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건강이 공존하는 삶의 존재론

범한철학회 학술대회 기조발제 2021년6월18일

질병과 건강이 공존하는 삶의 존재론
최종덕(독립학자, philonatu.com)


1. 방향: 삶의 생태적 존재론

질병 부존재의 완전한 건강과 청춘의 샘을 욕망하지만 질병을 벗어날 수 없고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삶의 생명이다. 태어나면서 죽음에 이르는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질병과 건강, 고통과 즐거움, 병약함과 강건함의 심신 상태를 거쳐 간다. 생애에 걸친 심신상태가 우여곡절의 변화를 거치듯이, 나의 생명은 결핍과 욕망, 충동과 변동의 존재가 박동하는 실존이다. 여기서 말하는 삶의 변동 자체가 바로 생명 존재론의 핵심이다.

건강과 질병을 오가는 생명존재의 가장 큰 특징은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절대 구획이 없으며 정상과 비정상의 실체도 없다는 데 있다. 니체에서 가다머에 이르는 “큰 건강” grosse Gesundheit 개념에 따르면 질병은 정상의 반대가 아니며 정상은 단순히 몸의 결함이나 결핍 수준이 전무한 상태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의학해석학의 흐름을 이어받는 건강생성론life course health development; LCHD에서 말하는 건강은 (i)웰비잉과 좋은 느낌의 감정을feeling good 유지하며 (ii)자기 몸과 인격에 대한 긍정적 태도이며 (iii)사회적으로 약하고 소외된 상태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의 온전성을 유지하는 동력학적 상태이며 변화과정이며 패턴이다. 즉 건강은 주어진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마다의 발달과정에 연관된 사회-문화-심리-생물학적 몸의 생태적 관계망relational ecological matrix에서 해석된다.

이어서 의료사회학자 안토노프스키의 “건강생성 패러다임”salutogenic paradigm과 하폰의 생애건강발달 모델을 소개하는데, 필자는 이에 덧붙어 <삶의 생태적 존재론>으로 일컫는 포괄적 개념을 제시한다. 삶이 생태적 존재론이란 새로운 이론이 아니라 사회문화-개인심리-생물생리의 세 축이 서로 연관되어 삶의 양상이 드러나고, 그런 세 축의 생태구조로부터 건강과 질병이 얽혀지는 삶의 존재가 생성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데 있다.

2. 범주: 삶의 존재론으로서 의철학 2절은 주제와 무관하지만 철학과 의학이 만나는 오늘 범한철학회 학술대회 기조 성격으로 추가한 것입니다.


2.1 고유영역 논쟁: 의철학은 건강과 질병이라는 의학의 고유한 문제를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고유한 영역을 갖고 있다. 반면 건강과 질병에 관한 인문학적 소재 외에는 특별한 의철학만의 고유한 주제와 내용이 빈약하다는 반론도 있다. 고유영역을 주장하는 쪽과 반론하는 주장의 쪽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의철학의 고유성을 주장하는 엥겔하르트Hugo Tristram Engelhardt의 논지를 따르면 (i)현재에는 의철학과 과학철학 사이의 구분이 모호하지만 의과학의 발전과 임상의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향후에는 의철학 연구영역의 고유성이 정착될 것이라는 주장과 (ii)방법론에서 비록 명확한 경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나 클러스터 형식으로 넓은 의미의 의철학 범주가 가능하다는 주장 및 (iii)의학적 철학과 철학적 의학을 포괄하는 개념적 논리구조를 해명하는 좁은 의미의 의철학이 인정될 수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Schaffner and Engelhardt 1998) 한편 의철학의 고유영역을 부정하는 쉐퍼Juanita Shaffer에 따르면 (i)의철학이 과학철학 영역에 포섭되어 있으며 (ii)의철학에서 다루는 소재의 대부분은 의학사나 의료윤리 혹은 의료인류학에서 다뤄질 수 있다고 한다.(Caplan 1992)

2.2 의철학의 의미: 이런 고유성 논박과 무관하게 이들 모두 <의학의 철학>이라는 학문영역의 고유성이라는 범주를 굳이 좁은 영역에 가두지 않고 개방적으로 확장하는 데 동의한다. 이제 ‘의학의 철학’이 아니라 고유성을 지닌 ‘의철학’은 의학과 연관된 형이상학, 방법론, 논리학, 인식론과 가치론을 포괄하는 논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Schaffner and Engelhardt 1998, 264)

