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담론의 철학적 철학적 해명
1997 논문 : 동아시아 담론의 철학적 철학적 해명,

계간지 <상상> 5권2호통권16호(1997.05) 41-53쪽


1. 왜 동아시아 담론인가

요즘들어 많이 논의되는 동아시아 담론은 동아시아의 정체성 찾기에 대한 자각과 반성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자각과 반성은 현재의 상황이 무엇인가를 상실하고 있다는 위기의식 위에서 그 탈출을 의도하는 내적 작업이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며, 그렇게 찾기 시작한 연유가 무엇인지를 물어 볼 필요가 있다.
정체성의 요청은 대자성에서 온다. 즉 타자와의 접촉은 정체성 찾기의 충분조건이 아니더라도 필요조건이 된다. 문제는 논리적 필요조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호접촉의 필요조건이 후일 우리 역사의 질곡을 낳게 한 진화적 변수를 담고 있었다는 점이다. 진화적 변수라는 의미는 우리 역사의 특수성과 서구 제국주의의 일반화된 의지가 혼재된 상황변수이다. 우리 역사에서 동서간의 갈등이 가시화된 150여년 전에서부터 지금까지 그 상황변수는 일제 수탈과 전쟁이라는 불행과 문화제국주의에 따른 천민자본주의의 결과만을 남게 하였다.
그래서 오늘의 동아시아 담론의 내용적 수준이 과연 19세기 말 보다 나아진 상황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물어야 한다. 19세기 우리 역사에서 동학찾기의 담론이 서학의 담론보다 오히려 늦게 시작됐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우리는 오늘의 역사 속에서 혹시 과거보다 더한 오류의 역사가 또 다시 반복되고 있지 않는가를 되물을 필요가 있다. 헌팅턴의 주장이 옳다고 볼 수 없을지라도 오히려 과거 처음 만난 두 문명의 충돌은 단순위기 상황에서 나온 일차적인 현상이지만, 오늘의 충돌은 충돌이라기 보다는 문화적 추돌에 가깝다. 우리에게 있어서 문화적 추돌이란 과거 제국주의 역사의 맹아가 낳은 군사, 경제, 정치, 문화와 학문 전반에 걸쳐 심각하게 꼬여서 밀려가는 복잡한 상황일 것임이 분명하다. 아무리 복잡한 상황이라도 없는 이유는 없다.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것이 이성적 인과관계의 범주밖에 있었으며, 일방적 비교지표의 허울이였고 귀에 건 코걸이였기 때문에 문제삼고 있을 뿐이다. 결국 동아시아 담론은 한가한 담론으로 그치는 일이 아니라 실천적 문제해결의 실마리로서 그 과제를 풀어가야 할 것으로 본다.

2. 비교와 우열

비교의 관점이 얼마나 허상이고 편협적일 수 있는 지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이미 말했다. 비교는 항상 일정 기준점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서구 중심의 근대화 이후 항상 비교를 당해왔으며 비교를 주체적으로 해 본 경험이 적다. 예를 들어 “동양에는 왜 과학이 발전되지 못했는가?”와 같은 흔한 질문이 바로 전형적인 서구중심의 비교의 틀이다. 문제는 비교를 하면서 동시에 우열을 가른다는 점이다. 비교와 우열을 섞는 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법과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해석이 섞여져 있는 것과 같다.
비교장르의 모체가 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법은 종과 류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 종과 류는 기본적으로 대상에 대한 범주분류에서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은 대상을 나누는 주체의 목적이 깔려있다. 이러한 주체의 목적은 칸트에 와서 선험적으로 주어진 인간오성의 형식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여기서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형식이란 실제로 서구의 합리성이 서구사상의 근간으로 자리잡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우열의 장르란 비교의 장르가 수단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이를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도구화된 이성”이라는 표현으로 말한다. 십자군 전쟁에서 동방토벌은 인간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바바리안들을 죽이는 일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정신을 훼손시키는 일이 절대로 아니었다. 제국주의는 침탈이 아니라 선교와 문화의 이식행위로서 오히려 좋은 일을 한 것이다. 진화론에 대한 해석은 다윈도 몰랐던 약육강식의 논리로 이어졌고, WTO의 논리는 세계시장 점략이 아니라 호혜 원칙의 일원화라고 한다.
문제는 비교와 우열의 장르가 서구중심적이었다는 사실과 동아시아는 피동태의 주변세계였다는 점이다. 우리는 동아시아 담론을 이야기하면서 중심과 주변의 이분논리로 우리 자신을 언제까지나 자조적으로 보고만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상당히 자기비판적으로 그리고 학술적으로 반성하는 자리가 많았다. 물론 이제 자조적 반성만 하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과가에는 분명히 중심과 주변의 논리가 서양과 동양의 지리적 공간에 적용되어 왔다. 이렇게 지리적 공간의 차원에서 서양과 동양이 곧 바로 중심과 주변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대한 자조적 반성은 이제 절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중심과 주변의 논리가 공간적 분리가 아닌 동아시아라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새롭게 표출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는 후발 자본주의와 아류적 신제국주의의 모습을 벌써부터 강하게 띄고 있는 동아시아의 문제가 지리공간적 차원에서만 반성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이나 홍콩이라는 동양이 “서양보다 더 서양적인” 슬픈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3. 서구 계몽주의의 철학적 구조

