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과 권력구조
교수신문 2002년 12월 7일자 시평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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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과 권력구조



대학원생을 거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면서도 서로 내부비밀을 지키는 일이 하나 있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권력 구조가 대학원 교육관행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서 교수와 대학원생간의 무의식적 권력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교육 도제를 빙자한 교수와 원생간의 불공정 관계는 세월이 흘러도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BK21 프로젝트 이후 이공계 석박사 과정은 돈에 휘청거리고 있으며 교수직을 대기하는 인문계 실업자 박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오히려 원생에 대한 교수의 권력은 커져가기만 한다. 그만큼 원생들의 자기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은 간단하다. 첫째, 논문지도 및 통과과정과 관련해 교수의 학문 외적 기득권을 놓으면 된다. 둘째, 원생들도 교수의 권력구조에 편승하려는 생각을 포기하면 된다. 내가 이런 말을 해놓고 해결방안이라고 한다면 수긍은 해도 현실을 무시한 원론적인 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대학원의 갈등구조는 아주 심각해 이제는 까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대학원생들이 운영하는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진 어떤 글을 인용해 본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대학원생들이 자기 학과의 교수, 그것도 자기 전공 분야의 교수에게 정면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내걸고 반발한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를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인생의 결정적인 부담감을 안고서라도 문제를 정면돌파 하겠다는 의지표현이다. 이런 상황들은 소수 원생들의 편협된 주장도 아니고 일부분의 상황만은 아닌 것 같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원생들과 직장을 아직 구하지 못한 박사 실업자들 개개인 모두의 심장 속에 조금씩 녹아 있는 분산된 갈등의식이라는 점이다.

원생들과 실업자 박사들을 학문후속세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득권의 대학 교수들은 신임교수 자리를 놓고 자기 사람을 심으려는 권력후속세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같은 학과 안에서 교수들 사이, 그리고 교수들과 원생들간의 갈등이 심각해지는 경우가 자주 나타나고 있다. 그에 따라 과거에는 생각도 못했던 교수들에 대한 원생들의 집단적인 항명 사태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조교를 교수 개인의 하인 부리듯 하는 경우가 아직도 여전하다. 벤처기업을 한다고 하면서 원생들에게 기약 없는 회사 업무만을 시키는 경우도 더러 볼 수 있다. 물론 소수이기는 하지만 제자들의 실험연구논문이나 번역서에 지도교수 이름 끼어 넣기는 이미 오래된 일이다.

원생들도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를 자기의 논문주제로 하는 것을 회피하는 경향이 늘어만 가고 있다. 연구보조금이나 조교장학금에 매달려 논문주제를 아주 쉽게 갈아치우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교수와 원생의 문제를 마치 대립적으로 비교하면서 비난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겉보기 양비론이 갖는 논리적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대학원 논문통과 과정에 이르기까지 교수는 원생에 대하여 대립적 위치가 아니라 분명한 우월적 지위에 있다. 그래서 교수가 우월적 지위의 칼을 비합리적으로 휘두를 경우 이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안고 있는 권력구조의 모순이 대학원 사회에 반영된 하나의 부분인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접근할 경우, 우리 대학원 구조가 당장 풀어야 할 문제점들이 희석될 우려가 있다. 그래서 비록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더라도 좀더 작은 범위 안에서 실질적인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많은 교수들에게 해당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공론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인문학의 경우 많은 석박사들이 그들의 대학원 공부와 관계없이 기약 없는 시간강사로, 장사꾼으로, 학원강사로, 그리고 소위 말하는 등처가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대학원 과정에서는 책임질 수 없는 갈등들이 재현되고 있다. 학문적 도제라는 이름으로 미래를 담보 잡히고 있는 후학자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없다면 곧 우리 학문의 위기로 연결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사회의 미래도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 남의 아픔을 이해 못하는 권력의 향유는 일종의 문화적 바이러스로서 우리 후대 사람들에게도 어김없이 전염되기 때문이다.

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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