태어나면서 죽음에 이르는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질병과 건강, 고통과 즐거움, 병약함과 강건함의 심신 상태를 거쳐 간다. 생애에 걸친 심신 상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만큼 생명의 의미 역시 탄생과 건강에만 국한되지 않고 질병과 죽음에 맞닿아 있음을 의철학은 말하고 있다. 삶의 존재를 해석하는 의철학에서 우리는 질환과 건강이 공존하는 현재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달을 수 있다는 가다머의 말을 되새기면 좋다. 또한 의철학은 서양의학과 동양의학,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의 철학적 사유와 문화적 기반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인식하여, 다양한 분야 사이에서 의학이 문화적 다양성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해준다.(최종덕 2020, 528)

3. 질병을 이해하는 모델들

질병의 이데아가 존재하는지 아니면 현상적인 것인지, 질병의 실체와 본질이 있는지, 혹은 질병 원인 요소가 결정론과 기계론적으로 해명되는 것인지, 특정질병의 환자가 과학적 이론의 대상인지 의료현장에서 마주친 실존적 존재인지를 질문하는 접점에서 의학과 철학은 만난다. 이런 질문들은 우선 질병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른 답변이 따라올 수 있다.(Riecker 2000) 질병 개념을 이해하는 데 필자가 만든 아래 표가 도움을 줄 수 있다.(최종덕 2020, 208)

의철학자 소보의 구분 (Sobo 2011, 15)
질병 disease
질환 illness
● 생의학적으로 측정가능한 병소lesions
● 해부학적 생리학적 확인가능한 변형체irregularities의 상태
● 외적 “etic”: 일반으로 통용되고 정량가능한 외적(etic; 겉으로 드러난) 실체
● 의사가 치료를 위해 결정해야 할 진단의 원인으로서 병인론을 중시하여 판단
● 문화적으로 구조화된 불편함의 상태being unwell
● 개인적 체험의 고통과 괴로움의 상태suffering
● 내적 “emic”: 문화마다 다른 내면의 지각처럼 정량적이지 않지만 내적으로(emic) 지속하는 고통의 상태
● 질환의 원인은 개인이 맺는 사회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쉽게 풀리지 않는다.
● 환자가 느끼는 상태를 기준으로 판단




질병
disease

① 질병은 생물학적 정상에서 벗어난 병리 과정pathological process이다.
② 편안함이 결핍된 상태와 동시에 신체적 무질서disorder의 상태이다.



질환
illness

① 환자 개인의 내적 상태로서(완전히 개인적인 상태) 비건강unhealth의 느낌 혹은 사적 경험이다.
② 간혹 질병이 아닌 질환상태가 계속 유지되기도 한다. patient's experience of ill health
③ 질환은 가끔 질병을 동반하지만 암이나 당뇨의 초기상태처럼 특정질병으로 선명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즉 “질환은 때때로 질병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 이 표의 저작권은 의학의 철학(CIR,2020) 출판사에 있음.
병약함
sickness

① 병약함sicknes은 질환의 사적 느낌이 공적으로 외형화된 양상이다. Sickness is the external and public mode of unhealth.
② 병약함이란 사회적 질환에 속한다. 병약함은 사회적으로 용인된 어떤 역할을 하기도 한다.the role negotiated with society
③ 질환에 기반한 병약성은 얼마나 심한 질병으로 발전할지 모를 가장 불확실한 상태이다.
④ 동일 질병자라도 다 같은 병약성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⑤ 병약성의 기준은 다음과 같은 비교법으로 더 쉽게 설명된다. 만성질병자는 급성질병자보다 더 병약하다. 그리고 정신질병자는 외과질병자보다 더 병약하다.
⑥ 병약sick의 반대는 편안함secure이다.


이런 질병 개념을 고려하여 다양한 질병 모델이 나올 수 있다. 현재 논의되는 질병 모델은 대체로 과학주의 의학이라는 생의학 모델과 그에 상대적인 문화주의 모델 그리고 문화주의와 과학주의를 조정해보려는 통합주의 모델로 크게 나눠질 수 있다. 통합주의 모델의 한 가지로 볼 수 있는 생태주의 질병관도 있다. 앞서와 같이 이런 질병모델을 하나의 표로 간단히 설명한다.(최종덕 2020, 211)


질병 개념

기준

모델 분류

연구자
<질병 개념>
<질병 정의>

문화주의 모델

King

가치지향
반기능지향
사회문화적 가치개념을 통해 질병을 설명 (“disease”)








Culver,
Gert

가치지향
반기능지향
죽음/통증/무력함//부자유 조건에 근접하거나 합치되는 상황(“malady”)








생의학 모델

Boorse

반가치지향
기능지향
실재하는 자연종 질병원인자로 인해 생물학적 기능장애 유발(“disease”)


통합주의 모델

Wakefi-eld

가치지향
기능지향
문화적 요인과 객관적 메커니즘의 결합으로 질병을 설명(disorder)


이 외에 생태주의 모델을 제시한 의철학자 타운센트의 논지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Mcelroy and Townsend 2015, 20-28)
① 질병 원인은 단일하지 않으며 복잡하고 다중적이다.
② 개인 질병은 (물리적/사회문화적/유기적) 환경에 상관적이다.
③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을 묶는 하나의 삶의 니치niche 안에서 질병과 건강이 전개된다.

