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주의와 과학

서평: 인문주의와 과학
최종덕(독립학자)

스티븐 툴민(이종흡), 『코스모폴리스: 근대의 숨은 이야깃거리들』 경남대학교출판부 1997

Stephen Toulmin, Cosmopolis: The Hidden Agenda of Modernit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0.



1. 이 책에 대하여

이 책 『코스모폴리스: 근대의 숨은 이야깃거리들』의 저자 툴민(Stephen Toulmin, 1922-2009)은 런던 태생으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도덕적 논증을 다룬 『윤리학에서 이성의 위상에 관한 검토』(AnExamination of the Place of Reason in Ethics. Cambreidge Univ. Press. 1950)이다.

툴민은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아이디어를 과학에 적용한 과학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유명한 과학철학 저서 『과학철학 입문』(The Philosophy of Science: An Introduction. Hutchison. 1953)은 과학과 생활세계 사이의 관계를 재조명한 것으로 기존의 분석주의 과학철학의 흐름과는 다른 경향을 보인다.

서평자는 이 책을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되었다. 책읽는 소모임에서 추천받은 책인데 종이책은 오래 전 절판된 상태라 구할 수 없고 단지 돌아다니는 pdf 파일을 운좋게 받아서 읽게 되었다. 과학철학을 전공하는 서평자는 저자 툴민을 과학철학자로서 익히 알고 있던 터였지만, 이 책은 전혀 다른 조망을 나에게 비춰주었다.

근대 과학의 발전이 당대의 역사 속 거대 문법인 사회정치사의 흐름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실감했다. 이 책을 다른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데, 책을 구할 수 없으니 안타까웠다. 그래서 서평자는 책의 전개 내용을 소상히 적음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서평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이 원고를 썼다.

책으로 다시 돌아오자. 저자 툴민은 1965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인간 이성을 영원한 실체가 아닌 역사적 실체로 해석한 책 Human Understanding: The Collective Use and Development of Concepts. (Priceton Univ. Press. 1972)을 출간했는대, 그는 이 책 때문에 과학철학의 이단아로 간주되기도 했다. 1970년대 말에는 시카고대학 사회사상연구회Committe on Social Thought 모임을 주도했다.

1981년 작품 『우주론에로의 회귀』The Return to Cosmology 는 책 제목과 달리 철학의 보편성과 더불어 실천철학을 강조한다. 전반적으로 그는 과학을 시간과 무관한 법칙세계 외에 시간의존적 역사에 상관적임을 강조한다. 과학이나 국가, 혹은 일상의 삶을 이해하려면 그것이 처했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책에서 자주 강조한다.

그러한 역사적 상황은 그 역사가 피할 수 없는 역사의 문맥을 말하는 것인데, 툴민은 그의 사상적 선배인 역사학자 콜링우드의 표현 그대로 “절대적 대전제”absolute presuppositions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과거 역사를 이해하려면 해당되는 과거 시대를 암묵적으로 지배했던 절대 대전제를 파악해야 한다는 콜링우드의 표현이다. 툴민을 이를 사유체계의 받침대(비계; scaffolding)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책은 근대성이 처한 사상사적 난제를 풀어가기 위해 인문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책의 제목 코스모폴리스는 코스모스cosmo와 폴리스polis의 합성어다. 코스모스로 상징되는 자연의 질서와 폴리스로 상징되는 인간의 사회정치 질서의 융합이 바로 과거 근대주의의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문주의의 핵심이라고 툴민은 강조한다. 이는 고대 스토아 철학의 신조로서 질서라는 하나oneness의 두 얼굴처럼 자연사와 인간사의 종합을 의미한다.

