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학의 철학적 근거
2003  논문 : 자연주의 의학의 철학적 근거, 醫林 297호(2003년 5월호)

자연주의 의학의 철학적 근거



1. 동서양의 자연관 비교

대략 2,500여 년 전 서양철학은 신화神話의 패러다임에서 이성理性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면서 시작되었다. 신화의 시대와 달리 이성의 시대는 자연을 외경의 대상으로 보는 대신에 분석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로부터 서양 의술도 주술의 범주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케플러와 뉴턴의 근대 과학혁명 이후 서양의학은 자연과학의 폭발적인 발달과 더불어 합리적 이성의 체계로서 정초되었고, 그후 의학은 해부학과 성분 분석학의 과학으로 상징될 수 있을 정도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서양 의학의 변화는 동양 의학과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최소한의 역사적 내용들이다.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을 하나의 잣대로 구획하는 일은 위험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차이를 찾아 낼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연관의 차이가 두드러져 나타났다는 점이다. 서양 의학의 자연관은 기본적으로 베이컨 식의 자연이해라고 볼 수 있다. 베이컨의 자연관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투쟁의 관계라는 이해방식이다. 이제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는 전투사라는 점이다. 또한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사유의 합리적인 수단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서구의 분석적 방법론이다.

베이컨에 의하면 자연을 정복한다는 뜻 속에는 자연을 하나의 자원창고로 본다는 전제가 있다. 자원창고의 의미는 쓰고 나면 아무 것도 없는 그렇게 고정되어진 세계를 상징한다. 이러한 자연은 오로지 인간의 물질적 도구로만 사용될 뿐이며, 동시에 인간은 자연에 대하여 절대적인 우월적 지위를 갖는다. 그래서 인간은 세계의 주체이며, 자연은 오로지 도구적 대상일 뿐이다. 이러한 서구의 자연관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대립적인 정복의 관계, 즉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나타난다. 이러한 자연관은 서구에서 근대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낳았으며 따라서 인간에게 오늘과 같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안겨 주기도 했으나 결국 인간 소외라는 오늘날의 거대한 문명위기를 초래한 배경이 되었다. 인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이성의 오만함을 한껏 뽐내고 있지만 결국 원래의 자연과 인위적 자연 사이에는 절대적인 틈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제 원래의 자연은 없어지고 이성에 의해 조작된 기하학적인 자연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한편 동양에서는 정신과 물질 혹은 자연과 인간이 분리되어 나타나는 그러한 이분적 자연관의 배경을 찾을 수 없다. 동양의 자연관을 보통 자연과 인간이 합일하는 전일론적 全一論 holistic view 자연관이라고 말들 하지만 그것은 정확한 해석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 해석은 서양의 이원론을 전제하고 비교하는 관점에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동양에서도 자연과 인간을 다른 체계로 본다. 다만 자연의 운행방식과 인간의 운행방식이 같은 틀(機,동형성;Homomorphism)로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역은 자연의 운행방식을 그린 책이다. 서양과 달리 동양이 바라보는 자연 안에는 설계자designer 개념이 없으며 따라서 세계의 창조자가 그 안에는 없다. 자연운행의 원동력은 서구 기독교적인 신과 같이 외부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체적인 운동성 혹은 전문적인 개념으로는 “자기조직성”Selbstorganisation의 차원에서 말할 수 있다.
에서 나온다. 외부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운동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통적 서구 자연관에서 볼 때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만약 자전거가 앞으로 가고(운동) 있지 않다면 서있을 수 없듯이 운동 자체가 자연의 모습이라는 뜻이다. 정지된 자전거는 사실 운동하는 자전거를 사진으로 찍은 정지된 한 컷으로만 의미를 가질 뿐이다. 자전거는 그냥 연속적으로 가고 있는 것이지만, 서구의 기하학적 이성은 움직이는 자전거를 사진으로 찍어 그 사진의 컷들을 모아서 자전거의 운동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바로 인간만이 지닌다는 이성의 소산물이다. 서구 이성은 자연을 미분화시키고 그 미분화된 단위들을 다시 모아 조립하는 방식으로만 자연을 해석한다. 이런 작업이 바로 자연과학이고 의학에서는 해부학의 기초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이성을 통하여 자연을 재구성하는 사유방식으로부터 서구의 철학과 과학이 잉태되었고, 서양 의학 또한 그 틀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이다. 서구의 운동학은 기본적으로 이성으로 다시 만든 정지의 실체론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동양의 운동학은 정지가 아닌 역동성의 운동학이다.