4. 생태주의 모델의 원조: 질병과 건강은 하나의 신체적 스펙트럼이라는 깡귀엠의 의철학

문화주의 질병모델이나 생태주의 질병모델의 철학적 시초는 질병과 건강을 몸이라는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보는 조르쥬 깡귀엠(Georges Canguilhem, 1904-1995)의 관계론적 의철학에 있다. 깡귀엠의 의철학은 ‘정상’과 ‘비정상’의 기계적 구획을 부정하는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규범은 그것이 깨졌을 때 비로소 그 의미와 소중함이 인지되며, 생물학적 기능은 그 기능이 잘 안 될 때 비로소 기능의 필요성을 실감한다. 마찬가지로 생명체 활동의 비정상은 정상을 비로소 느끼게 하는 단초일 뿐이지, 비정상의 상태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깡귀엠의 입장이다.(깡귀엠/여인석 옮김 2018) 깡귀엠에서 ‘정상’ 개념을 잉태하고 있는 그 어떤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병리는 (i)생리의 연속선에 있으며 (몸의 병리 현상과 생리 현상은 서로 구획되지 않으며 단지 상대적 차이만을 가진다는 뜻) (ii)환경의존적 변화 상태이며 (iii)여러 측면을 보이는 정상의 한 측면일 뿐이다. 병리는 비정상이 아니다. 생리학의 정상을 보여주는 계량적 기준은 없다. 그렇다고 생리학이 비과학이라는 뜻은 아니다. 생리학은 신체의 대상과 그 기능을 객관화하고 정량화하려는 존재의 과학이기보다는 생명개체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관한 ‘과정의 과학’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깡귀엠에서 ‘정상’이란 고정된 ‘존재’ 개념이 아니라 변화하는 ‘과정’ 개념에 해당한다.(Canguilhem 1991/2nd edition, 203) 의철학자 유네만Huneman은 깡귀엠 생리학의 철학을 ‘관계론’으로 해석했다. 유네만은 정상적인과 병리적인 것을 연속적이며 하나의 신체적 스펙트럼으로 보았다. 건강과 질병, 정상과 비정상 혹은 병리와 생리의 차이 자체가 상대적이며 문맥의존적이라는 것이다.(Huneman et al. 2015, vii)

5. 의료인류학과 의철학의 만남: 의료 생태주의와 건강정치 생태주의

의사학과 의철학 그리고 의료인류학을 연동시킨 윙컬맨의 질병관은 새로 나온 생태주의 질병모델과 조금 더 오래 된 깡귀엠의 질병관을 묶어낸 사유의 소산물로도 볼 수 있다. 질병이 절대적이고 객관적 실체로서의 질병인에 의한 것이라는 의과학 모델을 윙컬맨은 비판적으로 반성한다. 질병과 건강 사이의 경계선이 상대적임을 강조한 윙컬맨은 "정상과 비정상,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가의 판단도 문화적 차이에 따른 상대적 가치에 의존한다. 증상도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콘텍스트마다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Winkelman 2009, 208) 여기서 서로 다른 문화적 콘텍스트를 윙컬맨은 심리-생리학적 상징주의(psychophysiological symbolism)로 설명한다. 즉 문화상징이 신체 생리학에 영향을 미치면서, 거꾸로 의학적 개념들이 심리적 차원의 개인 상징과 문화적 차원의 집단 상징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의술 관련 미신이나 주술 나아가 정력제 등과 같은 주술적 상업화의 집단적 고정관념, 풍속적 믿음, 금기와 터부들로부터 내 몸의 생리학적 반응이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 윙컬맨의 심리-생리학적 상징주의 의철학이다.(Winkelman 2009, 서론)

