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우지를 보는 생태적 관용

싸우지 말고 같이 살자
가마우지를 보는 생태적 관용

최종덕
(상지대학교 교수, 녹색사회연구소 소장)

매지리 거북이 섬에 서식하는 가마우지 피해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는 독자 기사문이 지난 주 원주투데이에 실렸었다. 가득한 나무둥지에서 새똥으로 나무가지들이 마치 자작나무 껍질처럼 허옇게 변하면서(백화현상) 나무가 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살리는 대책을 마련하자는 의견이었다. 맞다. 그런데 인간 위주로만 대처했다간 인간도 살기 어려워질 수 있으니 좀 더 주의깊게 가마우지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서울 밤섬에서 시작된 가마우지 퇴치논란이 춘천 의암호를 거쳐 원주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종래의 퇴치법은 확성기를 통해서 소음을 발생시켜 새들이 떠나도록 하거나 아니면 나무에 묻은 똥을 세척기로 쏴서 닦는 일이었다.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자, 총으로 쏴서 개체수를 줄이자는 주장도 많다. 이런 방법은 기본적으로 새들과 전쟁을 하자는 것과 같다. 전쟁방식으로는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도 없고 나중에 휴전도 안 된다. 웬만하면 싸우지 말고 같이 살자. 공존의 길을 찾아가보자.

첫째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면밀하게 봐야 한다. 가마우지의 똥 때문에 나무가 고사할 수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나무를 살리기 위하여 가마우지를 죽이거나 쫒아낸다는 것은 전체 생태계 입장에서 생태적 명분을 확보하기 어렵다. 거북이 섬만의 부분생태계에서 배설물에 의한 나무 고사 피해가 인정된다. 반면 남한강과 치악산에 걸친 확장생태계에서는 태백산맥을 타고 올라오는 고산 침엽수의 집단고사와 소나무 재선충에 의한 심각한 대규모 피해에 비하면 거북이 섬의 가마우지는 너무 억울한 생태계 소매치기 잡범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사람을 몹시 경계하는 가마우지가 왜 굳이 도시 가까운 곳에 서식하는 지, 그 생태적 원인을 잘 따져봐야 한다. 4대강 저수지화 이후 큰강 주변 나무 서식지를 포기하고 아직은 깨끗하면서도 사람 접근이 어려운 작은 섬에 가마우지들이 모여들었다. 4대강을 다시 원래의 강처럼 흐르는 강으로 만든다면 가마우지의 서식문제도 해결될 것이며 자연적으로 가마우지와 싸우지 않아도 될 것으로 판단한다.

셋째 가마우지 말고 백로도 서식지 나무에 피해주기는 마찬가지임을 모른 척해서 안 된다. 가마우지와 백로는 대체로 서식지를 공유한다. 백로 역시 나무에 둥지를 튼다. 백로 배설물의 가상피해는 가마우지의 가상피해와 정확히 같다. 실제로 백로 똥의 산성도가 더 높다고 알려져 있다.

넷째 원주에서 우리는 가마우지를 내쫒으려 하기 보다는 가마우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것을 걱정해야 한다. 가마우지는 다른 오리 류와 달리 깃에 기름분비가 적어서 서식지 물이 오염되면 오리처럼 오래 버티지 못하면 그 서식지를 당장 떠난다. 그들이 떠나지 않도록 더 많은 물관리 투자가 우선이다. 포항시 포항공대 정문 근처 백로 서식지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관광객이 늘면서 그 마을은 학마을이라는 이름도 갖게 되었다. 그런데 2년 전 바로 이 즈음 한 순간에 백로가 다 날라가 버리고 없어졌다. 그렇게 걱정하던 숲나무 고사도 없었는데, 거꾸로 그 백로의 명성도 관광객도 따라서 없어졌을 뿐이다.

가마우지의 생태적 적응력이 높다하지만 백로도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적응력이 강하다. 가마우지와 백로는 서로 경쟁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매지리 거북이 섬에서는 백로는 나무 가지 하단부에 한편 가마우지는 상단부에 나누어 둥지를 틀어 서로 공존하고 있다. 그들도 그렇게 잘 사는데, 우리 인간은 가마우지를 시기한다. 싸우지 말고 같이 사는 게 더 좋을 듯하다. 그러려면 눈앞의 가마우지만 볼 것이 아니라 남한강과 치악산을 하나의 생명공동체로 보는 생태적 관용을 가지면 된다. 생태적 관용은 나를 지키는 자존심이다. 나의 자존심이란 일상사에서 조금은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나와 공존할 수 있는 상대를 존중해주어야 결국 나 자신도 존중받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 자존심만이 원주를 살만한 도시로 만들어 줄 수 있다. <끝>
원주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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