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의 그림을 읽고
Invitation of KimBongjoon

Invitation of KimBongjoon


신화, 넉넉한 세상을 위하여

-김봉준의 그림을 읽고-
 
최종덕(김봉준미술전 준비위원장)
 
김봉준 작가와의 만남이 벌써 40년 가까이 되었다. 칼날시퍼런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20대 초반의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었다. 그나마 젊은 심장을 조금이나마 위안할 수 있었던 탈판이 있었다. 덩더쿵 다리로 땅을 치고 어깨로 하늘을 휘둘러가면서 양반을 호통치는 말뚝이의 풍자 언담을 통해서 우리들은 세상과 만났다. 또한 그런 탈춤판에서 나는 김봉준을 만났다. 같이 춤추고 몰려다니는 일 외에 야학이나 노동현장, 풍물이나 지신밟기에 뒤엉킨 몸과 마음을 토로하는 김봉준을 옆에서 보아왔다. 나는 그가 미대 학생임을 의식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김봉준은 분명히 내면의 무엇인가를 표현하려는 예술적 욕구를 그의 몸 안에 꽉채우고 있었다. 그런 꽉참을 그에게서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가였다는 말이 정말 어울렸다.
 
80년대 중반 들어 우리는 서로 각자의 길을 갔다. 나는 학자가 된다며 쪼잔한 지식세계에 빠졌지만 김봉준은 농민과 산업현장 깊숙이 들어가 풍물을 통해 더 나은 두레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나는 멀리서 강열한 투쟁을 그린 그의 걸개그림과 판화를 접했지만, 남 일처럼 그의 작품을 쳐다보았었다. 춤을 같이 추던 시절처럼 김봉준을 호흡할 수 없었다. 나의 죽은 지식으로 그의 생동스런 삶의 그림을 쳐다 볼 수 없었다.
 
90년대 중후반 김봉준과 나는 우연히 원주에서 만났다. 나는 상지대학교에 직장이 되어 원주로 이사했는데, 김봉준은 새로운 작품세계를 찾으러 반계저수지 훌쩍 넘어 취병리 계곡 끝자락에 그 자신의 터를 잡았다. 그렇게 김봉준을 다시 만났다. 소쩍새와 자작나무가 곁에 있는 그만의 함석집 예술공간에서 그는 혼신으로 작품을 창조하고 있었다. 노동의 현장 대신 삶의 현장으로 바뀌었을 뿐, 김봉준은 여전히 20년 전 20대의 호흡을 그대로 숨쉬고 있었다. 춤을 추는 것도 사람이고 노동을 하는 것도 사람이고 농사를 짓는 것도 사람이거늘, 사람 속에서 세상의 진실을 찾아보려 했다. 김봉준은 춤판에도 있었고, 농사판에도 있었고 산업노동판에도 있었지만, 여전히 무엇인가를 채우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는 사람의 본판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찾고 싶어 했다. 사람의 원형을 찾아보려는 강근한 그의 갈망이었다.
 
그가 찾던 삶의 원형은 신화세계에 있었다. 김봉준이 찾던 신화는 고대인에게 귀속된 것만이 아니다. 공장의 노동자에게서, 밭가는 농촌의 할머니에게서, 마을의 평범한 이장님에게서 그의 신화를 �m어 찾아내었다. 그는 신화를 오늘을 사는 일상인의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해를 잡고 하늘로 오르고 달을 잡고 구름을 타는 신들의 탄생신화는 며느리의 첫아이 출산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이야기로 재현된다. 옛날 흔히 듣는 삼신할미의 이야기는 신화이자, 설화이며, 굿판이기도 하며 자장가이기도 하다. 김봉준의 신화로 태어난 제주 할멍신은 할멍 치마폭에 온바다를 품을 수도 있지만 물가에 흩어진 아주 작은 돌망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 어머니의 손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제주 강정마을에서 일어나는 권력의 폭력은 우리의 신화, 자신의 뿌리를 스스로 송두리째 깔아뭉개는 일과 같다.
 
김봉준의 그림과 조각은 한 공간, 한 순간에 놓여진 미학적 표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그림 한 폭을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귀를 열어놓고 그림에 담긴 이야기처럼 듣는 것이다. 우리는 조각 한 상을 눈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애니메이션 영화처럼 보는 것이다. 이렇게 생명의 생생한 움직임이 이 전시회 공간을 가득 매우고 있다. 천지의 신화를 일상의 이야기로 바꾸어 들려주는 김봉준의 천부적인 생명력은 그의 판화와 회화, 붓그림과 조각 작품 하나하나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김봉준 미학의 한 뿌리를 이루게 한 원주에서 그의 작품전시회를 여는 것은 의미가 크다. 박경리, 장일순, 김지하로 이어가는 생명사상의 지축을 더욱더 생생하게 이어간다는 점에서, 김봉준의 예술은 원주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그런 예술적 자산을 원주에서 만나게 되니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또한 그의 생명의 진동을 섭동할 수 있으니 참으로 신명날 일이다. 이러한 신화의 신명은 암울한 이 현실로부터 박차고 일어날 삶의 풍요로움을 확보해준다.
 
 


Arts World of Kim Bong-Joon
(Jongduck Choi, Sangji Univ.)
 
김봉준미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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