통합주의 질병모델이나 심리-생리학적 상징주의 모두 의과학 모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과학 모델만의 일방향적인 질병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대과학의 꽃인 분자유전학에 기반한 의과학이 아무리 크게 발전했다고 해도 그런 의과학적 진단과 치료에 드는 비용이 지나치다면 일반 환자나 소외 계층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코비드-19 위기에 당면한 현실에서 미국이나 유럽에서 마스크 사용을 사회적으로 터부시하거나 정치적으로 거부했었던 불과 1년도 안 된 사회적 오류를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나의 몸은 개인적인 몸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교집합된 몸이기도 하다. 의료 차원에서 개인의 질병이나 질환은 개인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항상 사회문화적 네트워크 안에서 풀어가야 한다. 이런 입장을 의료생태주의라고 한다. 개인의 절대 건강이나 절대 질병이라는 사회적 편향에서 벗어나 건강과 질병의 상대적 거리를 인정하고 개인의 몸은 동시에 사회적 몸이 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의료생태주의의 기본이다.(McElroy 1996) 의료생태주의의 하나로서 ‘건강 정치생태주의’political–ecology of health가 있는데, 소외계층, 편향권력, 기후위기 등의 문제들을 인류학과 여성주의, 지정학과 보건복지 등의 연결프로젝트로 접근하는 시도이다.(Hvalkof and Escobar 1998:425)

6. 안토노프스키의 건강생성 패러다임

건강 생태주의에 따르면 건강은 내 한 몸의 질병을 피하고 방어하는 데 주력하는 소극적 건강이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삶의 안녕을 향하는 능동적 삶의 태도이다. 의료사회학자 안토노프스키(Aaron Antonovsky; 1923-1994)는 이러한 태도의 일관성을 좀 더 가다듬어 “건강생성 패러다임”salutogenic paradigm으로 이름붙였다. 안토노프스키의 건강생성 패러다임은 (i)건강과 질병 사이의 이분법적 구획traditional medical-model dichotomy separating health and illness을 버리고 (ii)우리 몸은 “건강상태와 질병상태의 연속성”health-ease versus dis-ease continuum에서 환경에 공존하며 (iii)질병 방어의 소극적 태도가 아닌 사회적 안녕을 향한 생애활동과 그러한 지속적 태도를 말한다.(Antonovsky 1979; Mittelmark et al. 2017, Introduction) 건강생성모델에서는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면서 외부 자극을 예측하고 설명할 수 있는 주체를 지향한다. 상황을 포용하고 욕망을 제어하는 일관된 일상의 연습을 지속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능동적 행위가 바로 건강이라고 말한다.(Antonovsky 1987, 19-21)

안토노프스키의 건강생성 모델을 아래처럼 요약했다.(최종덕 2020, 240)
① 인간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없다.
② 신체건강은 심리적 안정감과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정신건강 상태를 통해서 안정화된다.
③ 질병과 건강 사이를 오가는 교량은 주체의 자신감에 달려 있다.
④ 그 자신감은 생애에 걸친 삶의 의미를 가지는 데 있다.

7. 하폰의 생애건강발달 모델

생태주의 건강철학 연구자인 강신익 교수에 따르면 건강이란 생애에 걸쳐 삶에 대한 전반적인 적응의 하나라고 한다. 즉 건강은 일정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해가는 과정이며 패턴이라는 뜻이다.(강신익 2007, 133) 그리고 소위 베이커 가설이라고 불리우는 ‘건강과 질병의 발달기원 가설’(DoHAD)을 만든 베이커에 따르면 건강은 주어진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개인마다의 발달과정에 놓인 동적 상태라고 한다.(Bateson and Barker et al. 2004) 이러한 건강의 뜻은 고정된 기준에 의한 정적 상태가 아니라 변동적이고 과정적이며 생애사적인 동적 상태임을 보여준다. 이런 사유의 구조는 하폰의 건강발달 모델의 사유구조와 비슷하다. 하폰은 안토노프스키의 건강생성 모델, 베이커 가설, 그리고 생태주의 건강론 등의 연구모델을 정형화하여 ‘생애건강발달 모델’lifecourse health development (LCHD)이라는 이름으로 확대발전시켰다. 하폰 연구팀은 논문에서 건강발달health development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건강발달은 태아환경에서 시작되어 생애 전체로 이어가면서 개인의 건강과 집단의 건강경로 최적화의 전략을 생성하는 역동적 과정이다.” 나아가 한 개인이 처한 생물학적 환경, 물리적 환경, 그리고 사회적 환경에 성공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해주는 발달역량으로서 건강이 정의된다.(Halfon, Larson, Lu, and Tullis 2013, 344, 355)

