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과 차이로 본 우리 이론
종합과 차이로 본 우리 이론

연중기획 "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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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 <연재 순서>

분단체제론(백낙청)
민중신학(안병무)
동양학논쟁(김용옥)
사회구성체 논쟁, 내재적 발전사학(김용섭)
온생명(장회익)
세계문학사 다시 쓰기(조동일)
민족경제론(박현채)
심미적 이성(김우창)
분단사학(강만길)
생명사상(김지하)
내재적 접근(송두율)
한국민주주의론(최장집)
생태학적 상상력(김종철)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역사철학(함석헌)
여성사회학(이효재)
자생풍수(최창조)
3표의 철학(박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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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최종덕(상지대, 철학)
교수신문 제출원고(3월26일)



베트남에 가서 일반 민중들을 만나면 우리가 언뜻 이해 못할 일이 하나 있다. 베트남 전쟁 중에 미군을 따라간 한국군이 그들의 땅에서 많은 상처를 입혔는데도 불구하고,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그렇게 미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역사를 잊어서 그러한지 아니면 자존심이 없어서 그런지 나름대로 짐작해 보았지만, 이도 저도 아니었다. 우연한 기회에 베트남의 한 지식인으로부터 그 이유를 듣고는 나는 매우 부끄러웠다. 싸움에 진 사람이 분노를 가지는 것이지, 이긴 사람은 포용을 한다는 말이었다. 이 말을 승패와 경쟁의 논리로만 들었다면 나는 또 다시 크게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의 폭은 우리보다 훨씬 넓었다. 그들은 결코 역사를 잊지 않고 있었으며, 그들의 민족 자존심은 얼치기 애국주의가 아니었다.

내가 너를 포용할 때 너와 나의 열려진 ‘우리’들이 되지만, 내가 너를 배제할 때 결국 나만의 닫혀진 ‘우리’가 될 것이다. 닫혀진 우리는 그 정체성이 쉽게 규정되곤 하지만, 강점 아니면 종속의 어느 한 패로 몰리기 십상이다. 반면에 열려진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그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의 운동성이 바로 우리의 실체임을 보여 준다. 세계와 민족, 권력과 민중, 서양과 동양, 전통과 근대, 내재와 외재, 이성과 심미, 생명과 물질, 보편과 특수, 자생과 수입, 고립과 연대, 탈피와 종속 사이에서 표출된 갈등의 아픔과 분열의 뼈저림이 오히려 우리의 실체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의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려는 원동력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 동안 교수신문에서 연재된 ‘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라는 지면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능동적 충돌이 아닌 피동적 추돌로 인해 생겨난 갈등과 분열의 역사는 ‘우리’를 해명하는 또 다른 방식의 시각을 전개한다. 그런 시각에서 ‘우리’를 투영했을 때, 이번 연재에서 주요하게 검토된 내재성, 자생성, 분단성 등의 이론 범주는 자칫 피동적 역사에 대한 반작용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그런 오해의 내용은 우리를 억지로 하나로 모으려고 한다는 정서적 비난이기도 하다. 동양학 논쟁과 민족주의 논쟁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나는 민족주의 논쟁을 보편과 특수라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더 이상 다루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내재와 자생의 이론 범주를 ‘종합과 차이’라는 관점에서 해명하려 한다. 문자에 기댄 학문적 이론은 실천과 맞닿아 있어야 하지만 특수한 실천사례의 행동강령이 아니기 때문에 보편성의 위상을 당연히 갖추어야만 한다. 이론의 보편성은 특수성에 대한 깊은 고민과 특수성의 다양함을 통해서 더 많은 신뢰와 설득력을 확보한다. 그리고 특수성의 다양함은 종합을 지향할 때 보편성으로 이어진다. 교통과 통신으로 묶여진 오늘의 사상사에서 학문 이론은 더더욱 종합을 요구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의 나라까지 날아가서 이유 없는 폭탄을 퍼부을 정도로 좁아진 세상인데, 하물며 동떨어진 다양한 사유와 이론들도 필연적으로 서로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만남을 종합이라고 했다. 그런데 종합은 그 안에 포용될 개별자에 대한 역사 인식을 전제해야 한다. 개별자에 대한 역사 인식은 그들 사이에 서로 다르게 갖고 있는 차이를 인식하는 일이다. 결국 종합을 이뤄내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개별자의 차이를 인식하고 부각해야 한다. 그래서 내재와 자생의 이론은 정서적 적대감이나 피동적 반작용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라, 종합을 모색하는 역사적인 과정으로의 차이를 담아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찾아가는 우리는 닫혀진 것을 거부하고, 종합을 위한 차이를 그 정체성으로 창출해야 한다. 그런 차이를 담아낸 우리 이론의 터전이 확고히 마련된다면 나 같이 서양학문 공부하는 사람들도 ‘우리’의 글쓰기를 자신 있게 말할 날이 올 것 같다. 기획 연재된 ‘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에서 이미 그 터를 닦는 일은 시작되었다 <끝>

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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