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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생명의 거울, 갈라파고스 『갈라파고스에서 들려주는 진화생물학 이야기』 (안현수, 장지훈, 김주희 저, 2010) 에 대한 서평 [출처] 도서출판 씨아이알 블로그 : https://blog.naver.com/cirpublishing/222079143953 생명진화의 살아 있는 현장인 갈라파고스의 탐사기를 통해서 딱딱한 진화생물학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그런 책을 만났다. 『갈라파고스에서 들려주는 진화생물학 이야기』라는 이름의 책이었다. 지스트(GIST)대학 미래의 청년 연구자 안현수, 장지훈, 김주희 세 사람이 갈라파고스 현장 탐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써서 책을 내었다. 일선 현장에서 벌어지는 과학연구의 소소한 발걸음조차도 역사적으로 위대한 과학자들이 다져온 길을 다시 걷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과학자의 기분으로 갈라파고스 탐사를 하게 되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저자 서문에 쓴 문구 하나가 마음에 들어서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겠다고 얼른 작정했다. “올바른 과학적인 지식의 소통은 거짓된 정보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든든한 보호막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 보호막을 가져야 속임수에 빠지지 않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다.”(책 4쪽) 우리 생활에서 이미 일상화된 항생제와 내성에 관한 현실이 바로 진화생물학의 과학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진화생물학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저자는 안타까워한다. 이런 현실에서 남아메리카 적도에 위치한 외로운 섬 갈라파고스 탐사 기회를 얻게 된 저자 일행은 생명진화의 현장을 책을 통해 실감나게 그려보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전반부는 진화의 무대인 갈라파고스 제도의 지질학적 환경과 그 안에 사는 생명진화의 역사와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는 거대거북 보존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갈라파고스의 생태계 보전이 갈라파고스에 그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지구 생태계와 지구생명 생존을 반영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13개 이상의 작은 섬들이 모여진 갈라파고스 제도가 화산작용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갈라파고스가 적도에 위치한 섬인데도 왜 바닷물이 차가운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생명의 진화를 설명하려면 반드시 지구의 지질학적 변천사를 설명해야 한다. 왜냐하면 생명진화는 지질환경에 섭동한 자연의 소산물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설명해준 갈라파고스의 화강암과 현무암의 차이, 마그마의 점성도에 따른 화산 형성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흥미로웠다. 이런 지질 조건을 듣고 보니, 같은 섬이지만 화산으로 갈라진 다른 지역에 사는 바다거북들이 왜 서로 다른 종으로 분리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자연의 지질환경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문명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생긴 진화의 왜곡과 생명의 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갈라파고스 제도 이사벨라섬에는 제주도 한라산처럼 약간 묽은 용암이 술술 흘러서 완만한 경사를 갖게 된 에라네그라 화산이 있다고 한다. 1985년 그 화산 근처에서 2월 건기에서 7월까지 산불이 있었다. 그 작은 섬에 치악산 국립공원만 한 크기가 다 타버렸다. 한 농부의 실수로 시작된 불이었는데, 인간의 힘으로는 끄질 못했고 결국 우기가 와서 산불은 멈췄다고 한다. 이런 산불 하나가 생명진화의 모습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갈라파고스로 사람이 몰리면서 생긴 불의의 일들, 즉 과거 마구잡이 사냥에 의한 종의 멸절위기, 외래종 유입에 의한 생태계 혼란, 농경지와 거주지 확산에 의한 자연환경의 침식 등은 갈라파고스의 생태계를 혼란에 빠트렸었다. 이런 문제들은 갈라파고스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라 우리 지구 전체가 겪는 상황이다. 인간이 저질러 놓은 문명의 운명은 오늘의 심각한 기후변화를 낳았다. 