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 종의 실체와 다원주의 종 분류
공동논문 - 2003  서평논문 : 생물학적 종의 실체와 다원주의 종 분류, 공동6인, 과학철학 6권1호(03년봄호,6월) 141-157
과학철학 제출 원고 (03년 6월10일)

〔서평논문〕

생물학적 종의 실체와 다원주의 종 분류


강신익(인제대), 권상영(한양대), 김홍식(고려대), 박석준(호서대), 이상하(계명대), 최종덕(상지대, 교신저자)


Species, New Interdisciplinary Essays
edited by Robert A. Wilson
Cambridge; The MIT press, 1999 (325 pp)

1. 린네의 종 분류방식과 본질주의 가정

린네 체계 분류방식의 기준과 내용은 기본적으로 (1) 범주의 계층화 (2) 개체를 taxa로 분류하는 규칙 (3) 종에 대한 이름 붙이는 규칙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종에 대한 린네 분류법과 학명은 18세기 후반에 정착되었다. 린네는 종과 속을 자연에 실재하는 생명체의 본질적 차이를 반영하는 실체적 존재로 보았다. 이는 신의 창조에 의한 필연적 귀결이며, 결코 인간의 사유판단에 의한 주관적 분류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mind independent essences)

(주:그러나 강과 목에 대한 분류는 어느 정도 실용적 필요에 의한 인위적 분류에 따른다고 했다.(mind dependent devide) 린네가 종/속과 강/목을 다른 관점에서 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세잘피노(Cesalpino)는 식물의 증식은 결실 과정(fructification)이며 이 결실과정이 바로 종을 특징 지운다고 보았다. 그러나 강/목은 결실구조의 관점에서 정의되지 않는다. 세잘피노의 식물분류 의미를 그대로 계승한 린네 분류법 역시 종과 속만이 오로지 종 특이성 결실구조(generic-specific fructification structures)를 갖는다는 학설을 이어갔다.)


결국 린네의 분류방식은 본질론essentialism과 자연류natural kinds의 철학적 사유에 토대한 종 개념으로부터 유래한다. 자연류란 자연 인에 실재하는 성질로서 자연법의 근원이며 과학적 설명의 근거이다. 자연류는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의 관찰가능성과 관계없이 존재하는 실체적 성질이다. 또한 본질론은 자연류가 그 본질에 의해 개별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류의 본질은 사물 안에 내재된 성질로부터 드러난다. 어떤 실체가 자연류의 구성원이기 위해서는, 그 내재적 성질이 인간의 인식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이러한 본질론과 자연류 개념은 ① 본질적인 공통의 성질을 공유한다는 공통성 가정commonality assumption과 ② 인간의 인식여부와 관계없이 실재한다는 선험성 가정 priority assumption 및 ③ 자연에 내재된 질서를 상정한 내재적 질서화 가정 ordering assumption으로부터 출발한다.

2. 단일론의 붕괴 -다원론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이 논의되면서 종과 그 분류방식은 신의 창조의 결과가 아닌 진화의 산물임이 밝혀졌다. 종의 존재는 이미 이루어진 고정적인 실체도 아니며 생명의 시간과 무관한 것도 아님이 밝혀졌다. 이후 현대에 이르면서 린네 체계의 이론적 가설은 다윈과 종합진화론에 의해 대치되었다. 린네의 종 분류는 기본적으로 종과 종 사이 혹은 taxa 사이의 명확한 경계가 이미 엄연한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전제였지만, 이제 종합진화론에 의해 엄연한 경계선의 기준은 사라졌다. 오늘날 대부분의 진화생물학자들은 taxa 분류가 진화적 시간을 거치면서 유사한 공생종(conspecific organism) 사이의 교잡 결과로서 형성된 것으로 간주한다. 이때 종은 교잡에 의한 유전요소의 교환을 통하여 유기체의 개체군(군집)으로 정의된다. 이 과정에서 종의 군집은 새롭게 형성된 짝짓기 영역의 단위로서 진화하게 된다.