2. 내경의 자연관

이러한 동양의 자연관이 의학에 투영된 것이 바로 󰡔황제내경󰡕의 기본 줄기이다. 󰡔황제내경󰡕은 기본적으로 유기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생명운동의 법칙을 그린 책이다. 법칙의 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양의 자연관이 구체적인 치료임상에 응용된 자연의 책이며 동시에 인간의 운동방식을 그린 인간의 책이기도 하다. 유기체로서의 인체의 변화운동의 틀은 인간만이 지니는 고유성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운행방식의 투영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 내경의 주요한 자연관이다. 바로 그 운행방식을 낳는 추동자이며 원동자인 동시에 바로 운행방식 그 자체인 어떤 실재reality를 물론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실재 개념과는 다르다.
기氣라고 말하기도 한다.

󰡔내경󰡕에서는 기로 생성된 자연이 원래부터 그리고 영원히 끊임없는 운동과 변화를 한다고 본다. 새로 생성되는 사물은 끊임없이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성장하며, 어린 상태에서 장성한 상태로 성장을 한다. 오래된 것은 점차 쇠퇴하고, 성한 것은 노쇠한 것으로 변하게 되며, 늙거나 시들게 되고 결국 그 형체가 없어지고 만다. 󰡔素問‧六微旨大論󰡕에서는 “사물의 생성은 변화로부터 나오며, 이러한 변화의 相薄은 사물의 존재근거이기도 하다” “成敗依伏生乎動, 動而不已, 則變作矣.”
고하여, 모든 사물은 영원히 운동하고 변화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동시에 기 자체에 운동하는 성질을 안에 스스로 품고 있다고 본다.

明代의 대의학자이자 철학가인 張介賓은 󰡔내경󰡕의 각 편을 나누어 주제별로 다시 편집하면서 각주 형식으로 주석서를 내어 그것을 󰡔類經󰡕이라고 이름하였다. 그는 󰡔소문‧上古天眞論󰡕 주석에서 “化生의 법칙(道)은 기의 흐름에 근본을 두며, 천지 만물이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기가 천지의 밖에 있으면 천지를 뒤덮으며, 기가 천지 안에 있게 되면 천지를 운행하고, 일월성신을 밝게 하며, 뇌우와 풍운이 있게 하고, 사시사철 만물을 생장하고 보존하게 하니, 기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람에게 살아서 사람답게 하는 것은 모두 이 기에 의해서이다.”라고 말하였다. 장개빈의 내경 해석에서 기는 세계 만물을 추동하는 기본의 원동자이며 그 자신에 의해 스스로가 움직여지는 그런 실재의 요소이다.

기 자체의 운동성은 사물을 조성할뿐더러 사물의 성질을 특징 지워주는 자기동일성의 근거가 된다. 같은 󰡔素問‧六微旨大論󰡕 편에서 “기에는 勝復이 있는데, 이러한 승복의 작용으로 德이 있게 되고 化가 있게 되며, 用과 變이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기의 작용성이 바로 사물의 자기동일성을 해명하는 단초가 된다. 기의 작용은 기 자체가 스스로 갖춰지는 성질의 틀을 이루며, 사물들로 하여금 운동하고 변화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素問‧五常政大論󰡕에서는 “기는 그 스스로 운동함으로써 살아 존재하며, 기가 멀리 나아가 있을만한 곳에 다 있으니 사물의 형체를 이루며, 기가 퍼지니(布)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며, 기가 다하니(終) 모양이 변하게 되어, 이 모두 하나의 기가 서로 이어가는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이 뜻은 다양한 사물들의 형체가 기로 이루어졌으며 그것들의 운동발전도 원래 기의 “시작”, “흩어짐”, “퍼짐”, “다함”의 작용에서 드러날 뿐이다. 만물의 형태나 특징 그리고 운동법칙은 각각 다르지만, 예외 없이 모두 기의 추동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결국 기가 변화하여 만물이 생성되어, 기와 사물 사이에는 형태적인 구별이 있을 뿐, 실제적인 차이가 없다.