물론 이러한 동아시아의 자괴적인 내부모순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이 질문은 묘하게도 동아시아에서 서구 자본주의의 이식이 어찌 그렇게 빨리 될 수 있었는가의 질문과 유사하다. 따라서 그 답도 비슷한 방식으로 내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 전형적인 답안은 유교식의 계급사회의 윤리구조가 서구 자본주의 성립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관과 유사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답이다. 이러한 답은 실제로 헤겔이 본 비하적 중국관에 대하여 헤겔과 같은 서구 구성원이지만 발전적 반작용으로서 나타난 막스 베버의 정서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면 나는 어디서 그 원인을 찾을 것인가? 나는 바로 이 질문 자체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답은 뻔히 분석적이고 분류적이거나 아류실증적인 답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그 답에 만족할 수 없는 잘못된 습관으로 학문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천적 대안으로 승화될 수 있는 길이 필요하고, 그 길은 역사문맥과 고립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이제 역사의 문맥은 동양과 서양을 분리할 수 없는 흐름에 놓여져 있다. 이 흐름을 제대로 인정하려면 과거 동서양 사이의 갈등을 자양분으로 소화해 내야 한다. 그리고 그 갈등구조 속에 숨겨진 철학의 차별성을 추출해야 한다. 차별성의 분별은 고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화를 위해서 필요하다.
서양의 역사적 문맥과 동양의 역사적 문맥의 차별을 보기 위하여 먼저 서양철학의 근간을 본다. 서양철학은 “끝까지 원인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작업은 현상 이면에 존재한다는 최후의 실체를 찾아가는 노정이다. 그 최후의 실체는 움직임이 없으며 영원하며 완전하고 더군다나 탈인간적인 무엇이다. 철학에서는 이러한 존재를 찾는 가는 일을 형이상학의 과제라고 한다. 이러한 최후의 존재는 서양철학은 물론이거니아 서구의 기독교와 자연과학에서 최종적인 탐구대상이다. 철학의 어려운 주제인 자아, 실체, 제일 원인자, 절대자, 모나드, 이데아에서 처럼, 그리고 신이나 하늘의 최상법칙 등이 바로 최후의 존재에 해당된다. 이러한 최후의 존재가 바로 원인을 자아내는 최종적인 그 무엇이다.
이후 계몽주의 철학은 이러한 최후의 실체를 반성하기 시작했다. 중세를 거치면서 이러한 최후의 존재를 형이상학으로 무모하게 접근하는 태도를 반성한다. 오히려 계몽주의는 인간이 실제로 인식할 수 있고 인간이 현실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범위의 정도를 확인하는 작업을 구체화하였다. 최후의 실체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실증적인 인간의 한계를 확대하자는 의도였다. 이 때의 기본적인 신념은 곧 “계량화할 수 있는 것은 빠짐없이 계량화하라!”라는 명제로 축약될 수 있다. 이러한 명제는 합리성의 극대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수학의 비율이라는 뜻을 가진 는 reason의 어원과 같다. ratio는 계량화를 위한 기본척도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계몽주의 합리성을 함축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ratio는 계몽주의를 상징하는 톱니바퀴와 수평저울의 은유적 그림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한편으로 이러한 계몽주의 정신은 상당한 물적 조건을 필요하게 된다. 한계를 스스로 인정한 인간의 주체적 인식은 형이상학적인 ‘저’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적인 ‘이’ 세계의 모든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콩트의 실증주의적 태도를 다른 방식으로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구체적으로 새롭게 잉태되기 시작하는데, 바로 근대적 의미의 문명이 탄생하는 계기이다.
이때 근대적 의미의 서구문명이란 근대 과학혁명과 제국주의의 단초를 갖는다. 중세가 마감되면서 ‘저’ 세계로 가는 직접적인 길을 일단 보류하고 ‘이’ 세계의 현상적 구조를 먼저 밝힘으로서 현상만을 구하는(saving phanomena) 일이 바로 근대 과학혁명의 정신적 뿌리가 되었다. 현상을 구하기 위하여 가 필요하였고, 이 세계 속에서 콩트의 실증주의 명제를 실현하기 위하여 물적 자연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자연은 형이상학의 원천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에 의해 재단되어 질 수 있고 또한 재단되어져야만 하는 자원창고로 변모하였다. 그것은 문명의 보고였다.
문제는 자원창고로서의 물적 자연이 서구문명의 기하급수적인 물적 요청을 담지해 낼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바다를 건너가 모자라는 물적 자원을 보충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제국주의는 시작되었다. 근대서구의 제국주의는 이렇게 외적 필요성말고도 유럽의 내적 모순을 해결하는 중요한 판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산업혁명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서구 제국주의는 선교라는 정신적 지주가 큰 힘이 되었다. 근대 과학혁명 역시 제국주의의 성공을 보장하였다. 예를 들어 대포의 포신이 길면 길수록 대포알이 멀리 날라간다는 포물선의 낙하법칙은 지배와 종속의 관계법칙으로 연결되면서 구체적인 제국주의의 가능성을 실현시켜 주었다. 특히 기증선으로 시작되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제국주의의 패권은 범선으로 바다를 가르는 남유럽에서 기증선을 더 빨리 갖게 된 영국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이전까지 분열상을 면치못했던 독일과 신생 강국이 된 미국이 제국주의의 대열로 들어서면서 아프리카와 남미만으로는 그 물적 조건이 모자르게 되었고 결국 동아시아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유럽이 동아시아를 점략하기 이전 타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 때 동원되는 인력은 군인과 선교사와 고고학자만 있으면 되었지만, 동아시아의 식민화에는 추가로 인문학자가 더 필요하게 되었다. 서구인들 눈에는 동아시아에는 너무 많은 철학자가 있다고 보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필요성에 따라 동아시아의 철학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4. 동아시아의 갈등

