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복제- 생명위기의 기폭제 |
2003 논문 : 생명복제- 생명위기의 기폭제, 아웃사이더 12호 (03년4월17일) 202-213쪽생명복제 - 생명위기의 기폭제<1> 생명복제 - 생명폭탄의 기폭제 : 1997년 초 영국에서 돌리라고 이름 붙여진 양의 복제가 성공했다는 발표 이후, 생명복제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크게 늘었다. 그 전부터 인공수정, 체외수정, 선택적 중절 등과 같은 전통적 생명복제는 이루어져 왔지만 그 방식은 생식세포를 인공적인 방식으로 접합시켜 복제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생명복제는 난자와 정자라는 암수의 생식세포 교환을 통한 것이 아니라 체세포의 디엔에이 군집을 자체적으로 증식시켜 어른 생명체를 만드는 경우를 말한다. 더 쉽게 말해서 손오공이 자신의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훅하고 불어서 자신과 똑같이 수많은 손오공을 만드는 것과 원리적으로 같은 이야기이다. 이것이 바로 체세포 복제이며, 암수의 구실이 더 이상 필요 없는 무성생식과 같은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많은 공상과학영화에서 이미 선을 보여 주었다.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체세포 복사하여 생활 속의 역할을 나누어 한다는 둥, 자신은 죽지만 죽기 직전에 체세포 복제한 동일한 자신을 다시 만들어 영원한 생명을 꾀한다는 이야기, 또는 인류를 정복한 외계인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인간을 배양하여 생산하는 대규모 인간생산공장을 운영한다는 등의 황당한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의 원조는 뭐니뭐니해도 프랑켄슈타인 소설일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키메라의 등장은 처음에는 생소함, 놀라움, 두려움 그리고 한편의 재미난 이야기를 제공했으나 이제는 시큰둥한 과거의 이야기로 되어 버렸다. 그만큼 과학의 발전이 황당한 이야기들을 무디게 받아들이는 현실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더욱이 최근 생명공학의 획기적인 발달은 첨단의 영상기술을 동원한 사실 같은 가상의 영화 속 내용들을 실제로 가능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요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체세포 생명복제 기술이 이제는 과학의 상상적 희망에 그칠 일이 아니라 과학의 구체적 현실로 되었다는데 그 문제가 심각해졌다. 생명공학의 구체적 연구 현실은 이제 더 이상 해당 일선 과학자들에게만 맡겨 놓기에는 문제가 너무 커져 버렸다. 간단히 말해서 생명공학 분야의 실험적 연구에 대한 사회적 제어장치가 반드시 필요해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선 공학자들은 그러한 제어장치는 과학 연구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며, 과학자의 자유로운 연구가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고 항변한다. 이러한 항변은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그 논리는 진공실에 갇혀진 폐쇄논리일 뿐, 상황적 사실을 무시한 태도이다. 반례를 들어보기로 하자. 현재 우주 공간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중이다. 외계신호 및 행성 지질학 등의 천체과학 연구에 대하여 어떤 과학자들도 자신의 자유로운 연구를 침해받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상당한 지능을 갖는 외계 생명체가 현실적으로 지구와 교신하거나 교통이 가능해진다는 가상적 현실에 직면했을 때, 우리 지구인은 어떤 방식이든지 천체 과학탐구의 일관된 약속이나 자체 규제를 당연히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천체연구는 아직 그런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약속이나 규제가 필요 없을 뿐이다. 그러나 생명공학 분야 특히 체세포 복제연구와 배아 증식에 대한 연구는 어떤 방식이든지 일관된 약속을 반드시 요구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 되었다. 그것은 결코 연구를 제한하는 규제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현재의 생명공학 연구의 실태는 37억 년을 이어온 지구 생명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인간 종의 존재양상과 인식구조 및 삶의 양태를 한순간에 뒤엎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생명위기의 기폭제를 이미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러한지 현재의 생명복제 기술의 현황을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2> 생명복제 기술의 현황 : 1950년대 DNA의 구조가 밝혀진 이후 유전자 연구는 급속한 팽창을 해왔다. 80년 중반 미국을 중심으로 그 유명한 게놈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일단 지난 해 그 결과가 공표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그려졌고, 인간 종의 유전자 지도는 3-4만 개의 유전자군으로 구성된 것으로 발표되었다. 