한편 자연현상 및 자연물의 구성요소를 설명하기 위한 기본단위로서 기를 말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때 기본단위의 개념은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환원주의이고 분석적인 원자 개념과는 아주 다르다. 단지 운동변화의 설명을 위해서 기본단위를 말하고 있으며, 미분화의 단위로서 기를 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기는 만물을 설명하는 기본 실재reality의 단위이다. 이렇게 기본 실재가 되는 천지자연의 기(元氣)로부터 木火土金水가 분화되었으며, 이 다섯 가지 기와 陽明의 두 기가 운동의 변증법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양명의 두 가지 기가 변화 발전하여 생겨난 6 가지 기 즉, 太陰, 少陰, 厥陰, 太陽, 少陽, 陽明의 六氣는 다시 日月, 星辰과 인간이 사는 이 땅을 생성시켰다고 본다. 양명의 다섯 기가 운동하는 작용으로부터 자연계의 다양한 사물이 나타나고 그 사물들은 기의 운동구조 속에서 생성변화를 계속한다. 결국 만물 자연과 개별 사물의 운행방식은 기의 운동방식에 의존한다.

기는 인체에서 오곡(다섯 가지의 곡식)으로부터 생겨난다. 그것들은 신체에 대해서 “안개와 이슬로 물을 대는(霧露之漑)” 것과 같은 작용을 하고 있다. 󰡔靈樞‧決氣󰡕편 : “上焦開發, 宣五谷味, 熏부, 充身澤毛, 若霧露之漑, 是謂氣”
기와 사물은 하나이며, 그 사이에는 형태의 구별만이 있으며, 근원의 질적인 차이가 없음을 의미한다. 기와 사물이 하나라는 말에서 그 사물의 뜻은 서구식의 물질개념 안에 포섭되는 그런 대상으로서의 사물뿐만이 아니라 사물이 운동하는 그 운동성까지를 포함한다. 이는 앞에서 말한 대상과 운동의 구별을 두지 않는 서양과 매우 다른 자연관을 보여 준다. 서구 운동론에서는 사물을 운동하게끔 하는 추동성과 운동의 주체인 대상을 엄격히 구분한다. 그리고 운동의 추동성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외부의 추동력이 계속적으로 있어야만 비로소 사물은 움직인다고 본다. 근대 초기에는 ‘inertia'라는 내적 추동력을 암시하기도 했으나, 그 힘은 나중에 뉴턴에 의해 중력이라는 외적 추동력으로 밝혀졌다.

반면에 내경의 기본사유는 내적 추동력과 외적 추동력을 구분하지 않는다. 힘이 모여 있으면 사물이 되고 흩어져 있으면 서양에서 말하는 운동력이 된다. 여기서 운동과 대상의 구별을 두지 않는다는 뜻은 결국 힘과 사물이 하나이며 동시에 같은 근원을 지닌다는 말이다. 내경에서는 “흔히 기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物에서 뚜렷이 나타난다”고 하여 내경, 󰡔素問‧氣交變大論󰡕편, “善言氣者, 必彰于物”
氣化의 작용을 이해하는 일이 내경의 자연관 이해의 핵심이 된다.

