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당 선생님 죄송합니다 -원주투데이 시평
2004  기고 : ”무위당 선생님 죄송합니다“ 원주투데이 (11월22일자)

무위당 선생님 죄송합니다



최종덕(상지대, 철학)

우리 원주는 당신이 계셨기에 더욱 자랑스럽습니다. 찢겨지고 다투며 억지 일색이었던 지나온 현대사의 와류에서 함께 더불어 스스로 사는 삶의 모습을 몸으로 보여주셨기에 우리는 정말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산 속 풀잎을 그려내시던 붓 한 획에 무위의 미학을 담아내셨기에 우리는 당신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현실에서 이뤄내지 못한 통일의 염원을 교육과 협동의 실천운동으로 바꾸시어, 뭇사람들의 닫힌 마음을 일깨워주셨기에 우리는 당신을 우러릅니다.

당신을 기리는 우리의 마음조차 거부하셨던 당신 스스로의 낮춤을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하였으니 살아 있는 우리들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사사로움을 작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심에 스스로 가난을 택하신 당신을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으니 어디 몸 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 감히 나서지 않는다’  라는 노자의 이야기를 실천으로 보이심에 그 깊이를 아직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들의 속내가 참으로 얕을 뿐입니다.

평생 당신의 삶 보따리 모두를 풀어 놓으셨던 교육과 협동 그리고 생명과 평화의 장터에서 우리들은 그저 제 흥에만 겨워 그 흉내만 냈으니 접동새가 울고 갈 뿐입니다. 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어느 비문에 당신이 직접 쓰신 글 한 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라 그렇지 않으면 고향에 가지 못하리니”. 우리는 지금 원주에 있지만, 아직 원주를 찾지 못하고 있으니, 돌에 새겨진 당신의 마음을 차마 따라 읽지를 못하겠습니다. 거듭 말을 올리되, 우리 시대 생명사상의 큰 스승이신 당신의 뜻을 원주 사는 우리들부터 제대로 이어받지 못함에 정말 죄송합니다.


당신이 가신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들은 당신을 다시 배우고자, 혹은 추모를 핑계하여 이런 일 저런 일을 치러 냈습니다. 당신의 난초를 다시 보고자 서울과 원주에서 열린 작품 전시회에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었습니다. 김지하 시인과 함께 시작한 한살림 운동의 초발심을 다시 찾자는 <모심과 살림연구소>가 서울에서 크게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후학들에 의해 당신을 기리는 책이 4권이나 발간되기도 했습니다. 그 중의 책 한 권은 원주 시민 모두가 읽을 수 있게끔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의 첫 번째 대상도서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10주기를 맞이하여 아마도 전국의 대부분의 대중매체들은 글과 영상으로써 당신을 기리는 기획물을 전국으로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매체의 위력이 발휘되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또다시 부끄러워졌습니다. 밖으로 나서지 말라는 당신의 뜻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외양의 번듯함 가운데 기억에서 점점 사라지는 50-60년대 당신의 평화통일운동과 교육운동 그리고 탄광촌을 중심으로 한 협동조합 운동의 참뜻이 가려지기도 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 도전한 도덕정치의 깊은 뜻을 도외시 한 채, 선생의 무위 사상을 탈정치적 도피 명목으로 왜곡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스스로 낮춤과 뭇 사람과 한 포기 풀을 함께 모시고 받들어야 한다는 생명의 철학을 마치 은둔의 자족함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원주 이 땅에서부터 도산 안창호 선생의 교육정신의 씨앗을 뿌리고자 대성학원을 당시의 친구들과 공동으로 설립하셨던 그 엄연한 원주의 역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심각하게 훼손당하고도 있습니다.

무위당 선생님, 죄송합니다. 당신이 자주 말씀하셨던 “도은무명道隱無名”이라, 도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숨어서 이름이 없다고 늘 그러셨는데, 후학들의 미천함으로 당신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였으니 우리들 스스로에게 먼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1965년도 전국 최초로 한일 굴욕외교 반대 시위를 벌였던 대성고등학교 학생들의 안녕을 위해 대성학원 이사장직을 스스로 떨쳐 내놓으셨던 분이기에 당신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부끄러움은 더합니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그 부끄러움을 우리들 스스로 거두어들이는 일이 바로 당신의 뜻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해와 왜곡이 없도록 대성학원과 한살림운동 그리고 신협운동의 정신사를 올바르게 자리매김 함으로써 우리들의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합니다.

이제 무위당 개인의 역사만이 아닌 한국 현대사의 한 장을 완성함으로써 원주 사람만이 아닌 생명을 소중히 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무위당 선생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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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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