게놈프로젝트의 과학적 의미의 핵심은 특정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에 의해 교체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그 유전자를 담고 있는 유기체는 생명의 특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함축한다. 게놈프로젝트의 원동력은 효소바이러스와 같은 유전자 운반체를 통하여 특정 생명체의 유전자와 다른 생명체의 유전자를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 특이성 전환이 가능해진 70년대 연구성과에 기인한다. 그러나 게놈프로젝트는 바이러스가 아닌 인간 생명에 대한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야기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생명 특이성 전환에 대한 연구성과는 새로운 면역물질들과 의약품들을 제조할 수 있게 되어, 최소한 원리적으로는 인류의 숙원인 의료복지 향상에 획기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게놈프로젝트의 성과는 유전자의 정보일 뿐이며, 사실 그 정보가 어떻게 교체가 가능한지, 그리고 교체된 유전자가 실제로 생명체 속에서 생명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증식 과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실험방법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과제는 결국 오늘 이야기하는 생명복제라는 현실적 연구결과로 이어졌다. 그래서 생명복제의 연구방법의 현실을 더 말해보기로 하자. 전통적인 생명복제 방법은 수정된 세포가 분열 증식하는 과정에서 그라스메스를 이용하여 분할된 것을 나누어 다시 증식시킴으로써 원래의 생명체로 키우는 방법을 말한다. 이 방법은 이미 축산분야에서 우생 종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많이 실현되어 왔다. 또 다른 방법은 체세포를 이용한 핵 치환 방법이다. 핵 치환은 특정 난자에서 그 핵을 완전히 제거한 후, 다른 체세포의 DNA를 집어넣어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배양 증식시키는 방법이다. 즉 DNA를 바꿔치기 하는 것으로서, ‘돌리’나 수의대 황우식 교수 연구팀에서 복제한 소인 ‘영롱이’가 바로 이러한 방법을 이용해 태어났다. 핵 치환에 의해 조작한 새로운 세포나 혹은 서로 다른 생명체에서 추출한 디엔에이를 조합하여 만든 세포를 배양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형성하는 생성세포는 원리적으로 암수의 정상적인 수정을 통해서 형성된 수정란 세포와 동일한 생명기능을 가질 것이라는 희망이 지금 논란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다. 인위적으로 조작된 세포라 할지라도 외형적으로는 정상세포와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환 혹은 접합에 의한 인공세포의 성장은 결코 정상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간단히 말해서 그 유명하던 돌리 양도 비정상 비만증과 노화현상으로 인해 얼마 전에 죽었다. 생명복제의 기술적 그리고 윤리적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배아세포 문제를 반드시 거론해야 한다. 이런 과학적인 이야기가 조금은 복잡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수정이 끝난 아기 세포에서 자라난 어른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최초의 수정세포가 분열하고 증식한 결과이다. 그래서 어른 생명체는 최초의 세포와 똑같은 세포의 덩어리라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서 모든 어른 세포 하나하나는 아기 세포의 디엔에이를 모두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원리적으로 어른 세포 하나를 떼어내서 그것을 잘 배양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어른 생명체가 생성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원리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이렇게 새로운 어른 생명체를 고스란히 생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세포를 줄기세포(stem cell)라고 부른다. 줄기세포는 생식세포들끼리의 수정에 의해서 형성된 정상적인 배아 줄기세포가 있고, 이미 어른 세포가 됐지만 그 세포를 증식시킴으로써 어른 생명체를 생성시킬 수 있는 잠재적 성체 줄기세포가 있다. 이러한 줄기세포는 그것을 배양만 잘 하면 성체의 장기/기관과 똑같이 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 이식수술과 같은 의료적 가치를 크게 기대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문제삼고 부분이 조금 분명해 졌다. 