필자는 하폰의 생애건강발달 모델을 설명하는 여섯 가지 기본원칙을 아래처럼 정리했다.(최종덕 2020, 243)
① 건강은 정적 상태가 아니라 발달가능성이 어떻게 발현되느냐를 중시하는 동적 상태이다.
② 건강은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인 발달과정을 갖는다.
③ 건강발달은 다층적이고 다중의 양상과 수준에서 복잡계와 비선형 현상이다.
④ 건강발달은 개인의 경험과 인생여정을 주는 사회구조에 반응되며, 또한 그런 경험의 시기가 언제 오느냐 하는 문제에 민감하다.
⑤ 환경조건에 따라 변화해야 하거나 때로는 기존 형질을 그대로 유지해야만 하는 국면에서 우리 몸은 몸의 회복 탄력성과 가소성resilience and plasticity을 증진하려는 진화적 추동력으로 적응되어 있다. 우리 몸의 건강발달 형질은 이런 적응의 소산물이다.
⑥ 분자생물학적 작용, 생리적 작용, 행동 작용, 사회적 작용, 문화적 작용이 어떻게 서로 동기화되고, 상호작용의 시기가 언제인가의 상황이 건강발달에 있어서 민감한 문제이다.

8. 후성유전학과 발생계이론, 뇌가소성으로 본 건강

8.1 후성유전학: 유전자의 염기서열에 의해 유전자가 조절되는 것을 연구하는 분야가 유전학이다. 한편 유전자 염기서열의 변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외적 환경요인에 의해 유전자가 조절되는 현상을 연구하는 분야를 후성유전학이라고 한다. 후성유전학의 시조는 이와 관련한 노벨생리의학상 1965년 수상자 자크 모노이다. 모노는 DNA가 아닌 비-유전자 물질이 DNA라는 스위치 ‘스위치’라는 표현은 메타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유전학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개념화되었다.
를 켜고 끔으로써 유전자를 활성화하거나 비활성화시킬 수 있음을 알아냈다. 쉽게 말해서 후천적인 외부 환경의 변화가 몸의 형질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를 간접적으로 담고 있다.(최종덕 2014, 221)

8.2 발생계이론: 후성유전학 이후 진화론과 발생학을 연결한 발생생물학이 정립되었는데, 발생생물학으로부터 철학적 발생계 이론developmental system thoery;DST이 탄생되었다. 발생계이론을 구축한 오야마와 그리피스에 따라 그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Oyama, Griffiths, and Gray 2001, 2-6)
① 형질변화에 미치는 선천적 요인 외에 후천적 원인이 있다.
② 후천성은 복합적인 다수의 환경요인에 의존된다.
③ 본성은 유전의 산물(형질)이지만, 양육은 후천적으로 그리고 환경마다 다르게 형질을 변화시킨다.
④ 존재론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으며, 불변의 실체가 아닌 변화의 관계 자체가 존재이다.

8.3 뇌가소성: 신경세포는 1,000억 개 수준인데, 신경세포를 서로 연결하여 신경전달물질을 유출하고 유입하는 시냅스synapse 부위는 최소 400조 개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신경세포는 증가하지 않지만 뉴런세포가 안정된 후 더 이상 재분열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해마 부위 등 일부 신경세포는 나이 들어서도 세포분열이 일어난다고 밝혀졌다.(E.Gould and McEwen 1993)
시냅스는 환경에 따라 후천적 가지치기를 통해 신경세포 간 연결의 강도나 연결의 접점에서 변화가능하다. 이를 시냅스 가소성 혹은 뇌가소성brain plasticity이라고 말한다. 시냅스 가소성은 행동양식이나 생각방식의 지속적인 변화에 의해 시냅스 접점과 틈의 새로운 경로와 강도변화가 유도될 수 있다는 점에서 후천적 가소성을 강조한다.

8.4 환경 상관적 신체변화: 후성유전학, 발생계이론 그리고 뇌가소성은 다음을 알려준다. 첫째 개인의 건강은 환경에 의존적이다. 둘째 건강함이란 그 어떤 고유한 형질기준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다. 윙컬맨은 이 중에서 뇌가소성 논제를 건강 개념과 정신생리학에 모델에 적용했다고 스스로 말했다.(Winkelman 2009, 220)