앞의 이야기의 요점은 계몽주의로 해명되는 서구의 근대성은 그들의 제국주의 기본정신과 직접 연관된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최근 동아시아 담론과 함께 빠짐없이 등장되는 논의가 바로 탈근대의 문제인데, 서구 근대성에 대한 이해없이 탈근대만을 반복해서 말하니 공허한 논의로 그치고 마는 경우가 많다. 탈근대성의 허구를 보이기 위해서 반드시 서구 모더니티의 철학적 배경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더욱이 서구 근대성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구조 속에 숨겨지고 청산하지도 못한 제국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을 갖고 지난 150여년 동안 우리 역사의 질곡에 대해서는 다른 필자에게 맡기고 최근 현재사 속에서 잠복기를 마치고 드러난 오늘의 병리현상들을 본다.
인도의 역사하면 우리는 바로 사성계급을 또 올린다. 인도 카스트 제도의 기원은 벌써 아리안족의 지배시기부터 잡을 수 있으며 힌두교의 흥망성쇠와 더불어 많은 우여곡절을 격지만, 그 엄격한 제도화는 실제로 인도를 400년 이상 지배했던 영국 제국주의가 왜곡,강화한 것이다. 작은 영국이 큰 인도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영국인이 인도 전체를 지배하는 식이 아니라, 영국인의 입맛에 맞게 브라만 계급을 통해서 인도인 스스로가 인도인을 지배하게끔 하는 피라미드 다단계 지배방식을 개발한 것이다. 결국 오늘의 인도의 계급화의 질곡은 결국 과거 영국식민지 시대의 잔재라고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금 해방된 독립국가이기는 하지만 일본과 서구의 숨겨진 시장논리가 오늘의 우리 문화를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 병리현상은 우리 문화 현실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있어 다 말할 수 없지만 몇가지 예만 들어본다. 다 아는 사실로서 미군 범법자들에 대한 대한민국 검찰 송치율은 2% 내외로 일본의 33%나 독일의 50%에 비하면 한국은 거의 미국의 속국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제국주의의 3S 책술은 한국에서 보기좋게 성공한 사례라고 본다. 50년대 미국의 남는 밀가루 원조정책은 오늘날 한국을 밀가루 수입 의존 국가로서 확고하게 해놓았고, 식민지 청산을 못한 내외적 관계가 불신의 독재풍토와 성조기 티셔츠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는 젊은이가 활보하는 문화 종속을 낳았다. 은유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북미에서 들여온 황소개구리 그리고 블르길과 베스라는 육식어종이 우리 하천과 담수호의 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환경위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문화종속의 상징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계층이 소유하는 학문의 풍토이다.