인간의 경우를 들어 문제를 다시 요약해보자. 첫째, 어른의 줄기세포를 떼어내서 그 세포를 자체적으로 배양하여, 클론이라고 불려지는 배양된 줄기세포를 통하여 그 사람과 똑 같은 사람을 다시 만든다는 이야기가 실험적으로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완전 성체 복제가 현재의 실험기술로는 잘 안되기 때문에 줄기세포를 이용한 복제는 신체의 부분적인 장기나 기관을 복제하는데 주로 이용되고 있다. 둘째, 그러한 성체 복제기술의 한계 때문에 현재로는 난자를 추출해내어서 난자의 원래 난자 핵을 제거한 다음 그 자리에 줄기세포에서 추출한 핵을 삽입시켜 전기자극 등을 통하여 외부의 새로운 핵과 원래 난자의 세포질을 접합시켜 인공적으로 생명 배아를 만드는 일이다. 이렇게 만든 배아를 배양시키기 위한 인공배양기 역시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인공 배아를 어른 동물(혹은 인간) 자궁에 인공적으로 착상시킴으로써 인공생명을 탄생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3> 생명복제의 희망과 모순 : 이러한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 집단은 연구의 목적이 당뇨병 치료 등과 같은 생체 호르몬이나 장기이식 수술 혹은 불임환자 치료와 같은 인류의 궁극적인 의료복지를 추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가치를 산출하는 동물 우생 종자를 육성하는 고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수행되는 연구는 실험기술의 미숙함과 물질론적인 생명이해의 천박함에서 오는 부작용의 심각한 위험성을 너무 소홀히 생각하고 있다. 더군다나 인공적인 인간복제라는 어마어마한 반인간성에 대한 철학적, 종교적, 윤리적 성찰이 형식으로만 치우치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 해당 클론 연구자들이 크게 부각하지 않으려는 클론 기술의 허점을 분명히 부각시켜야 한다. 그 속내의 문제점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나 같은 인문사회학자들이 왜 나서야 하는지가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을 염두에 둔 생명복제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 복제연구를 위해서 기본적으로 난자를 인공적으로 수집해야 한다. 난자의 수집은 불임환자들이 불임 치료를 위해 제공한 난자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배아 형성을 위한 복제연구는 불임치료에 사용하고 남은 잉여 난자를 쓰고 있다. 한국에서 불임치료기관은 100여 개의 병원이 있는데, 그 병원들이 문을 닫거나 옮기거나 할 때 냉동 잉여난자의 관리가 매우 부실하다. 간단히 말해서 잉여난자의 제공자에 대한 관리가 허술하며 잉여난자의 과잉 소모가 의심된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소문에 어느 유명대학 여대생의 난자가 얼마에 팔린다더라고 하는 말이 정말 헛소문이었으면 한다. 헛소문일지라도 그러한 소문의 유통은 잉여난자의 관리가 부실할 수 있다는 증거를 반영한다. (2)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 복제 기술을 또 어떠한가? 핵 치환을 통한 배아 형성은 한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에서 만들어진다. 대략 2년 전부터 기술향상이 급진되었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배아 복제를 위한 기술적 난제는 여전하다. 복제의 전단계인 무성 수정을 위해 난자 수백 개가 필요하며, 수정 이후 세포 분열/증식을 시작하는 배아 형성 확율은 고작해야 수십 개에 불과하다. 자궁에 착상을 시킨다 해도 대부분이 임신 기간 중에 유산되거나 사산된다. 무사히 태어난다 해도 기형이 많다는 것을 일반인들은 잘 모르고 있다. 복제 양 돌리는 똑같은 실험을 거친 난자 277개 중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경우다. 그런 돌리 양도 비정상 비만증과 과노화 현상으로 얼마 전에 죽었다. 탄생 때는 그렇게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더니 죽을 때는 신문 몇 줄에 조용하기만 했다. (3) 어쨌든 핵 치환이 성공한 배아는 원리적으로 자궁에 착상시킴으로써 배양만 잘하면 성체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핵이 제거된 난자의 세포질을 단지 체세포의 핵을 성장시키기 위한 영양물질로만 보는 관점일 뿐이다. 생명의 특성은 오로지 체세포 핵에 존재하는 디엔에이로서 모두 설명 가능하다는 물질적 전제에서 현재의 연구실험이 수행되었다. 핵이 제거된 난자의 세포질 역시 생명의 특성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환경조건임을 무시할 때 엄청난 생명의 재앙이 예고된다. 다시 말해서 외부 핵과 난자 세포질 사이의 세포주기의 적합성이 붕괴됨으로써 유전자 변형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른 사례로서, 고유의 형질을 나타내는 동물 염색체에는 텔로미어라는 열린 끝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세포의 노령화에 맞추어 이 부분의 길이가 짧아진다. 