종합진화론자들은 개체가 진화의 단위라는 다윈의 진화론과 달리 종 자체가 실제로 진화하는 존재이며, 진화의 단위라고 말하는 경향이 짙다. 이 경우 종과 종 사이가 연속적인지 아니면 불연속적인지는 항상 논쟁이 대상이 되고 있다. 유전의 역사gene flow는 종의 연속적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핵심적 의미이다. 어떤 지역적 군집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형질이 다른 지역적 종 군집의 형질로 전이될 경우, 그 전이 과정이 유전의 작은 역사이기도 하다. 그 결과 진화의 힘은 개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종에 대한 변화의 추동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개체에 작용하는 진화력과 종에 작용하는 진화력의 메커니즘이 동일한지 아닌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이 책의 필자들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메커니즘은 서로 비교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개념이 있다. 이 책에서도 잠깐 비추고 있지만 종의 진화를 말할 경우 종의 의미를 유명론적 범주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은 자연의 실제 유기체이지 범주나 메타meta 개념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리학의 범주에서 종이 진화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만 진화의 실제 내용에서 종이 진화한다는 것은 충분한 사실에 속한다. 종이 진화한다는 것은 종 범주 자체 혹은 종에 소속된 개체들 전체가 진화한다는 뜻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종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부여받은 것이 아니며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형성되어가는 것이라는 뜻과 연결된다.

종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종과 종 사이의 불연속적 간극을 전제해야 한다. 그러나 고정된 종의 정체성의 의미가 이미 허물어진 상황이며 따라서 종의 연속성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따져보아야 한다.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은 종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분명하며 나 역시 연속성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근거를 더 제시할 필요가 있다. 첫째 실제로 많은 종들은 진화의 역사 속에서 유전의 결집력이 생각보다 약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하위 수준의 종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상위 수준의 종에서조차 짝짓기 행위를 통한 유전요소의 직접적인 교류보다는 선택과 유전적 항상성homeostasis, 발달방향을 예정하는 운하화canalization 등에 의해 진화의 흐름이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종의 변이가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종의 불연속성을 무너트리는 직접적 증거가 된다. 결국 종의 분화는 연속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누적이 되다가 일시에 변화가 일어나는 단속평형의 현상이나 혹은 연속선상의 화석 부재 현상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조차도 자연 자체의 불연속성으로 볼 수 없다. 단지 인간 인식의 불연속일뿐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소나무 잎을 먹는 A1 곤충군과 상수리 잎을 먹는 자매종의 A2 곤충군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소나무 잎과 상수리 잎 양쪽 다 먹지 않거나 먹을 수 없는 곤충이 있다면 그 곤충군은 이미 소멸했을 것이며, 나중에 사람들은 A1 곤충군과 A2 곤충군 사이의 불연속성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연속성은 진정한 종의 불연속성과는 다르다. 그것은 종의 불연속성이 아니라 생명체가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선택의 확장능력이라고 말해야 한다.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해 보자. 마이어는 종의 분화가 개별 생명체의 시조 군집에서 시작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지역 특이성이라고 한다. 마이어의 지역 특이성 모델(혹은 지리적 분화 모델, allopatric model)에서 종 분화는 작은 군집이 고립화되고 그에 따라 생존을 추구하는 새로운 선택압에 노출되었을 때 분화가 시작한다는 이론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종 분화의 과정이 전체 종이 아니라 특정한 시조 군집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종 분화가 시조 군집인 종의 부분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에 종 역시 진화론적 단위가 아닐 것이라는 반론이 생긴다. 이런 마이어의 주장은 분명히 종이 진화하여 우연히 분화한다는 종 분류 설명방식과 다른 어떤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마이어의 일부 집단의 격리에 의한 종 분화 이론은 오랜 동안 논쟁을 치뤄 왔다. 이 책에서도 그에 대한 반론이 제시되고 있기는 하지만 시원한 답을 제공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마이어의 격리 모델은 종의 일부가 완전한 격리가 이뤄지고 난 즉시 이미 새로운 종이 형성했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종이 진화의 단위가 된다는 주장과 크게 모순됨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마이어의 격리모델은 종 분류의 기준이 다원적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이어서 말하겠지만 마이어의 입장은 유형적typological 종 개념을 말함으로써, 종의 구획에서 매우 포괄적이며 유동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듀프레Dupre의 논의를 살펴 보자. 그는 진화과정을 통해 다양한 측면에서 종 분류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그는 당연히 신이 부여했다고 말하는 유일한 종의 기준을 거부한다. 물론 다원론은 유기체의 특성보다는 분류의 목적이라는 관점에 지배된다. 다원론은 선험성 가정을 거부함으로써 실재론보다 유명론에 가까운 경향을 보여준다. 물론 듀프레나 키쳐Kitcher 혹은 보이드Boyd같은 다원론자들 역시 자신을 실재론자라고 스스로 말한다. 다원론자들은 종 범주로서 다양한 (형태, 생식, 계통 등) 기준을 강조함으로써 서로 다른 종 개념 사이의 공분적인 종 분화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키쳐는 서로 중첩되는 성질들의 연합으로서 종의 개념을 설명한다. 마이어는 유형적 사고방식typological thinking을 통해 종을 이해한다. 즉 현재적인 기준에서 외형으로 표현된 종의 유형과 분류성질을 기반으로 하여 종을 이해하려는 태도이다.