인문주의 합리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역사 속 거대문법에 해당하는 “기대지평”을 파악해야 한다. 기대지평Erwartungshorizonten이란 역사를 지배하는 거대 믿음체계이다.(이 책 11쪽. 이하 괄호 속 숫자는 이 책의 쪽수임) 기대지평은 역사의 지평이며, 정치적 사유나 사회적 사고 혹은 일상의 사유구조를 지배하는 믿음체계이다. 겉으로는 탐지되지 않아도 실재하는realistic 기대지평을 통해 그런 사회-정치-생활의 형태가 주조된다.(13)

2. 근대란 무엇인가

도대체 유럽에서 근대의 출발은 어디인가를 많은 사람들이 따지는데 통일되지는 않아도 대체로 아래처럼 볼 수 있다. (i)1436년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이후, (ii)1520년 루터개혁 이후, (iii)1648년 30년 전쟁(1618-1648) 종결 이후, (iv)1776년 미국혁명 혹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v)국민국가의 정치적 주장들이 생기는 이후 (vi)뉴턴 기계론의 성립되는 책 수학적 원리 출간 1687년 이후 (vii)갈릴레오의 과학과 데카르트의 방법론으로부터 1630년대 (viii)칸트 (1724-1804) 이후 (하바머스 입장) 등등 근대의 출발선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한 견해 중에서 저자 툴민은 갈릴레오의 『두 세계에 관한 대화』(1632)과 데카르트의 『방법서설』(1637)이 출간된 이후를 근대라고 간주하면서(31) 이 책의 내용을 전개한다. 그래서 툴민은 “기하학적 확실성 추구”의 선구자였던 데카르트에 대하여 많은 분량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가 비판하는 근대성을 이해하기 위해 데카르트 철학 즉 데카르트의 이분법과 확실성이라는 지배 메커니즘이 무엇인지를 다음처럼 설명한다.

● 정신과 육체를 이분법으로 배치한다. 정신을 능동성으로, 물질을 수동성으로 간주한 이분법이다.

● 합리성의 인간계와 인과성의 자연계라는 이분법이다.

● 이성과 감정, 남성과 여성의 지배적 이분법이다.

● 자연과 인간, 엘리트와 대중, 통일권력과 다중성의 이분법이다.

사상사적 근대성은 16세기 경제적 물질배경과 17세기 정치적 위기상황에서 탄생한다. 16세기 유럽경제는 남미에서 착취한 은을 통한 대자본에 기초했으며, 30년 전쟁을 치룬 17세기는 유럽 전체가 혼란에 빠졌었는데 거꾸로 말해서 그런 혼란을 극복하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확실한 무엇을 찾고자 했고, 그 결과가 데카르트와 같은 확실성의 ‘기대지평’이 서서히 형성되었다고 툴민은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근대의 출발이라고 본다.


카톨릭과 프로테스탄 사이에 벌어졌던 30년 전쟁(1618-1648)은 유럽 통털어 800만명 이상 사망했으며 독일 지역에서만 칼뱅, 루터, 카톨릭 합쳐서 인구의 35%가 사망한 무자비한 혼란의 시대를 낳았다.(168) 마침 기상이변(냉한기;소빙하기)으로 알곡 생산량이 급감했으며 더욱이 페스트까지 발병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희한하게도 당대 17-18세기 철학자들이 추구했던 것은 그런 시대적 혼란의 상황으로부터 시간에 무관하고 초연한 “탈상황”의 진리를 찾는 데 있었다.

3. 근대의 지적 비계

근대를 형성하는 사유의 지지기반인 골격을 툴민은 “지적 비계”intellecual scaffoldings"라고 표현했다. 툴민이 정리한 근대의 지적 비계는 다음과 같다.