3. 인체-자연-사회-심리의 동형적 모델

내경은 인간과 자연간의 조화 통합적 관계를 기술했을 뿐만이 아니라 “인체-자연-사회-심리 세계 모형”을 내포한다. 이러한 󰡔내경󰡕의 세계 모형은 단지 의학과 의료기술적인 내용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의 자연관을 함축한 자연의 설계도를 인간의학 안에서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은 매우 복잡하지만 하나의 체계로 통일된 유기체라는 말이 너무 당연하다. 인체는 오장육부, 사지백해(四肢百骸), 오관(눈,코,귀,입,몸) 구교(아홉개의 구멍), 피육부골(피부,근육,뼈) 등 각 부분이 서로 다르게 나뉘지만, 일정한 자기 함수관계에 의하여 자기갱신과 자기균형을 맞추려는 능력을 지닌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이러한 유기체의 특징을 자기조직성(selforganisation)이라고 부른다. 자기조직적인 인간은 대단히 복잡한 열린계(open complex system, 개방적인 複雜系)로서 외계의 시간과 물질, 에너지 그리고 정보의 교환을 상보적으로 그리고 일정하게 등질적인 자체 보전적인 단위(constant unit)를 유지한다. 달의 운행, 기후의 변천, 지리환경의 차이와 같은 자연계의 운동변화와 보이지 않는 환경의 힘들이 모두 인체에 대해서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거꾸로 미시적인 인간의 심적 활동은 항상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상호 연관성의 큰 단위를 뢰순군 교수는 인체-자연-사회-심리가 하나의 연관성 속에 놓여져 있는 상관적 단위라고 보았다. 雷順群 主編, <<內徑>>多學科硏究, 1990, 前言
예를 들어 자연의 지리, 기후의 변화는 인체에 영향을 주고, 한 인간이 살고 있는 풍토, 역사, 관습에까지 영향을 주기까지 한다. 그 영향은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풍토와 역사 그리고 사회적 관습 또한 인체에 영향을 준다고 본다. 더욱이 주관적인 자기동일성을 가장 중요한 인간의 주체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면, 사회와 인간심리의 체계를 자연의 체계와 동일시하는 동양 의학의 사유방식은 자연주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주의의 사유방식은 곧 동양 의학에서 중시하는 治病治人 혹은 修己治人의 논리 근거를 마련한다. 자연의 체계와 사회의 체계, 인체의 체계 그리고 심리의 체계를 동형적으로 본다는 뜻은 실제로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구조의 동일성과 전혀 다르다. 동양 의학에서 체계 사이의 동형성은 구조가 같다는 뜻이 아니라, 운행방식의 동일성 혹은 역동적 동일성을 말한다. 서양 철학에서 말하는 구조의 동일성이란 구조의 운동을 일으키는 정지된 실체의 동일성을 말한다. 그러므로 동양 의학의 내경이나 주역이 의미하는 역동적 내용을 담을 수 없다.

결국 동양 의학에서 말하는 각 체계 즉 우주, 사회, 인간, 심리의 네 가지 체계는 그 운행방식에서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어울린다. 따라서 자연의 운행방식은 인체의 운행방식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기보다는 상호 영향력을 갖는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집합인 사회 역시 인체에 영향을 주며, 한 인간의 심적 태도를 일정한 맥락 안으로 울타리 지우기도 한다. 그리고 그 역도 성립한다. 이를 현대적인 표현방식으로 말하면 인간은 역사적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각각의 동형적 구조를 좀더 자세히 본다.

body to cosmos in Table


3.1 자연과 인체의 동형성

먼저 자연과 인체 사이의 동형성 모델을 검토한다. 자연운행의 추동자로서 기의 운동구조는 인간의 신체적인 구조운동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동양의 근원적인 자연주의 사상이다. 예를 들어 󰡔내경󰡕은 천문기상의 변화를 천기와 지기의 상승과 하강 작용에 그 원인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오행사상이 정착되기 전까지는 음양의 상승과 하강으로 인체의 부조화를 설명한다. 오행으로 들어와서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으로 설명하며, 사상의학에서는 순환관계로서 기의 운동방식을 설명한다.
이러한 자연의 변화원리가 인체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관점이 바로 내경의 근원이 되는 이론체계이다. 󰡔素問‧六微旨大論󰡕에서 “기가 상승하고 하강하니, 하늘과 땅이 번갈아 가며 쓴다”, “오르고 곧이어 하강하니, 하강하는 것을 天이라 부른다. 내려와 곧바로 상승하니, 상승하는 것은 地라고 일컫는다. 천기는 하강하여 땅에서 흐르며, 지기는 상승하여 하늘로 떠오른다. 그래서 높고 낮음이 서로를 불러들이는 것이며, 상승하고 하강함이 서로의 원인이 되는 것이고, 그리하여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대기(大氣)의 변화는 이렇게 해서 바람, 비, 맑음, 흐림, 추움, 더움, 건조함, 습함 등의 각종 기상변화를 생기게 하였다. 그리고 자연계의 만사 만물의 태어나고 죽거나 번성하고 쇠퇴하는 것도 바로 천지 사이에 존재하는 대기의 상승과 하강의 작용 중에 진행되는 것이다. 뢰순군, 앞의 책, 2쪽.