9. 개인화된 건강의 딜레마: 건강 비즈니스

미국 보디빌더로서 활약했던 앤드레이드Eddie Andrade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건강의 기준이 무엇인지 반성한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철인경기 최우수 선수였고 나이 들어서도 최고 근력의 몸매를 유지하면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60세가 넘어서도 보디빌더 선수생활을 하면서 여전히 30대의 몸매를 가진 그는 주위로부터 많은 찬사와 부러움을 받았을 정도였다. 그런데 65세를 맞은 어느 날 아침 그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극단의 선택을 했다. 남들이 눈치 못 챘던 건강강박증으로 시작된 우울증으로 그는 65세 나이에 권총 자살을 한 것이다. 나이가 더 들면 현재의 몸매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극심한 불안증에 시달려 왔었다. 남들이 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건강했는데, 그리고 실제로도 그는 건강했지만 자신에게는 자신의 누추하고 보잘 것 없는 미래의 그림자만이 비춰질 뿐이었다. 결국 그는 남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죽음으로 향했다.(Austad 1997, 123) 건강은 자기가 자신을 얼마나 능동적으로 비춰 보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을 이야기를 통해 말했다.

건강을 위해서 혹은 정력을 위해서나 미용을 위해서 사람들은 온갖 약제와 음식을 섭취하고 있다. 무엇인가 부족하고 결핍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그것을 채우려는 행위이다. 질병이나 노화는 무엇인가가 결핍되어 있거나 퇴화된 상태라고 여긴다. 그래서 결핍된 몸을 채우고 퇴화된 기능을 교체하여 건강과 불로를 찾으려고 한다. 우리들은 노화와 질병을 피해가려고 ‘청춘의 샘’을 찾아가는 진시황제를 꿈꾸고 있다. 과연 무엇인가를 내 몸 속으로 잔뜩 채우는 사람이 건강한 것인지 되물어야 한다. 잔병치레도 하고 빈약한 체격에 식사량도 적은데 큰 병 없이 생애를 지내온 사람이 있는 한편, 원기왕성하고 활동적이며 보양식이나 보약도 잘 챙겨먹었는데도 불구하고 50대에 2형 당뇨와 고지혈증 진단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무엇이 건강한 것인지 되물어야 한다. 우리는 건강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채우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무엇인가를 비워야 건강해진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이 점이 현대인의 건강 딜레마이다.

건강 딜레마는 인간이 갖는 욕망의 한 단편이다. 욕망은 생명의 존재를 보이지 않게 조금씩 파쇄하는 마력이지만 한편 창조의 실존을 유지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건강 강박증에서 벗어나라’, ‘욕심을 버려야 건강해진다’ 등 개인 차원의 격려와 충고는 도덕적이기는 하지만 당위적인 덕담에 그칠 수 있다. 자본주의 현실에서 건강의 딜레마를 조작하는 외부의 원인을 인지하는 일은 도덕적 덕담 이상으로 중요할 수 있다. 그 외부 원인의 첫째는 건강을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온갖 건강 비즈니스에 있다. 비즈니스의 목적은 이윤에 있으며 이윤 창출은 소비 확장에 있으므로 소비 확장을 위해서 관련기업은 소비자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몸속에 채워놓도록 설득하고 유혹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경제기초론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겠지만, 계속 채워야 산다는 광고 유혹에 이미 빠져버린 나에 대한 책임은 나 개인에게만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더군다나 지구인의 10% 가까운 사람들이 극빈층인데, - 2020년 기준 극빈층 7억3천만 명(세계인구비 9.4%; 1일 생활비 1.9달러, 1년 생활비 700달러 이하 계층) World Bank Group 2020, “Poverty and Shared Prosperity 2020”, 12
- 심각 수준의 기아 인구: 55개 지역(국가)에서 1억 5,500만 명 (WFP 2021, “Global Report on Food Crises 2021” UN World Food Programme. 5 May 2021)
- 이 두 보고서는 특히 코로나-19 이후 극빈층의 두드러진 증가폭을 경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불평등 바이러스’로 진화하고 있다고 보고했다.(옥스팜 불평등 보고서(2021년1월25일))
한편에서 먹을 것이 넘쳐나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조금만 비우더라도 자신의 건강은 물론이고 좁아진 지구에 우리와 같이 사는 빈곤층에도 좋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0. 발생학적 건강에서 생태적 존재론으로

개인의 건강과 사회의 건강이 연동된다는 이런 강조점은 ‘건강 정치생태주의’political–ecology of health와 맥락을 같이한다. 본문의 5절, 6절, 7절에서 개인의 심리는 사회문화적 공동체에 상관적임을 알 수 있고, 5절과 8절에서 개인의 심리가 개인의 생물학적 생리작용에 상관적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건강과 질환은 공동체의 건강과 질환에 상호의존적이며, 주체의 행동과 의지를 낳는 환경이 몸의 생리학적 변동을 낳을 수 있으며 그 역도 가능하다. 이렇게 심리와 사회 그리고 생리라는 건강-질병 구조의 생태적 삼각대는 이 글의 중심 요지이다. 나의 몸과 사회(공동체)가 공유하는 인생경로 전반의 생애활동이 ‘발생학적 건강’의 기반이며, 이를 삶의 생태적 존재론이라고 표현했다.

