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원하는 교양, 제도가 원하는 교양
2003  발표 : 학생이 원하는 교양, 제도가 원하는 교양, 상지대 인문과학연구소 학술심포 2003년5월29일


2003 상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전국 학술대회

대학 교양교육의 문제와 방향



진 행 순 서


개회식 15:10 - 15:20
○ 인사말 : 최동권 (인문과학연구소 소장)

발표 15:20 - 16:40
○ 사회 : 장영민 (상지대 방송영상문화학과)

1. 제도가 원하는 교양, 학생이 원하는 교양 / 3
최종덕(상지대)
2. 고전과 현대가 만나는 인문교양 / 8
김시천(충북대)
3. 대학 교양교과에 대한 제언과 사례/모델 / 15
이현구(호서대)
4. 사회문제를 접근하는 통로로서의 교양교육 / 17
김성우(한국철학사상연구회)

<별지> 교양과정 개선을 위한 설문지 / 28

휴식
총평 17:00 - 18:10

○ 논평자 : 이상하(계명대)
홍성태(상지대)
전호근(성균관대)


** 설문지가 이 자료집 뒤에 있습니다. 제출하시면 고맙겠습니다.
< 발표 1 >

제도가 원하는 교양, 학생이 원하는 교양



최종덕(상지대)


1. 교양의 의미

교양이 무엇이지 먼저 이야기해 보자. 교양은 서구적 의미에서 인간의 됨됨이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보면 좋다. 됨됨이는 무엇 무엇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서 굳이 됨됨이 과정이라고 두 번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두 개념을 수식어로 붙여 놓은 이유는 그 정도로 결과보다는 과정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교양의 의미는 그리스어로 ‘경작한다’ 라는 고전적 뜻을 담고 있다. 경작한다라는 뜻은 자연 상태에 있는 숲을 베어서 알곡을 생산할 수 있는 밭을 가꾸는 일이다. 밭을 가꾸기 위하여 종자를 일일이 심어주어야 하고 풀을 베어주어야 하며, 밭의 돌을 걷어내야 하며, 비료도 주고 적절한 물대기를 해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인위성이 개입되어야 한다. 그래서 서구에서 말하는 교양은 한 인간으로 하여금 인위적인 변화를 지속적으로 주게끔 하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서구에서 말하는 교양이란 인위적인 인간의 형성과정이다.

독일어로는 교양을 Bildung(집을 짓듯이 만듬) 이라고 했는데, 이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사람됨의 집을 지어 가는 교양은 사유와 지식이라는 건축자재를 사용하여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양을 키우기 위하여 인위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 요인은 외적 그리고 내적 요인이 있다. 외적 요인은 사람의 문화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과 같다. 문화 수준이란 매우 상대적이어서, 어떤 이의 교양은 그 사람이 속한 문화의 지평선에서 평가되곤 한다. 즉 교양의 기준은 그 교양이 형성되는 문화적 배경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파리 한 가운데 세계 수준의 호텔 식당에 어울리는 식사 교양은 일종의 예절 범주와 동일하다. 그러나 교양은 문화적 수준에 멈추는 예절에 절대로 국한되지 않는다. 교양은 예절과 다른 내적 요인이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교양은 생활 교양과 대학 교양이 구분된다.

대학 교양은 문화적 예절 갖추기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미학적 우주관과 사회적 역사관 그리고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갖추기를 요구한다. 이를 문사철文史哲이라고 쉽게 말한다. 그리고 이는 서구사에서 대학이 형성되는 중세 말 근대 초 대학의 기본 커리큘럼으로 시작하였다. 그것이 바로 근대 서구 대학에서 시작한 시학, 고전학, 논리학이었다. 당시의 대학 교육은 신을 찬미하는 신학과 자아의 자각과 인간관계의 출발이 되는 수사학이 중심이었다. 그래서 신학을 제외하면 문사철이 가장 중요했고, 그래서 문사철이 바로 대학 교육의 중요한 방향타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대학 교육 커리큘럼은 19세기 학문의 분화가 일어나면서 대학 교양의 지위로 자리를 양보하였다. 결국 대학 교양은 매너나 에티켓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심성과 지성을 갖추는 보편 교육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2. 반성과 비판의 계기로서 교양교과