이와 마찬가지로 󰡔내경󰡕은 인체의 각 기관의 기능활동도 자연활동과 같은 동형성을 지닌다고 본다. 기는 인체의 생명활동을 유지시켜주는 기본이며, 원동력이다. 󰡔靈樞󰡕편에서는 “사람의 기(人氣)는 곡식(穀)에서 나오며, 곡식은 위로 들어가서 폐와 오장육부로 전달하는데, 모두 기를 받게되어 깨끗한 것(淸者)은 營이 되고 군사용어에서 내부 진영 혹은 군영이라고 할 때 쓰이는 영이다.
, 탁한 것은 衛가 된다. 마찬가지로 외부를 방어하고 살피는 위병에서 쓰이는 것과 같다.
營은 脈 중에 있게 되고, 衛는 脈 밖에 있게 된다. 그리고 營은 쉬지 않고 돌고 있다. 營周不休
음양은 서로 관통하고 있는데, 모서리가 없이 둥근 것 같다. 陰陽相貫 如環無端
” 인체 내의 正氣는 물과 곡식을 마시고 먹는데서 생겨난다. 음식물은 위에서 腐熟化와 썩히는 과정
精微의 기의 작용을 거쳐 비장으로부터 폐로 전달되며, 각각의 모든 기관(臟腑:오장육부)까지 이르게 된다. 그 중에서 맑은 營氣와 탁한 衛氣가 나눠진다. 영과 위의 기는 경맥을 따라 온몸으로 돌아다니며, 다하면 다시 시작한다. 終而復始
그래서 나쁜 기(邪氣)가 인체에 침입할 때 위기는 모여서 사기와 싸워 모든 기관의 건강을 지킨다. 그리하여 영기 영양 오장육부 사지관절 등 모든 기관은 생명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3.2 인체와 사회의 동형성

앞에서 말했듯이 사물이 작용하는 힘과 힘의 주체인 사물은 작용자와 작용력으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 나아가 인간의 운행방식을 추동하는 힘과 자연의 운행방식을 추동하는 힘, 사회와 심리가 이러저러하게 운행되는 힘은 하나의 추동력에서 나온다. 이 중에서 인체와 사회의 관계에 대하여 『동의보감』에서 쓰여진 내용을 본다. 『동의보감』內景篇 제1권에서는 “사람의 몸은 하나의 나라와 같다”라고 한다. “人身猶一國”
이 내용은 실제로 『포박자』抱朴子의 글을 인용한 것이지만 동의보감 전편에 흐르는 자연주의 인간관의 한 단편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의 몸은 한 개 나라의 형태와 같다. 가슴과 배 부위는 궁실과 같고 팔다리는 도회 변두리(郊境)와 같으며 뼈마디는 모든 관리들과 같다. 神은 임금과 같고 血은 신하와 같으며 氣는 백성과 같다. 자기 몸을 건사할 줄 알면 나라도 잘 다스릴 수 있다. 대체로 백성들을 사랑함으로써 그 나라가 편안할 수 있으며 자기 몸의 기를 아껴 쓰면 그 몸을 보존할 수 있다. 백성이 흩어지면 그 나라는 망하고 기가 말라 없어지면 몸은 죽어 버린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나지 못할 것이고 망한 나라는 온전한 나라로 회복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지인至人은 아직 생겨나지 않은 재난을 미리 알고 막아내며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하고 일이 생기기 전에 대책을 세우며 이미 잘못된 후 그것을 따라 추궁하지 않는다. 대체로 사람들을 키우기는 어렵지만 위태롭게 하기는 쉬우며 기는 맑아지기는 어려우나 흐려지기는 쉽다. 그러므로 권위와 은덕을 잘 배합해야 나라를 보존할 수 있으며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혈기를 든든하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진기가 보존되며 精 氣 神 셋이 어우러 통일되니 온갖 병을 미리 막을 수 있고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하였다.” 동의보감, 여강출판사, 內景篇 1권, 8쪽.