반면에 소버Sober는 개체군 중심의 사유population thinking를 통하여 종을 이해한다. 그는 개체들 집합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메타 그룹이나 큰 유형보다는 구체적 개체들의 집단이 존재론적으로 우선하며 또한 개체존재를 우선함으로써 더 많은 설명력을 가진다고 본다. 개체군 중심의 사유는 내재적 성질로서의 본질을 부정하지만 관계적 성질로서의 본질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브랜든Brandon과 미슐러Mishler는 독특하고 일회적인 종 분화의 사건을 통해 종이 형성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런 종 분화는 개체군을 공통조상으로 삼는 단일계열monophyly의 계통성을 유지한다.

헐Hull과 기셀린Ghiselin은 형상적 개별자로서의 종 개념을 주장하면서, 본질주의에 대한 강한 반론을 전개한다. 여기서 종은 종류나 유형이 아니라 커다란 개체적 대상이다. 개체 생명체는 종의 구성원이 아니라 종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진화하는 것은 개체 혹은 종류나 유형이 아니라 종 자체이다. 공통조상을 찾으려는 노력이 형질들의 통계적 분포에 따라 종을 분류하려는 노력을 대체했다. 종의 분화는 계통적이고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종은 결코 자연류일 수 없다. 헐은 계통분류학systematics이나 해부학적 상사相似 관계를 통해서 종을 구분한다. 종에 대한 기존의 관점으로 볼 때 전혀 관계없는 듯 보이는 개체도 생태학적 역할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헐의 특이한 입장이다. 예를 들어 비둘기와 파리의 날개는 같은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상사적으로 동등하다. 계통적으로 전혀 관계없는 DNA 염기서열이 똑같은 대사적 기능을 갖는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Hull은 바로 이 상사관계에서 법칙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생물학이라고 주장한다. 즉 기능적 분류 functional kind를 강조하는 것이다. Hull의 주장은 생태학자들이 60년대의 거대이론의 생물학에서부터 다시 일회적 역사와 우연성contingency으로 돌아오는 학문적 경향과도 관계가 있다. 그러나 발달생물학과 구조생물학이 단지 기능적 분류에만 국한한다면 이런 학문에서의 법칙은 단지 행위를 특정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그리피스Griffiths의 비판에 처하게 된다.

다음은 이레세프스키Ereshefsky의 교차분류론을 살펴보자. 그는 진화의 힘이 생명나무 계통수로 설명되기 어렵다고 한다. 이 뜻은 결국 진화론과 계통론 사이의 엄연한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기존의 실체론적 종 분류를 부정하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종은 서로 다른 형태types의 차이일 뿐, 본질적 차이는 모호하다고 본다. 종은 다양한 존재론적 측면을 지니며 구조를 지닌다. 그래서 종은 교잡에 의한 방식이나 계통론 접근방식에서 모두 설명할 수(cross-classify) 있다고 말한다. 이레세프스키는 이 주장을 강하게 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종 범주가 생각만큼 그렇게 다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결국 종의 구분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며, 명확한 종 범주가 존재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종 범주의 명확한 기준을 부정하는 것이지, 종이라고 하는 taxa의 실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종에 이름 붙이는 이명법을 설명의 근거로 말하고 있다. 린네의 이명법은 당시로서는 의미가 있었으나 현재는 이미 너무 많은 속과 종이 출현하여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린네 당시 312개의 동물 속이 이제는 50,000개로, 6,000종의 식물종이 십만 개의 종으로 늘어나 실체론적인 린네의 분류방식은 이미 무의미해졌다는 것이다.

(주: 린네 분류법에 대한 소박한(가능한) 상대주의적 대안은 다음과 같다 :
indentation system - 책 페이지 내에서 칸 간격을 맞춤으로써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작은 분류가 된다. 이런 표현방식은 다음 페이지 쪽수를 넘기면 칸의 위치를 서로 비교하기 어렵게 된다는 비판에 곧 부딪쳤다. : Wiley의 비판
numerical system -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칸의 위치 대신에 1.2, 1.2.1, 1.2.1.3 등의 순서로 나가는 표현방식을 취했다. : Hennig )

어쨌든 린네의 분류법은 생물명명법에서 분수령을 차지한다. 동일종의 이중적 명명, 동일명의 이중적 종분류 존재, 민속학적 이름 붙이기의 혼란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그의 본질주의적 사유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 유성생식종만에 대한 명명에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 신의 창조에 의한 고정된 종/속의 제한성 등은 현격하게 부정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나치게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이레세프스키의 주장은 사실 린네의 독재적 기준을 반박하기 위함이었다.