그래서 체세포 복제한 생명체는 이미 짧아진 텔로미어 염색체에서부터 연결되기 때문에 복제 생명체는 예상하지 못한 과잉 노화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 혹은 면역기능의 부적응으로 말미암아 기형 혹은 면역질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이것 말고도 부작용은 하나둘이 아니다. (4) 성공한 배아가 14일이 지나면 원시선을 형성하여 배아 세포의 위치에 따라 특정 장기나 기관으로 발전하게 된다. 법적인 배아의 정의는 발생학적으로 모든 기관이 형성되는 8주까지의 세포단계를 말한다. 자연 배아와 달리 조작된 배아는 생체기관 형성 기간 동안에 생명발달 구조의 활성화 신호가 서로 맞지 않아서 기형 발달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배아는 이미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이다. 기형의 부작용이 없다하여도 인간 배아 복제는 이러한 생명체를 파괴하거나 조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인간생명을 죽이는 것과 같은 반윤리성, 반인간성의 행태와 같다. 그래서 인간인 경우 배아 연구의 허용범위를 배아 발생 14일 이전까지는 허용하자는 의견은 사실 상 생명파괴를 용인하는 결과이다. 수정 이후의 모든 배아는 이미 생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배아 연구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인간 배아 연구를 제한하자는 말이다. 배아 연구는 동물 배아에 제한되어야 하며, 그것도 키메라를 낳는 이종교배는 절대적으로 규제되어야 한다. (5) 장기이식을 위한 배아 세포 증식에 대한 몇몇 오해를 더 살펴보자.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배아 줄기세포에서 생길 수 있는 조직이식의 면역적 거부반응 때문에 자신의 세포를 증식하여 자신에게 이식하는 방식을 채택하면 된다는 새로운 기술적 제안이 등장했다. 다시 말해서 배아 줄기세포 대신에 자신의 기존 기관에서 이미 다 자란 성체 줄기세포를 떼어내 배양하여 이식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배아 줄기세포와 달리 성체 줄기세포는 이식거부반응이 전혀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사실 과학자의 오만에 해당한다. 성체 줄기세포라도 체세포 핵 이식에 의한 복제 기술은 유전체의 메칠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착상 후 기형 발생율과 유산율도 여전하며, 유전체의 비정상 발현이 가능할 수 있다. 성체 줄기세포 이식이 배아 줄기세포보다 안전성에서 확률적으로 조금 낮을 뿐 그 위험의 요소는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성체 줄기세포를 보는 관점은 배아 줄기세포가 지니는 엄청난 윤리적 논쟁을 회피하기 위한 대안으로서만 다뤄져 왔다. (6) 유전자의 특정 염기 서열이나 혹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얻은 동물에 대한 정보 특허는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미 대기업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 그런데 생명복제 기술까지 특허 출원이 된 상태라서 그렇게 우려했던 ‘생명의 상업화’가 가속화될 조짐이 벌써 나타났다. 2001년 5월에 이미 미국의 생명공학 관련 대기업인 제론은 돌리 양을 복제했던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로부터 복제 기술 라이선스를 4500만 달러에 사들여 영국 특허청에 특허를 신청했다. 로슬린 연구소는 이미 98년부터 한국을 포함한 세계 100여 국가에 복제기술에 대한 동시 특허출원을 신청한 상태이다. 영국은 세계적으로도 생명의 상업화에 적극적인 무모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무모함은 실제로 한국에도 큰 영향을 끼쳐서 특허출원 전쟁에서 독점권에 밀리면 안 된다는 상업화의 강박감이 한국의 생명공학 실험실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복제 소 `영롱이'를 탄생시킨 황우석 교수 역시 복제 관련기술 7가지를 국내 특허로 출원했다. 특정 복제 기술 하나가 60억 달러 정도의 시장성을 갖는다는 경제예측은 생명이 이미 상업화 전략에 희생당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한국의 경우 상업화의 가속도가 더 커질 것이라는 사회적 예측은 결코 합리화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생명공학 수준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체세포를 이용한 동물복제 기술력으로 급진했다. 반면에 사회적 조정 장치는 일본에서도 부러워 할 정도로 그 규제가 미약하다고 한다. 다행히 얼마 전에 국회에 상정된 최소한의 생명윤리법안이나마 빨리 원안대로 통과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4> 생명의 발현은 어디부터인가 : 배아 줄기세포를 연구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명체의 정체성을 어디에서부터 볼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귀결과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에 대한 논쟁이 매우 치열하다. 