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만의 자유
[철학으로 세상읽기]
 

그대만의 자유



미디어스 2010년 03월12일 (금) 11:12:01 미디어스 게재

1. 자유는 그림의 떡이었다. :

자유롭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지나가는 강아지도 목줄에 매여 가기보다는 혼자서 뛰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말이다. 인간의 자유와 강아지의 자유를 그렇게 비교하다니 인간의 존엄성이 손상된다고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바로 그런 물적 자유로부터 형이상학적인 자유가 탄생하였으니 말이다. 고전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이유를 개별적인 개체 안에 있다고 하여 소위 개체의 자유를 조금씩 엿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말했던 자유를 인간에게 적용한다면 극히 일부분의 인간 집단 즉 귀족 계층에게만 해당하는 자유였다.

13세기 유럽, 왕권의 제한을 제도적으로 시도한 마그나카르타에서조차 시민의 자유란 특권 귀족층의 자유에 국한하였다. 자유의 개념은 조금씩 확산되었으나 일반 민중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아니면 가장 실천적이어야 자유의 현실은 없고 형이상학적 자유라는 개념이 우선했다. 그래서 여전히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의 계층을 확장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인간 해방과 무관했다. 이는 일종의 형이상학적 횡포였다.

2. 자유의 개념이 생겼다. :

19세기 근대 영국,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의 계층이 한층 넓어졌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런 역사적 조류에 맞춰 그의 저서 《자유론》에서 자유의 개념을 근대적으로 정리하였다. 여기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자유의 구분이 만들어졌다. 자유에는 억압이나 구속으로부터 해방, 탈출, 독립하여 힘겹게 얻어낸 자유liberty as the absence of coercion가 있는 반면, 무엇을 성취하려는 목표로 이루어진 자유liberty as the freedom to act도 있다고 했다. 자유론의 파생된 말들로서 후일 이사야 베를린Isaiah Berlin이 만든 표현이지만, 통상 전자를 소극적 자유라 하고 후자를 적극적 자유라고 한다. 이런 구획은 도덕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철학적 명제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근대화된 자유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제한적 자유 혹은 특권적 자유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었다. 다른 옷을 입고 나왔기 때문에 마치 개방된 자유처럼 보이기는 했다. 무슨 말인지 잘 따져보자.

3. 개인의 자유는 집단의 보호를 수반한다. :

근대적 의미의 자유는 개인의 독립적 존재를 인정하고 양육하는데서 시작한다. 개인의 존재 양육은 집단의 협력성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소위 공리주의의 탄생이다. 이후 자유는 개인 혹은 집단이 타인 혹은 타집단의 침해를 받지 않는 상태를 말하게 되었다. 근대 유럽의 권력계층은 자유 개념을 철학적으로 설명하려는 목표보다는, 자유를 얻어내고 존속하려는 실천적 강령을 세우는데 더 큰 목표를 두고 있었다. 영국인다운 태도이다. 개인 혹은 집단의 자기소유self ownership가 목적이며, 이는 자기소유를 위해 자기보호self protection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여기서 자기보호가 침해된다고 판단될 경우 타인 혹은 타 집단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런 도덕적 언명은 근대 자유론의 핵심개념이며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 말을 뒤집어 새겨본다면 정말 무서운 뜻을 갖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밀은 자유의 담지자로서 개인과 함께 집단을 포함시켰다.

내가 속한 집단의 자유가 곧 나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뜻이다. 이는 곧 공리주의 도덕률의 탄생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도덕관은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집단주의collectivism의 교묘한 결합양상에서 드러난다. 흔히들 말하듯 서구의 인간관을 개인주의로만 해석하여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를 대비적으로 간주하는데, 근대 영국의 공리주의 도덕관의 경우 그런 대비적 설명은 해당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모순적으로 대비시킬 경우, 서구 고전 자유주의 나아가 오늘에 이르는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없다. 19세기 영국에서 출생한 자유의 개념은 철저하게 현실적이어서 당대 영국인은 개인이 속한 집단의 권력이 존속될 경우에만 비로소 인간 개인의 도덕심이 발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는 보통 근대와 전근대를 구획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차이의 실질적인 내용은 실제로 집단권력의 양상이 바꿨다는 점에 있었다. 즉 집단권력의 양상이 정치적 권력에서 경제적 권력으로 이행된 차이에 지나지 않았다.

