 도구일 수도 있다.[REF.ORG]

일상생활의 언어로 말하자면 그 둘의 약속으로 이뤄진 대본은 만료가 곧 되고 만다. 그 이후 그 만남에서 더 새로운 약속으로 이어진다거나 아니면 갈등이 생겨서 폴은 제3의 로티와 새롭게 만나고 피엘도 제3의 앙리와 새롭게 만나는 재조직 혹은 탈조직이라는 조직화의 생성과 분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다.

6. 여기서 도구의 역할은 자신들의 대본에서 다른 대본으로 연결하고 재조직하는 일이다. 고립된 폴과 피엘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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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비인간 결합의 연쇄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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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본과 대본 사이의 연결망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관계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통과되어야만 하는 존재의 연쇄양식이다.

2. 인간들만이 결합양식이 아니며 비인간들만의 결합양식도 아니다.

3. 혹은 비인간들만의 결합양식이 가능하더라도 인간은 그런 결합을 볼 수 없다. 스피노자의 양태 관계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4. 인간과 비인간을 연결하고 준주체와 준객체를 연결한다. 마치 분자 사슬구조처럼 같은 원소들끼리 결합되기도 하며 공유결합처럼 어떤 원소를 매개로 하여 다른 원소들과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5. 한 원소가 다른 원소와 결합되어 있는 분자를 비교하여 인간-인간의 결합도 있고 비인간-비인간 간의 결합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비인간의 사슬 연결망이 핵심이다.(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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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양식에서 애착양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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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까지 조직화 양식을 검토했다.

2. 애착 양식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3. 애착 양식을 알아야만 왜 소유의 광기를 직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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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욕망의 애착에서 재생산의 애착양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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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통적인 존재론은 “있다” to be / être 의 존재론이다. “있다”의 의미는 동일성의 철학의 존재론적 기초이며 본질의 철학을 함의한다.

2. 라투르는 “있다”의 존재론 즉 동일성의 철학을 붕괴시키는 일을 철학의 가장 큰 프로젝트라고 한다. 그 프로젝트는 “가지다” to have / avoir의 존재론을 담고 있다.

3. “가지다”의 의미는 소유의 철학을 언급하는 데 있으며, 이해관계의 철학을 함의한다. 이해관계란 소유 욕망과 연결된다.

4. 소유 욕망은 탐욕의 소유는 방향만 다를 뿐 하나의 양식이다. 다시 말해서 탐욕이란 소유하는 존재자와 소유되는 존재자 사이의 관계가 가역적인 경우를 말한다.

5. 존재자들이 거쳐서 통과해야 하는 목록이다. 즉 소유, 탐욕, 쾌락, 정념, 욕정, 유혹에 노출된 존재자를 말한다.

(“있다”의 존재자는 이런 노출에도 불구하고 그런 탐욕과 정념들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6. “정념적 이해관계”Passionate Interest 혹은 “이해관계의 정념”Interested Passions의 존재자들의 존재양식이 곧 애착attachment 양식[ATT]이다.

7. 정념의 이해관계는 대조 양식을 보인다. 즉 소유욕망의 존재양식과 재생산의 존재양식이라는 양면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7-1. 소유욕의 애착양식: 애착 양식의 정념의 이해관계가 소유로 치닿게 되면 탐욕과 질투, 집착의 광기와 타락으로 빠진다. 이런 애착 양식의 하나가 근대인의 경제 존재자이다.

7-2. 재생산의 애착양식: 애착 양식의 정념의 이해관계가 재생산의 존재자[REP.ATT]와 연대하거나 변신의 존재자[MET.ATT]와 결합될 경우 생존의 긍정적이고 적정성의 방향을 가져올 수 있다.

8. 애착과 재생산의 존재양식은 결코 같은 양식이 아니지만 서로에게 공명할 수 있다고 라투르는 말한다. 애착양식이 재생산의 양식으로 공명하려면 애착양식이 탐진치(탐욕, 질투, 집착)의 정념이 아닌 완전히 다른 재생산의 정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전환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하여 라투르는 다음의 4가지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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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치의 애착을 벗어나기 위한 4 가지 장애물 제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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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째 장애물 :

경제를 사회적인 것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려는 오류의 장애물이 있다. 전체 단위가 부분 즉 개체보다 우월하다는 토대에서 형성된 사회 개념으로 경제를 재구성한다면 그런 경제 역시 구체성을 상실한 초월성의 관념으로 빠질 수 있다.