그 내용은 수정 순간부터 혹은 착상되는 순간부터인가 아니면 원시선 발생이 끝나는 14일 이후부터인가 혹은 배아 세포의 8 세포기 이후부터인가에 대한 논쟁은 생명체의 실체를 어디서부터 잡아야 하는가의 논쟁이다. 그러나 사실 그 논쟁은 영혼이 무엇인가 하는 형이상학적 존재론이나 이 사과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물질적 존재론의 논쟁보다 더 어려운 점이 도사려 있다. 왜냐하면 무생명의 물체에 대한 정체성 논의가 아니라 변화하고 살아있는 생명체에 대한 논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논쟁의 속을 잘 들여다 볼 때 사회적 이해관계 안에 그 논의가 매몰되어서 철학적 논의가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생명에 대한 철학적인 의미를 좀더 심각하게 살펴야 한다. 생명윤리 문제에서 철학적 논의는 당장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못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접근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철학적 사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와 어른을 따로 나누어서 인간의 정체성을 구획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보면 아이와 어른, 어떤 이는 여성과 남성, 나아가 유색인종과 백인종을 구분하여 인간의 정체성을 우열 비교했던 불행한 우생학의 역사가 있어왔고 또 지금도 있지만, 차별을 의도한 그러한 구별은 사회적인 구별이었지, 철학적인 구별이 결코 아니었다. 아이는 어른이 가지고 있는 절제된 이성을 결핍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을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여성이 남성이 가지고 있는 근육을 결핍했다고 해서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유색인이 백인들의 제국주의 권력을 선점하지 못했다고 해서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렇듯이 성체와 배아를 차별하는 것은 최소한 인류학적 오류에 해당한다. 인류가 대재앙을 맞아서 절대 인구수가 매우 희소한 그런 가상상황을 상정해보자. 그런 상황에서 인간의 난자나 배아를 파괴시키는 일은 분명한 범죄로 규정될 것이 당연할 것이다. 지금은 인류 개체수가 너무 많아서 배아 논쟁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인류학적 오류라고 말했다. 완전과 결핍은 전체를 정의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완전과 결핍은 양적인 차이일 뿐, 질적인 차별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완전과 결핍은 공통분모의 요소를 갖는 연속의 존재이다. 우리는 그 공통분모의 요소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인간성의 공통분모가 과연 이성理性뿐인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보아야 한다. 호모 사피언스가 자랑하는 이성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분명히 구별론자의 입장이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이성만을 유일한 잣대로 해야 한다는 입장은 바로 인간 이기주의의 극단이기도 하다. 이럴 경우 유클리드의 공리와 뉴턴 역학과 상대성이론을 발굴한 이성의 소유자인 바로 그런 서양인만이 인간 정체성의 핵심적 본질이 되어 버리는 생물학적 제국주의가 버젓이 활개칠 수 있다. 이런 결과는 구체적으로 우생학적 차별주의와 맞닿아 있다. 나치 독가스 실험과 일본군 생체실험이라는 바로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의 역사에서, 그리고 KKK단과 같은 많은 현재의 역사에서 우리는 그 현장을 분명히 목격하고 있다.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자. 생명의 시작은 곧 수정되는 순간부터이다. 그렇다고 해서 줄기세포 연구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윤리성과 존엄성이라는 구호가 과학연구의 현실에 대한 무지나 혹은 정서적인 항변으로만 폄하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구체적인 과학적 대안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 대안적 논리로서 줄기세포 연구와 그에 따른 생명복제 연구는 그것이 배아이건 성체이건 관계없이 면역체계에 대한 연구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이러한 논리가 미약할 경우, “생명의 시작을 14일 원시선 출현 때부터인가 아니면 수정 때부터인가”, 및 “배아냐 성체냐” 혹은 “특허권 선점이냐 아니면 특허 종속이냐”라는 논쟁에만 빠지면 결국 공학기술의 도도한 흐름과 생명산업의 거대한 자본에 밀려 생명성의 붕괴는 불을 보듯 너무나 뻔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이론적 항변에 그칠 일 아니라 구체적인 논쟁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논쟁의 현실이 무엇인지 더 말해보기로 하자. <5> 역사 속의 충돌적 저항 : 생명윤리 법안의 주요 제안자이며 이 분야의 중요한 학문적 안내자인 김환석 교수가 자주 말했듯이, 치료목적의 복제를 쉽게 허용하고 마는 일은 결국 생식목적의 복제로 한없이 그리고 브레이크 없이 미끄러지는 경사길slippery slope이 된다는 점이다. 