또한 󰡔素問󰡕의 인용을 보면 오장육부와 사회의 틀인 행정 직제를 직접 연관시키고 있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心은 君主之官이라고 하는데 神明이 여기서 생긴다. 肺는 相傳之官이라고 하는데 제도와 절차가 여기서 생긴다. 肝은 將軍之官이라고 하는데 꾀와 묘책이 여기서 생긴다. 膽은 中正之官이라고 하는데 결단성이 여기서 생긴다. 襢中은 臣使之官이라고 하는데 기쁨과 즐거움이 여기서 생긴다. 脾胃는 倉廩之官이라고 하는데 5가지 맛이 여기서 생긴다. . . . . 이 12가지 기관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이 잘해야 아래 기관도 편안하게 된다. 이것을 알고 양생하면 오래 살면서 죽을 때까지 위험한 일이 없게 된다. 또한 이렇게 나라를 다스리면 크게 번영하게 된다. 심 즉 마음이 제 작용을 잘하지 못하면 12가지 기관이 위태롭게 되고 돌아가는 길이 막혀서 잘 통하지 못하면 형체가 몹시 상하게 된다. 이렇게 양생하면 재해를 입는다. 나라도 이런 식으로 다스리면 그 기초가 아주 위태롭게 되므로 또 경계해야 한다.” 소문, 靈蘭秘典論篇, 재인용: 동의보감, 여강출판사, 內景篇 1권, 9쪽.
,

3.3 인체와 감각 혹은 심리 그리고 자연과 심리 사이의 동형성

󰡔영추‧사기장부병형󰡕편에서는 “12개의 경맥과 365개의 경락이 있는데, 그 기혈은 모두 얼굴에 있으며, 走空窌. 그 精陽氣는 目 위로 가서 睛이 된다. 그 別氣는 耳로 가서 聽이 되고, 그 宗氣는 鼻에서 上出하여 臭가 되며, 그 濁氣는 胃에서 생겨나 脣舌로 가서 味가 된다.”라고 하였다. 이 단락은 눈, 귀, 코, 혀의 감각능력도 기의 작용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기와 감각능력 사이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기는 심리와도 직접 관계를 지닌다. 동의보감에서 보는 질병의 원인은 궁극적으로 기의 흐름에 문제가 발생하여 생기는 것으로 본다.(氣爲諸病) 그 인용문을 보자. “모든 병이 기에서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성내면 기가 올라가고, 기뻐하면 기가 늘어지며, 슬퍼하면 기가 가라앉는다. 그리고 두려워하면 기가 내려가고, 추워하면 기가 졸아들며, 더우면 기가 빠져나가고, 놀라면 기가 혼란해진다. 또 피로하면 기가 소모되고, 생각을 지나치게 하면 기가 뭉치게 되는 등 그 기가 같지 않다.” 동의보감, 여강출판사, 內景篇 1권, 74쪽.


결국 심리에 해당하는 칠정七情은 기의 변화를 일으키고 그 기는 心系와 肺葉, 上焦, 腠理 등의 신체 장기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의미이다. 사실 이와 같이 감각과 심정으로 볼 수 있는 칠정과 물리적인 인체 사이의 자연주의적 동형성은 『동의보감』이나 『황제내경』의 임상 이론에서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보아도 지나침이 없다. 이러한 인체와 심리 사이의 자연주의적 동형성으로 말미암아 以道療病의 논리가 임상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마음을 바로잡으면 수양하는 방법에 도움이 된다. 환자로 하여금 마음속에 있는 의심과 염려스러운 생각 그리고 일체 헛된 잡념과 불평과 자기 욕심을 다 없애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 자기의 생활방식이 자연의 이치에 부합되게 한다.” 결국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이 된다는 논리는 단순히 마음을 수양하기 위한 절차적 허례의 논리가 아니라 마음의 운행방식이 신체적 작용을 직접 일으킨다는 임상치료의 현실적 논리라고 보아야 한다. 인심이 천기와 부합된다는(人心合天機) 동의보감, 여강출판사, 內景篇 1권, 17쪽
사유방식은 천체의 변화, 기후의 변화, 계절의 변화 등이 곧 인간의 신체와 마음에 직접적으로 응대되고 있음을 강조하는 자연주의 세계관의 한 단면이다.
4. 자연주의 자연관