미슐러(Mishler)도 종을 구분하는 실체론적 기준에 대한 강력한 반론을 제기했다. 간단히 말해서 종 분류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는 사실부터가 종 다양성 및 종에 대한 반실체론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한다. 그는 아예 종을 구분하는 기준은 없다(Species are not special)고 하여 강한 종 연속론을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진화적 접근보다는 계통수를 통해서 종을 분류하는 것이 더 실용적이라고 보았다. 물론 계통수만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용적 차원에서 계통수 분류의 의미를 중시했다. 그런데 그의 계통수는 시간적 계통수뿐만이 아니라 공간적인 차원의 생태론적 계통관계를(biodiversity) 중시했다.

3. 새로운 종 분류법

어쨌든 1930년대 이후 40년대에 이르러 개체군 유전학의 발전으로 인해 본질주의에 근거한 린네의 분류법은 약화되었고, 이후 3가지 분류법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 첫째는 진화분류학evolutionary systematics이다. 다윈 이후 유사성similarity이라는 관계 개념이 진화계보학genealogy으로 대치되면서, 앞서 말한 마이어와 심슨Simpson의 주장이 부각되었다. 이는 조상과 후손의 관계 및 자매종 간의 관계에서 조상종이 인식될 수 있다는 관점을 갖는다. 따라서 종분화 cladogenesis 와 적응분화anagenesis 에 의해 생긴 분류 군 간의 차이를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을 보여 주었다. 둘째는 수리분류학 Numerical Taxanomy 이다. 스니스(Sneath;1966)에 의해 주창된 것으로 진화분류학에서 말하는 적응분화 anagenesis 식의 분류체계는 주관적인 것이라고 반론하면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제기되었다. 진화론과 분류학을 같은 장르에서 논의하는 것조차 반대하는 헐의 입장도 이와 유사한 측면을 보인다.. 그리고 셋째 계통분류학 phylogenetic systematics을 든다. 대표적인 주창자로는 Hennig(1966)으로서 그는 진화론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관계로 간주한다. 종 분화에 의한 계통관계를 바탕으로 생물 분류사를 조직화하려는 시도이다. 조상종을 인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상종 이론은 가설적 위치이며, 따라서 적응분화에 의한 종분류는 그 타당성과 효율성에서 신뢰가 낮다는 생각이다.

이 중에서 진화분류학은 교잡에 의한 접근방식을 취하며, 계통분류학은 말 그대로 계통론적 접근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서로 다른 두가지 접근방식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 두 분류방식을 다시 정리해 보았다.(참조 : 우건석 외, 계통분류학의 이해,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7, 제1절)


가. 교잡에 의한 분류방식(The Interbreeding Approach)
- 종은 유전적 재조합의 결실이다. : Carson
- 종은 교잡과 고립기제에 의한 유전 담지자이다(gene pools) : 마이어
- 종은 증식에 유리한 선택기제를 확보한 집단이다. 기셀린
- 종은 증식에 유리한 생식짝을 인식하는(mate recognition) 집단이다. 패터슨
- 유전체의 진화적 흐름을 중시하며, 무성생식의 유기체는 종으로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Ghiselin 1987, Hull 1987)

나. 계통론적 접근(The Phylogenetic Approach) :
- 분지학(cladists)의 성과로 평가된다.
- 계통론적 종은 선택, 교잡, 유전적 항상성, 발생학적 운하화 등을 포함한 많은 외부력에 의해 유지되는 단일계통적 분류에 근거한다.
- 선택이나 항상성 요인이 유전자의 진화적 흐름보다 강한 것으로 여긴다.
- 종을 유지하는 이런 힘들은 독립적으로 작용한다.
- phyligenetic species are not causally integrated entities.
- 무성생식 유기체도 종으로 간주한다.(Mishker and Brandon 1987)

이 두 가지 관점 사이에서 어느 것이 더 옳은 것이라는 판단을 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 두 접근방식은 상호 배제적 관계가 아니라 관점의 차이이다. 그래서 이 둘을 하나의 기준을 통해서 직접 비교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가능하다. 다음의 진화론 주창자들에 의해 논의된 사항을 정리해 보았다.

