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이 이름붙인 동양
사회문화학교 다섯번재 강좌

서양이 이름붙인 동양 1995년 6월16일 최종덕

***우리는 왜 동양을 말하는가
***정보화시대를 들먹이면서 동서양의 구분 자체가 모호해진 지금 왜 다시금 동양인가?

1. 아랍의 역사와 중국의 역사

아랍족은 유태인과 같은 셈족이다. 아랍은 세계문명의 발생지이며, 동시에 유태교와 기독교, 이스람교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구약성서의 주인공이 등장하며 예수의 말씀과도 연결되는 민족도 아랍인의 조상이다.아라비아 유목민족에서 이슬람종교가 정착되면서 압바스왕조로부터 토착문화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있었다.이들이 없었다면 고대 희랍철학과 르네상스의 연결은 불가능했었고 희랍어와 라틴어의 문화적 연결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압바스왕조도 몽고에 의해 멸망하고 14세기부터 오스만 터어키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아랍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 정치적 부국이었으며 그들 특유의 상권형성을 통해서 동서양의 가교역할을 해왔다.오스만 제국은 끊임없는 유럽제국주의의 경계대상이였지만 그들의 강한 국력은 어느 누구도 넘보지 못했다. 그들은 언어적으로 통일돼있으며, 강한 종교적 일원주의가 그들을 평화로운 민족으로 남게 하였다.

이러한 세계강국으로서의 아랍도 독일의 일차대전 패배와 함께 오스만도 유럽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영국의 주도로 평화롭던 아랍도 내부 박치기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고 서유럽은 주도면밀한 내부계약 관계를 갖고 아랍의 이익을 독식하기 시작했다.

이차대전 이후 전세게적인 해방의 물결로 인해서 아랍을 더이상 식민지로 갖을 수 없게 됨에 따라 아랍을 하나씩 해방시켰다. 그러나 그냥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유럽 각국의 이익분배 방식에 의하여 아랍은 21개국으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48년에는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삼천년 이상 평화롭게 공존해 왔던 아랍인과 유태인의 민족적 갈등을 더해, 그들은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이것이 오늘날의 중동문제이다.

물론 인위적인 국경선 긋기는 아랍 뿐만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났다.그러나 아랍은 유럽과의 지역적 문제가 특히 고려되는 곳이며 막대한 석유자원의 문제가 있는 곳이므로 서구강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얽혀있다.

이슬람교의 기치인 ‘신앞의 평등’은 그들의 평화가 서구강국들의 각축전으로 인해서 여지없이 붕괴되면서 반제국주의라는 이념으로 전환하면서 서구 정치인과 메스컴은 일제히 아랍을 테러국으로 몰아 나갔다.특히 영국이 아랍독립의 약속을 어기고 친유태적인 정책으로 바꾸고 미국의 주도로 엑소도스의 영광을 이스라엘에 돌리면서 아랍은 필연적으로 반미와 반시온주의의 길을 택하였다.아랍의 지하드는 중세 십자군전쟁에서 부터 뿌리를 둔 것으로 여전히 오늘날에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60년대 이후 아랍지역의 6할 정도 이상은 친미국으로 돌아섰지만 그것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1990년 걸프전쟁이 일어났다.미국은 예상치못한 장기전으로 돌입됨에 따라서 잠시 당황했으나 극약을 처방함으로서 역사가 잊지못할 비극이 생겼다.전쟁의 본질은 간단하다. 미국은 세계경찰의 임무를 하고 싶었고 그 근거는 이라크의 침략성이었다. 이라크는 20명 이상의 아내를 거느리면서 보석상과 호화판 파티에서 없어지는 돈과 아랍인의 자존심을 볼 수 없었으며 자신의 나라의 한 작은 토호국이였던 쿠웨이트에 대한 반환을 요구하였다.쿠웨이트의 시민권자는 40%에 지나지 않으며, 정치와 경제의 핵심은 200명 정도의 알 사바 왕가가 장악하면서 전세계 석유의 10%정도를 독점하였다.

2. 아랍인과 전라도

3. 아편전쟁과 그 이후

4.홍대용의 반란아닌 반란

5. 개인적 고백으로 본 결론

5-1 : 60년대 이후 터어키는 적극적으로 서구의 제도와 자본 그리고 정신 까지도 따라가고자 했다. 일찌감치 검은 차돌은 벗어제쳤고 EC에 못들어가서 안달을 했다. 유럽은 터어키를 EC끼워줄 맴이 아예 없었지만 살살 유혹의 손길은 놓지 않았다.터어키와 전 유고슬라비아는 유럽의 부흥에 전적인 노동력을 봉사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멸시뿐이였다.

나토가 적극적으로 터키를 이용했다. 냉전시대 터키의 지리적 여건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터키를 무시할 수 없었으나, 터키를 자기편에 넣어주기에는 경제적 문화적 차이가 심하다고 생각했다.그래도 명목이 있어야 하는 데, 이에 터키 군사독재가 구소련과 이라크,요르단, 이란, 터키에 걸쳐 땅없는 민족인 쿠르드족에 대한 비인간적 행위를 구실삼아 터키를 한마디로 우습게 보았다.

이런 터키가 요즘 약간의 전환을 시도하였다. 유럽을 흠모해왔지만 여전히 못살기는 과거보다 더하고, 그 원인분석 하면서 자립적인 아랍정신의 부활을 모색한다. ........

