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처럼 사는 문화 |
사람이 사람처럼 사는 문화원주투데이 2005.02.28 최종덕 (상지대 철학교수) 감기에 걸리거나 큰 병이라도 나면 내가 의지할 곳은 병의원밖에 없다. 그래서 막상 병의원을 가면 의사 권위에 주눅 들어 의사와 눈 한번 마주치지 못하고 말 한번 제대로 못한 채, 그저 주사나 한 방 맞고 약이나 타가지고 온다. 내 엉덩이에 들어오는 주사약이 항생제인지 스테로이드인지, 혹은 어느 정도의 몸 상태인지 아무 설명도 없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시늉으로만 했는지 환자의 알 권리는 철저히 무시당하는 것이 이제 예사로운 일이 되어 버렸다. 한의원에 가도 마찬가지다. 침이나 맞고 그칠 일이라면 다행이지만, 약이라도 지어갈 상황이라면 십 몇 만원이 훌쩍 넘어 버리니 약 지을 엄두를 못 낸다. 언제부터 한약을 한 재 씩 지어야만 했는지 모르겠다. 나 어릴 때 기억으로만 해도 기껏 서너 첩이었는데 말이다. 이렇게 척박해진 의료환경에 대하여 의사나 환자 모두 책임이 있기야 하겠지만, 역시 병의원에서는 환자가 약자라서 환자의 마음고생이 큰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의료서비스 개선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일방적인 관계가 지배적이다. 유럽에서는 미시적으로 보험수가를 조절하는 방식을 택하거나, 거시적으로는 의사 계층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상부지식 계층의 사회적 연대의식을 공유하는 의식형성을 유도함으로써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의사의 근본 역할은 진료실 외의 사회적 지위에서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위의 두 방식이 실현되기가 쉽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주민들이 나서서 작은 의료기관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의료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가는 지역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우리 원주에서도 의료생협을 세운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이제 의사와 환자가 진료실뿐만이 아닌 생활 속에서 만나면서 병원 문턱은 낮아지고 자존심 상했던 환자의 마음고생도 덜어지게 되었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원주 사는 작은 즐거움이기도 하다. 이 모두 우리 시대 생명사상의 큰 스승이시고 생활협동의 정신을 뿌리내리신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덕분이다. 이렇게 생명의 기운이 서렸는지, 이제 원주는 다른 지역에서 크게 부러워 할 정도로 생활협동조합이 많아졌다. 아이들을 서로 키우는 생협에서부터 우리 지역의 유기농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생협도 있다. 특히 무위당선생의 생명사상을 실천하며, 한국 협동정신의 근원지이기도 한 원주한살림과 밝음신협은 가난한 시민단체들과 생활협동조합 단체들을 물심양면으로 아주 크게 후원하기도 한다. 역시 원주에 내려진 생명문화사상의 뿌리는 건재한 듯 하다. 이제 의료생협이나 소비자생협은 조합원만이 아닌 원주시민 모두의 자산이 되었다. 이제 조합원 개인의 복지뿐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공공성이라는 축을 세워가야 한다. 원주가 일구어낸 생명문화의 기운 속에서 말이다. 생명문화란 거창하고 명분만 세우는 고담준론이 아니라, 바로 현실 속의 구체적인 실천과 사람이 사람처럼 사는 삶의 복지를 구현하는데서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실천운동의 원동력은 뭐니 뭐니 해도 협동정신 인 듯 하다.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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