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도 수다를 떨자 - 수다의 생리학적 비밀
2005년 생활저서 : 최씨부부의 어처구니 있는 아파트살이, 당대, (최순덕 공저) **최순덕은 제 처입니다)

책의 일부 18절 따왔습니다.

남자들도 수다를 떨자 - 수다의 생리학적 비밀




남자들이여, 우선 그대의 아내와 수다를 떨며, 아이들과도 수다를 떨어보자. 밖에서 직장 후배들과도 수다를 떨어보자. 한다하는 학벌의 대학동창들끼리 소곤소곤 못된 전략일랑 내던져 버리고, 넓지도 않은 이 땅에서 알량한 지역 사람들끼리 남의 지역 흠집이나 낼 생각일랑 아예 묻어 버리고, 폼 나는 단 한마디로 권위 같지 않은 권위를 내세우려들지 말고, 내 당 네 당 하면서 귓속말에 오가는 파벌과 권력싸움일랑 집어치우시라.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우선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수다를 떨면서, 근엄함에 살살 피어오르는 일상적 권위부터 떨쳐버리자. 그러면 아마도 지구의 진정한 평화까지 올 수 있을 것이다.


수다는 여자들만의 전유물이라고 말들 한다. 확실히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수다가 많다. 그래서 여자들은 말의 내용도 별로 없고 그 말을 믿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남자들의 말은 내용이 있고 그 말을 다 믿을 수 있다는 것인가? 말 때문에 싸움을 일삼는 것은 남자들이 더하다. 해도 너무 할 정도다.

아줌마들이 아파트 골목에 모여 이 얘기 저 얘기 꽃을 피운다. 그래봐야 8층 집 남편이 명퇴했다더라, 4층 집 둘째 아이가 외고를 간다더라. 길 건너 미장원 스트레이트 파마 실력이 형편없다더라, 이런 정도일 뿐이다. 반면 남자들의 이야기는 말 몇 마디 하지 않지만 회사 동료를 짓밟고, 사기치고, 음해하고, 나아가 온 나라 정치를 뒤집어 놓는 혼란 사태를 밥 먹듯 일으키고 있다. 누가 더 불량한 종족이더냐? 말수가 적은 집단은 항상 폭력을 주도한다. 여자들의 수다는 남자보다 여자가 평화로움의 유전자를 많이 갖고 있다는 표현형적 증거이기도 하다.

너무 심하게 이야기 했는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우리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라는 점이다. 소통 중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생각과 입으로 말하는 말이다. 마음도 말에 어느 정도 붙어 있는 것이어서 말은 마음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말은 정보를 소통하기 위한 매개로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말 자체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끈을 단단히 엮어주는 구실을 한다.

특정 집단 간 사람들 사이의 말은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해주는 가장 효율적인 통로이다. 특히 식구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은 더욱 중요하다. 대부분의 부부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자식과 부모 간의 갈등은 그들 사이에 통하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부쩍 말수가 줄어든다. 동시에 부모와의 대화도 줄어든다. 그러면서 자식 부모 사이의 갈등은 더 커진다. 그럴수록 쓸데없다 싶을 정도로 서로에게 말을 많이 하면 많은 어려운 문제가 풀리기 시작한다. 수다를 떨어보라는 말이다. 서로 간에 말수가 적어지면서 아빠의 횡포가 나타나기도 하고 아이들의 반항도 극을 달하게 된다.

부부 사이에도 꼭 마찬가지이다. 서로 간에 오가는 말수가 많은 부부는 대부분 평화롭고 평등한 사이를 유지함을 알 수 있다. 서로 다투고 부부싸움 끝에는 반드시 서로 말이 없다. 반대로 말이 서로 없다보면 다투는 일이 잦아진다. 이런 상황을 거꾸로 보면, 서로 말을 많이 하면 평화로운 부부가 될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말을 많이 하려면 사소한 것까지 서로에게 묻고 응대하는 것이 좋다.