갈라파고스는 지구 생명의 거울이다. 오늘의 갈라파고스는 철저하게 생태보존 활동을 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멸종 위기 생명들이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지구 전체도 능동적이고 전 지구적인 지구보존 협력체계가 정착되어야만 우리 호모 사피언스의 생존도 겨우 보장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사적으로 말해서 나의 욕심과 자만심을 좀 줄이기만 해도 가능할 수 있다. 자연 앞에서 욕망을 잠재우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둘러보는 성찰의 침묵이 필요하다. 자연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저자들은 의도적으로 짧은 시간이나마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저자 김주희는 이렇게 쓰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침묵의 시간이 굉장히 기다려졌다. 침묵의 시간을 가질 때마다 자연경관 앞에서 작아지는 내 모습을 돌이켜 보기도 했고, 그 순간의 적막을 즐기며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기도 했었다. 생각의 결과가 어떻든 마음과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책 39쪽) 찰스 다윈 『종의 기원』(1859)의 중요한 내용을 채워준 핀치 새가 어떻게 선인장과 상리공생 혹은 일방적 편리공생을 하게 되는지, 스칼레시아(Scalesia Cordata)라는 국화과 다년생 풀이 어떻게 나무 식물로 진화할 수 있었는지, 남극의 펭귄이 어떻게 적도의 섬까지 오게 되었는지, 플라밍고 개체수가 인간의 새우농장에 의해 어떻게 급감하는지, 외래종 불개미가 어떻게 거대거북 생존을 위협하는지, 맹그로브 나무가 해안생태계에서 어떻게 중요한지를 말해주는지, 멸종 직전의 거대거북을 사람들이 어떻게 복원했는지 등 이런 이야기들은 정말 흥미롭다. 예를 들어 생태계의 의미를 말하는 이야기 하나는 다음과 같다. 인간에 의해 들어온 외래종 염소가 야생으로 풀리게 된다. 먹이감이 같은 바다거북이 염소와의 먹이경쟁에서 밀리면서 바다거북의 생존이 위협받게 된다. 이후 이런 위기를 인식하면서 사람들이 에스파뇰라섬 14만 마리의 야생 염소를 제거하자, 그 사체를 먹어치우는 갈라파고스 매가 급증하게 된다. 이어서 매의 사냥감이었던 라바도마 뱀과 핀치 새 그리고 검은 쥐가 급증했다. 핀치 새 급증으로 선인장이 급감하고, 바다거북 알을 훔쳐가는 검은 쥐가 급증하면서 바다거북 개체수가 줄어들었다. 이런 사슬에 인간이 개입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만큼 자연 생태계의 과정은 복잡하다. 복잡한 생명의 생태를 파괴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최우선 과제이다. 생태계를 신비의 대상으로 보고 관망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생태계를 냉정하게 보는 시선이 중요하다. 개체 생명과 전체 생태를 응대하는 우리는 자연에 대한 승리자가 아니라 자연과의 공생자여야 한다는 의미를 이 책을 통해서 크게 배웠다. 이런 의미가 실현되려면 엄정한 과학적 소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저자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실천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던져 준 이 책, 그래서 좋은 책이다. 외국 교수 실험실의 난데없는 등장 혹은 책 중간에 삽입된 논문 같은 내용이 없었더라면 이 책은 금상첨화라서 더 다양하고 더 많은 독자들이 흡족해 할 것 같다. 그리고 본문 가운데 저자 스스로 “학생”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있던데, 주인공인 저자가 제3자로 표현된 것은 청년의 청년다움을 숨긴 것으로 여겨진다. 저자가 책 시작부에서 과학의 권위는 이성과 합리성에서 나온다고 분명히 말했듯이 이 책의 주인공은 저자와 사진을 만든 사람이지, 탐사프로젝트 스폰서가 아니다. 2019년 독일 아마존 판매 1위를 한 책 『온실가스에서 기후변화까지』(KLEINE GASE–GROSSE WIRKUNG DER KLIMAWANDEL)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은 독일의 두 청년, 제러와 낼래스라는 경제학과 대학생이다. 유명인의 권위가 아니라 대학생이라는 청년다움이 이 책의 중요한 권위이다. 청년의 시선으로 쓴 글쓰기라서, 그 책은 다양하고 많은 독자로부터 호응을 받았다. 이 책 『갈라파고스에서 들려주는 진화생물학 이야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의 글쓰기, 우리 자신이 만든 이미지로 우리 스스로 만든 과학 콘텐츠 등장의 계기가 바로 이 책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확신한다. 서평자: 최종덕(독립학자, 『생물철학』 저자) 2020년 8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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