11. 사례: 코비드-19와의 공존

외부 기생체와 숙주인 나 사이에서 논리적으로 회피, 관용, 중화, 박멸, 제압, 병존, 공존의 관계가 가능하다. 좁혀서 말하면 전쟁 혹은 화해의 관계이며, 숙주 입장에서 볼 때 관용 혹은 저항의 관계이다.

숙주(tolerant hosts)의 관용성
숙주(resistant hosts)의 저항성
•기생체의 중화작용에 친화적으로 대응
•공존의 관계
•항상성 유지를 위한 수준의 염증
•숙주의 항상성과 안정 상태 유지
•주고받는 상호교환이론으로 표현됨
•기생체의 회피 전략과 제압 전략에 대응
•배제의 관계
•과도하고 무차별한 염증반응
•숙주의 병리적 상태를 유도
•숙주에 대한 기생체의 내성 강화
(Schneider 2008)를 (최종덕 2020,443)에서 따옴)

전쟁 메타포로 볼 경우 기생체 입장에서는 자기증식과 확산이 어려워지며 숙주 입장에서는 사이토카인 같은 과잉 염증반응이 생겨서 외부 기생체와의 전쟁에 이기더라도 자기손상이 심할 수 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감염성 질병 역학 전문가인 이월드(Paul W. Ewald, 1953- )의 연구성과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월드의 의료역학medical epidemiology은 바이러스성 감염성 질병 연구에서 숙주인 인간의 입장에서 벗어나 기생체인 바이러스의 관점에서 볼 것을 제안한다. 즉 인간 중심의 질병 해석은 해당 질병체 즉 병원체를 이길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이월드는 강조한다. 오히려 바이러스 입장에서 질병을 볼 때 숙주 사람은 기생체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월드는 이런 질병관을 의료생태학적 질병체 이해라고 했다.(Ewald 1980)

생태학적 관점에서 감염성 질병의 기생체와 숙주 사이의 관계, 즉 박멸to knock down과 길들이기to domesticate 방식 중에서 길들이기 방식이 숙주인 인간에게 대체로 더 효율적이며 더 실질적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호흡기증후군을 갖는 사스SARS처럼 분열 속도가 빠른 바이러스일 경우 돌연변이의 발현폭도 커지므로 그만큼 기생체 박멸의 방식은 어려워진다. 독성이 강한 질병체는 숙주의 이동력을 약화시켜 결국 기생체 자신의 확산 전파가능성도 좁아지므로 기생체 입장에서 불리할 수 있다. 독성이 강한 기생체가 돌연변이 하는 경우 대체로 독성이 약하되 대신 확산 감염력을 높이는 쪽으로 진화되기 쉽다.(Ewald 1994, 6) 그 결과 감기처럼 독성이 약해진 기생체는 숙주인 인간과 공존하기 쉬워진다. 현재 진행 중인 코비드-19의 경우 감기 바이러스처럼 진화할지 아니면 독감 바이러스처럼 진행할지 혹은 천연두 바이러스처럼 박멸의 운명을 맞을지 누구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다. 이월드의 의견으로 보자면, 코비드19 역시 인간과 공존의 관계 즉 백신을 통한 길들이기 방식으로 갈 때 그들이나 우리들이나 편이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현 백신이 변이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는지의 첨예한 문제는 바이러스 박멸 방식과 길들이기 방식 사이에서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백신이 기존 바이러스에 효과가 탁월하고 변이 바이러스에 효과가 미진하다면 그런 바이러스는 인간과 공존하기 어려운 박멸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들에게는 더 큰 위기를 줄 수 있다. 반면 백신의 효과가 변이 바이러스에도 유의미한 효과가 나타난다면 이 바이러스는 인간과 공존할 조건이 될 것이다. 현실의 예를 들어보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처음 나타난 코로나바이러스-19 변이체 E484K는 노바Novavax 백신 3상 실험 결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60% 이상의 효과를 보이며, 영국에서 나타난 변이체에 대해서는 86%의 효과를 보였다. 변이 이전 바이러스에 대하여 96% 효과를 보인 것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유의미한 값에 해당한다. 다른 백신의 경우 지금까지(2021년4월 기준) 나온 공식적 통계는 없지만 대체로 변이 바이러스에도 유효한 백신효과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BMJ 2021) 이 보고내용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일은 학회 현장에서 한다.