5, 우리 인문학의 길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다양한 잡지와 세미나에서 동아시아 담론이 거론되어 왔다. 그리고 최근들어 동아시아 담론의 실천적 대안과 관련하여 전통과 근대 혹은 근대와 탈근대, 종속과 탈식민, 정체성 찾기와 민족주의, 과학비판과 문화담론, 문명의 위기와 관련하여 환경과 생명사상 논의, 우리의 글쓰기와 오늘 속의 고전읽기, 나아가서 정보사회론까지를 말하고 있다. 이 다양한 논의 속에서 우리는 자아찾기의 과제가 공분모로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박현채, 이영희, 조동일, 백낙청으로부터 조혜정, 정재서, 김영민, 김교빈의 젊은 세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갈등구조를 풀어가려는 시도가 인문학의 과제로서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문학의 식민적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하여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서구가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놓여져 있는 지를 바르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서구 지식인 층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서구 자신의 문명위기를 인지하고 그 해결 혹은 대안을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그 대안찾기의 인문학적 과제로서 그들은 먼저 스스로의 서구 이성비판을 큰 과제로 들고 나왔다. 이러한 자체적인 이성비판은 고전과학적 세계관과 산업화에 따른 왜곡된 인간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세계관으로서 주객분리에 대한 것, 혹은 자연과 인간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대한 비판이다. 과학에서는 기계론적 사유방식에 대한 비판이다. 형이상학에서는 결정론적 세계관에 대한 것이며, 방법론에서는 분석주의와 환원주의 혹은 연역적 사유에 대한 비판이다. 그리고 산업혁명 이후 산업화에 따른 인간소외와 과학기술 맹신주의, 혹은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그에 따른 자본축적의 과정에서 생긴 환경파괴의 문제를 강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의 틀은 반드시 서구 나름대로의 대안찾기에 실천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 중에서 인문학, 좁게는 철학과 연관한 서구의 대안 패턴을 크게 나눌 수 있다면 다음과 같다. 하나는 하이데거의 전통을 어느정도 계승하는 하버마스 및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다른 하나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포스트모더니티의 흐름, 그리고 경제학적 패러다임 내에서 기술낙관주의를 표방하는 소위 미국식 미래학자들의 패턴 등이 있다. 이들의 논의 전개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오늘의 문명위기, 환경위기, 인간위기를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서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려는 다양하고 수많은 각론 중의 하나가 바로 동양을 그들의 상황에 맞게 그리고 그들의 전통적 방식대로 수용하려는 태도이다.
서구의 학문은 그들의 사상사적 맥락 속에서 충실하고 있으며, 동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동양의 문을 두들길 뿐이다. 실제로 서양에서 동양학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선입관을 갖고 있는 것 훨씬 이상이다. 서구의 동양학자에 대하여 한국학자들은 서구인의 동양학 연구의 수준을 낮추어 보거나, 그들이 동양학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다고 하는 아주 일반화된 평가로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서구의 동양학의 오해는 오해라기 보다는 그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을 취사선택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서구의 학문은 나름대로 이론에 실천이 따르는 필연적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한 서구인의 동양학 수용의 수준은 그들의 당위적 상황과 학문적 문맥에 따라 이루어진 당연한 결과이지 결코 오해했거나 단적으로 미숙했다고만 평가할 수 없다. 이러한 그들의 출발점을 놓친 채 실증주의적 평가를 내리는 일은 결국 서양방법론의 학문적 노예가 될 뿐이다. 과거 막스 베버에서부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The Tao of Physics󰡕(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의 저자인 카프라 등에 이르기까지 서양학자가 본 동양사상은 비록 객관적 연구수준에 못미친다해도 오히려 그들의 고향인 서구문명의 적절한 치유책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주변의 책방에서 그리고 개인 서고에서 서양인이 쓴 동양학의 저서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주역과 노장철학, 중국철학사 등을 볼 수 있으며 불교에 관한 서적은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희한하게도 서구인이 쓴 동양학 저술의 번역이 일반들에게는 더 쉽게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구인의 동양학 저술이 그럴지언데 서양학 자체는 말할 것도 없다. 지나온 서구사상가 일반은 학문의 객관성이라는 주제 아래서 탈시공간의 논의를 한다지만 결국은 중서사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서양학문 베끼기가 최상의 학문적 권력구조를 얻어낸 지난 우리 인문학의 굴절 속에서 그런 서구의 학문적 성과물을 갖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나서는 것 조차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대부분 서양 전통의 학문방법론으로 서양의 학문을 하면서 내가 왜 서양의 학문을 해야하는가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경험이 많지 않다. 동양에는 학문방법론이 없었다는 어디선가 잘못 유포된 소문에 속거나 혹은 스스로 속기를 자청해서 학문의 제국주의에 동참하고 있는 사실을 합리화한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 일본 취향의 학문을 배운 사람들과 60년대 이후 서구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반성없는 학문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문제보다는 그들의 정신적 고향에 기여했을 뿐이다. 서구의 학문이 동양의 학문을 연구하고 동양의 진수를 뽑아가는 동안 우리는 자신의 고전을 버리고 오로지 서구의 학문을 여과없이 설명하고 혹은 가위질 편집에 여념이 없었다.