① 자연은 인과적, 물질적, 기계적 과정의 결과로 발전하다. 반면 인류사는 인류라는 대행자의 실천목표이며 도덕적 결단이며 이성적 방법 등에 대한 기록이다.(182)
② 물리적 자연의 물질적 실체는 비활동적이다.(183)
③ 자연은 창조하면서부터 작동되어온 불변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181)
④ 물질은 사고하거나 추론하지 못한다. 사고나 추론은 영혼이나 정신같은 비물질적 에이전트만 가능하다.(184)
⑤ 신의 창조부터 자연은 안정적 체계로 시작했다. 뉴턴 역학은 신의 창조적 능력을 증거한다.(185)

4. 데카르트의 기계론과 이성주의

하느님은 창조 이후 처음으로 우주를 작동할 때먼 필요하고, 일단 창조가 끝난후 세계가 작동하고 나면 우주는 하나님 개입없이도 기계적으로 잘 돌아가간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기계론이다. 이런 데카르트의 생각은 50년 후 뉴턴을 탄생시킨다. 물론 데카르트 이런 기계론적 사유는 교회로부터 이신론이라는 평판을 갖게 하였다.

데카르트는 갈릴레오의 악몽을 재현하고 싶지 않았으며 따라서 <창세기> 칭송을 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교회 칭송은 새로나올 책 도서검열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다들 알고 있었다.(132) 여전히 데카르트는 기계론의 원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근대는 인문주의에서 이성주의로 전환했다. 결국 "구전지식, 특수 지식, 국지 지식, 일시 지식에 대한 인문주의의 관심은 확실성을 표방하는 근대의 힘에 밀려났다고 한다. 근대의 지향점은 구전이 아닌 기록과 논증으로, 특수가 아닌 보편을 추구하며, 국지적이지 않고 일반적인 지식을 찾으며, 시간 의존적이아닌 초시간적인 지식을 확보하려는 데 있다.(57-63)

5. 툴민의 르네상스 인문주의

툴민은 근대를 반성하는 철학자로서 몽테뉴를 사례로 든다. 근대를 대표하는 철학자 데카르트와 대비하여 툴민은 몽테뉴를 깊이있게 분석한다. 몽테뉴는 정신과 신체의 이분법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와 대비된다고 툴민은 생각했다. 몽테뉴는 고전적 인문주의자이지만 카톨릭의 문제를 제기하지만 여전히 카톨릭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가장과 허식, 과장된 행동과 위선적 자학을 배격하여 인간의 생활체험과 삶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것이 몽테뉴 철학의 근간이라고 한다. 삶의 모습을 통하여 확실하게 인식가능한 일반적 진리는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몽테뉴의 생각을 고전적 회의주의라고 툴민은 이름붙였다.(72-4)

고전적 회의주의는 합리성을 존중한다, 그러나 그 합리성은 기계적 합리성이 아니라 인문주의 합리성이다. 과학과 철학, 자연과 인간, 정신과 물질이라는 이분법을 화해시키려는 노력이 바로 툴민의 인문주의 합리성resonablenes 개념이다. 툴민의 합리성 개념은 기존 데카르트 방식의 절대적 이성rationality과 다르다.

툴민은 지식을 형성하는 에피스테메에 도달하려면 이성이 있어야 하고, 지혜를 낳는 프로네시스에 도달하려면 인문주의 합리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은 근대성을 대표하는 데카르트의 확실성의 철학에서 벗어날 것을 요청하는데 이른다.

툴민이 모색한 인문주의는 르네상스 인문주의로 표현되는데, 이 뜻은 근대 이전 르네상스 시기의 인문주의를 함의한다. 르네상스 인문주의란 인간에 의한 이론 가치를 실천의 관점에 비추어서 자연을 신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회의적 관점으로 보려는 시각이다. 여기서 회의적이란 맹신주의에 대한 부정의 뜻이다.

6. 인문주의와 확실성, 그리고 확실성의 오류

인문주의는 확실성을 포기한 것인가? 툴민의 대답은 아니라고 한다. 확실성은 수학을 위하여 필요하지만 수학을 통해서 인간을 재단하는 과용에 대하여 툴민은 비판한다. 확실성의 결핍을 인정하는 것은 역사의 순리이며 그런 결핍은 오류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다고 툴민은 생각한다.