그러나 한국의 대학교육 상황에서 이러한 교양 교육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급속히 외양의 변모를 거치고 있다. 외양의 변화가 본질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 토론의 주요 주제일 수 있다. 그 변화를 보기 위하여 현실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솔직한 접근태도가 필요하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교양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점이다. 학벌 사회의 횡포, 제도권 교육의 붕괴, 입시위주의 암기교육, 교육현장에서조차도 만연된 경쟁논리, 사람보다는 점수를 우선하는 기계화된 교육, 다양성보다는 획일화된 무차별의 교육 등등, 이 모든 교육의 모순은 우리가 영원히 안고 가야 할 짐처럼 여겨질 정도로 우리 사회를 힘들게 짓누르고 있다. 이러한 교육풍토의 변화는 결국 대학 교양교육에 크다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교양 교과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과 더불어 교양 교과의 내용 또한 크게 변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정확히 말해서 인식의 변화는 변화가 아니라 원래부터 잘못된 인식이었다고 말해야 옳다. 다시 말해서 학점을 쉽게 딸 수 있는 교과과목으로서 교양을 간주한다는 점이며, 졸업을 하기 위한 최소 요건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식은 변화한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있어 왔던 잘못된 인식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책임을 학생에게 돌릴 수 없다. 오히려 이런 현상은 앞서 말한 우리 교육 풍토가 안고 있는 내재적 모순의 한 단편일 뿐이다. 그러나 오늘은 이런 인식의 문제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기 위하여 교양 교과 내용의 변화를 주목하려 한다.

대부분의 대학은 몇 년 전부터 교육부가 제시한 학부제의 압박에 따라 전공 필수학점을 줄이는 대신 교양 교과의 이수 학점 수를 늘렸다. 과거에 비하여 교양교과의 내용은 분명히 다양해졌고, 그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문제는 그 내용 상에서 교양의 의미를 충실히 채우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대학 교양교과는 대체로 인문학 부문, 사회과학 부문, 자연과학 부문, 예술 부문, 생활 부문, 체육 부문 등의 범주로 묶여지는데, 외형적으로 과거보다 많이 다양화되어 있다. 그러나 교양교과의 내용은 미학적 우주관과 사회적 역사관 그리고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심어주기는커녕 파편화된 지식을 전수하는 교육으로 조금씩 변모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사람됨의 형성을 위한 삶의 교양이 아니라 출세를 위한 상황적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 좋은 것이고 다른 것은 나쁘다는 식의 일률적인 가치평가를 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교양 교과 내용의 형평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는 교양교과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많이 요구하는 편이다. 글쓰기를 주문하는 이유는 학생들로 하여금 대단한 문장가로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삶의 자취를 좀더 차근히 되밟아봄으로써 미래의 자신의 삶의 의미를 스스로 확보해 가는, 그런 아주 작은 하나의 단계를 거치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글쓰기를 위하여 자아를 반성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교실에서 먼저 이야기해주어야 하며, 이 세계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주도록 도움이 되는 주변의 사례들을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결국 글쓰기 연습은 반성과 비판의 사고력을 키워 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럼으로써 학생 각자의 전공 공부와 직결되지 않더라도 미래 세계를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건강하고 주체적인 시민을 지향하는 그런 교양 공부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음악의 이해> 혹은 <미술의 이해>라는 이름으로 교양교과가 이루어지는 대학이 상당히 많다. 그런 예술 범주의 교양교과는 음악이나 미술에 대한 문자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음악을 듣고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진정한 감성적 마음을 북돋우도록 하는 교과내용을 더 중시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시대적 상황에 따른 교양교과의 사례를 보자. 최근 들어 환경 관련 교양교과가 많이 개설되었지만, 대부분은 공학적 접근이어서 더 근본적인 환경윤리적 문제들이나 환경사회학적 문제들이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 환경 교육은 학제적 접근이 요구되는 것이고, 실천적인 변화의 모습을 끌어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러므로 위기를 보완하는 이론과 그에 따른 과학기술적 처방만이 아니라, 왜 오늘과 같은 위기가 생기게 되었는지, 그리고 위기 형성의 역사적 모순이 무엇인지, 또한 사회구조적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인식하는 비판적 접근이 필요하다.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한 본질적인 변화를 끌어오지 않고서 환경 문제는 추상적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신에 대한 반성의 계기로서 환경을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교양으로서 환경 관련교과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반성과 비판의 한 교육모델로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3. 가벼움과 진지함