3.1 생태적 모자이크 이론 Ecological Mosaics -스티렐리

진화는 지구상에 다양한 생명종을 출현시켰다. 적응과 선택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다양성의 진화는 진화생물학이 설명하려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 다양성은 생물종 집단 간의 차이가 전제되어야 한다. 차이를 인식할 수 없다면 다양하다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차이는 개체군 사이의 불연속적인 구획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한 불연속성을 구획하는 기준이 과연 고정된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이런 질문에 대하여 듀프레Dupre는 본질주의를 거부하고 강한 연속주의를 강조했지만, 스티렐리는 본질주의를 거부하면서도 불연속적인 종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종에 대하여 실체를 부여하지 않고 단지 과학적 설명을 위해서만 종 개념을 인정하는 최소주의자들은minimalists 어떤 이론생물학도 종 개념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종 개념은 단지 현상적인 것일 뿐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스티렐리는 생물체들을 종으로 무리 지을 수 있는 어떤 기준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본다. 동시에 그는 종의 분화가 진화론적인 과정의 부수적인 산물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런 상반된 입장들, 즉 본질주의의 부정, 종을 정의하는 기준이 존재함, 진화론만이 종의 분화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들을 종합하려는 것이 스티렐리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종합은 그만의 독특한 생태학적 모자이크 이론으로 제안되었다. 달리 보면 변형된 진화론적 사유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한 종은 반드시 하나의 집단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즉 동일한 종이라도 다른 분리된 집단에 속할 수 있다. 이렇게 분리된 집단들은 각기 다른 생태적 공동체에 흩어져 있게 마련이다. 결국 종의 진화는 기존의 진화론적인 단위와 생태론적인 모종의 단위가 서로 상관적으로 엮어지는 그런 복잡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스티렐리의 제안을 생태적 모자이크 이론이라고 말한다.

앞서 말했듯이 생태적 모자이크 이론은 실체론적 종분화 이론을 거부한다. 그렇다고 해서 진화론적 사유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론적 구분은 결국 오늘에 존재하는 종의 특성과 화석으로 발견된 과거 종의 특성을 비교하여 그들 사이의 근친관계를 살피는 관찰작업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관찰작업은 현재의 특성이 과거를 바라보는 관점에 매우 주관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종의 진화적 계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잠정적인 입각점에 의존하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만약 오늘의 시점에서 특정 종의 개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시점에서 진화가능한 개체를 바라 볼 수 있을 경우, 오늘의 종 역시 진화의 한 과정적 형태이기 때문에 오늘의 종은 진화적 현상의 한 단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종 분류는 자연에서의 객관적이 기준이 아니다 왜냐하면 계통의 변화가 매끄럽고 이음새 없이 일어난다면 자연을 여러 방식으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3.2 브흐바와 엘드리지

성은 진화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그 역할이 모호하다. 그것은 대개 진화적 변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는 힘으로 생각되고 있다. 브흐바Vrba는 무성 생식종 들이 드물다는 것과 그들의 다양성 결핍은 바로 성이 진화적 변화의 중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브흐바는 성에 의한 자연선택뿐만이 아니라 종을 단지 생물체들의 모임이 아니라 집단 스스로 내적 구조를 지닌 복잡한 시스템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종들과 그들의 구성원들이 생물체들의 계통에서 안정성과 변화를 설명하는데 나름대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복잡시스템의 중요한 변수를 브흐바는 기후변화라고 보았다. 기후변화는 종 분화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 브흐바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녀는 급격한 기후변화와 같은 생태학적 균열이 바로 종의 항상성이 붕괴되는 요인이라고 간주한다. 생물체는 중요한 환경변수들 즉 온도, 습도, 일조량 같은 것에 민감함을 강조한다. 브흐바는 각각의 종들이 뚜렷한 안정된 주거공간을 차지하고 있다하더라도 기후와 같은 물리적 변수 범위에 의해서 유전형이 규정된다고 한다. 즉 종들의 분포는 다른 종과의 상호작용이기보다는 외부조건에 대한 민감성에 의해서 제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도브잔스키와 비슷하게 브흐바 역시 한 종의 생태적 지위를 산맥의 봉우리와 비교를 하였다. 유사한 종이란 각각의 골짜기와 그에 따른 봉우리들의 모임과 같다. 봉우리는 그 하나로 볼 때 서로 다른 봉우리이지만 산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종과 같다. 생물체들의 복잡한 다양성은 생명체가 존재하는 환경과 생태학적 다양성에 서로 연관되어 있다. 생태학적인 지위의 다양성은 거대할 뿐 아니라 서로 연속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떤 곤충은 밤나무 잎을 먹고 또 다른 종이지만 그와 비슷한 곤충은 솔잎을 먹는다. 밤나무와 소나무 사이에 있는 중간적인 것을 먹으려 하는 제3의 곤충은 굶어 죽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생물 세계는 무작위적으로 유전형질이 결합하는 우연한 집단이 아니라 서로 연관한 유전자 결합의 조직적인 배열이다. 각각의 생물 종들은 자연생태라는 무대 위에서 유전자 재배열이라는 유희를 하는 거대한 산맥들의 봉우리 들 중 하나를 차지할 뿐이다.

