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 존재론에 대하여
2006년 철학자 대회, 과학철학분과,

2006년 11월 4일(토), 서울대 인문관

고인석/이중원 발표논문 "현대생물학의 환원주의적 존재론에 대한 성찰" 에 대한 논평문


생물학 존재론은 철학을 위한 존재론인가 아니면 과학탐구를 위한 존재론인가



1. 미시환원주의와 개체주의는 실은 생물학만이기보다는 자연과학 전반에 걸친 존재론 성격이기도 하다. 필자는 미시환원주의와 개체주의의 특성이 생물학에서 문제되고 있다는 논거를 하기 위하여 한계사례 제시법을 도입하였다. 생물학 탐구 안에서 미시환원주의와 개체주의가 갖는 한계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한계사례법의 첫째 사례로서 표현형과 유전형 사이의 관계가 일대 일 단순형질이 아닌 복합형질로 설정된다는 점이다.

둘째, 위치효과를 들어 같은 유전자라도 염색체 위치에 따라서 다른 형질이 발현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사례는 매우 효과적인 논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한계사례 제시법은 생물학 내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물리학에서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70년대 말 초끈이론 같은 이론들이 요즘 들어 다시 최고급의 물리학 논문으로 등장한다. 전자색이론 등도 비슷하다. 이런 물리 이론들은 대체로 기존 환원주의와 개체주의의 분명한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다시 말해서 생물학 말고 물리학에서도 얼마든지 반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생물학만의 한계사례로서 단백질의 다양성을 제시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과 20종의 아미노산이 3차원 방식의 다양한 구성을 통하여 10만 종 이상의 단백질을 구성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생물학은 물리학보다 분명히 한계사례가 많다. 그리고 결정적인 점은 물리이론의 반사례의 많은 것들은 미확증 상태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필자의 논지는 옳다.

2. 필자는 미시환원주의의 한계사례로서 게이 유전자의 허구를 제시했다. 이 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게이 유전자 논의를 하는 순간 이 문제는 자칫 사회생물학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런 오해를 받으면 필자 논지와 무관하겠으나 최재천 교수의 지도교수였던 D.윌슨과 그와 같은 연구동에 연구실을 두고 그와 강력한 논쟁을 벌이다가 3년 전에 일찍 죽은 J.S.굴드 사이의 논쟁과 비슷한 상황이 전개된다. 굴드가 윌슨을 비판한 최초 논점은 사회적 행태에 대한 생물학적 결정론 비판이었으나 나중에는 적응주의 논쟁, 진화 속도 논쟁, 형태진화론 논쟁으로 이어갔다. 굴드가 병으로 죽은 이후 그런 논쟁이 거의 사라졌으나 그 대신 진화론과 발생학이 종합하여 새로운 방식의 생물학 존재론이 전개되어 가고 있다.

발생학 자체는 기존의 존재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시환원주의와 개체론에 대한 한계사례는 이미 면역학과 유전학 사이의 대립관계에서 많은 부분 이미 드러났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발생학과 면역학 장르에서 이미 필자가 말하려는 통합 존재론의 당위성들이 현실화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 현대 생물학의 실험실 일선 연구는 거의 전적으로 환원주의 방법론이다. 쉽게 말해서 분자유전학의 대세라는 뜻이다. 둘째 대부분의 일선 연구자가 실험실에서 환원주의 방법론으로 연구가 가능하려면 (혹은 연구 추동력을 얻으려면) 먼저 환원주의 존재론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이미 필자 역시 지적한 바 있지만 약간의 뉴앙스 차이가 있다.

3. 이 논문은 현대 생물학의 환원주의 존재론의 의미와 한계를 다루면서 통합 존재론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그 아이디어의 핵심은 생물학의 환원주의적 성격의 한계를 창발론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상호보완이며 배중적 대안이 아니므로, 환원과 창발을 합친 통합적 존재론이라고 했다.

창발 개념을 생물학 존재론으로 연결시키려 했다는 점은 매우 창의적이다. 애석하게도 창발의 사유가 아이디어로 그쳤다. 그 외 화이트헤드의 togetherness 및 마이어의 유기체주의를 건드렸지만 용어 수준이었다. 추후 필자들의 통합존재론 논문이 더 나오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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