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3대 세습’보다 더 괴이한 ‘이재용 3대 세습 |
‘김정은 3대 세습’보다 더 괴이한 ‘이재용 3대 세습’! (서평: 김상봉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서평자 : 최종덕 신간:『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알렙출판사 2014년1월)에 실린 글입니다. (중간) 김상봉의 책에는 세계 형이상학과 인간 윤리학이 날줄과 씨줄처럼 치밀한 구조로 짜여 있다. 특히 그의 책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꾸리에 펴냄)에서는 거대한 관습과 문명적 오류를 붕괴시킬 만한 세속적 형이상학의 범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거대한 자본의 우상을 깨고 삶의 윤리를 재구축하려는 형이상학의 도전이었다. 형이상학과 현실학의 페이지로 구성된 철학적 선언서이기도 하다. (중간) 재벌 기업에게 더 많은 돈을 몰아주면 끝내는 우리들 대중들에게도 혜택에 돌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재벌과 그 공조자들이 만들어낸 가짜 유토피아일 뿐이다. 나는 이런 희망을 ‘의존적 허망’이라고 말한다. 의존적 허망은 ‘주체적 희망’을 날조하는 허망한 믿음의 결과이다. 앞서 말한 기만의 믿음, 즉 부자들에게 돈을 우선적으로 몰아주면 넘쳐나고 난 이후, 끝내는 대중들에게 떡고물이 똑똑(trickle) 떨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전형적인 트릭클다운(trickle-down) 현상의 귀결이다. 트릭클다운 정책은 미국에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1990년 전후로 시행했던 부자 혜택 정책이다. 한국은 이런 부자 혜택 경제 정책을 미국 이상으로 노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떡고물을 바라는 것이 바로 노예적 허망이며 떡고물을 조작하는 것은 공조적 지식인의 날조이며 위조이다. 한국에서는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의 혜택을 돌리고 난 후 그 파이 아래로 똑똑 떨어지는 떡고물조차 서민들에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재벌 2세들이 그 남은 떡고물까지 깡그리 흡수해 버리기 때문이다. 재벌 2세, 3세에게 기업을 불법적으로 물려주는 현실을 법관들까지 모른 척하고 있으며 관련 공무원들은 한 발 더 나가 재벌 비위 상하지 않도록 미리 알아서 기고 있다. (중간) “북한에서는 국가 위에 당이 있다면 남한에서는 국가 위에 재벌 기업이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225쪽) (중간) 책에 쓰인 대로 이재용은 1994년 아버지 이건희로부터 61억 원을 물려받았다. 증여세를 납부하고 나니 44억 원이 남았다고 한다. 당시 매스컴은 소박한 상속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이재용의 돈 44억 원이 불과 15년 만에 2조2000억 원이 되었다. 더군다나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계열사 기업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었다. 전 지구적 차원의 불법적 행위가 일어났지만, 대한민국 법원이 내린 그에 대한 법정 판결은 결국 그 부자에게 면죄부를 준 결과에 지나지 않았다. (중간) 노동자 김진숙이 크레인에 올라 자본 권력의 허구에 항거했을 때 김진숙으로부터 우리는 가장 철학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의심을 하지 않고 주어진 틀에 안주하도록 많은 사람들이 순치되었다. 조금만 참으면 희망찬 미래가 올 것이라는 감언이설에 빠져 가짜의 현실을 그냥 인정하고 마는 허구의 믿음들이 넘쳐난다. 그런 믿음들은 일종의 ‘의존적 믿음’일 뿐이다. 우리에게는 ‘의존적 믿음’이 아니라 ‘주체적 믿음’이 요청된다. 그런 ‘주체적 믿음’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바로 철학이다. (중간) 그런 관습이 가짜라는 것을 그의 책에서 읽을 수 있었다. 김상봉의 책에 나온 대로 그들이 가짜 주인이요 진짜 주인은 우리 모두라는 항변을 강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항변이 바로 철학함의 출발이다. 여기서 김상봉의 철학이 고귀하고 박제된 신성화된 형이상학이 아니라 현실을 섭동하며 극복하고 세속의 아픔을 공유하는 실천적 형이상학임을 알게 되었다. 실천적 형이상학이란 조작된 의존적 희망으로부터 탈출하여 주체적 희망을 되찾는 삶의 매뉴얼이다. 그런 매뉴얼을 읽을 수 있다면, 김상봉의 노동자 경영권 주장이 낭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관통하는 실천적 지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
신간: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