그 각각의 봉우리와 계곡들은 떨어져 있는 듯 하지만 생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봉우리 근처는 유사 군집에 의해 배속되어 있는데, 이는 독립적인 봉우리들이 좁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서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에 비유된다. 사자 같은 종에 의해 점령되어있는 생태적인 지위는 늑대나 코요테, 자칼이 점령하고 있는 것 보다 상대적으로 호랑이, 퓨마, 레오파드에 의해서 점령되어 있는 지위에 가깝다. 고양이과에 적응된 봉우리는 개과의 그룹과 다르게 형성되어 있으나 고양이, 개, 곰, 족제비는 모두 육식목이라는 적응 범위를 함께 형성하고 있으며 설치류, 박쥐류, 유제류, 영장류의 범위와는 깊이 패인 적응 계곡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

골짜기와 봉우리들로 유비되는 생물종은 그 개체의 차원에서 최소한 상호 활동범위는 다르지만 삶의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전형적으로 종들은 지리적이고 생태학적인 모자이크인 셈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어떤 생물종은 매우 특정한 주거환경을 차지하거나 아주 협소한 공간에만 분포한다. 호주 피그미 주머니쥐는 호주 대륙 고산지대의 몇 평방 마일 안에서만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종들이란 대부분 다양한 공동체들, 심지어는 공동체들의 유형을 가로질러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브흐바나 엘드리지는 주장한다.

엘드리지는 마이어의 종 분화 이론을 단속평형 이론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종이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여 유전자 변이가 일어났다 하여도 부모 혹은 자매 집단으로부터 격리된 이주가 없었다면 그 적응에 의한 유전자 변이는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 마이어에 의하면 종 분화는 격리에 의해서 아주 작은 주변적 집단에서부터 일어난다고 한다. 격리의 결과 많은 개체들은 멸종으로 이어지지만, 어떤 작은 집단이 우연한 계기에 의해 살아남기도 한다. 이렇게 살아남는 확률이 커질 경우, 즉 어쩌다 생존할 경우, 그들은 강력한 선택압 아래 놓이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조상종과 다른 종의 지위로 분화될 가능성이 많다.

브흐바와 엘드리지의 최근작업은 각각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러한 생각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리고 굴드와 엘드리지는 항상성stasis평형 상태가 아무 변화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변화하지만 내부에서 그 변화에 대한 면역성을 상대적으로 증가시켜 외형적인 평형을 이루고 있다는 뜻을 강조한다. 엘드리지는 종들의 생태학적인 균열로부터 진화적 역사의 주된 패턴이 평형상태로부터 그것이 어떻게 깨지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이어는 평형의 균열은 자연선택이 아니라 격리에 의한 것임을 강조한다. 즉 생식적 격리가 적응보다 우선해야 선택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선택은 원인이기보다는 결과적 산물이다.

분할된 집단 사이에서 어느 집단이 다른 집단에 의해 대체되거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집단 구성원의 표현형적 변화가 일어난다면 살아남은 집단의 종들이 지니는 표현형이 점진적으로 단단한 안정성을 충분하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를 우리는 평형stasis 이라고 말한다. 엘드리지는 이런 현상을 자연선택의 힘에 관한 경계선이라고 본다. 그 경계선의 의미는 생식적 격리가 선행할 경우에만 선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마이어의 생각과 같다. 이들에게서 종의 생태학적인 균열이 종 분화를 위한 선택을 제한하는 대전제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격리분화의 관점에서 성의 자연선택은 국소적 환경에 대한 적응을 강력하게 동질화하는 역할을 한다. 엘드리지는 성 선택을 통한 적응 변화는 종 분화와 함께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생태학적이고 지리적인 구조에만 의존했던 계통발생적 종들이 생기기 이전에 진화론적 발생을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물론 계통발생학적 접근과 진화론적 접근이 무관할 수 없다. 엘드리지나 굴드 역시 진화적 변화의 단속적 평형 패턴은 상대적으로 초기역사에 적용되었다고 실토한다. 이러한 실토는 계통적 발달이거나 진화적 발달이거나 관계없이 환경 요인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엘드리지와 브흐바는 종의 지리적 구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데에는 비생물적 환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톰슨Thomson은 유사한 견해를 발전시켜 공진화 개념을 착안했다. 그는 그의 관점을 지리적 모자이크 공진화 이론이라고 불렀다. 그는 종들의 활동범위가 일정한 동일 영역만을 차지하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겹쳐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단일 종만이 진화의 단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공진화란 여러 종들의 표현형이 합성된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환경을 공유하는데서 오는 공통적응이라는 뜻에 가깝다. 톰슨은 이러한 주장을 하면서 공진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자주 지적하였다. 톰슨은 공진화가 종 특이적인 것이고 지리적인 모자이크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해를 전제로 할 경우, 종간 혹은 종의 부분 개체들은 서로 호혜적인 상호작용을 하면서 서로를 기우는 헝겊처럼 공진화 할 수 있다. 공진화는 생식적 격리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므로 대규모 고립적인 집단 사이에도 모자이크 진화가 가능해진다. 이 점에서 브바와 엘드리지의 관점과 차이가 난다.