전체의 우월성을 포기한 평평한 (평등한) 존재자를 수용하면 된다. 그렇게 하는 일이 곧 자유를 추구하는 구체성이다. 즉 전체의 우월성을 포기하는 일이 장애물 제거의 첫째이다. (여기서 자유는 자본주의의 하수인이 된 자유경제나 신자유주의의 왜곡된 그런 자유와 전적으로 다르다.) (617-8)

2. 둘째 장애물 :

대본의 서사가 등장인물의 합리적 선호도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는 관습이 바로 둘째 장애물이다. 대본의 서사는 그런 선호도의 양적 계산이 아니라 정념의 질적 계산qualculations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 장애물 제거의 구체성이다.(618)

3. 셋째 장애물 :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셋째 장애물이다. 라투르는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뷔리당의 당나귀”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이 이야기는 스피노자 [윤리학]에서 따온 것이다. 물과 건초 양족이 주어진 당나귀는 물도 건초도 욕망하는데 단지 무엇을 먼저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 선택의 압박에 짓눌려 결국은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굶어 죽는다는 우화이다.

당나귀는 합리성이 아니라 관심과 이해에 기반한 자유의지로 선택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합리성이라는 명분에 눌려 아무 것도 선택 못하는 슬픈 상황에 맞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선택하라는 형이상학적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들을 보고 있다. 그런 상황이 우리가 당면한 장애물이다.

3.1 우리가 존재자에 관심을 가진다면 이분법의 장애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 탐진치의 애착이 아니라 관심의 애착이라면 주체와 객체가 하나의 연결망임을 알게 되고 그런 앎이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3.2 객체란 객체에 애착하는 준주체들의 집합이며, 주체는 주체에 애착하는 준객체들의 집합이다. 칸트처럼 인식의 출발점이 객체인지 주체인지를 역추적하는 것은 별 쓸모없다고 라투르는 말한다.(620)

3.3 오히려 관심과 이해관계의 방법론인 단절과 불연속성 그리고 새로운 번역translation을 통해 이분법 틀에서 벗어나 객체 가운데 주체를 알아보고, 주체 가운데 객체를 파악하는 힘을 더 키울 수 있다.

4. 넷째 장애물 :

번역translation과 단순 전송displacement의 차이를 모르거나 무시한 채 오로지 교환의 의미를 변형 없는 등가물의 교환으로 제한시키거나 혹은 변신 없이 운반(전송)하는 교환으로 국한시키는 일 그 자체가 큰 장애이다.

이런 등가물 교환의 장애를 벗어나려면 교환 이전과 이후에 생성되는 가치부여valorization의 변화(물질적 변화가 아닌 발생적 변화를 말함), 관심의 도약을 교환을 위한 새로운 척도로 자리 잡아야 한다.(621-2)

5. 다섯째 장애물 :

차가운 이해관계의 계산으로 된 시장의 지배 아래 상품으로 장악된 근대인의 경제를 그들만의 기준으로 설명하고 수용하는 일 자체가 장애물이다.(623)

근대적 합리성의 도구로 시장경제는 차가운 계산의 경제로 제한된 장애가 전부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차가운 계산의 결과로 그칠 일이 아니라 “투기꾼 그룹”의 결과라는 점이다.(624) 그래서 월스트리트 금융인조차 시장경제 수행자로서 차가운 경제 행위자로 그치지 않고 뜨겁게 끓는 욕망의 행위자로까지 확장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합리적인 경제로 위장된 옥시덴탈리즘을 피하는 것이 장애물을 걷어내는 첫걸음이다.(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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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연쇄 속에서 서로 연결된 존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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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교환의 삶”도 상호 연결 존재자의 하나다. 이런 교환의 삶이 근대에 들어서 세계-경제world-economy라는 이름으로 시장, 항구, 박람회 등으로 묘사된 경제화의 분과를 형성했다.(626)

2. 이런 세계경제의 존재양식은 사물의 이동move, 사물의 변환shift, 사물의 열기heat up, 사물의 연결connect, 사물의 정렬line up 로 드러난다.

3. 사물들 사이에 교환상품으로서 예를 들어 집에서 낳은 새끼 송아지를 시골 시장으로 팔러가거나 집에서 키우려고 병아리를 시장에서 사는 행위들을 사례로 들 수 있다. 이런 행위를 통해서 상업commerce이나 소비consumption라는 양식이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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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의 존재양식, 일반 특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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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지됨 없이 흘러가며[passes], 일양적이지 않고 변이가 일어나며[alterations], 상지적이지 않고 새로움이[novelty] 발생한다.

2. 이런 특징을 지닌 존재양식으로 바꿔 말하자면, 애착의 존재양식은[ATT] 이동성mobilization, 이해관계의 정념interest, 그리고 가치로 평가된다는valuation 점이다.

3. 애착의 존재 양식 역시 불연속성과 공백 그리고 간극의 성질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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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 양식의 이동성mobilization을 설명하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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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 더블클릭 존재양식으로 포장된 애착 양식일 경우 [ATT.DC]

애착 양식은 더블클릭 혹은 물질화된 존재자의 [동원 혹은 이동]mobilization 양식으로 드러날 수 있다. 1850년대 전후 금광 채굴만을 목적으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를 향한 대규모 인구이동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광산개발 기업만 탐욕의 배를 채웠고 대부분의 서민들은 욕망의 그림자에서 얼굴빛을 상실했다.


