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UM SECRETUM-바티칸 비밀사료 공개
ARCHIVUM SECRETUM
 
바티칸 비밀 서고 신자료 공개
 
바티칸은 유럽 4대 독재자인  무솔리니, 스탈린, 히틀러, 프랑코 시대의 바티칸 사료를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바티칸 비밀서고는 말 그대로 기독교 역사자료의 최대 보물 중의 하나로서 공개되지 않은 자료의 바티칸 서고이다. 그 규모는 2백만개 도쿠멘트에 약 80 km에 달하는 서고의 엄청난 크기이다. 완전 방화시설로 지하에 시설된 최고의 안전도를 자랑하고 있다.
 
바티칸 문서 시설은 4대 시설로 구성된다. 그 유명한 바티칸 박물관과 바티칸 도서관, 및 바티칸 전용 출판소 그리고 이 바티칸 비밀서고이다. 나는 박물관과 도서관은 가봤지만 비밀서고는 가 본적이 없다. 비밀서고 출입은 아주 제한된 학자와 관련 전문가에게만 공개된다. 비밀서고의 역사는 실제로 우럽 기독교 문명의 전체를 반영하고 잇다. <장미의 이름> 소설에 등장하는 비밀서고는 바티칸이 아니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과학과의 갈등, 기독교의 정치권력, 교황의 개인적 정보에서부터 제국주의 시대의 선교를 빙자한 식민화 권력, 20 세기  처럼 독재정권과의 관계 등등에 관한 사료들이 숨겨져 있다.
 
교황은 얼마전 1922년부터 이차대전 발발 직전 1939년 2월까지 바티칸 집권 교황이었던 파이우스11세 기간의 사료를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파이우스11세가 교황이었을 당시 나중 교황이 된 12세는 베를린 바티칸 대사였는데 이 때 그 악명높았던 히틀러와의 관계가 지금까지 완전 비밀이엇다. 그래서 당시 독재시절 4대 유럽 독재권력과 바티칸 사이의 모종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종교적 사회적 관심이 큰 것이 사실이다.
 
파이우스 11세는 1938년 당시 무솔리니가 히틀러를 초청하여 히틀러가 로마를 방문햇을 때 히틀러는 공식으로 바티칸 방문을 하려했지만 11세는 문을 걸어잠그고 만나지를 않았다. 결국 이 이야기는 최소한 11세는 독재권력과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그러나 파피우스 12세의 베를린 시절과 2차대전 당시 나치의 대학살 사태에 대한 바티칸의 입장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모호한 상황이다. 아마 이번 사료 공개로 그에 대한 많은 비밀이 풀릴 것으로 기대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이번 사료 공개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최근 이슬람 비하발언의 파문과 많은 연관이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지금의 교황은 독일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뮨센 남부 출신으로서 교황 이전 부터 기독교인만의 자유, 기독교만의 세계를 부르짖던 사람이었다. 이번 베네딕토의 발언은 결코 우연적인 발언이 아니라 근대 유럽 제국주의 시대의 세계관을 그대로 답습하는 신식민주의 사고관습의 일파일 뿐이다.
 
그러면 왜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하는가?
 
1.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럽과 이슬람 사회 사이에는 큰 갈등이 없었다.
2. 상호문제가 있다하여도 신학적 입장에 대한 교리의 차이였다.
3. 따라서 이슬람 지역에서도 유럽에 대한 반목이나 갈등이 별로 없었다.
4. 19세기말 20세기초 유럽의 제국주의 세력이 이슬람 지역까지 들어오면서 많은 이슬람 국가들이 우럽 신민지로 되면서 서서히 유럽에 대한 저항의식이 생겼다.
5. 저항의식의 시작은 대부분 민족자결과 전통 재확립, 고유종교의 보수화로 나타난다.
6. 이슬람 국가 역시 이러한 국수화 보수화 현상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7.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현상은  미국의 석유전쟁이 가시화되는 70년대부터 극대화되었을 뿐이다.
8. 다시 말해서 히틀러 당시 유럽과 이슬람 사회간의 갈등은 그리 가시회된 것이 별로 없엇다는 점이다.
9. 이번 베네딕토 16세가 이슬람을 비하발언 한 내용에서 과거 중세말기 근대초기의 이슬람 경계발언을 인용한 것인데 그런 과거 역사의 발언조차도 실제로는 페르시아 문화를 새로이 접하게 되었던 유럽 르네상스 시대에서 자기네보다 더 발전한 이슬람문화에 대한  충격과 피해의식때문에 나타난 반발의 발언들이었다.
10.  이번 히틀러 시절의 사료 공개로부터 아마도 독일을 비롯한 유럽사회와 이슬람권 사회간의 친화적이었던(반목이 있을수가 없었던) 역사적 사료들이 공개될 것이다. 아마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deeply sorry" 라고 유감을 표했지만 간접적인 사과이고 따라서 이슬람 사회는 여전히 분노하고 있는데, 이는  추후 바티칸의 입장에서 유리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아마도 친화적 사료들을 들고 나올 것이 뻔하다. 그래야만 권력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
철학의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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