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공부의 길잡이
1996 서평 : 신중섭 교수의 현대의 과학철학에 대한 서평
신중섭 교수가 번역하고 서광사에서 낸 현대의 과학철학 입문에 대한 서평
                                                                서평자 : 최종덕


거의 교리적인 위상을 지녔던 헴펠의 과학철학 입문서가 쿤에 의해 도전을 받으면서 과학철학 방법론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논쟁되어 왔다. 대개 논쟁은 대립적인 양 극단이 있어야 하며, 과학철학에서 그 양극의 주인공들은 i)합리주의 대 역사주의 혹은 ii)과학적 실재론 대 실용주의 혹은 iii)가치중립주의 대 가치상대주의 혹은 iv)실증주의 대 “무엇이라도 좋다”(anything goes)가 해왔다. 
역시 신중섭 교수가 번역하여 우리말판으로 나온 차머스나 브라운의 과학철학 책들은 앞서 말한 논쟁의 대립관계에서 벗어나 양 쪽을 두루 섭렴하는 좋은 책들이었다. 그러나 그 책들은 양 쪽 논의를 무리없이 기술하고 종합하기는 했지만 저자의 목소리가 담겨진 책들은 아니였다. 반면 오히어의 이 책 “현대의 과학철학 입문”은 양 쪽 논의를 저자의 입장아래서 새롭게 종합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실증주의 방법론을 채택하는 정당화주의의 과학철학에서 나오는 귀납론에서부터 귀납주의 한계를 지적한 포퍼의 논의, 쿤의 역사주의와 최근 많이 이야기되는 과학적 실재론과 심신론에 대한 환원론까지를 다 싣고 있다. 그리고 다른 과학철학 입문서에서 보기 힘든 과학에서의 가치의 의미를 비록 한 장(章)이지만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오히어는 분명히 과학적 실재론자인 듯하다. 다만 이책의 성격이 일반인과 대학생을 독자로 한 입문서이기 때문에 저자의 실재론적 입장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 오히어의 또다른 입장은 과학의 가치중립적인 성격을 밝히는 데 있다. 즉 과학의 발전에서 과학자 개인의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점은 쿤과 대립되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과학의 역사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오히어는 정당화의 맥락과 발견의 맥락이 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발견의 맥락에는 “지적,재정적,정서적,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주관적” 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일단 만들어진 이론은 차거운 심판대 위에서 자연과 일치되는 가를 심판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오히어는 실재론자이다. 서구에 있어서 실재론은 어떤 모습이든지 플라톤의 실재론을 함의하고 있지만 오히어의 과학적 실재론은 오히려 플라톤과 거리가 먼 듯하다.
이 책의 또다른 의미는 다른 과학철학 책들과 달리 방법론 논의에서 과감히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강의실에서 과학철학을 강의하다 보면 가장 호응이 없는 부분이 귀납론이나 확률론인데 이 책은 그 부분도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도록 씌여진 것 같다. 그러나 입문서가 갖는 공통된 한계이기는 하지만 짧은 책에 많은 이야기를 담다보니 치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번역자의 개인적 성향에 따르는 것이기는 하지만 원문에 너무 충실한 직역의 형태로 되어 있어서 오히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사소한 지적이지만 9 장에서 “지적활동의 근원으로서의 이유와 정신상태” 보다는 지적활동의 근원으로서 동기와 심적 상태로 하는 것이 훨씬 나을 듯 하다.
이 책의 역자인 신 교수는 이미 5 권 이상의 과학철학 책을 번역한 것으로 알고 있다. 독특한 것은 과학철학 최근의 흐름에 따르는  주요한 과학철학 책들을 시대순으로 번역했다는 점이다. 장기적인 역자의 의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반독자에게 과학철학의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 같다. 비전공자로서 과학철학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차머스의 책과 오히어의 이 책을 같이 보면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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