3.3 항상성을 유지하는 공분모 이론 Homeostatic Property Clusters (HPC)

(주: HPC는 종을 다른 생물학적 범주(속, 변이 등)와 구분하는데 필요한 종 범주에도 적용될 수 있다. ① 종은 그 구분을 위해 사용되는 성질들의 모임(형태, 유전, 계통 등)이 가지는 일반적 속성으로 인해 세포(생리학), 포식자(생태학), 질병(역학)과 같은 비진화적 자연류와 구분된다. ② 종이 속(屬)이나 변이와 같은 상위와 하위의 진화적 계급과 구분되는 것은 이러한 성질들의 일반적 모임을 특정함으로써 가능하다. )


엘드리지의 관점에서 항상성은 마이어의 브레이크-생식적 격리의 결과이다. 그러나 격리에도 불구하고 어떤 지향적 진화가 일어난다. 자연선택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 발달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생태학적인 분리와 지리적 격리를 통해서도 설명되지 않는 진화적 단위가 있다. 지리적 단위가 아주 작은 경우에서 그렇다. 또한 격리나 선택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또 다른 부분이 있다. 그것을 항상성 이론으로 설명가능하다고 보았다. 물론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종이 파편화되어 메타 집단을 와해 시켜 성분집단으로 쪼개지게 되면 그때 항상성도 깨어진다. 그리하여 지역적인 규모로 시스템에 가해지는 외부적인 충격은 진화론적이고 생태학적인 진화단위 사이의 관계를 단순화시킬 수 있고 선택의 패턴을 변화시킨다.

항상성 이론은 비트겐슈타인 가족 유사성에 유비시켜 이해하면 편리하다. 고정되고 일정한 종의 성질이 아니라 한 종이 옆의 종과 다른 성질들의 공분모를 지니는 유동적 집합clustering을 통해 항상성의 기제가 설명된다. 한 개체가 이렇게 모인(군집cluster된) 성질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면, 그 집합cluster에 속한 다른 성질을 함께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게 증가한다. 여기서 집합은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 ①한 개체가 어떤 종류에 속하기 위해서는, 그 종류를 규정하는 성질들이 모여 있어야 한다. ②그러한 규정적 성질들은 자체적으로 모이려는 어떤 집합을 이루려는 경향을 보인다.

항상성 이론은 즉 HPC 견해는 전통적 실재론을 다소 완화한 것이지만 그 핵심을 버린 것은 아니다. HPC 이론은 자연류에 관한 전통적 개념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HPC 의 구조는 가족유사성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생각과 근접하므로, 이 개념이 자연류와 다른 범주 사이의 구분을 약화시켰다는 점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HPC의 자연류 개념은 다음과 같다. ① 어떤 주어진 HPC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은 자연계의 한 부분이며, 단순히 세계에 대한 생각이나 개입의 방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② 인위적 종류와는 달리 자연류는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이 존재하는 자연적 성질들로 구성된 HPC 정의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그 결과가 본질주의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 HPC 주창자들은 자연류 개념은 과학의 실재론 안에서 생명종의 개념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체론이나 본질주의와는 여전히 다르다. 어쨌든 종합진화론자들의 생각과는 분명히 다르다.

(주: 굴드와 엘드리지는 단속적 평형에 대한 1993년 리뷰에서 표준적인 현대 다위니즘을 세가지 중심적인 코멘트로 규정했다. (1)개체 the organism가 선택의 주요 단위이다. (2)자연선택은 진화론적인 참신성의 존재를 설명하며 진화에서 창조적인 힘이다. (3)모든 분류학적인 단계에서의 계보학적인 변화는 국소집단에서의 작은 변화의 축적이다.)