"다양성에서 비롯된 복잡함이나 애매함을 관용한다는 것은 오류가 아니다. 확실성의 결핍을 관용한다는 것도 오류가 아니다. 죄악은 더더욱이 아니다. 정직하게 반성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인정하득이, 이러한 관용은 사람들이 신 아닌 인간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치룰 수 밖에 없는 댓가의 일부이다."라고 쓰고 있다.(57)

전혀 다른 시각에서 데카르트와 카톨릭 교회 사이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 공통점이란 <확실성의 추구>라는 방법론이었다. 카톨릭 교회도 프로테스탄트를 이단화하는 목적으로 "위험한 이단적 교리들과 오류들"을 제거하려는 방법으로 보편교회와 교리의 확실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133)

서평자는 이런 해석을 확장하여 30년 전쟁조차도 확실성의 오류의 소산물로 해석하려 한다. 30년 전쟁의 정치적 혼란에 대처하기 위한 응전이 바로 확실성 추구의 절대지평이었다고 툴민은 말한다. 프랑스부터 데카르트를 시작으로 <확실성 추구>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118-9) 그런데 서평자가 생각하건데 데카르트의 확실성 추구처럼 30년 전쟁 역시 확실성 추구의 산물처럼 여겨진다.

절대적 확실성의 기준은 유일한 객관성을 지녀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확실성이 정치에서는 자기만의 확실성이라는 절대성의 아집과 함정에 빠지고 만다. 서로 자신의 확실성을 고집한 양단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종교적 충돌이 그런 함정의 사례이다. 그런 함정은 그들만의 함정이 아니라 30년전쟁의 시작을 알린 대혼란으로 이어졌다.

7. 강한 이성주의자 라이프니츠와 그 근대 해체의 신호들

1650년대 이후 30년 전쟁의 폐해를 극복하고 복구하려고 라이프니츠같은 철학자는 보편언어의 꿈을 꾸었다. 이 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라이프니츠는 중국 주역까지을 정도다. 그의 이성주의 희망은 극에 달했다고 한다.(171)

이렇게 확실성을 추구하던 라이프니츠는 뉴턴이 중력과 같이 증명불가능한 가설에 몰두하는 것조차 위험하다고 생각했다.(229) 이러한 근대의 극단성의 부작용은 의외로 종교와 과학의 갈등으로 드러났다. 갈릴레오와 부르노 그리고 유니태리언 의사이자 신학자인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는 카톨릭 종교재반을 피해 프랑스와 제네바로 도피했으나 결국 칼뱅의 사주로 화형당했다.

이러한 고발과 참사는 중세적 관용을 계승하기는 커녕 근대적 잔인함의 결과일 뿐라고 저자는 말한다. 근대의 부작용이 심하면서 근대를 해체하려는 시도는 20세기 포스트모더니티가 아니라 175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20세기에 이르러까지 근대의 독약이 남아있었다고 한다.(236)

근대 해체의 신호는 이미 칸트에서도 나타났다. 칸트의 의지와 무관하게 말이다. 칸트의 우주탄생론이 그것이다. 1755년 칸트의 『보편적 자연사와 천체이론』Allgemeinen Naturgeschichte und Theorie des HImmels 이 출판했간되었다. 여기서 우주는 불과 몇 천년 전에 창조된 것이라기보다는 혼돈의 물질입자로부터 아주 서서히 광대한 크기로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교회와 다른 견해를 밝혔다.(237)

조르주 뷔퐁Buffon의 1749년 작품 『우주탄생론』Les Epoques de la Nature에서 뷔퐁은 창조의 6일을 지질학적 6시대(에포케)로 바꾸어 말해도 좋다고 했다.(238)

근대의 상징인 기계론에 대해서도 반론이 등장했다. 칼 마르크스는 다윈의 영향을 받아 기계적 자연관에 반대하여 자연이 일시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부정했다. 인류 역사 앞에 이미 자연의 진화가 있었다는 점에 긍정했다는 뜻이다.(238)