4. 경제 자유주의가 목적이었다. :

여기서 근대의 영국다운 경제학 체제가 성립되었다. 이 체제 안에서 집단의 자유 개념과 집단의 경제 개념이 만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속한 집단의 자유를 존속시키기 위하여 내 집단의 자유를 손상시킨다고 판단되는 외적 요소를 능동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과거에는 이런 해결의 실마리를 제국주의 식민자본 유입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근대 영국 빅토리아 시대는 나름대로 자유 경제학이라는 설계도를 갖고 해결하려고 했다. 이것이 바로 고전 자유주의의 탄생이다. 고전 자유주의는 실제로 일종의 경제학 이론의 사상적 배후였다. 그래서 당시의 자유주의를 경제적 자유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다.

5. 자유는 소유 본성에 뿌리를 둔다. :

자유는 개인만이 아니라 집단의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겉으로는 철저하게 개인의 자유를 수호한다고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집단의 자유를 지켜내야 한다는 위장된 논리이다. 자유의 형이상학자들이 이런 점을 놓치고 있었다. 자유의 형이상학자들은 자유의 담지자가 오로지 개체에게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집단은 자유를 침식해버리는 전체주의 오류의 당사자라고 간단히 분류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때부터 겉으로는 자유주의이지만 속으로는 자기집단 보호주의의 성격을 띤 영국 고유의 정치경제 활동이 본격화하였다.

미국에 이식된 자유주의 역시 겉으론 ‘자유’, 속으론 ‘보호’의 고도 전략으로 세계를 조금씩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자유주의라는 자유의 속성은 원천적으로 자기집단 보호우선주의를 수반한다는 점이다. 이는 개인의 정의를 ‘소유’에 뿌리로 둔 인간본성론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자유주의의 당연한 귀결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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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공명성도 그들의 기준이다. :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명분도 좋아라, 세계화의 구호 아래 힘이 조금이라도 더 센 국가는 상대적으로 그보다 약한 국가를 자유주의 명분으로 시장을 개방하라고 거센 압력을 넣고 있다. 이미 몇 년 전에 장하준은 시장 압력을 주도하는 강대국들의 위선적 모습을 그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다. 자본을 휘두르는 강대국들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거칠 것이 없으며, 못 할 것이 없다. 오늘날 아프리카 부존 및 에너지 자원을 두고 열강 사이의 치열한 싸움이 붙고 있다. 에너지 쟁탈전에 늦게 끼어든 중국도 이제는 자유시장의 깃발을 세워 오히려 미국에 한 수 가르치려 할 지경이 되었다.

19세기말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자유주의는 그 영역을 확장하여, 자유가 곧 정의justice인 그런 도덕 원칙을 정착시켰다. 예를 들어보자. 조금이라도 내가 너보다 힘이 세다고 여겨지면 그들은 즉시 자유롭게 경쟁하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대학생과 초등학생이 같은 출발선에서 공명fairness하게 출발하여 누가 이기나 자유롭게 시합하자는 말과 같다. 그들은 이런 게임이야말로 바로 정의로운 게임이라고 한다. 자유에서 공명함이 생기고 그런 자유로운 공명함에서 정의가 성립된다는 논리를 구축했다. 자유롭게 시합을 한다고 하지만 초등학생이 대학생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다. 요약을 해보자. 자유의 꺼풀을 벗기면 무엇이 나올까? 그들만의 정의이며, 그들을 위한 공명이며, 남들 희생에 의해 만들어진 자유이다.

7.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수평적 권력을 알기 때문이다. :

인간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구성원들 사이의 균형적인 권력관계이다. 일인 왕권 중심의 사회는 인류의 역사에서 대부분 사라지고 없어졌다. 현대 인류학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에드워드 에번스 프리처드의 저서 <누에르>(The Nuer,번역서)는 아프리카 나일강 유역에 정착했던 누에르 족의 인간관계를 묘사하고 있는데, 20만 명 이상의 인구였던 누에르 사회는 일인 체제의 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 사회 그 어느 국가보다 오래 유지되어 왔다. (이차대전 이후 급격히 누에르 종족이 줄었다. 소를 키우는 종족이었는데 자동차의 유입으로 삶의 많은 부분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누에르 족의 통치방식은 일인 독점적 중앙권력이 아닌 분산형 수평권력 구조였기 때문에 오랜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전문 연구자들에 의해 평가받고 있다.