3.4 개체성 논제

자연류에 관한 HPC 견해가 본질론의 한 형태를 포용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개체성 논제는 그와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 그리고 최근의 경향은 개체론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이 책의 흐름 또한 여기에 속한다. 기셀린Ghiselin과 헐Hul이 대표적인 주창자로서, 이들은 종이 절대 자연류가 될 수 없다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종은 일종의 개체이다. 생물학적 집단 안에 이질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종이 자연류가 아니라는 증거이며, 진화의 시간 속에서 종이 역사적 개체 individual로서의 지위를 가진다는 것이 곧 종이 개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여기서 종이 곧 개별자라는 의미는 종 자체가 하나의 개별자처럼 하나의 기능적 단위 혹은 하나의 형태로서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종을 개체라고 주장하는 일은 종을 내적인 단일성과 통합성으로 보는 일과 같기 때문에 종을 곧 자연류natural kind 로 보는 입장과 대베된다.

고전 철학의 오래된 논쟁에서 보편적 종류로서의 형상은 자연류와 깊은 연관성을 지니며 따라서 생물학적 종을 개별자로 보는 입장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개별자를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회성 이나 역사성, 독립성과 같은 맥락에서 보는 것이 바로 헐이나 기셀린 같은 학자들이 생각하는 종의 개념일 것이다. 그래서 실체적 보편보다는 임의성, 우연성 등이 더 강한 의미로 남는다. 그러나 종을 규정할 경우, 개별자의 의미는 보통 그들 사이의 본질적인 성질 혹은 실체적 자연류의 개념을 부정할 때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때 종은 종간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연속적인 성향이 커진다. 이렇게 이해 할 경우 종이 역사적 개별자라는 주장의 의미는 명확해 진다.

종 개념을 역사적 개별자로 본다는 것은 전통적인 철학적 유명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형이상학적인 종개념을 유지하면서 진화적 역사를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의 자연스런 귀결은 개별자로서 종이라고 생각하는 일이다. 물론 이때 종의 규모는 진화가 이루어지는 단위로서 간주되는 종의 범주이다. 즉 종을 개별자로 보는 것은 종을 하나의 진화단위로 본다는 말이다. 진화의 역사를 통해서 각종 분류 집단을 대표하는 화석들이 드문드문 불연속적으로 있는 이유를 멸종과 생존의 게임에 의해서 설명하는 진화론이 과연 종의 연속성을 근거지울 수 있는지 당연히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개별자의 단위를 개체에서 종 차원으로 바꾸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4. 다원론의 미래

다윈주의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변이는 잠재적으로 또한 현실적으로 언제 어디에서나 가능하다. 둘째, 종의 분화를 설명하는 이론적 도구로서 진화론이 가장 강력하기는 하지만, 그 진화론이란 선택과 적응 기제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계통발생학과 연계하는 종합 이론의 특성을 지닌다. 셋째 계통수나 화석의 결과들 혹은 생태학적 구조나 해부학적 구조에서 관찰된 대부분의 결과에서 볼 때 단일 기준의 종 범주는 불가능하다 점이다. 넷째 철학적 실재론과 본질주의에 기대지 않고서도 과학적 탐구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

다원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의 요지는 다원주의가 상대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물학에서는 상대주의를 인식의 한계로 볼 뿐, 존재의 한계로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종의 분화가 일어났었던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자연의 생명체에는 여전히 과거로 남아 있는 현재의 표현형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종의 다원주의를 설득할 수 있는 학문적 시간은 많이 남아 있다. 과거의 존재는 현재의 존재 속에 너무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생명종에 대한 이해는 매우 긍정적이라는 뜻이다. 또한 종의 분류 문제는 생물학의 경험적 관찰작업과 더불어 철학적 사유가 개입되어야 할 공간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이 문제만큼은 생물학과 철학의 공동작업의 요청이 필수적이다.

이런 요청에 대한 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주요한 경향은 이미 말했지만 진화의 단위가 전통 진화론자들처럼 개체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과 둘째 종을 분류하는 기준이 단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 책은 12 꼭지의 서로 다른 논문을 게재하고 있지만 이런 주된 경향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분류에 관한 많은 전문서적이 출판되었지만, 이 책의 진정한 의미는 철학적 검토를 거친 최초의 종 이론서라는 점이다. 생물학적 분류에 충실하면서도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현대철학자인 크립케나, 포스트모던 자연철학에 이르는 철학적 분석을 철저히 수행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논문 목차와 관계없이 주제 중심으로 재편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원고를 작성하였으나 그 주제 하나 하나마다 더 깊은 토론이 보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
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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