많은 대학에서 교양교과는 진정한 교양의 위상보다는 전공교과를 준비하기 위한 예비적 기초과목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해당 전공 학과의 일 학년 학생들은 강요받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 과목을 선택하고 만다. 또한 대부분의 대학이 영어와 컴퓨터 관련과목을 기초 필수과목으로 두는 경우이다. 영어와 컴퓨터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는 교양의 개념이기보다는 일종의 생활 교과과정이 되어버렸다. 이런 과목들을 필요하다고 해서 강제 필수교과로 규정하기보다는 선택교과로 전환하거나, 아니면 대학 당국이 정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필수요건을 더 강화하는 방법으로서 졸업인증제를 도입하여 졸업요건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인증 과목으로 바꾸면 된다.

대학은 대학 나름대로 교양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학생들의 취향이 달라졌고, 학생들이 원하는 강좌를 새롭게 개발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어느 대학에서나 가장 인기 있는 교양 과목은 영상, 대중문화, 미디어 및 인터넷, 성 문화, 레져스포츠 관련 과목들이다. 대체로 사회변화의 속도를 느낄 수 있는 매체 관련 강좌가 대부분이다. 대학은 시대의 변화에 무감각하지 않기 위하여 나름대로 새로운 대중매체 관련 교양교과를 신설하고 있지만, 그 변화 속에서 속도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던 문학-역사-철학 관련 교과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가치판단은 굳이 하지 않겠지만, 분명한 것은 대학의 기본정신인 미학적 우주관과 사회적 역사관 그리고 형이상학적 세계관에 대한 관심이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인문사회 계열 관련 교양교과 교사들은 매체 혹은 영상과 같은 주제로 개설된 강의를 하면서도 나름대로 진지한 역사관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자 노력한다. 가벼운 것보다는 진지한 것, 단편적 지식보다는 비판적 사고, 기술의 설명보다는 세계관의 이해, 남이 주어진 것보다는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으로 대학 교양교육의 큰 방향이 설정되어야 한다. 이런 방향이 고려된다면 교양강좌의 테마가 비록 매체이던지, 영상이던지, 아니면 인터넷이던지 관계없이 구체적인 삶의 문제와 고민을 같이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교양 강좌, 그 내용의 무게는 그 주제 자체보다 주제를 다루는 역사관과 세계관에 달린 것이다.

또한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해내는 것은 모든 교과목에서 다 중요한 과제이지만 특히 교양 교과에서 더욱 중요하다. 전공 과목은 어차피 4년을 같이 지내야 할 전공 학과의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업에 대한 제어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그러나 교양 교과는 모든 학과 모든 학년이 수강하기 때문에 전공과목과 같은 그런 관계망이 당연히 형성될 수 없다. 그러므로 순전히 교사 스스로 교과 과정 수업내용과 진행방식에 의존해야 한다. 과거처럼 학점으로만 수업 제어를 하는 것은 교육의 진정한 의지와는 다를 것이다. 그래서 교양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는 항상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진행 방식을 다양하게 고민해야 하는 부담이 늘어만 간다. 그러나 그 부담은 학생들과 더불어 우리가 같이 처해 있는 이 사회의 역사관과 세계관을 공유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수업을 참여하는 학생들도 관심도의 변화가 이루어 질 것이다.


4. 삶의 방향 모색과 창의적 삶을 위하여

결국 대학에서의 교양은 공무원 시험 과목으로 나오는 교양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일반인들의 편견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물론 최근 들어 신화에 대한 관심의 증대, 교양 과학과 풍속의 역사와 같은 미시 생활사 관련 도서 판매의 증가,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번역된 고전에 대한 관심의 점진적 증대 등 인문 교양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대학의 교양교육에 대한 교육과정에서 얼마나 이러한 긍정적 기대감을 재생산해 낼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은 약간 추상적이고 거창하지만 찾아낼 수 있다. 즉 교양교과 내용은 학습자의 구체적 삶의 양식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첫째 학생들과 함께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방향을 공유해야 한다. 삶의 지표라고 말하면 너무나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 같아서 그런 표현을 자제하지만 최소한 시민으로서의 삶의 방향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둘째 전공 지식은 삶을 구축하는 벽돌로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지만, 교양은 그런 지식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벽돌을 쌓는 방법과 설계도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대학에서의 인문 교양은 창의적 삶을 일상성 안에서 구현하려는 태도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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