인류사에 걸쳐 특히 문자 시대 이후, 인간본성을 묻는 질문이 계속되어 왔다. 이런 질문으로부터 동서양 할 것 없이 철학이라는 학문이 형성되었다. 철학은 수평적 지식체계를 탐구한다. 이를 어렵게 말해서 ‘보편적 지식’이라고 하기도 한다. 종교는 ‘보편적 사랑’이라는 인류원칙을 추구한다. 예술 또한 ‘보편적 표현’이라는 커뮤니케이션을 갈구한다. 철학과 종교와 예술은 구상에서 추상으로 전이한 인류의 경계이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류의 추상 형질들이다. 이렇듯 인간사회의 권력 구조 역시 인간의 경계를 상실해서는 안 된다. 인간사회의 권력구조가 침팬지 등의 다른 동물사회의 권력구조와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인간사회의 권력구조 역시 동물적 권력이 아닌 ‘보편적 권력’의 구조를 내재화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보편적 권력의 구체적인 양상은 자유의 이념이 아닌 수평의 이념 위에 축조된 인간관계이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유도된다. 텔레비전 <동물의 왕국> 류에서 침팬지나 사자 혹은 개미의 생태계를 전환적 시각으로 다시 볼 수 있다면, 꽤나 사회적이라고 여겨지는 그들 동물사회의 권력구조는 냉혹한 <자유>라는 행동원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얼른 깨달을 수 있다. 이제 <자유>보다 <평등>이라는 좀 더 인간적인 원칙이 우리 사회에 왜 필요한지 눈치챌 수 있을 것 같다.

8. 한국 안에도 이미 그들이 많다. :

불행하게도 근대 세계 이후 소위 <평등>의 논리가 서서히 축소되고 <자유>의 논리는 끝없이 팽창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에 질세라 세계 시장에서나 국내 시장에서나, 혹은 경제에서나 정치에서나 할 것 없이 자유의 깃발을 휘젓고 있다. 자유의 논리는 보편이 아니라 개체를 위한 집단 이익을 지향하므로 자유주의 이념은 자기집단 보호를 우선으로 한다. 한국에서 소위 자유주의는 집단이익도 아닌 개인이익에 치중하고 있다. 개인 안위에 몰두하다보면 상대방의 입장을 수용할 수 없게 된다.

소유 중심의 자유주의는 상대방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자유를 조금이라도 비난할지라면 어느 사이엔가 빨갱이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이념과 권력 분단이라는 뼈아픈 현실을 안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까짓 그런 자유주의자도 있을 수 있다고 치자.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 내부에 내재한 자유라는 도깨비들이다. 최근 어느 뉴스에선가 들리기를, 모 기업인은 이렇게 말했다. 기업이 오래가기 위해서 아들에게 넘기는 상속세의 납부유예를 법안화해야 한다고. 부담되는 상속세 은근슬쩍 넘어가자는 말인데 정말 막 가자는 이야기다. 근대사회의 기초적인 공공성을 파괴하면서도, 그들은 아무 거리낌이 없다.

개인화된 자유주의자들이 좋아하는 미국을 쫒으려면 한번 제대로 따라하라고 권유한다.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은 보호대상이 되는 자기집단의 크기를 매우 크게 확장하고 있다. 그래야만 미국 내 개인의 이익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거기지만 우리는 강남이라는 작은 집단에 스스로 취하고 있다. 지자체 중에서 서울시는 가장 낮으며, 강남은 전국 최고라는 2009년 학력수준 통계는 <자유>의 중독성이 치명적임을 보여주는 흔한 예시다. 빈부차이는 더 심각해져만 가는데 우리는 잘 살고 있다는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자유의 자본’이라는 실탄을 가득 채운 ‘자유의 지식’이라는 총을 들고 그들은 누구를 향해 쏘고 있는가? <끝, 최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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