화려한 학문적 이론과 복잡한 사회적 상황고려 그리고 아주 세심한 관련 법안들이 동원된다고 해도 공학적 연구의 진행방향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연구속도를 얼마나 늦출 수 있느냐라는 수동적 자세로 전락될 것 같은 비극이기도 하다. 현대에 와서 공학자의 연구실험실은 이미 떠나간 버스와 같다. 지나간 인간의 역사가 그런 불행했던 과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을 다시 상기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철학자가 아무리 떠들어도 일선 생명공학자들은 그들의 연구를 지속할 것이다. 아무리 법규정이 까다로워도 잠시 늦춰 갈 뿐, 현장 과학연구는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그렇게 엄청난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생명복제 연구가 상업화되고 있는 조짐을 부정하기 어렵다. 한국의 어떤 연구자가 이루어낸 줄기세포주의 발견은 참으로 대단한 과학적 성과이기는 하지만, 정식 등록 이후 배아줄기주 하나에 수십만 달러에 해당하는 연구비 지원을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허술한 사회적 조정장치 속에서 이러한 소문들이 돌아다니는 동안 앞으로 배아 줄기세포의 수입가격은 올라만 갈 것이다. 2001년 8월 미국의 국립보건원 NIH은 금전적 관계가 없는 배아에 대해서만 정식등록을 받아준다고 했지만, 생명공학계에서는 금전적 관계가 이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험용으로만 배아줄기주 하나 당 5천 달러에 팔 수 있다는 미국의 어느 성공한 실험실의 소문은 곧 미래 상업적 교환가치의 근거가 될 것이 뻔하다. 현재 한국에서 종교, 공학, 철학, 시민, 여성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법안을 마련하는 생명윤리자문위원회나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의 민주적 참여와 사회적 합의를 목표로 하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가 있어서 공익성과 민주성 그리고 인류적 존엄성 등을 기준으로 법안 제정에 참여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인간보다는 기술과 자본에 치우친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다. 생명윤리법 초안 작성과 관련하여 과학계와 종교계를 포함한 시민단체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며, 과기부와 복지부 사이의 대립의 폭도 매우 크다. 현재 법안은 다행히 허용보다는 규제의 폭이 넓지만 국회 통과가 될 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이다. 규제보다는 허용의 폭을 넓히려는 자본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자칫 생명윤리법안이 생명공학육성법안으로 전락될 위험요인이 우리 안에 내재해 있다. 그러한 내재된 위험요인을 부수는 일은 이론적 대안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지난 한국 현대사에서 충돌의 힘이 문제풀이의 실마리를 주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이제 중요한 일은 자본과 기술의 관성에 대하여 충돌적 방식으로 지속적인 비판을 하며 그에 따른 저항을 시도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이 겨우 그것뿐이라는 점이 슬프지만, 과거 군사독재 정권에서부터 동강 댐이나 인제 내린천 댐 계획이나 수많은 노동/환경 관련 사태들에 대한 해결책은 훌륭한 이론이나 화려한 대안이 아니라 끊임없는 비판과 충돌적 저항이었다는 사실이며, 바로 그런 뭉친 삶의 호흡이 새로운 역사의 결실로 이어져왔다는 점이다. 역사는 반복하는 것 같다. 행복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불행의 역사도 반복한다. 그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에서 비판과 옹호 사이의 편차가 너무 크다. 그런 편차는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갈등의 끝이 희망이라는 그런 희망을 버릴 수는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과거의 역사는 둘째로 치고라도, 현재의 역사에서도 많은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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