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가슴은 진화의 산물인가 |
신문 서평(경향신문) 도날드 시먼스 (김성한 옮김), <섹슈얼리티의 진화> 한길사, 2007 에 대한 서평 오르가슴은 진화의 결과인가섹스 행위는 자손을 번식하려는 진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섹스(성)의 차이, 즉 섹스 행위의 주체인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가 진화의 산물인지는 단정적으로 그 답을 말하기 어렵다. 여자와 남자가 선천적으로 다른지 혹은 문화적으로 다른지에 대한 페미니즘의 논쟁이 그 사례이다. 일반적으로 이성을 놓고 벌어지는 동성간 경쟁은 여성들보다 남성들 사이에 훨씬 치열하게 벌어진다. 도널드 시먼스는 이처럼 남녀 사이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성 특성이 우리 인간의 진화사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1950년대 일상적이지만 은밀했던 성적 행위에 대한 킨제이 보고서는 섹스의 차이에 따라 섹스 행위의 차이가 있음을 말해 주었다. 다윈이 이미 밝혀 놓은 것이지만 섹스의 차이는 성선택과 깊은 관계가 있다. 성선택은 자연선택과 짝이 되는 진화론의 핵심개념이다. 사례를 들어 간단히 말하면, 공작 수컷이 포식자에게 잡혀 먹힐 위험이 대단히 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암컷과의 짝짓기를 위한 구애행위로써 그 화려하고 큰 날개를 펼치는 행위 등의 적응 진화 과정을 성선택이라고 한다. 적응 역시 진화론의 복잡한 개념 중의 하나이다. 적응 개념을 쉽게 말하면, ‘다 그럴 만하니까 그러는 것이고, 다 있을 만하니까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진화의 메커니즘이 모두 적응주의라는 것은 지나친 독단일 수 있다. 팔다리가 4개인 것은 다 그럴 만하니까 그렇다는 적응의 산물이다. 그러나 높아진 코의 진화적 원인이 안경을 그 위에 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적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당연히 억지논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손바닥 손금은 도구 사용을 위한 손의 쥐락펴락 기능에 따라온 부수적인 부산물이지, 인간의 운명을 점치기 위해 적응된 형질이라고 할 수 없듯이 말이다. 어쨌든 적응주의 진화론은 ‘이기적 유전자’로 잘 알려진 도킨스 교수 등의 학문적 경향이며 현대진화론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적응진화의 이론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나 성격 및 섹스 욕망 등의 감정을 분석하는 것이 최근 유행 학문인 진화심리학 분야이다. 그 중에서도 짝짓기의 감정발현 등을 다룬 초기의 작품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시먼스 교수의 ‘섹슈얼리티의 진화’이다. 이 책에서 비중 있게 다룬 성행위의 오르가슴을 진화론으로 접근하는 일은 적응주의 논쟁의 핵심이기도 하다. 남자라면 예외 없는 남자의 오르가슴은 번식욕구를 증대하기 위해 적응진화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여자의 오르가슴은 그 오르가슴 현상을 설명하는 해부학적 이론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은 것이 많고 일부 여성 혹은 여성집단에서는 오르가슴이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여자의 오르가슴 현상을 적응의 결과라고 보는 적응만능주의는 무리일 수 있다. 여자의 오르가슴은 남자의 오르가슴에 대응하기 위해 문화적 영향을 받은 현상이거나, 아니면 여성의 신체구조에 따라오는 부산물 현상이라는 입장이 있다. 손금이 적응의 결과가 아니라 손 운동의 부산물이듯이 말이다. 여자의 오르가슴을 예로 들어 적응주의를 따지는 일은 진화론의 핵심내용을 거의 포괄하므로 전문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좋은 읽을거리가 된다. 적응주의 논쟁이 이렇게 예민한 이유는 적응진화론이 인종차별이나 우생학과 같이 부정적으로 비쳐진 사회생물학의 배후이론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기인한다. 이 책의 저자인 시먼스 교수 또한 대표적인 적응주의 진화심리학자이지만 그런 오해를 탈피하기 위해 여자의 오르가슴을 보는 다양한 해석들을 공정하게 제시하고 있다. 물론 여자의 오르가슴을 적응진화의 결과로 간주할 경우, 여자와 남자의 섹스의 차이를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즉 섹스 행위의 차이는 섹스의 차이를 낳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섹스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페미니즘을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로 만들 수 있다는 긍정적 주장을 한다. 이 책의 초판 출간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섹슈얼리티 관련 진화심리학의 뿌리구실을 한다. 이 책의 내용은 오르가슴뿐만이 아니라 구애행위, 동성애, 자위행위 등에서 결혼과 가족의 문제까지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책의 제목이 주는 호기심 유발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이 녹록지만은 않다. 단순하게 섹스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이 책을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구애행위를 포함한 모든 섹스 행위를 보는 관점은 결국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섹스에 대한 감정들은 인간의 본연적 모습과 연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섹스와 섹스 행위를 말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철학과 인류학, 심리학과 사회학이 결합된 인간학의 이야기를 읽어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옮긴이의 번역도 매끄러우니만큼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인간학 읽기를 기대한다. 〈최종덕|상지대교수·과학철학〉 |
경향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