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알 대신 반도체 칩알을 먹자
교수신문 문화비평 2005년 12월 11일 게재

쌀알 대신 반도체 칩알을 먹자




국가신인도를 높이기 위해 쌀비준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농업도 중요하지만 국가경제 전반을 두고 볼 때 피할 수 없는 사태였다고 한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다보니 농민들의 출혈을 무시한 채, 쌀 개방만이 살 길이라고 한다. 미국의 압력을 모른 채한다면 결국 수출길이 막히는 부작용이 생긴다면서, 자유시장주의는 한국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쌀 개방이 되어도 10년이라는 엠바고 안에서 기껏해야 4% 수준의 밥쌀 수입이 예상되므로 국내 쌀 시장에는 큰 영향력이 없을 것이라는 기이한 말을 하기도 한다.

땅의 생명가치가 소중하다는 말은 이미 그들에게 소귀에 경읽기였다. 농가구당 빚은 평균 3천만원에 이르고 소득대비 부채비율이 99%인 우리 농가의 비참함은 그들에게 먼나라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한국의 식량자급율은 26% 정도인데다가 그것도 쌀을 제외하면 4% 수준의 자급율에 지나지 않아도, 여전히 자동차와 전자제품이 국민을 먹여 살리는 왕도라고 외치고 있으니. 하기야 후일 우리는 전기밥솥에 쌀알 대신 반도체 칩을 끓여 먹으면 될 테니까. 세계적 추세라고 해놓고선, 미국 식량자급율 134%, 영국 99%, 캐나다 163%, 프랑스 195%, 공업국가라고 하는 독일도 123%라는 엄연한 사실은 슬쩍 빼놓고 넘어간다.

올해부터 당장 쌀수매를 하지 않으니 농민의 한해살이는 막막하건만, FTA 기준이라면서 농업보조금을 철폐하라는 미국 압력에 알아서 미리 기는 모습일랑 참으로 충실한 글로벌 스탠다드이기도 하다. 농민만이 농토를 소유하는 법안, 소유자가 농업 목적 외로 땅을 묵힐 경우 내야만 하는 벌금, 농경지 매입대금의 무상지원금 제도, 안식휴경지에 대한 비용손실 보전, 시장변동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를 보전해주는 고정직불제 및 가격보전 직불제, 토양유실 방지 등을 목적으로 하는 환경직불제 등등의 말을 입 밖으로만 꺼내도 난리를 치며 시장주의를 무시하는 좌파적 정책이라고 비난하지만, 미안하게도 여기 나열한 정책은 한국이 아니라 그대들이 그렇게 알아서 기는 미국의 정책이다. 미국과 EU국가는 프랑스의 농민보조정책을 강하게 비난하지만 프랑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존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프랑스가 고집이 세서? 아니다. 독일이나 스위스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도 무늬만 다른 각종의 농민보조정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량자급율이 그렇게 높은 거다.

미국과 유럽은 10년 전부터 미국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개방압력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유럽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인즉, 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을 실은 한국이 아니라 유럽 사람들이 더 잘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정 식량자급율은 유럽정책의 기초이며 전체이기도 하다. 결국 미국 농산업체들은 한국과 남미 지역에 집중적인 다국적 농산복합자본의 농산물 공격을 하게 마련이다. 한국 경제규모가 세계 10위내로 들 정도로 대단한 시장이며, 더욱이 다행한 것이 한국은 미국 말을 잘 듣기 때문이다. 남미의 피폐화된 상황을 부러 말하지 않아도 익히 알고들 계시기 때문에 더 말하지 않아도 될듯하다. 한국도 그런 전철을 밟을 것인가.

1972년 세계적인 흉작으로 쌀값이 3.6배, 밀값이 2.1배로 뛴 사실을 모두 잊은 채, 석유파동만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국적 곡물상들의 횡포 때문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개방, 시장, 자유 등의 멋있는 외교 언사에 한국 공무원들이 녹아 나고 만다면, 후일 우리는 유전자식품과 반도체 칩만이 우리 밥상에 버젓이 올라오는 그런 사이버 먹거리로 배를 채워야 한다.

부가가치가 낮은 농업을 줄이더라도 첨단의 기술산업을 늘리기 위한 피해 갈 수 없는 선택이라고? 그래서 비준안을 통과시켰다고? 그런 오류를 철학에서는 범주오류라고 한다. 농업과 기술산업이 서로 맞바꾸어지는 동일 범주의 교환가치를 지닌 것으로 쉽게 생각하는 그런 것을 범주오류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는 철학적 오류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 삶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정말 큰일 낼 역사적 오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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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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