물질 비활동성에 대한 반발도 드러났다. 근대 유물론자로 알려진 라메트리는 물질도 활동성을 가질 수 있다고 추측했다. 그의 유물론은 동력학적 물질론에 기반한다.(239) 20세기 들어서면서 과학적 반론이 정초되었다. 양자역학이 그것이다. 현대 양자역학에서 비로소 물질의 활동성에 대한 이성적 논의가 본격화되었다고 말한다.(240)

8. 공리주의에서 패러다임주의로

근대 이성주의와 르네상스 인문주의 사이의 갈등은 20세기에도 비슷하게 재현된다고 보면서 이성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는 과학철학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충분히 유명한 토마스 쿤이다. 쿤은 기존 공리체계의 과학과 패러다임으로서의 과학으로 과학의 정체성과 형성과정에 대하여 설명한다.

기존 공리체계는 i)자명한 개념체계와 형식적 공리체계를 추구하며, ii)통일과학운동으로 이어졌으며 iii)탈상황, 초시간의 보편타당성과 단일한 방법론을 모색한다. 즉 과학과 역사는 서로에게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토마스 쿤이 주장하는 패러다임주의는 i)과학의 정체성은 공리체계에서 탈피하며, ii)정상과학의 위상을 차지한 과학 패러다임은 그 안의 지식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배하며, iii)방법론은 유일하지 않으며, iv)과학사와 과학철학은 서로 연계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143)

9. 르네상스의 르네상스

결국 근대의 높은 파고는 낮아지고 새로운 르네상스에 마주쳤다고 툴민은 강조한다. 그런 20세기 인문주의를 르네상스의 르네상스re-Renaissance라고 표현한다. 툴민이 말한 르네상스의 르네상스 시기는 1910-1960년대 사이이다.(249)

르네상스의 르네상스는 1960년대 반문화운동counter-culture과 연계되며, 베트남 전쟁과도 연결된다고 보는데, 주요 문제의식은 이성주의가 낳은 이분법에 대한 도전에 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르네상스의 르네상스 혹은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현실세계에서 나타났는데, 그것은 레오폴드 같은 생태학의 등장이 그것이며, “환경부” 같은 정부부서가 생기는 국가형태가 증가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의 차별적 분화가 무너졌는데, 1960년대 “We Shall Overcome”은 남아공이나 미국흑인운동에서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대중에게 남겼다. 미술과 건축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262-7)

진화과학이 1960년대 이후 새로운 과학으로 자리잡게 된 지적 상황도 르네상스의 르네상스 현상이다. 레즈비언이나 장애인 노인,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고 평등으로 가는 사회운동이 시작된 것도 마찬가지다.(270)

물론 르네상스의 르네상스의 권력남용 즉 부작용도 있다고 툴민은 지적한다. 1960년대 확대된 미국과 소련의 초강대국 권력남용은 결국 전세계적으로 절대 국가주권에 대하여 회의를 들게 했다.(271) 이런 정치적 부작용도 있지만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과학 이성주의 이상으로 우리 시대의 도덕적/문화적/학문적/생활적 위상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되찾음을 툴민은 오메가Ω 회귀라고 표현한다. 글자 아래서 출발하여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오는 오메가 Ω 모양처럼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회귀한다는 뜻이다. 12-3세기 도래했던 르네상스 이후 17세기에 형성된 근대의 궤적은 20세기로 오면서 다시 르네상스 인문주의로 되돌아오는 조짐이 있다고 툴민은 말한다.(273)

10.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툴민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의 차이에 대하여 언급한다. 근대 이후를 탈근대라고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툴민은 간단히 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시기적으로 비슷하지만 개념적으로 똑같지 않다는 뜻을 툴민은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철학자 리오타르Jean Francois Lyotard는 이성 지식의 토대가 이미 무너졌다고 주장하면서, 이성주의 꿈은 환상이였다고 근대성을 강하게 비판하는 탈근대론자들이 많다. 그러나 툴민은 이런 탈근대 비판에 그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탈근대 즉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 대신에 "모순"을 대치한다는 점에서 툴민은 탈근대를 조심한다.