사례2 : 재생산의 존재양식으로 번역된 애착 양식일 경우 [ATT.REP]

애착 양식은 재생산 존재자의 [동원 혹은 이동]mobilization 양식으로 드러날 수 있다. 동원양식은 생존과 관련한 소유 욕망대로 생존에 필요한 방향대로 따라서 이동하거나 이동되는 성질을 갖는다. 이탈리아에 겨우 도착한 아프리카 난민의 이야기를 사례로 보자. 아래 글은 바티칸 뉴스(2024년3월5일자)에서 따왔다.

“올해 서른 살의 아이샤는 네 자녀를 둔 어머니다. 가장 큰 아이가 세 살이며, 그 아래로 두 살배기 쌍둥이와 6개월 된 아기가 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그녀는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도착하려고 6번이나 시도했으나 매번 리비아로 송환됐고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그녀는 사막을 건너 도착한 이들이 머무는 수용소의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남았다. 아이샤의 가족은 인도주의 통로를 통해 3월 5일 이탈리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한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시리아, 소말리아, 수단, 남수단 난민 97명 가운데 5명이다.” (https://www.vaticannews.va/ko/world, 5 Mar. 2024)

아이샤는 생존의 극한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이탈리아로 피신했다. 이런 난민이동을 라투르의 언어로 옮겨 말한다면, 생존욕망의 애착양식을 통해 [이동]mobilization 이라는 행위를 수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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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 양식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탐욕의 경제학에 빠지는 등가-교환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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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요와 공급의 관계로 환원된 경제이론 혹은 더블클릭으로 모델링된 경제이론이 애착과 취향의 미세한 변화와 변신에 무감각하다면 그런 근대인의 경제학은 무의미해진다.(629)

2. 애착이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경제 양식[ATT.DC]의 경제학은 결국 얼음 같은 차가운 계산의 경제학이며 머리로 하는 경제학이다. 이는 등가성 교환을 기반으로 하여 변형과 변신 없는 단순 운반의 교환만이 움직인다.

3. 등가 교환의 경제학은 정념적 애착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폄하한다. 결국 평등 분배에 무관심하다. 현실의 빈부차에 무관심하며 오직 합리성이라는 허위 기준으로 경제를 구성한다.(630)

4. 노벨티, 즉 새로움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조작한 상품과 소비의 탐욕을 날마다 만들어 내고 있다.(633)

5. 자연과학에 종속되어 있어서 비등가 교환의 가치를 도저히 평가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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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의 경제학, 비등가-공백을 품고 있는 평등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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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착이 습관양식으로 번역된 경제양식이[HAB.ATT] 비등가 교환의 경제학을 이루는데, 그런 비등가 교환을 기초로 한 정념적 애착의 경제학이 평등 분배시스템에 더 용이하다.

2. 불연속과 공백의 교환이며, 그런 재생산 양식의 교환 속에서 비등가적이고 통약불가능한 가치가 창조된다. 단순 전송이 아닌 번역의 경제적 창조를 의미한다.

3. 재생산의 습관양식으로 체현된 애착양식[HAB.ATT]의 경제학은 앞서 말한 탐진치라는 욕망의 장애물을 걷어내면서 평등의 경제학으로 도약한다.

4. 애착의 존재자는 물질에 함몰되지 않고 조직의 존재자에 반드시 연결되어야 한다. 이렇게 연결된 존재양식이 [ATT.ORG]이다. 이런 존재양식 덕분에 평등 분배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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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 양식이 조직 양식을 만나 경제의 방향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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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연”은 경제라는 틀에 맞추면서 재생산 양식과 지시 양식을 억지로 융합amalgamated시켰다.

2. 연장실체의 물질은 재생산양식의 요청과 지식 양식의 요청 사이에서 양단의 관계를 억지로 합쳐 놓았다.as a fusion, an interpolaration

3. 여기서 애착과 조직의 양식의 적정한 결합을 통해서 경제를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그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라투르는 강조한다.(636)

4. 경제 방향을 바꿈으로써 물질화된 자연 혹은 자연과학으로 종속된 연장실체RES EXTENSA에서 벗어나 새로운 물질new matter, 혹은 새로운 “과학”으로 번역된 경제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636)

5. 근대인이 제시하는 모든 형태의 이성은 “물질”matter을 모든 형식에 융합amalgamation시킬 수 있었다. 이 점이 근대 경제학 나아가 정치경제학의 기반으로 되었다.

6. 근대인의 정치경제학이 물질에 기반한 인식론에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정위된 물질에서 방향전환된 경제학을 회복하려면 그런 물질 기반 정치경제학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440)

(참고: 재생산[REP]의 도약이나 간극leap or gap이 지시[REF]의 도약이나 간극과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배웠다. 마찬가지로 조직[ORG] 양식의 도약도 애착양식[ATT]의 도약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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