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옷에 대한 팩트? |
사설.칼럼 (한겨레신문 등록 :2014-06-09 18:08) [왜냐면] 야한 옷에 대한 팩트? / 최종덕 성폭행이나 성추행으로 경찰에 잡혀온 아저씨들은 대부분 비슷한 항변을 단계적으로 한단다. 먼저 “나는 그런 적 없다.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며 발뺌을 한다. 증거들이 너무 많아서 그 아저씨의 발뺌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다음 단계 변명이 시작된다. “남자가 좀 그럴 수도 있지, 이게 문제라고 떠드냐?” 그러다가 상황이 심각해지면 “정말 이렇게 큰 문제가 되는 줄 몰랐다”고 꼬리를 내린다. 그리고 자신이 불리하다고 느끼면서 “여자가 짧은 치마 입고 꼬리를 치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의 성적 권력을 정당화하려는 몸부림이 드러나고, 책임을 회피하는 비열한 모습도 동시에 나타난다. 서울대 의대 이윤성 교수가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어느 강연장에서 말했다고 한다.(<한겨레> 5월28일치 18면) 성범죄자의 변명 중에서 네번째 단계를 정당화하는 것 같다. 그 교수가 말한 “야한 차림” 변론은 실은 오래전부터 남자들이 해오던 말투이다. 야한 차림에 책임을 전가하는 악습은 무슬림 권력자들이 여자들을 묶어두기 위한 수단으로 있어 왔으며, 원리주의 무슬림 정권이 들어서면서 더욱더 강화시켜 왔다. 무슬림 여자들이 머리에 쓰는 부르카는 눈 부위만 겨우 뚫어놓고 그나마도 망사로 가려져 있다. 히잡이나 부르카로 둘러싼 여성의 몸에서 슬쩍 보이는 눈썹과 발목을 갖고도 남성들은 그런 모습이 성범죄를 일으킨다고 심각하게 트집을 잡는다. 이러한 책임론은 남성 기득권의 횡포일 뿐이다. 인도에서는 옷가게 진열대에 야한 옷을 걸친 마네킹이 성폭행의 원인이라는 억지춘향의 논쟁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전체 원문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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