툴민은 "모순" 혹은 "부정을 통해 과거 이성주의를 대체할 것이 아니라 아니라 "비체계적 합리성"이라는 표제어를 더 중요하게 보았다. 이 점에서 20세기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다르다고 툴민은 말한다.(280-1)

역시 툴민은 과학철학자 맞다. 지난 300년간의 이성주의라는 데카르트 방식의 지적 활동의 이익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지혜를 회복할 수 있는가를 툴민은 고민한 것이다. 그는 포스트모더니티처럼 이성을 완전 붕괴시키는 혁명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284)

11. 혁명이란

여기서 “혁명”의 개념을 문제삼아보자. “혁명”은 고전어로 원래 “순환”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18세기 표준 사전에 혁명이라는 단어는 '회전하다'revolution라는 동사로부터 파생된, 이를테면 <행성이나 항성이 출발한 원래의 지점으로 되돌아 오는 것>같이 정의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혁명은 없다고 툴민은 말한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혁명을 맞이할 자세를 갖춘 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아예 혁명이라는 관념 자체가 없었다. 그 이전 1688년 영국혁명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옛 현상의 복원이라는 뜻으로 영국혁명이었을 뿐이었다고 지적한다.(287)

혁명은 완전히 새로이 시작한다는 뜻인데, 그런 이성적 출발선은 없다고 한다. 기존 기준을 버리고 새로운 출발점에서 재출발하는 것은 좋으나 출발점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는 여전히 불명확하다는 뜻을 포함한다. 나아가 객관적 기준이란 공허하다. 공통개념이나 공통감각을 기준으로 이성적 기준을 마련할 수 없다는 뜻에서 “이성적 출발선은 없다”고 툴민은 강조한다.(290)

12. 코스모폴리스라는 제목, 양면성과 종합

툴민은 탈상황의 이성주의로부터 탈피하여 인간과 자연, 정신과 물질, 신체와 영혼, 합리성과 인과성, 감정과 이성 등의 이분법을 조화로운 관계로 조성하는 인문주의를 지향한다.

이분법을 깨고 코스모스의 자연과 폴리스의 인간(사회)을 종합하려는 것이 인문주의의 핵심이며 그런 의지가 바로 이 책의 제목으로 만들어졌다.

확실성 추구의 이성주의ratioality는 상황과 역사로부터 독립된 초연함의 지식, 즉 탈상황의 지식을 추구했다. 탈상황의 지식은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는데서 성립된다. 반면 르네상스 인문주의 합리성reasonableness은 자연질서와 사회질서의 조화인 코스모폴리스를 추구했다.

코스모폴리스를 지향하면서 툴민은 이성의 독단을 비판한 것이다. 이성비판을 다시 요약해본다. 이성이라는 근대의 철학적 프로그램을 3개의 키워드로 말하면 (i)확실성certainty (ii)체계성systematicity (iii)백지상태clean slate이다. 그런데 이런 근대 프로그램의 3개 기준은 존 듀이와 리차드 로티에 의해 추도사의 소재로 되었다.(291)

그 말의 뜻을 살펴보자. 우선 과학사나 문화인류학 전반을 보더라도 독자적인 자기정당성을 가진 출발점은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수학적 확실성을 경험적 확실성으로 대치하려는 근대의 시도가 잘못되었을 말한다. 둘째 자족적인 지적 체계로 가는 중립적 출발선도 없다. 이것은 과학이 가지중립적이라는 허구를 깨려는 데 있다. 셋째 백지상태의 출발선은 없다고 한다. 이것은 록크가 말한 백지상태tabula rosa의 본성론에서 따온 말이지만, 완전한 혁명은 없다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291-2)