4.1 자연관의 관점에서

자연주의의 사유방식이 현대적인 의미의 과학적인 논리를 담보해 낼 수 있는가의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추 邪客篇에서는 인간과 천지와의 대응관계를 말하면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 인간의 머리는 둥글고 발은 네모나다”고 하고 해와 달을 두 눈에 비교하고 九州를 九窮에, 365일을 360마디에, 12經水를 12經脈에 비교하는 등 현상적 유사성을 갖고서 직접적 대응관계를 말하는 것은 매우 유아적 단계의 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기본적으로 거대한 자연주의 세계관에 대한 상징적 유비일 뿐이다. 서구 과학혁명의 기수인 갈릴레이의 위대한 업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상적 유사성에 의한 운동학에서 과감히 벗어나 현상 이면에 숨겨진 원리를 간파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현상세계에서 모든 운동은 저항(마찰)을 받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적 저항계 안에서 운동을 관찰했지만 갈릴레이는 저항이 없는 이상공간(idal space)을 사고실험(Gedankenexperiment)을 통해서 이론화하였다. 즉 그는 현상적 유사성 안에서는 법칙과 원리를 발견할 수 없고 이상계에서만 그것이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사유의 진보는 결국 과학혁명을 이루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근대 서구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동양의학의 자연주의 발상은 무법칙적이고 계량불가능한 매우 유치한 것으로 보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원래부터 동양의 자연주의 사유방식은 형이상학적 법칙성을 찾는 작업이 아니었고, 기하학의 계량화를 찾는 작업도 아니었다. 사유의 출발부터가 달랐고, 그 출발은 기본적으로 실용적 결과치를 내는데 있었다. 실용성이 과학의 기준이라고 할 때 의학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동양과학의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성과물이었다. 이런 점에서 동양의 자연주의 세계관은 단순히 비유적 상징논리의 체계만은 아니다. 자연주의는 세계를 읽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 세계가 무기물일 경우 근대적 사유방식이 적절할 수 있지만, 유기물일 경우 그 상황은 달라진다. 인간은 전형적인 유기체이다. 유기체의 인간을 다루는 의학은 갈릴레이의 이상계의 실험대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서구과학의 뛰어난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인정은 무기체일 경우 타당하다. 유기체일 경우 서구과학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과학적 자연주의를 연역법칙의 논리 안으로 가두는 일은 매우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그러므로 동양 의학의 자연주의를 법칙주의에서 벗어난 유비 체계로만 간주하는 일은 올바른 해석이 될 수 없다. 동양 의학의 자연주의는 기본적으로 물리학이 아니라 인간학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인간학이라고 말하면 인간중심주의를 연상할 수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자연중심적 인간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자연주의 자연관은 마음의 운행방식과 자연의 운행방식이 동형적이라는 데서 출발한다고 했다. 그 출발점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일이 직접 임상에 더 나은 효율성을 가져온다는 사실은 동양 의학의 기본적인 실천의 자연관이다. 그래서 맹자 혹은 주역의 세계관이 추상적 철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임상치료에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자연주의 자연관의 중요한 단면이다. 이러한 사실은 동양 의학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 환경위기와 문명위기를 풀어갈 수 있는 단초까지도 마련될 수 있다고 본다.

4.2 사회적 관점에서

우주와 사회, 사회와 인간, 인간과 심리의 동형성은 구체적인 임상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서구의 분석주의적 임상의학은 인간 그 자체만을 치료의 대상을 삼으며, 그 인간이 처해 있는 세계와 사회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주-사회-인간-심리 동형성 원리에서는 인간 즉 환자가 속해 있는 세계와 사회와의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 그래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반드시 환자의 신체적 상황만을 고려하는 임상 텍스트 In-Text안에서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해 있는 세계의 우주론과 사회적 역사의식 등의 임상 콘텍스트를 In-Context 먼저 의식하고 환자를 그 관계 속에서 관찰해야 한다. 인간 그 자체의 내부적 논리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는 말과 같다. 다시 말해서 인간을 의료의 관점에서 제대로 관찰하기 위하여 철학적 우주론과 냉정한 사회의식 그리고 인간 내면의 심리학적 고뇌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 가치중립성이라는 허울로 의사와 환자가 같이 속해 있는 세계의 세계관과 역사의식을 의사 스스로 배제할 때, 한의학은 서양 의학의 종속적 영역으로 치닫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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