6. 문화적 파장

동서양 모두는 현대 후기 산업사회에 들어와 기성종교의 종교적 준거가 그 힘을 잃어가고,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전환적 현대사를 격게 되었다. 과학사상사의 측면에서 뉴턴적인 세계관이 흔들리게 되었고, 과학기술사의 측면에서 유전자 조작공학과 같은 극단적인 기술이 등장하면서 역사가 제어할 수 없는 선까지 걸어가고 있다. 더욱 문제되는 것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소외의 속도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명위기에 대하여 철학적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 진단 결과의 몇가지 패턴이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서구의 과학적 기계론, 이원론적 세계관, 형이상학적 결정론, 그리고 방법론 상의 분석주의와 환원주의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진단이 나왔으면 이를 중화시킬 수 있는 처방이 나오게 된다. 그 중화적 처방을 바로 동양사상에 서 찾는 작업이 서구의 한편에서 한창 진행 중이다.
문제는 그러한 처방을 우리도 그대로 여과없이 수입하여 쓰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서구 기계론이나 결정론의 부정적 측면을 중화시키기 위하여 생기론이나 동양전통이라는 기철학에 대책없이 심취하는 일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이나 뉴턴의 기계론이 오늘의 위기를 자초한 정신적 뿌리가 되는 것이라는 표피적인 단서를 잡고, 그 반작용으로 주역을 미화하고 노장자를 탈사회적 반이원론자로만 되살리는 일은 결국 현실도피적 학문이 될 뿐이다. 서구 혹은 이미 서구화된 동양의 분석주의나 환원주의 혹은 실증주의가 갖고 있는 해부학적 태도가 못마땅하다하여 정령론에 가까운 개체 생명주의에 빠지는 일은 더더욱 판단 문맹을 부채질 할 뿐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인문학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80년대 말 이후 민주화를 이루어 내었다는 환영적인 안도감과 함께 우리들에게 밀려오는 사회적 허탈감은 탈정치의 의식을 자아내었다. ‘잘 살아보자’는 컨베어벨트의 부속품화된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명목으로 결국은 올바른 인간해방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주술화된 맹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때부터 동양학의 붐이 일어난 것은 좋으나 서구인이 해석하고 서구인의 치유책인 동양학이 일반인에게 스며 들게 되었다. 대학생들의 신문화라는 것도 첨단의 영상정보, 통신정보 등을 이야기 하지만, 한편으로 점쟁이들이 대학가의 큰 사업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듣고 포스트모더니즘이 곧 모든 것을 해체만하는 것으로 알고 올바른 이성판단조차 스스로 해체하려 든다. 인문학자 조차도 서구의 탈근대가 서구의 거시적 역사의 흐름에서 해체가 아니라 거대종합을 위한 일시적 해체임을 간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사적 오류는 결국 서구인이 동양학을 신비학으로 해석해야만 그들의 문제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마치 우리의 문제라고 착각하는 데서 기인한다. 그래서 우리 조차도 동양학을 신비주의의 범주 안에 가두어 놓는 학문의 종속이며 동시에 문화의 종속을 자초하고 있다.
서구의 도구화된 이성을 비판하는 것이어야지 이성을 도피해서는 안된다. 이런 현실의 상황을 사려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문화적 제국주의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 제국주의의 중심은 지리적 중심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병리적 중심이다. 중심을 그렇게 상실하고 나서 동아시아의 정체성 논의는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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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Jonas, Das Prinzip Verantwortung. Versuch einer Ethik fuer die technilogiesche Zivilisation,
Frankfurt a.M., 1979
<상상> 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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