부부 사이에 무슨 기업이나 정치처럼 회의나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닐진데 특별한 정보를 소통하고 답을 꼭 얻어야만 하는 그런 딱딱한 말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냥 소소하게 조금은 좀스럽다 싶을 정도로 둘만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것을 대화라고들 한다. 대화라는 말은 너무 거창해서, 그냥 수다를 떨면 된다. 남편들도 이제 수다를 떨어야 한다. 우리들의 집안 평화를 위해서 그렇다.

침팬지 종은 여러 족이 있는데, 그 중에서 서로에게 이를 잡아주는 등의 애무를 하고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서로간의 말을 하루 종일 하면서 지내는 종족이 있다고 한다. 이런 침팬지 종족은 항상 평화롭고 다투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반면 말수가 거의 없고 교미 때 외에는 살을 거의 대지 않는 침팬지 종족이 있는데 그 침팬지들은 항상 다투고, 암놈을 차지하기위한 치열한 족장 싸움이 일생 내내 벌어진다고 한다.

그들에게서 암컷과 새끼들은 힘센 수컷의 권력과 횡포에 시달려 항상 주눅이 들어 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영양실조 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집단에서 숫컷의 자연수명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는 생태학적 보고가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왜 인간을 원숭이와 비교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인간이기 때문에 원숭이보다 말수가 많은 평화의 소통을 더 원해야 할 것이다.

말을 적게 하라는 성현들의 높으신 옛말은 다 뭐냐고, 또 다시 반문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성현의 고전은 우리와 같은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회구성체가 형성하면서,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말의 법전이 필요했고, 따라서 구성의 한 개체가 자신의 말에 책임지라는 뜻에서 말을 조심하라는 것일 뿐이었다.

말을 적게 해야 권위가 서기 때문이다. 말을 많이 하면 행동실천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이는 권력을 쥔 사람들의 행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는데, 오늘날 상당 부분 왜곡하여 해석하는 것이 더 문제다. 예를 들어 옛날 왕은 말을 듣는 입장이고 신하는 말을 하는 입장이다. 이게 거꾸로 되면 왕의 권위는 무너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수의 많고 적음은 권위의 있고 없음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또 한번 말하건데, 권위를 좋아하는 남자들도 우선 말수를 늘리고 수다를 많이 떨도록 부탁한다. 우선 그대의 아내와 수다를 떨며, 아이들과도 수다를 떨어보자. 그리고 나서 밖으로 나가서 직장 후배들과도 수다를 떨어보자. 한다하는 학벌의 대학동창들끼리 소곤소곤 못된 전략일랑 내던져 버리고, 넓지도 않은 이 땅에서 알량한 지역 사람들끼리 남의 지역 흠집이나 낼 생각일랑 아예 묻어 버리고, 돈 꽤나 있는 가문이나 조직 속에서 폼 나는 한마디로 권위 같지 않은 권위를 내세우려들지 말고, 내 당 네 당 하면서 귓속말에 오가는 파벌과 권력싸움일랑 집어치우시라.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우선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수다를 떨면서, 근엄함에 살살 피어오르는 일상적 권위부터 떨쳐버리자. 그러면 아마도 지구의 진정한 평화까지 올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여자들이 드세져서 남자들이 살기 힘들어졌다고 말하는 남자들이 부쩍 늘어났다. 아직도 남편에게 매 맞는 아내가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만 가고 있다. 공식적인 통계로 말이다. 그런 공식통계에 잡히는 것 자체가 여자들이 매 맞는 것을 자꾸만 외부에 알리고 공개하는 등 여자들의 위상이 확대되었다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남자들이 아직도 많다.

남자들의 권위는 정말 바뀌기 어려운 것인가 보다. 호령과 명령이 센 사람일수록 뒤로는 음모와 전술이 기묘한 이중성을 자주 겪게 된다. 슬픈 일이다. 그래서 우선 집 안에서부터 서로 수다를 떨고 그 수다 속에서 권위를 떨쳐내는 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의 문제는 어려웠던 많은 부분이 따라서 풀리게 된다. 수다 자체의 진화적이고 생리학적 비밀이 여기에 숨겨진 것이다. 남자들이여, 이제 수다를 떨면서 제법 고등동물다워지자.

어처구니있는 아파트살이

되돌아가기

전체목록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