툴민에 따르면 코스모폴리스는 혁명이 아니라 인간을 되찾는 순환에 해당한다. 코스모폴리스는 확실성이라는 절대가치에 개인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 새로운 기대지평에 해당한다. 모순은 충돌을 낳지만 종합은 혁명같은 선순환을 낳는다는 점이다. 물론 개체 차원에서 종합은 양면성의 흔적과 상흔을 안고 있다. 양면성의 상흔은 간혹 이중적이라는 수식어의 폭력에 휘둘리기도 한다. 그러나 양면성 때문에 확실성이라는 독단에 속지 않고 인간성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툴민은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려고 알렉산더 포우프의 『인간론』 중 <혼성적 본성>에서 “인간의 이중성에 대하여”라는 시를 적었는데,(189) 서평자도 그 시가 아주 재미나서 그대로 읇어본다.



중간의 이 좁다란 해협 위에

몽매하되 현명한, 조야하되 위대한 존재가,,

(즉 인간이) 자리하여 행동할까 쉴가 망설이고

자기를 신으로 여길가 짐승으로 여길가 망설이며

정신 편에 설가 육체 편에 설까 망설이는구나

태어났으되 죽으며 추론하되 오류 투성이구나

그의 무지에서 그러하듯이 그의 이성에서도 그러하니

그는 너무 적게 생각하지 않으며너무 많이 생각한다.

뒤섞인 사색과 격정의 혼란들,,

진리의 유일한 판관이지만 끝없는 오류에 내마겨진 존재,

세계라는 영광이자 농담이자 수수께끼여!"



13. 인문주의로 길들이기

철학자는 인간의 경험을 전체적으로 구석구석까지 보살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인문학자로부터 배우는 교훈이라고 툴민은 강조한다. 이 점에서 감정을 이성으로부터 분리함으로써 윤리 도피주의에 빠져버린 이성주의는 인문주의자들과 거리가 멀다고 표현한다.(74)

인간성을 둘러보고 살펴보고 보살피기 위하여 툴민은 근대성을 인문주의로 길들이기 humanizing modernity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 책을 마감한다.

인문주의는 자연과학에서 철학에서 그리고 국민국가 실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294) 근대성을 인문주의로 길들인다는 뜻은 (i)상황요소를 중시하고, (ii)일반화된 법칙 이전에 개개인의 특수하고 시대적인 조건들을 고려하는 실천적 인문주의를 설정하고 있으며, (iii)문법 이전 소통과 사용법에 비중을 더 둔다는 데 있다.

이런 툴민의 설명을 통해서 서평자는 과학이론이 사회적 가치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주목하며 이론의 중립성이 허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독립적 물질 연구 이상으로 물질이 속한 생태계 연구에 눈을 뜨게 되었다.

보편적이며 영원한 진리를 찾는 이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과 영원이라는 거대한 담론 속에 무시되고 압사하는 개별성과 지역성 그리고 시간성particular, local, timely의 가치를 좀 더 가까이 조명하자는 것이 툴민의 인문주의이다.

나아가 전통 가치를 존중하지만 전통가치를 우상화하는 권력의 가치를 거부하는 것이 인문주의의 요점이라고 툴민은 말한다.(317) 권력과 무력은 인간의 지적 위상과 일상생활의 상태를 무너트린다. 타자를 짓누르는 권력형 전통과 무력이 아닌 타자 스스로 흡수하게 만드는 영향력influence이 바로 인문주의의 힘이다.

철학 고전을 읽기 위해 당대 상황을 음미하여 탈상황적 지식을 재상황의 문맥으로 읽는 것이 더 좋다는 툴민의 말대로(147), 이 책은 근대 사상사의 흐름을 구체적인 역사를 통해서 보여주니 읽기에 좋았다. 절판이 되어 아쉽기는 하지만 이 책을 강추한다. 공공도서관에 찾아보면 있다.
philona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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