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금광의 미래 |
짐바브웨, 금광, 다이아몬드 그리고 빅토리아 폭포의 미래 지난 12월에만 짐바브웨 정부는 불법 금광 채굴자 16,000명을 현장에서 체포하였다. 짐바브웨 경찰은 “금 불법유통의 끝장” 이라는 뜻의 “치코로코자 차페라”(Chikorokoza Chapera) 작전명으로 짐바브웨 중앙은행, 국가 광산청 및 환경청과 합동으로 귀금속 광산지대의 불법체굴 및 거래 위반자를 대량 체포했다. 이 합동수사에서 불법채굴자 임시막사를 불태우고, 50십만 킬로그램의 금(원석 포함)과 5천개의 다이아몬드를 회수했다. 너무 많은 체포자 수 때문에 불법 유통 귀금속을 돌려주거나 자수한 사람들을 풀어 주었다. 실은 불법 채굴자들의 많은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반 민중들이다. 그들은 70-80년 이후 급격히 줄어 든 농지 면적으로 인해 농사 말고 다른 일을 찾았고 도시로 몰려 부랑인이 되거나 이렇게 광산 주변 불법 채광자 신세가 된 것이다. 도대체 그 많은 양의 금과 다이아몬드는 어떻게 된 것인가? 많은 정부 혹은 기업가들은 귀금속을 외국으로 빼돌려 그들의 배를 채워가면서 민중들의 배는 더 곯아가고 있다. 도시로 간 사람들 역시 그들이 정책했던 집과 땅을 빼앗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도시 정화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그래서 배고픈 민중들은 광산으로 더 몰리게 된다. 이렇게 악순환이 고리지워져 있다. 짐바브웨는 1980년 영국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영국은 짐바브웨를 독립시켰으나 많은 땅과 금광을 계속 소유하였고 금융을 장악하였다. 해방을 맞은 무가베Robert Mugabe 초기 정권은 이에 맞서 완전 해방을 요구했다. 영국은 그 댓가로 백인 소유 땅을 정권 권력자에게 넘기면서 해방 이후 국가 재산 소유를 공공화 하는데 소홀하면서 국가 소유 땅들을 무가베 측근들이 나눠 갖도록 영국은 방조하고 협조하였다. 그러면서 무가베 정권의 정통성이 손상되기 시작했다. 영국은 짐바브웨를 능동적으로 독립시켜 짐바브웨 근대화에 일조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당연히 약속된 시점에 독립을 한 것이고 더 실제로는 1980년이라는 너무 늦은 독립인데도 영국은 해방을 시혜를 베풀었다는 생색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 영연방 회의를 짐바브웨에서 개최했고, 이때 영국 여왕이 짐바브웨를 방문했다. 이때 정권은 수도인 하라레Harare 의 인구 밀집지역을 근대화 및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도시 철거를 시작했고 이대 많은 도시 부랑민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갈데 없고 먹을 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황량한 광산촌으로 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자, 다시 정리해 보자 1) 영국은 다이아몬드라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근래까지 신민지로 남겨 두었던 짐바브웨를 독립시키면서 변질된 무가베 정권의 자산 독점과 독재를 눈감으면서 권력자와 민중 사이의 골을 깊게 조장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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