5-2 효사상 부활에 대한 경계

5-3 동양적 사회과학이 정말 무었인가

사회과학이라는 말을 안쓰려다가 copy문건에 신경쓰다보니 이렇게 됐다. 사회과학 개념 자체가 동양적이라는 수식어와 모순된다고 다들 말한다. 사회과학의 원천을 서양적 개념에만 두는 것이 타당한가. 마르크스나 막스베버를 해야만 사회과학인가를 타진한다.현재의 동서갈등을 조장한 무수한 미래학 저서의 필자들의 자유주의 신봉자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서양을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맹목적인지를 아는 일과 반성없이 서양개념만을 통해 동양을 이해한다고 하는 풍조가 얼마나 심각한지 다들 그냥 넘어가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자.

동양적 사회과학의 가능성은 동양철학과 서구사회과학의 짬뽕이 아니라 우리 역사 속에서 본 사회과학이라는 의미에서 찾아져야 한다. 역사가 없는 사회과학은 불의를 보고 참지못하는 운동가의 참모습을 필연적으로 상쇄시킨다.

-부록1-
사회과학의 진리탐구는 실천의식과 떨어질 수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학문의 실천의식이 학문의 진리탐구를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이런 경우 사회과학을 순수 고전논리학으로 제한하려는 처사로 밖에 볼 수 없다. 실천의식을 마치 산학협동이나 정치참여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군사독재의 끝으로 우리를 억압했던 문제가 소멸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사회과학의 역사가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문제가 숨어들어가는 것을 보아야 하고 그것의 구체적 실현은 역사를 마음 속에 담는 일이다. 역사를 갖는 일을 역사가에만 맡겨두니 자꾸 문제가 발생한다. 역사는 우리 직장인들의 생활 속에서 우러나야 진짜 역사다.

그 역사성은 정치사회적인 것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문제나 종교 혹은 자연과학이나 예술 그리고 신화나 이데올로기 등 역사 속에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는 큰 의미의 삶의 이데올로기이다. 여기서 삶은 타인의 삶이 아니라 나의 삶 혹은 우리의 삶을 의미하기 때문에 역사의 실천의식은 역사를 살아 있게끔 하는 일이며, 역사의 화석화를 피하려는 기본적인 노력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특수성때문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식으로 실천성이나 현실성의 단어만 들으면 일어나는 알레르기가 우리의 이데올로기를 얼마나 구름잡는 이야기로 만들었는지를 보면서 이제는 그 원인처방을 하는 작업이 우리에게 필수적이다. 이 난제는 우리의 사회과학이 자립적이지 못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역사의 식민주의를 벗어나 자립성을 성취하느냐의 문제이다. 서구의 관념론과 사물에 빠진 실증주의를 비판하고,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카리스마화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우리 자신의 역사를 찾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는 대부분 서양 전래의 방법론으로 서양의 학문을 하면서 내가 왜 서양의 역사에 종속되고 있는 지도 모르고 , 그것을 반성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없었다. 동양에는 학문방법론이 없었다는 어디선가 잘못 유포된 소문에 속거나 혹은 스스로 속기를 자청해서 역사의 제국주의에 동참하고 있는 사실을 합리화한다. 그러나 그러한 서구의 틀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서구의 학문은 그들의 사상사적 맥락 속에서 동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동양의 문을 두들길 뿐이다.

서양에 있어서 동양학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선입관을 갖고 있는 것 훨씬 이상이다. 서구의 동양학의 오해는 오해라기 보다는 그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을 취사선택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서구의 학문은 나름대로 이론에 실천이 따르는 필연적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한 서구의 학문을 갖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나서는 것 조차 어불성설이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 일본 취향의 학문을 배운 사람들과 60년대 이후 서구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반성없는 학문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문제보다는 그들의 정신적 고향에 기여했을 뿐이다. 서구가 동양을 연구하고 동양의 엑기스를 뽑아가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버리고 오로지 서구의 문명을 여과없이 설명하고 혹은 가위질 편집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 우리도 우리 자신의 사회과학을 찾아나설 때가 되었다. 비판과 반성을 통해서 우리 역사 속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날 수 있는 역사를 만들어가야 하며, 국수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계승에 이은 미래지향적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


-부록2-
간단히 말해서 나는 우리 사회과학(혹은 인문학까지도)이 안고 있는 문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식민지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왜곡된 세력, 둘째 군사정권 이후 반공이데올로기가 권력의 도구로 전락된 현상과 그로부터 발생되는 편협성, 세째 위의 두 문제를 정당화시키려는 상황조작의 권위가 전체에 만연되어 있다는 점과 그 권위구조가 사회과학의의 질을 막고 있다는 사실, 네째 미국문화가 여과없이 직수입되면서 생긴 학문의 시녀현상, 다섯째 서구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발 내지는 국수주의로 인하여 고전문헌에만 메달려 훈고학만 하면서 발전적 비교해석과 전통의 창조를 거부하는 일, 여섯째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실천의 문제를 등한시하면서 중립성과 객관성이라는 허울아래서 잘못된 선비의식을 정당화시키는 편의주의적 상아탑의 가면, 일곱째 물질우선주의가 야기했고 또한 우리가 근원적으로 안고 있는 병폐적 교육구조때문에 생긴 현상들 즉 경제논리에만 맞추어서 인문사회과학을 비하하는 사회적 풍토를 조작하는 관료행정 등이다.

이러한 문제지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실제로 지적에 대한 반성이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동양적 사회과학을 위하여 새로운 방향제시나 특별한 대안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지금까지 그 새로운 대안이란 또 하나의 사회적 토론거리만을 일시적으로 제공했을 뿐이며 실천의 문제와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앞에서 지적하는 기존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타파하는 일이 먼저라고 본다. 대안이란 그 후에 자동적으로 생기게 마련이지, 선동적 구호를 통해서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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