12. 큰 건강 Große Gesundheit

건강의 의미와 문제의식을 철학자가 다루어야 함을 강조한 가다머(Hans-Georg Gadamer 1900-2002)는 의료와 철학적 해석학을 연결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가다머는 질병을 정복하고 질병을 제거한다는 말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말한다. <건강의 비밀> 영어본으로는 <건강의 수수께끼>The Anigma of Health로 번역되었다.
이라는 가다머의 저서에서 죽음, 생명, 분노, 자유, 건강의 개념은 병원이라는 의료기관의 소속이 아니라 개인의 주체적 이해와 해석에 해당된다고 강조했다. 내 몸은 측정measurement의 주관이면서 동시에 느낌feeling의 주체라는 의철학자 케셀의 말은 유명한데(Cassell 2004, 182), 캐셀이 말하는 느낌은 가다머의 해석된 몸의 자료가 될 것이다. 정량화 가능한 측정의 자료와 달리 느낌의 범주는 복잡하게 얽혀있고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 사이에 차이가 생기며 다른 느낌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건강과 질병 사이의 함수는 숨겨져 있다고 했다.(Gadamer 1993, 173)

건강은 대상화된 독립 개념이 아니라 세계 속에 들어와서 나의 현존재에 맞닿아 있는 것으로 In-der-Welt-Sein, Mit-den-Menschen-Sein, 질환이나 질병 역시 건강과 동등한 위상에 있다. 삶이란 질병과 건강 사이의 무경계의grenzenlos 경험세계라고 하는 것이 가다머 의철학의 핵심이다.(Gadamer 1993, 144) 이러한 무경계의 삶 속에서 오히려 큰 건강이 생성될 수 있다고 신진 의철학자 보르크는 말한다. 보르크는 니체의 큰 건강die große Gesundheit 개념을 질병과 건강의 무경계의 삶이라는 가다머의 개념으로 재해석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Borck 2016)
① 큰 건강이란 지금의 현상태로 제한되고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적이고 정신적인 가능태lebendiger, geistiger Potenzialitat를 포괄한다.(Giesz 1990)
② 자연적 한계를 극복한 신체적 건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③ 육체로부터 자유로운 정신의 건강을 포함하는 것이 곧 “큰 건강”이다.
④ 건강에 실패할 수도 있고, 그렇기에 실수로부터 자유로운 몸이다.
⑤ 가다머의 건강 개념은 <삶의 의학>이다.

물론 가다머가 말하는 건강 개념은 니체의 개념과 다르지만, 가다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건강은 질병을 통해서 더 자각되고, 질병은 제거되거나 부존재화할 수 없다는 점을 말하는 데 있다. 사람들이 아플 경우에도 아픔의 주체를 계속 유지할 때 건강도 유지된다는 점을 가다머는 강조한다.(최종덕 2020, 535)

후기 산업사회에 들면서 노화 이미지는 결핍, 무력, 퇴화 쪽으로 더 기울었다. 젊음은 건강, 노화aging는 질환이라는 이분법적 구획의 간극은 더 깊어가고 있다. 실제로는 나이듦aging이란 태어나면서 시작하므로 젊음 속에 노화가 내재되어 있는 셈이다. 일상의 삶 안에 질환이 내재되어 있다는 말과 같다. 질환이 내재된 삶을 인정하고 ‘내부적으로 관찰하는’(성찰) 삶의 철학적 근거가 여기서 말하는 삶의 생태적 존재이다.

13. 삶의 생태적 존재론

필자가 말하는 “삶의 생태적 존재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i)건강과 질병의 이분법적 구획을 부정한다. 현존하는 삶이란 내가 태어나면서 이미 노화와 질환이 함께 하고 있으며 생명은 죽음과 함께 한다는 점을 직시하고, 질환과 건강이 배타적 관계가 아님을 인정하는 일이다. (ii)우리 몸은 환경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공존관계이며, 그 환경은 자연환경만이 아니라 사회환경을 포함한다. (iii)건강과 질병은 발생학적 구조의 일환이다. (iv)건강과 젊음을 찾으려는 실존적 욕망을 부정할 수 없지만, 건강과 노화방지를 영원히 약속하는 ‘청춘의 샘’은 허상임을 인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v) 생태적 건강을 위하여 무엇을 ‘채움’이 아니라 ‘비움’을 실천해야 한다. 먹을 것이 지나치게 풍부해진 현대사회에서 채우는 길보다 비우는 길을 찾아가는 실천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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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한철학회 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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