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어떻게 읽을 것인가

교수신문  엮음, 최고의 고전번역을 찾아서 2편 (2007;생각의 나무) 게재 서평

다윈의 <종의 기원>, 어떻게 읽을 것인가




1859년 출간한 다윈의 <종의 기원>은 뉴턴의 <프린키피아>와 함께 최고의 고전적 가치를 지니며, 또한 지금까지도 현대생물학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1872년 개정 6판에서야 진화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데, 그 이전에는 ‘변이를 통한 자연선택’이라는 설명으로 진화의 개념을 대신하였다.

진화론의 진정한 의미는 생명종이 불변이라는 본질론적 종 개념이 무너졌다는 데 있다. 당시 최고의 뉴턴 천문학자이면서도 생명종이 불변의 창조물이라고 주장한 유웰Whewell과 본질론적 분류학의 린네를 다윈은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수많은 수집표본 및 관찰 자료를 통하여 생명종간 장벽이 변화가능하고 점진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개정 5판 헉슬리의 서문에서 보듯 <종의 기원>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의미는 ‘변화’의 존재론이다. 즉 실체와 본질의 키워드를 가졌던 서구철학의 기존 존재론으로부터 최초로 탈피한 혁명적 사유체계라는 점이다.

이렇게 불변성의 존재론 풍토에서 변화의 혁명을 일으킨 다윈의 자연선택 개념은 다음과 같은 다수의 오해와 반론에 부딪쳤다.

첫째 군비경쟁과 같은 자유경쟁논리,

둘째 우생학과 같은 사회생물학 등의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자연선택 개념은 실제로 자연 생명의 본연을 알려준 수사적 도구였을 뿐이다.

셋째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자연선택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기린이 목이 긴 이유는 높은 나무에 달린 열매를 따먹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목이 길어졌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잘못 전해진 이야기들은 다윈의 진화론과 무관하다. 자연선택의 결과가 변이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종의 기원>은 변이된 것 가운데 자연선택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넷째 자연선택의 방향은 목적지향적 진보관을 갖는다는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사유풍토가 잘못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연선택은 더 발전된 방향으로 앞으로 나가는 목적지향과는 전적으로 무관하다. 진화는 진보와 무관하다는 뜻이다.

다섯째 역시 <종의 기원>에 대한 가장 큰 논란은 발간 당시 교회의 종교적 신념이 과학적 사실을 제어하려 했다는 데 있다. 창조 해석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과학이 비판받는 예상된 사태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7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창조과학의 논쟁시비가 끊임없이 있어 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소모적인 논쟁이 불필요하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상호 모순관계가 아니다. 쉽게 말해서 과학자로서 곤충계통학을 연구하는 일과 동시에 기독교인으로서 창조론을 믿는 것 사이에는 그 어떤 모순적 충돌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과학으로서 진화론을 부정하려면 요즘 이슈가 된 유전공학 등도 전면적으로 부정되어야 한다. 이제 진화론을 종교의 터울에서 벗어나 넓은 과학으로 볼 필요가 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대단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는 중요한 이유는 앞서 든 진화론에 대한 반론의 논점들이 이미 이 책 안에 빠짐없이 기술되어 있다는 점이다.

<종의 기원> 중 자연선택 이론의 난제difficulties라는 제목의 6장과 7장은 창조과학자들이 아직도 반박근거로 대고 있는 주요논점들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 즉 자연 스스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생명체 구조의 디자인을 자연선택을 통해 설명하기 어렵다는 비난과, 또한 종간 과도기적 형태의 화석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 등은 모두 다윈이 이미 기술한 6장, 7장 내용들을 그대로 따라서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군비경쟁논리나 우생학 등 과도하게 진화론을 해석한 기존의 논점들 역시 7장 등에서 이미 논의되어진 문제였다. 또한 현대 생태학의 기본체계가 이미 3장에서 다루어졌으며, 1장과 14장에서 형태학과 발생학을 다루어 최근 유행하는 이보디보 생물학(Evolutionary Developmental Biology)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다양하고 선도적인 이론들을 다윈은 자신의 <종의 기원> 안에 품고 있었다.

그러나 다윈은 <종의 기원>을 완결된 작품으로 인정받기를 거부했다. 다윈은 진화론의 핵심인 자연선택만이 생명 변화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렇게 다윈의 진화론은 개방된 이론체계이며 미래지향적 보완이 가능한 설명체계이다.

20세기 들어 진화론과 유전학이 종합되면서 다윈진화론은 매우 다양한 논쟁점으로 발전하였다. 유전학과 진화론이 1920년대 집단유전학의 이름으로 만나면서 자연선택의 수준은 집단 혹은 종 차원에서 일어난다는 주장이 강세였다. 그러나 1966년 G. 월리엄스의 획기적인 저서인 이 나오면서 종 수준의 선택이론은 거의 도태되었다.

선택 수준 논쟁은 최적자 생존의 논리 가운데 이타주의적 형질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미있는 논쟁으로 연결되었다. 또한 최근 이보디보 생물학의 주요 논점인 모듈진화이론은 <종의 기원> 5장에 나오는 상관적 발생correlation of growth 논점과 완전히 대비되는 것이어서 그 논점의 귀추가 궁금하다.

<종의 기원> 안에는 현대 분자유전학의 아이디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진화론적 사고들이 이미 포함되어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진화론을 알고 있고 거론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실제로 <종의 기원>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생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도 그렇다는 점이다. <종이 기원>은 결코 어려운 책이 아니다. 엄청난 분량의 사례분석을 하고 있지만 그 사례를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으며, 또한 이 책에서 다윈은 최대한의 일상언어로 생물의 세계를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어 번역서로 읽을 때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국내 번역서가 5-6종 있는데 그 중에서 읽으면 안 될 것을 고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우선 자연선택을 ‘자연도태’라고 번역한 책은 대부분 일본어 이중번역의 의심이 가며 내용도 이해하기 어렵다. 의외로 부분번역 혹은 빠뜨린 내용의 번역서가 많은데, 반드시 문장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은 전체 번역본을 읽어야 한다.

<종의 기원>을 읽는 또 중요한 마음은 이 책은 생물학 전공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며 생물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이 책을 읽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기 위하여 소문만으로 들었던 박제된 고전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자연과 생명을 이해하는 생생한 안내서로서 그리고 나의 구체적 삶을 되찾기 위한 한 통로로서 다윈의 <종의 기원>을 차분히 읽으면 좋다. <끝>
최고의 고전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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